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8일 진해문화공간 흑백에서의 진해근대문화비전과 이순신 스토리텔링 사업에 대한 시정공유를 위한 라이브 토크쇼 2부 이야기입니다.

 허성무 창원시장이 이런 행사를 마련한 이유는 진해가 지닌 진면목을 제대로 알고 이를 근거로 진해를 문화도시, 관광도시로 만들고자 하는 자신의 구상을 밝힘과 동시 시민들의 뜻을 듣고자 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솔직히 말해 외국여행을 하다보면 우리나라만큼 지역 고유의 역사유물이 없는 도시들도 찾기 어렵습니다.

 일제시대에는 일본놈들이 고의적으로 우리의 역사흔적을 지우려 했고, 6.25 동란 때에는 무차별 포화로 문화재들이 소실되고, 급격한 산업화와 경제발전 과정에는 무조건 하고 서구화가 좋은 줄 알고 따라가기에 바빴었기 때문이라 봅니다.

 그러다보니 대한민국 어디를 가나 고만고만한 볼거리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이야기는 다릅니다.

 

 나는 몇 해 전 경남도민일보의 해딴에가 진행하는 역사문화탐방에 따라다니면서 내가 보지 못하고 듣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보고 듣게 되었습니다.

 사실 무엇이든지 그 속에 들어있는 내용을 알지 못하면 고인돌은 그냥 돌무더기이고, 고건물들은 낡고 오래된 건물일 뿐입니다. 하지만 그 속에 있었던 역사를 알고 나면 하나하나가 새롭게 보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순장군 하면 한산대첩, 명량해전, 노량해전은 떠올리면서도 정작 이순신 장군이 가장 전투를 많이 치른 진해 앞바다에서의 해전에 대해서 주목하는 이는 별로 없습니다.

 지금의 진해인 웅천 앞바다에서는 합포해전, 두 번의 안골포 해전, 웅포해전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유독 웅천에서 왜 전투가 많았을까요?

 

 

 

대마도와 부산, 그리고 진해 앞바다

 지도를 놓고 보면 대마도는 우리나라에서 제주도보다 훨씬 가까운 섬으로 대마도와 일본 본토의 거리보다 부산까지의 거리가 더 가깝습니다. 지금도 일본 본토에서 요트나 소형 보트를 타고 한국에 오려면 반드시 대마도에서 1박을 하고 대한해협을 건넙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전쟁상황을 보면 임진왜란 때는 일본군이 부산에서 서울로 향하면서 곡창지대인 호남을 장악하지 못하여 식량보급에 애를 먹었습니다. 부산에서 전라도로 가려면 거제도 남쪽 외해로는 파고가 높아 거제와 통영 사이의 견내량을 통과해야 하는데 이순신 장군이 진해만에서 이 길목을 차단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험 때문에 정유재란 때 일본은 조선의 조정을 이간질하여 이순신을 파직시키고 원균을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하였습니다. 그리고 칠천량에서 조선군함 160척 중 12척만 남기고 전멸시키는 승리를 하였습니다. 이로서 왜군은 호남과 충청도의 곡창지대를 단번에 손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이 같이 전쟁에서 목숨줄과 같은 견내량을 사수하기 위해 이순신 장군이 진해만에서 치른 해전의 역사를 알고 보면 누구라도 진해바다를 새롭게 보게 될 것입니다.

 이순신 장군의 해전 중에서 웅천바다에서 있었던 전투만을 대략 요약해서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지금은 선박들이 대형화 되어 일본 직항로가 있지만

예전에는 반드시 대마도를 거칠 수 밖에 . . . 

 

합포해전

 159257일 옥포해전에서 승리한 후 왜군을 쫓다가 치른 전투로 옥포해전의 연장선에 있는 전투라 할 것입니다.

 네 시간여에 걸쳐 첫 전투 옥포해전을 치르고 거제북쪽 영등포에 정박하여 지친 군사들이 휴식을 취하는 중 적선 5척이 거제 앞바다를 지나 웅천 쪽으로 가고 있다는 첩보를 들었습니다.

 5척의 적선을 치기위해 장군은 휴식하고 있는 전군에 출동을 명령 5척의 일본 전함을 모두 불사르고 1,000여명의 일본 수군이 육지로 도망쳤습니다.

 

안골포해전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치른 해전과 정유재란 때 원균이 치른 해전 둘이 있습니다.

 먼저 이순신 장군의 안골포 해전은 159278일 한산도 해전에서 일본 전선 73척 중 47척을 분멸시키고 12척을 온전하게 나포하고 도망간 14척의 적선을 추격하여 79일에 가덕으로 향하는데 안골포에 왜선 40여 척이 대어 있다는 탐망군의 보고를 듣고 1592710일 출전하여 적선 42척 중 20척을 분멸시킨 전투였습니다.

 여기서 이야기 거리가 있습니다.

 안골포는 만이 깊고 폭이 좁아 공격하기도 사납지만 적이 도망치기도 어려운 지형입니다. 굳이 마음만 먹는다면 나머지도 모두 분멸시킬 수는 있었으나 왜군이 도망갈 수 있는 여지를 두었으며, 예상대로 왜적은 밤을 타 소선을 타고 부산방면으로 도주를 합니다.

 합포해전에서도 그러했듯이 수군이 군함을 잃으면 육지로 가서 노략질을 하므로 죄 없는 백성들이 고초를 당합니다.

 이순신 장군을 성웅이라 칭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전공을 앞세워 조정에 잘 보이려는 아첨꾼들처럼 무작정 전공실적만 올리기 보다는 백성의 안위를 먼저 염려하고 보살폈다는 점입니다.

 

 2차 안골포해전은 정유년에 일본군 50만 명이 부산을 침략할 것이라는 첩보를 들은 조정에서 원균에게 부산의 일본해군 본거지를 치라는 명을 내립니다.

 하지만 웅천과 가덕도 일대에 일본 해군들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어 이를 먼저 해결하지 않고서는 부산을 향할 수가 없었기에 원균은 1597618일에 한산도를 출발 619일 안골포로 진격하였습니다. 이날 조선군은 1명의 사상자만 나고 왜선 2척을 노획하는 승리를 하고 철수를 합니다.

 원균의 승리는 거기까지였습니다.

 1597715일 조정의 등살에 못 이겨 출정한 칠천량해전에서 조선수군도 괴멸되고 그 자신도 전사하고 맙니다. 그 결과 일본수군은 전라도까지 진출하여 곡창지대를 차지하였고, 이를 때려잡는 전투가 그 유명한 명량해전이었던 것이죠.

 

웅포해전

 이 전투는 본래 조선과 명나라의 육군이 왜군을 부산으로 몰아가고 해군이 왜군의 퇴로를 차단하는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부산으로 향하던 길에 그 길목인 웅천에 있는 왜군을 제거하기 위한 전투였습니다.

 육군과 합동으로 부산을 치라는 명령을 받고 159326일 이순신 장군은 89척의 연합함대에 14000명을 거느리고 여수를 출발 부산으로 진격합니다.

 작년 안골포와 부산해전을 위해 이 바다를 지나갔는데 웅천은 왜성을 쌓을 만큼 차츰 요새화되었습니다.

 일본은 100여척의 전선을 그대로 포구에 묶어둔 채 육지에서만 응전하려고 했습니다.

 210일 이순신 함대는 웅천으로 쳐들어갔지만 적은 야산 진지에서 포격을 하므로 적선에 제대로 총통을 쏠 수도 없고, 조선함대의 포구로의 진입을 막기 위해 바다 한가운데 목책을 설치해 두었기에 퇴각하여 가까운 포구에서 군사들을 쉬게 했습니다.

 등 뒤에 적을 두고 부산으로 진격할 수는 없는 법, 210, 12, 18, 20일 연이어 공격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이제까지 이순신은 철저히 상륙전을 회피했고 수많은 전투 경험이 있는일본군사들과의 접전을 허용하지 않았지만 이순신은 222일 결단을 내리고 상륙을 명령합니다.

 600여명의 승병과 1100명의 의병이 상륙하기로 한 작전이었습니다.

 왜군은 바다쪽만 신경 쓰며 모든 포와 조총을 그쪽으로만 집중하다가 측면 공격을 받은 것입니다.

 적의 의표를 찌른 기습상륙작전을 감행하여 어렵게 치른 성공적인 전투였지만 명나라 육군과 합동으로 부산을 치려던 계획에 차질이 생겨 여수로 귀환했습니다.

 명나라가 일본과 50일 간의휴전 협상을 체결해버렸던 것입니다.

 

 앞의 합포해전에서 옥포와 합포간에 거리가 있음에도 하루만에 전투가 끝났습니다.

 지금까지의 해전은 그야말로 속전속결이었습니다만 유독 이 웅포해전은 15932210, 12, 18, 20, 22, 28일 그리고 346일의 7회에 걸쳐 치른 최장기간 전투이며 아군의 피해도 많았던 전투였습니다.

 비록 해군이 상륙작전까지 수행하여 승리한 전투라고는 하지만 전례 없이 아군의 피해가 많이 발생하기도 하고 긴 전투를 치렀습니다.

 육지에서의 한 달 전투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실 물, 씻을 물도 없이 파도에 출렁대는 배 위에서 한 달여의 전투는 생지옥이나 다름없을 것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전투상황을 일기로 남겼지만 이 웅포해전에 대해서만은 일기로 남기지 않았음은 아마도 병사들의 죽음과 고통을 되돌아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 빨간색으로 표시된 것이 기동로이고 웅포해전을 치루고 대부분의 유박은 거제 송진포입니다. 나머지는 송도에서 사화랑으로 사화랑에서 제포를 가는 것을 표현하였습니다

-위 자료는 팬져님의 블로그에서-

 

이순신의 스토리텔링과 관광자원화를 위한 잔소리. . .

 앞의 포스팅에서 언급한 바 있는 진해 앞바다에서의 전투를 가지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지금의 진해 앞바다만 가지고 논할 것이냐 과거의 진해와 지도상에 나타난 진해만을 가지고 논할 것이냐는 제쳐두고 이순신 장군의 스토리텔링을 가지고 해양관광사업을 구상하려면 적어도 하루 동안 항해가 가능한 한산도까지 시야를 넓혀야 한다고 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창원시의 사업이 창원보다 고성, 거제, 통영에 더 큰 기여를 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순신 장군의 위대한 업적을 조금이라도 더 계승하고 확장하려면 소지역주의에 매몰되지 말고 확장된 그림을 그려주길 바랍니다.

 해서 세계 해전사에서 신화와 같은 존재인 성웅 이순신 장군의 업적을 이 땅에서 자라나는 어린이들의 가슴에는 물론이요 세계인들의 가슴에 각인시킬 수 있는 프로젝터로 진행해 주었으면 합니다.

 

 

 

 

 

Posted by 땡삐 선비(sunb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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