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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광저우 육조사에서 여래를 보다. 함안 군북면 하림리에 있는 서산사의 원담스님께서 중국 광저우 육조사에 간다고 동행하자고 강권을 하여 3월20일부터 24일까지 4박5일간 다녀왔습니다. 2012년 거창 가북면에 있는 용암선원에서 석달간의 동안거 이후로 나는 꾸준히 참나(眞我)를 찾는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런고로 석가모니 이후로 마음세계를 가장 잘 설파한 육조스님의 흔적을 스님들과 함께 구경하는 것도 의미 있겠다 싶어 마음을 내어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육조혜능(六祖惠能) 대사하면 인도에서 28대 조사인 달마대사가 중국으로 건너와 동양 1대 조사가 된 후로부터 6번째 조사로 불가에서 교과서인 육조단경이 대사의 어록입니다. 대사는 일자무식으로 나무장사를 했는데 하루는 객점에 나무를 져다주고 문 밖을 나오는 순간에 한 손님이 ‘마땅히 머무름.. 더보기
조선시대 냉장고 누가 사용했을까? 경남도민일보의 ‘해딴에’서 주관하는 블로거 팸투어로 창녕의 유적지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는데 창녕에 이렇게 많은 유적이 있는 있는지 미처 몰랐습니다. 창녕지석묘, 교동·송현고분군, 진흥왕 척경비, 석빙고 . . . 오늘은 그 중에서도 석빙고와 선정비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본래 선정비(또는 공덕비라고도 함)는 그 고을을 다스리던 목민관이 특별히 공과 덕을 많이 쌓아 백성들이 그 은공에 감사의 표시로 세웠던 비석입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임기가 끝나고 떠나는 공직자에게 주민들이 주는 감사패와 같은 것으로 요즘의 감사패는 돈 몇 푼 주고 뚝딱 만들어서 손에 쥐어주면 되는 것이지만 당시의 선정비는 돌이나 철로 만든 부피가 큰 물건이라서 그리 쉽게 만들 수 있는 물건도 아닐뿐더러 비를 세우는 장소도 확보.. 더보기
고려종택 네모주춧돌과 둥근기둥의 음양조화는 과연? 지난 7월 29 ~ 30일 경남도민일보의 해딴에가 주관하는 블로거 팸투어 과정에 쉽게 믿기지 않는 동네를 구경했습니다. 함안군 산인면에 있는 고려동이라는 동네인데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된 해가 1392년이니까 지금으로부터 624년 전에 있었던 고려국의 동네가 지금까지 남아있다니. . . .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본 이 동네의 유래는 다음과 같습니다. * 고려의 충절을 지킨 이오 선생의 고려인 마을, 고려동유적지 * 고려동유적지는 고려 후기 성균관 진사 이오(李午)선생이 고려가 망하고 조선왕조가 들어서자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키기로 결심하고 이곳에 거처를 정한 이후 대대로 그 후손들이 살아온 곳이다. 이오 선생은 이곳에 담장을 쌓고 고려 유민의 거주지임을 뜻하는 '고려동학' 이라는 비석을 세워 논과 밭을.. 더보기
아라홍련은 여인의 화생인가, 꽃의 화생인가? 지난 7월 29 ~ 30일 경남도민일보의 해딴에가 주관하는 블로거 팸투어 일정으로 가야읍 아라홍련 시배지와 법수면 옥수홍련 테마파크를 갔었는데 꽃이 만발한 연늪에 서니 내가 마치 불국토에 들어선 듯 묘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연꽃하면 떠오르는 것이 불교와 연등입니다. 내 기억으로 2천 년대 전만 하더라도 우리 주변에서 실제 연꽃을 구경하기 쉽지 않았는데 언제 부턴가 연잎밥이 좋다, 연꽃차가 좋다하면서 연 재배가 유행처럼 번져 지금은 쉽게 연꽃을 접할 수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자라면서 실제 연꽃보다 사찰에서 문양으로 본 연꽃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사찰에서는 불·보살이 앉아 있는 연화좌(蓮華座)를 비롯해서 불전을 구성하는 불단과 천장, 문살, 공포, 공포벽 등은 물론이고 탑, 부도, 심지어.. 더보기
경치도 무진장, 즐거움도 무진장한 함안의 무진정. 우리는 돈이 엄청나게 많은 사람을 두고 ‘그 사람 돈 무진장하다’라고 하고 물이 엄청 깊을 때 ‘물이 무진장 깊다’라고 하는 등으로 그 끝을 헤아릴 수 없는 경지를 두고 '무진장(無盡藏)‘이라 합니다. 그런데 경치도 무진장이요 주인의 즐거움도 무진장한 정자가 있었으니 함안군 함안면 괴산리 544-2번지에 있는 ‘무진정’인데 두 개의 물줄기가 흐른다고 일명 ‘이수정’이라고도 불립니다. 인터넷에서 무진정에 대해 검색을 해보면 조삼선생(1473 ~ ?)이 직접 지었다는 설과 후손들이 조삼의 공덕을 추모하기 위해 지었다는 설이 있으나 전자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 근거로 조선 최초의 백운동서원을 건립한 사림학자 신재(愼齋) 주세붕(1495년 ~ 1554년)이 지은 기문(記文)이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