'시사'에 해당되는 글 50건

  1. 2014.02.27 김연아를 향한 열정 1%로 세상을 바꿔?
  2. 2013.09.06 이런 맛에 귀산동에 산답니다. (2)
  3. 2012.11.12 바다모래 그냥 쓰도 되나?- 마산항만청 모래부두
  4. 2012.10.15 삼귀초등학교 동문회와 옛이야기. (6)
  5. 2012.03.30 처녀 젖가슴 향기?-목련화차 (2)

 

  흔히 “청춘은 듣기만 해도 가슴 설레게 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가슴 설레게 하는 청춘들이 제대로 꽃 한 번 피워보지도 않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뉴스를 우리는 수시로 접합니다.
 국내총생산기준 세계15위, 수출만으로는 세계7위의 경제대국이면서 OECD국가 중 자살률 1위인 대한민국 자아상을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취학이 어렵고,
 취업이 어렵고,
 연애가 어렵고,
 결혼이 어렵고,
 출산이 어렵고,
 . . . .
 . . . .

 오늘을 사는 젊은이들에게 만만한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70년대를 청춘으로 살아온 7080세대들의 눈으로 보면 예전에 비해 
 취학도 쉽고,
 취업도 쉽고,
 연애도 쉽고,
 결혼도 쉽고,
 출산도 쉽고,
 . . . .
 . . . .
 어려움이라고는 없는 시대로 보입니다.
 
 60~ 70년대만 하드라도 양식이 모자라 도시락을 싸서 갈 형편이 못되는 친구들은  꽁보리밥에 고구마를 넣어 양을 부풀려 먹기도 하고, 그마저도 안 되는 친구들은 남 몰래 우물가에서 맹물로 배를 채우기도 하였습니다.
 
 당시만 하드라도 트럭 또는 버스를 모는 기술도 고급기술이랍시고 단 한 푼 급여도 없이 3~5년 밥만 얻어먹으면서 조수 노릇을 한 다음에야 운전을 배울 수가 있었습니다.
 이런 일은 옷을 만드는 재단사와 재봉사, 이발을 하는 이용사와 미용사, 식당의 요리사, 공장에서 일하는 용접공과 절단공, 집을 짓는 미장과 목수 등등 대부분이 몇 년 동안 무급으로 일을 하며 기술을 익힌 다음에야 급여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지금의 청년들은 어디를 가나 일자리가 천지에 깔려있음에도 자신에게 맞는 일자리가 없다고들 말합니다.
 그리고 기성세대 또는 정치인들을 원망하면서도 정작 자신들 스스로가 세상을 바꾸려고 하는 노력은 하지 않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한 가정에 하나 아니면 둘 정도의 귀한 자식으로 태어나 모두가 왕자나 공주로 자랐고,
 유치원에서부터 대학까지 모두 부모가 선택하고 가르쳐주는 대로 고이고이 성장하다보니 막상 성년이 되어 자신의 진로를  선택할 시점에 이르러서도 스스로 선택하는 법을 잊어버리고 만 셈입니다.

 이 같은 젊은이들의 행동양태는 개인적인 삶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삶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7080세대들은 개인적인 삶에도 치열했지만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과 같은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스스로들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고자 하는 열망과 투지가 있었기에 오늘날과 같은 경제 기적을 이루고 민주화를 앞당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을 사는 청춘들은 그런 열정과 투지가 보이지 않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세상을 만들고자 할진데 누가 그것을 대신하겠습니까?


 일자리가 없다고,
 경제적 부를 특정집단이 지나치게 독점한다고,
 젊은이들을 위한 국가정책이 없다고,
 정치인들이 국민보다는 자신들의 잇속만 챙긴다고,   
 . . .
 . . .
 원망들만 하지 스스로가 그 틀을 깨부수려고 달려들지는 않습니다.

 이 같은 젊은이들의 행동양태가 가장 단적으로 드러나는 증거가 바로 선거입니다.
 고작해야 20~30%대의 청년들 투표율을 보면서 표를 먹고사는 정치인들이 무슨 생각을 할까요?
 내가 후보자라 해도 선거 때 노인정을 찾지 대학가 앞에서 기웃거리며 소득 없는 장사는 하지 않겠습니다.

 아직도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영남과 호남에서는 정치적인 역량이나 도덕적인 인격 같은 것과는 전혀 무관하게 부지깽이라도 특정당 공천만 받으면 따 놓은 당상이고,
 지난 대선에서 그토록 다짐을 했던 기초자치단체 정당공천 폐지공약과 마찬가지로 대기업이나 기득권의 의사에 반하는 법률안들은 언제나  휴지통으로 들어가 버리고,
 민족의 염원인 남북통일문제를 민족의 아픔과 통증을 자신들의 집권 유.불리에 따라 우려먹고 희롱하는 정치행태 등등..

 우리가 표를 통해 심판하고 깨부숴야 할 과제가 한둘이 아닙니다. 

 과거 7080세대들과 같이 온갖 고문과 고초를 무릅쓰고 체루탄을 맞아가며 하는 투쟁은 못하더라도 조용히 주권을 행사하는 선거를 통해서 만이라도 자신들이 원하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 모습을 제발 좀 보았으면 합니다. 

 

 

      -사진은 달그리메님의 블로그에서...

 

지난 2월 20일 경상남도선거관리위원회에서 유권자 공감과 소통을 위한 블로거 간담회가 있어 참석해 보았습니다.
 지난해로 반세기를 넘는 우리나라 선거의 역사과정에서 부정투표와 개표와 같은 폐해는 이제 말끔히 해소되었습니다.
 이제 선관위가 해야 할 가장 큰 과제는 가능한 한 많은 국민들이 투표에 참여하여 국민의 뜻을 온전히 정치에 반영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지난해부터 도입된 새로운 제도가 과거 부재자투표 대신 사전투표제도입니다.
 이 제도는 제외국민이나 군인들과 같이 당일 투표에 참여할 수 없는 사람들을 포함 국민 누구라도 개인적인 사정 탓으로 선거 당일(6월 4일)에 투표를 할 수 없는 경우 5월 30일(금), 5월 31일(토)에 직장이나 집에서 가까운 투표소에   가서 투표를 할 수 있습니다.

 

 대한의 청춘들이여~
 6월4일은 공휴일이라고 연인과 사랑하고 연애하느라 바쁠 것 같으면 5월 30, 31일에라도 청춘들을 위해 일해 줄 수 있는 지도자를 골라 꼭 한 표를 찍어봅시다.
 올림픽경기에서 밤잠을 설치며 김연아를 응원하던 열정의 백분의 일만 마음을 먹으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투표는 후보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한 권리행사입니다.
 5월 30,31일과 6월 4일 사흘 중에 하루는 나를 사랑하는 기회로 만들어 봅시다. ㅠㅠ

 

 


 

Posted by 땡삐 선비(sunb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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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맛에 귀산동에 산답니다.

 

 지난 9월3일 교육청에 갔다가 하도 열 받는 일이 있어 해안도로를 따라 귀산동에 들어오다 보니 이웃 용호마을에 있는 크루저선 배가 출항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가슴도 답답한지라 나도 콧구멍에 바람 넣자며 그 배에 몸을 실었습니다.
 배에 올라보니 와인카페동호인들의 모임이라면서 선상에 온갖 음식으로 뷔페식단을 꾸려 놓았습니다.

 그 손님들의 음식과 와인으로 한 잔 하고 바다 바람을 쐬고나니 낮에 있었던 스트레스는 다 날아가버리고,

 그 다음은 굳이 말보다는 사진으로 . . . . 

 

 

-30명 정도가 탈 수 있는 한국해양스포츠연수원의 크루저선입니다-

-어둠이 깔리는 마산항내를 향해 출발~~

-선상에서 이런 뷔페를???

-선내에서는 선내대로...

=선외에서는 선외대로...

-여기는 또 룸살롱???

-어이쿠 이런 이쁜 선장님들은 또????

 

-마산의 야경을 제대로 누리는 멋진 사모님~~

-바다에서 보는 마산의 야경은 또 다른 맛이지요. ㅋ~~

- 이 배에는 선수와 선미에 두개의 침실과 하나의 주방이 있어 살림을 살아도....

 

 여러분도 열 받는 일이 있으면 귀산동에서 ...

 

이 크루저선을 이용하고 싶은 분은

 http://www.kmstc.co.kr/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경상남도 창원시 성산구 웅남동 | 한국해양스포츠연수원
도움말 Daum 지도
Posted by 땡삐 선비(sunb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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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꿍알 2013.09.10 16: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스트레스 제대로 풀수있겠네요~ 선상 파뤼~~ ^^

 요즘 우리 동네 마을 안길에 유난히 덤프트럭이 늘어서 무슨 일인가 하고 궁금해 하고 있던 차에 지난 9일 삼귀어촌계장으로부터 마산항만청에 항의방문을 같이 가자고 하여 동행한 바 있습니다.

 

 사연인즉 이렇습니다.
 모래를 운반하는 덤프트럭의 난폭운전으로 자연취락인 삼귀마을이 교통안전과 차량소음의 공해로 주거환경이 훼손되고, 삼귀동 관문인 장소에 축산폐기물 배출장, 모래 하역장과 같은 혐오시설 설치로 인하여 삼귀동 횟집을 찾는 손님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으므로 모래 하역장을 다른 곳으로 옮겨달라는 주민의 뜻을 마산항만청에 전달하고자 함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산항만청의 항만물류과 담당공무원 왈 “왜 2004년부터 2006년까지 공사를 할 때는 아무 말도 없다가 지금에 와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냐?”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2004년 마산신도시계획으로 마산서항 모래 하역장을 창원 5부두로 이설하기로 하고 공사를 시작하여 2006년에 매립준공을 하였는데 그동안 신도시 매립공사가 지지부진하다가 금년에 들어 공사를 서두르는 바람에 모래 하역장을 창원 제5부두로 옮겼고,
 지금 바닷물의 염분을 제거하는 제염설비와 하수처리시설 공사를 하고 있으므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참으로 어이가 없어 “그럼 그 당시에 모래 하역장을 설치한다고 우리 주민들에게 알려준 적이 있고 어촌계에 동의를 구한 적이 있느냐?”고 되물었습니다.
 나는 5년 전에 요트계류장을 설치하기 위해 마산항만청에 공유수면점용허가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이 과정에 마산항만청은 삼귀어촌계의 동의를 받아오라, 주변 양식장 업주의 동의를 받아 오라는 보완요구를 하였고, 나는 그 동의를 받는데 1년여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사실 내가 바다에 설치한 요트계류장시설은 바다에 띄우는 나무바지와 플라스틱 폰툰이 전부로 해수유동과 바다생태계에 영향을 미치거나 양식장에 피해를 줄 소지가 전혀 없습니다.
 그에 반해 마산항만청이 시행한 모래 하역장 설치공사는 바다를 매립하는 공사이므로 당연히 해수의 유동에 영향을 미치고 매립과정에 토사유출로 주변 어업피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음에도 어민들에게 전혀 동의를 구한 바가 없습니다.
 즉 국민이 바다를 사용하고자 하면 민의를 수렴해야 하고 국가가 바다를 사용하는 데는 민의 따위가 필요 없다는 논리입니다.

 

 공무원들의 인식은 이런 것 같습니다.
 ‘국가가 하는 사업은 공익을 추구하는 사업이고, 개인이 하는 사업은 사익을 추구하는 사업이다. 고로 국가사업은 모든 국민은 무조건 동의해야 하고 개인사업은 국민의 뜻을 물어야 한다.’ 
 나는 마창대교 건설사업 반대 데모를 하는 과정에서 경남도청공무원들이 “왜 정부에서 하는 공익사업을 막으려 하느냐?”하던 공무원들의 말이 생각납니다.
 그들은 지금도 마창대교가 경남도민의 공익에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을까요?

 

 

-염분도 제거하지 않고 반출되고 있는 모래

 

 

-미처 완비되지 않은 화물차 세륜장

 

 

 

 본론으로 들어가 바다모래 하역장 실태를 보겠습니다.
 모래 하역장을 옮기려면 염분을 제거하고 비산먼지가 나지 않도록 하는 설비 등을 완비한 후에 하역장을 옮겨야 합니다.
 그들의 말대로 2006년도에 이미 조성된 모래하역장이라면 그동안 이런 설비를 갖출 시간은 충분하고도 남았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미루다가 하역장 가동부터 하고 뒤늦게 설비를 갖춘다는 것은 누가 봐도 앞뒤가 뒤바뀐 일입니다.

 바다모래에는 염분이 함유되어 있어 이를 세척하지 않고 골재로 사용하였을 경우에는 콘크리트 구조물 철근의 부식, 건물에 사용되는 각종 설비 철물의 부식으로 구조물의 내구성과 안전에 엄청난 문제를 발생시킵니다.
  그런 바다모래를 실은 덤프트럭이 지금 이 순간에도 쉼 없이 드나들고 있는데 이 모래들이 어느 건설현장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는지 알 길이 없지만 심히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산항만청에 바랍니다.
 지금 당장 세척하지 않은 모래반출을 중단하고 제염설비가 완비 된 이후에 모래하역장을 가동하도록 하여 주기 바랍니다.
 이곳에서의 모래반출로 인하여 삼귀마을과 어민들에게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대책을 강구하고 아울러 제발 국가사업도 사전에 민의를 먼저 반영하여 주기 바랍니다.   

 

 

Posted by 땡삐 선비(sunb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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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폐교인 귀산초등학교의 경남해양캠프에서 삼귀초등학교 총동문회 행사가 두 번째 개최되었습니다.
 오늘 행사에는 예상 외로 400여명의 많은 동문들이 모였는데 이렇게 많은 동문들이 참석한 데는 아마도 이 학교와 함께 이 지역 사람들이 겪은 유달리 아팠던 기억과 향수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삼귀는 귀현, 귀곡, 귀산이라는 3개 마을을 합하여 삼귀라 하는데 귀현, 귀곡 마을은 산업단지에 편입되어 모두 철거가 되고 현재는 귀산마을만 남아 있는 셈입니다.

 

 

경제개발5개년계획과 창원기계공업기지의 탄생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개발5개년계획에 따라 1972년부터 국가산업의 목표를 경공업중심에서 중화학공업 중심으로 전환함과 동시 한정된 국토의 효율적인 이용을 기하고 대도시를 중심으로 과밀한 인구 및 산업시설의 지방  분산을 위하여 지방의 거점 산업도시를 계획하였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생전에 행정수도를 충청지역으로 옮기려 하고 지방의 거점도시를 개발하려고 하였으니 노무현 대통령에 앞선 지방분권의 원조라 할 수 있겠죠)

 

 

-박정희 대통령의 행정수도 프로젝터 지침

 

 

이 계획에 의하여 구미는 전자공업단지, 창원은 기계공업기지, 여천은 화학공업기지, 온산은 비철급속공업기지로 지정되었으며, 이런 산업단지를 조속히 개발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도시계획법이나 공공용지취득에 따른 손실보상에 관한 법률에 의해서는 법적 절차를 거치는 과정만으로 수년의 세월이 소요되므로 기존의 거추장스런 법률을 모두 생략하는 강력한 법률이 필요하였습니다.

그 결과 1973년 12월 24일 산업기지개발촉진법을 제정하고 1974년 1월 31일자로 산업기지개발공사를 발족하였습니다. 이 법률은 공무원 입장에서 보면 아주 편리한 법이고, 당하는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악법 중의 악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창원공업기지 내 거주하는 주민들은 이 법률에 의하여 땅을 뺏기다시피 내놓고, 농경생활을 하다가 산업도시에 적응하지 못하는 원주민들은 고향에 살면서도 이방인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한꺼번에 늘어난 산업체의 노동력이 부족하자 정부는 반송아파트를 건설하여 서울의 근로자를 강제로 이주시켜 정착토록 하기도 하였습니다.

 

 

 

 

 

       -  옛 귀곡(구실)마을 전경

 

 

  -현대양행의 공장부지로 조성하는 공사장면

   -현재 두산중공의 모습


 

박정희 대통령과 이희소 박사의 소망과 비운이 서린 귀곡마을

 삼귀초등학교의 역사도 이와 궤를 같이 하였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창원에 기계공업산업을 유치하는 한편 이 곳 지형이 사방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전시에는 천혜의 군사적 요새임을 감안 국방산업기계 즉,  탱크나 포탄을 만드는 무기공장을 우선하여 입주시키고 지금의 두산중공업 공장이 있는 귀곡동에 원자력공장을 짓기로 하였습니다. 추측컨대 박정희 대통령은 이곳 원자력 발전설비 공장을 모태로 결국 원자탄을 개발하고자 하였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핵무기 개발을 시도했다가 의문사한 비운의 과학자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의 영화 주인공 이희소 박사와 박정희 대통령의 소망이 이곳 귀곡에 이르고 있었다 하겠지요.

 

 아무튼 이런 연유로 정부는 1977년부터 이곳 귀곡산업단지를 강력히 밀어붙였는데 구실포도로 유명했던 귀곡, 귀현마을과 삼귀초등학교는 흔적 없이 사라지고, 주민들은 보상 받은 돈으로 일부는 두대동 이주단지로 이주를 하기도 하고 마산이나 객지로 떠나기도 하고, 또는 일부 주민은 귀산동으로 이주를 하여 이곳에 학교를 짓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78년 8월에 학교를 개학하였습니다.

 

 

-옛 삼귀초등학교의 전경

 

 

 

 

세숫대야를 들고 등교를 하던 학생들의 기구한 사연들

 오늘 동문회 장소에는 졸업기수별로 표식을 붙였는데 삼귀초등학교는 31회가 마지막이고 다음부터는 귀산초등학교 1, 2회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삼귀초등학교 30,31회와 귀산초등학교 1.2회의 졸업사연은 좀 복잡합니다.
 삼귀초등학교 30회 졸업 기수들은 6학년 2학기에 귀산초등학교로 이사를 하였지만 졸업장은 ‘마산 삼귀국민학교’ 졸업장을 받았고, 그 밑의 5학년 기수들은 ‘마산 가포국민학교 귀산분교’ 졸업장을 받았는데(삼귀동은 ‘73년 마산시 행정구역에 포함되었다가 ‘80년에 창원시로 편입) 이름 붙이기가 애매하여 삼귀초등학교 31회라 자칭하고 있으며, 4학년이던 기수들이 '창원 귀산국민학교' 1회 졸업생이 되었다고 합니다.

 

 삼귀초등학교에서 귀산초등학교로 이사를 온 이 무렵의 학생들은 책가방과 함께 세숫대야를 들고 학교에 갔는데 그 이유는 학교 운동장에 있는 돌을 골라내는 부역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그 당시로선 화단에 나무를 심고 운동장을 다듬고 하는 일이 어린 아이들의 몫이었던 것입니다. 

 

 주거단지로 개발된 지역의 이주민들은 그나마 그 근처에서 새롭게 둥지를 틀기도 하지만 이곳 귀곡, 귀현 마을은 모조리 현대양행공장부지로 (그 뒤 전두환 정권 때 국영기업 한국중공업으로, 김대중 정권 때 공장일부를 볼보에 매각하고 두산중공업으로 변경) 개발하는 바람에 망향비 하나 세울 곳도 없고, 돌아갈 고향집도 없는 신세가 되고 보니 오늘과 같은 동문회가 아니면 고향 친구와 친지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렇게 가슴 아픈 사연들이 있는 그들이기에 동문회 모임은 동문들의 모임임과 동시에 일가친지를 만나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하늘에는 에드벌룬과 만국기가..

 

 

삼귀초등학교 31회와 귀산초등학교 1회2회

 

-푸짐한 상품을 준비..

 

-악단들도 여럿이 동원

 

=강기윤 국회의원과 배종천 창원시 의장도 참석 

 

-전직 회장단을 포함한 어른들

사물놀이로 먼저 전을 폅니다.

민요가수의 구성진 우리 가락이 노인네들의 흥을 돋굽니다.

짝퉁 나훈아가 사람들의 혼을 뺍니다.

기수별 장기자랑에서 26회 누군가가 섹소폰으로 한껏 폼을 잡습니다.

이에 뒤질세라 몸매 날씬한 어줌마가 무대를 달굽니다.

 

 

이런 와중에 넋이 나가라 구경을 하기도 하고 신나게 부어라, 마셔라 하는 31회 막내들...

 

 

 


 2년마다 열리는 삼귀초등학교동문회 자리는 이런 남다른 추억과 감회가 있기에 더욱 의미 있는 자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삼귀초등학교 동문회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Posted by 땡삐 선비(sunb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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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장복산넘어 2012.10.16 13: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직회장단을 포함한 어른들' 맨 오른쪽에 있는 분은 아무래도 얼굴이 익은분이네...
    진해사는 진해청년지도자협의회 김진용 전 회장 얼굴 같은데...
    이렇게 닮은 사람은 없을 것 이고...
    나중에 모임에서 만나면 물어 보아야 하겠군요.
    삼귀초등학교 동문체육대회에 간 일이 있느냐고...
    ㅎㅎㅎ
    나도 초등학교 동차회 함 참석해 보았으면 좋겠다.

  2. 최민애 2017.01.17 02: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저는 삼귀초등학교 1967년 입학생입니다. 혹시 동문회가 아직도 진행 유지 중인지요??

  3. 강력 2017.10.11 14: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혹시 해서 찾아봐는데 정말 찌~인~짜로 반갑네요 향수에 잠시 젖어 가슴이 뭉클 심장이쫄깃 하네요 사진을 보니 생각이 나네요 감사합니다 잠에서 깨어나게 해 주어서 ~~여기는 경기도 수원인데 멀리서 응원합니다 제가 졸업후 학교가 없어진다는 소식은 들었습니다 추운 겨울 학교가느라 고생 참 많이 했은데 어는핸가 태풍이 불어 포도밭 다 뜨네려간 적이 있었는데 생각 나세요 또 새소식 기다립니다 동문여러분 힘네세요 감사했습니다 *^^* o(^-^)o

    • 이야기갤러리 2017.12.04 13: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마산이 고향인 창동예술촌 스토리텔링 토우 작가입니다.
      어릴적 구실이란 곳에 포도 먹으러 간 기억이 있습니다.
      그 때는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야 했는데 지금은 해안을 따라 멋진 도로가 펼쳐지고 까페와 음식점, 마창대교 등 눈부신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창원시 지원으로 문화기획자 과정을 수료하면서 귀산을 생각했습니다.
      폐교로 상실감이 큰 귀산초등학교 동문들과 함께 문화 예술을 입혀 다찾아오는 곳 창원의 쏘렌토로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동문님들의 의견을 올려주세요.

  4. 박영경 2017.12.04 13: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산이 고향인 창동예술촌 스토리텔링 토우 작가입니다.
    어릴적 구실이란 곳에 포도 먹으러 간 기억이 있습니다.
    그 때는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야 했는데 지금은 해안을 따라 멋진 도로가 펼쳐지고 까페와 음식점, 마창대교 등 눈부신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창원시 지원으로 문화기획자 과정을 수료하면서 귀산을 생각했습니다.
    폐교로 상실감이 큰 귀산초등학교 동문들과 함께 문화 예술을 입혀 다찾아오는 곳 창원의 쏘렌토로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동문님들의 의견을 올려주세요.

  5. 2017.12.04 13: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제목이 좀 그런가요?
 지금도 유명한 광고 카피가 있죠.
 “남자한테 참 좋은데, 말로 표현할 수는 없고”라는.
 아무리 그럴싸한 표현을 하려 해도 그 맛과 향을 마땅히 표현할 길이 없어 ...

 어제 마누라가 목련꽃 몽오리를 한 봉지 따다놓고 딸내미 자취방 이사 도우러 간다며 서울로 가면서 날더러 꽃몽오리를 잘라서 말리라고 하명을 하고 떠났습니다. 나는 시키는 데로 꽃몽오리 끝을 칼로 잘라 껍데기는 버리고 꽃잎만 골라서 거실 한켠에 늘어놓았습니다.
 그런데 목련꽃잎 몇 개를 끓는 물에 넣어 차를 만들어 보니 그 맛과 향이 지금까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그야말로 천상의 향이었습니다.
 박하, 허브, 치자, 연꽃... 등등의 향을 합해놓은 향이랄까요? 
 어쨌든 야릇한 향이 나는 꽃몽오리를 자르면서 왠지 풋풋하고 아련한 처녀 젖가슴이 연상되는 것이었습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목련화차를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네요.

약차를 통한 비염치료법 3 : 신이화차
 
목련의 꽃봉오리는 약간 매운 맛이 나는데 한방에서는 이를 신이화라 하여 약재로 쓴다. 폐와 기관지 기능을 도와주어 축농증으로 막힌 코를 뚫어주고 찬 기운을 몸 밖으로 발산시키는 기능을 한다. 콧물을 멈추게 하고 두통을 완화시켜 축농증이나 비염의 증상을 완화하는 데 많이 쓰인다. 맛이 그윽하면서도 은은할 뿐만 아니라 기억력과 집중력을 좋게 하므로 수험생에게 특히 좋다. 솜에 찻물을 묻혀 코에 넣으면 축농증으로 막혔던 코가 뻥 뚫린다. 하루에 두 번 정도 마시는 것이 좋다.
 
1. 물 세 컵에 신이화 10g을 넣고 끓인다.
2. 끓기 시작하면 불을 줄여 은근하게 30분 정도 달인다.
3. 체로 건더기를 걸러내고 찻물만 따라 마신다.

 

 생으로 마시는 차가 향이 좋겠지만 아무래도 오랫동안 마시려면 말려서 보관을 해야겠지요.                      거실에 늘어놓으니 온통 집안에 꽃향기로 그득하네요

 

혹여 신이화차를 마시고 싶은 분이 계시면 귀산동 저희집에 오시면 한잔 대접하겠습니다. 자연에서 공짜로 얻은 것이니 공짜로 드리겠습니다. ㅎㅎㅎ

 

Posted by 땡삐 선비(sunb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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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참교육 2012.03.31 07: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잎을 줏어 말려 차를 끓였는데 쓴 맛 때문에 먹지를 못하겠던데요?
    꽃잎이 아니라 꽃이 피기 전 봉우리여야 하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