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산

남과 여. 로망과 로맨스. 그리고 세컨하우스

남과 여. 로망과 로맨스. 그리고 세컨하우스 자세히보기

곰씹어 볼만한 글 9

딜레마

딜레마는 진퇴양난 상황을 뜻한다. 어원은 그리스어 di(두 번)와 lemma(제안·명제)의 합성어다. 원래 논리학 용어지만 일상생활에서도 흔히 쓰인다. 세 가지 궁지에 처하는 삼중고는 ‘트라일레마(trilemma)’라고 한다. 딜레마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죄수의 딜레마’다. 갈등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의심과 이기심 때문에 최악의 선택을 한다는 ‘게임 이론’의 개념이다. 갈등 상황에선 협조보다 변절이 유용하다는 근거도 된다. 1950년대 미국 최초의 싱크탱크인 ‘랜드회사’ 소속 과학자들이 발견해 공식화했다. 두 죄수를 분리 신문하면서 침묵 아니면 자백을 선택하게 한다. 둘 다 침묵하면 1년, 둘 다 자백하면 5년형을 받는다. 한 명만 자백하면 그는 풀려나지만 상대는 10년형을 받는다. 죄수들은 결국 상대..

갯마을의 아침

갯마을의 아침 기지개를 켜는 해와 함께 갯마을의 바다는 열린다. 햇살을 쫓아 불어온 바람결 손짓이 밤새 깔아놓은 안개이불 걷어내고 바다의 등을 두드리면 바다는 가느란 트림을 토하고 마을은 갯내음에 젖는다. 밤새도록 여윈 갯바위 가슴 핧던 파도는 잠에서 깨면서 또 땟국이 짜리한 땅깃을 헤집는다. 밤새 마른 가지 위에서 새우잠 자던 갈매기가 안개 걷힌 해면 위를 날며 먹이를 찾기 시작하자 새벽잠 없는 늙은 어부가 그물을 챙긴다. -홍 성 운_

석양

석양 바닷가 횟집 유리창 너머 하루의 노동을 마친 태양이 키 작은 소나무 가지에 걸터앉아 잠시 쉬고 있다 그 모습을 본 한 사람이 ‘솔광이다!’ 큰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좌중은 박장대소가 터졌다 더는 늙지 말자고 ‘이대로’를 외치며 부딪치는 술잔 몇 순배 돈 후 다시 쳐다본 그 자리 키 작은 소나무도 벌겋게 취해 있었다 바닷물도 눈자위가 불그족족 했다. 허영만님의 시

'루브 골드버그 장치

일을 하는 데는 쉽고 간단한 방법과 어렵고 복잡한 방법이 있다. 합리적인 인간은 가급적 단순하면서도 쉬운 방법을 택하겠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이 복잡하고 험난한 길을 택한다. 첫째는 길을 몰라서다. 가까운 지름길을 두고도 먼 길을 헤맨 경험이 한두 번쯤은 있을 것이다. 둘째는 잔머리를 굴려서다. 여러 가지 선택지를 재보다가 결국 최악의 선택을 하고 마는 경우다. 장고(長考) 끝의 악수(惡手)다. 쉬운 일을 어렵게 만들기로 치면 루브 골드버그 기계 또는 장치(Rube Goldberg Machine or Device)만 한 게 없다. 이 장치는 단순한 작업을 될 수 있으면 어렵고 복잡하게 만드는 게 목적이다. 밥 먹을 때 입을 닦아주는 기계가 있는가 하면, 지각했을 때 상사가 눈치 채지 못하게 하는 장치도 있..

포천청

법(法)은 '물(水)'과 '가다(去)'가 합쳐진 글자다. 이를 두고 물이 흐르듯 순리를 따른다는 뜻에서 만들어졌다는 설(說)이 있지만, 그냥 설일 뿐이다. 법은 본래 법()의 약자다. 법을 파자(破字:한자의 자획을 풀어 나누는 것)해 보면 물(水)+해치()+가다(去)로 돼 있다. 현재 쓰는 법자와 달리 해치가 하나 더 들어가 있다. 해치는 흔히 해태라 불리는 상상의 동물로 바른 것을 가리는 신수(神獸)다. 사자와 비슷하지만 머리 가운데 뿔이 있다. 중국 고서인 '이물지(異物志)'는 "동북 변방의 거친 곳에 사는 짐승이다. 머리에 뿔 하나가 돋아 있고 우수마면(牛首馬面)에 발톱은 둘로 갈라졌으며, 온몸은 푸른 비늘로 덮여 있다. 성품이 올곧아 사람이 싸우는 것을 보면 사악한 사람을 뿔로 받는다. 사람이 논..

인기검색어

뉴욕시 대로에서 한 남자가 1분간 하늘을 쳐다봤다. 행인 대부분이 그냥 지나쳤고 4% 정도가 따라서 하늘을 쳐다봤다. 서 있는 사람의 수를 늘리자, 따라 쳐다보는 사람의 수도 늘었다. 5명이 하늘을 쳐다보면 행인의 8%, 15명이 쳐다보면 40%가 행동을 따라 했다. '사회적 증거(social proof) 현상'에 대한 유명한 심리학 실험이다. 사람들은 다수의 행동인 '사회적 증거'를 따라 하면 실수를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해 남을 좇아 한다는 것이다. TV 코미디에 삽입되는 '가짜웃음', 베스트셀러임을 강조하는 상품광고가 이에 속한다. 코미디 프로의 가짜웃음은 바보스럽고 어색하지만, 시청자들은 다른 사람들의 웃음소리를 듣고 더 자주 오래 웃으며 그 프로를 더 재미있게 느끼는 것으로 조사됐다. 불우이웃 돕..

동곽선생

동곽(東郭)이라는 서생(書生)은 고집에 가깝게 공부를 하는 사람이다. 도움 안 되는 독서에 열중하고 생각은 늘 고루하기만 하다. 어느 날 그는 중산국의 숲길을 걷다가 피를 흘리며 쫓기는 늑대를 만난다. 늑대는 "선생 보따리 속에 들어가 숨어 있을 테니 사냥꾼 좀 따돌려 달라"고 애걸한다. 성정(性情)이 '무분별하게' 어질기만 한 동곽 선생은 늑대의 몸집을 줄이기 위해 끈으로 묶어야 보따리에 들어갈 수 있다는 아이디어도 낸다. 보따리 속에 들어간 늑대는 바로 뒤를 이어 들이닥친 사냥꾼을 피한다. 이야기는 다른 한 상황으로 접어든다. 위기를 모면한 늑대는 안면을 바꾼다. "은혜를 베풀었으니 마저 베푸는 게 어떠냐"며 동곽 선생을 잡아먹으려 든다. 위기에 처한 동곽 선생은 길을 지나는 농부에게 도움을 청한다...

낭패

낭(狼)과 패(狽)는 모두 상상 속 동물이다. 낭은 뒷다리 두 개가 없거나 아주 짧다. 패는 앞다리 두 개가 없거나 짧다. 생김새는 이리와 같다. 두 녀석이 걸으려면 패가 늘 낭의 등에 앞다리를 걸쳐야 한다. 떨어지면 그 즉시 둘 다 고꾸라진다. 어지간히 사이가 좋지 않고서는 넘어지기 일쑤다. 둘이 협조해야만 걸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인삼각(二人三脚)과 같다. 낭패가 문헌에 등장한 것은 소명태자가 엮은 '문선'에서다. 진(晋)나라 때 이밀은 임금이 중용하려 하자 "벼슬을 하면 연로한 할머니를 모실 수 없고 할머니를 모시자니 임금의 뜻을 거스르게 돼 진퇴가 정말로 낭패스럽다(臣之進退 實爲狼狽)"고 읊었다. 이 글을 읽고 임금은 이밀을 쓰려던 생각을 접었다고 한다. 낭과 패는 성정(性情)도 다르다. 낭은 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