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8일 진해문화공간 ‘흑백’에서 진해근대문화비전과 이순신 스토리텔링 사업에 대한 시정공유를 위한 라이브 토크가 있었습니다. 배우 이재용과 진해문화원장 홍성철, 그리고 허성무 창원시장 세 사람이 진해 앞바다에서 있었던 이순신 장군의 해전에 관한 이야기와 진해 중원로타리와 우체국 등 일제시대 이후의 근대문화유산과 그에 얽힌 이야기들을 1시간 넘게 이야기 했습니다.
진해문화원장이 진해의 역사를 잘 알고 있는 것은 당연하지만 허성무 시장이 진해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그토록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으리라고는 생각을 못했는데 참석한 이들 모두가 정말 의외라며 놀랐습니다.
진해 삼포라는 동네는 오지 중의 오지로 이곳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는데 허성무 시장은 이곳의 길과 경치를 훤히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지역을 대표하는 노래 <삼포로 가는 길>과 <황포 돛대>에 얽힌 이야기들에 대해서도 소상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허성무 시장은 진해가 가지고 있는 자연자원과 문화유산들과 그 속의 이야기들을 엮어 관광자원화를 하며, 그에 더하여 높이 100미터 이상의 거대한 이순신 장군 동상을 설치하여 창원의 랜드마크로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미국의 자유의 여신상,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예수상, 파리 에펠탑이 그 도시를 대표하듯 이 말입니다. 허성무 시장의 진해에 관한 높은 식견과 상상력은 그 자체로 값진 구슬임에는 틀림없으나 문제는 그 구슬을 어떻게 꿰느냐에 있습니다.
아는 것이 많은 학자들의 지식과 현실에서의 정책 사이에는 늘 괴리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허성무 시장의 식견, 상상력과 창원시 공무원들의 거대 조직의 생각은 다를 수가 있기에 그 결과를 예단할 수는 없습니다.
이순신 장군과 진해만 해전
나는 몇 해 전 지인의 권유로 ‘이순신을 배우는 사람들(약칭 이배사)’이라는 모임에 몇 번 참석하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가 알기로 이순신 장군은 전라좌수사이고 전라좌수영은 여수에 있었기에 주로 그쯤에서 전투가 많았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가장 전투가 많았던 곳이 진해 앞바다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기막힌 일은 이순신 장군이 전투를 한 지역의 지자체에서는 모두 이순신 장군과 거북선을 바탕으로 너도 나도 기념행사에다 기념관이다 뭐다하며 ‘이순신 팔이’를 하는데 정작 전투가 가장 많았던 창원에서는 그동안 깜깜했던 것입니다.
이날 홍성철 진해문화원장이 15번의 전투 중 9번의 전투가 진해 앞바다에서 있었다라고 이야기한 것을 가지고 이것이 맞네 틀리네하는 논란도 있습니다.
여기서 창원시민들도 잘 모르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진해라고 알고 있는 오늘의 진해는 조선시대에는 웅천현이었으며, 지금의 삼진쪽이 진해현이고 진해현청이 (구)진동면사무소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지금의 진동, 진북, 진전, 구산면 앞의 바다가 모두 진해 앞바다라고 할 수 있으며, 지금도 인터넷에 ‘진해만’을 검색하면 그림과 같이 나옵니다. 웅천의 합포, 웅포, 안골포 해전에다 거제와 고성의 당항포, 옥포, 율포, 적진포, 장문포 해전을 더하여 9번이라 한 것입니다. 보는 관점에 따라 시비가 갈리긴 하지만 웅천의 전투만 가지고 하드라도 전투가 가장 많았던 곳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웅천과 가덕도에는 조선의 성곽과 왜구의 성곽이 지금도 많이 남아있어 이곳이 서로에게 있어서 군사적 요충지로써 얼마나 중요한 자리인지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변질된 것이 어디 지명뿐이겠습니까?
진해 군항제는 1952년 4월 13일 북원 로터리에 우리나라 최초로 충무공 이순신의 동상을 세우고 추모제를 거행하게 된 것이 계기였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아무라도 ‘진해’하면 ‘벚꽃축제’가 연상될 만큼 진해는 벚꽃축제로 유명해지고 정작 이순신 장군 추모제는 그 의미가 퇴색되었습니다.
허성무 시장은 이런 점들을 잘 알고 스토리텔링을 만들고 관광자원, 문화자원화 하자는 취지였습니다.
이순신 장군 동상의 랜드마크화 위해 . . .
뉴욕의 자유여신상 높이가 92미터인데 100미터 높이라 하면 과히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규모가 크고 보면 그 규모만으로도 쉽게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에 충분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창원에서 이뤄져왔던 로봇랜드, 해양신도시, SM타운 등의 대형사업들을 보면 ‘글쎄???’라는 의구심과 함께 자꾸만 머리가 갸우뚱해지기도 합니다. 하도 많은 지자체들이 이순신 팔이를 많이 하고 있어 몇 안 되는 인구의 대한민국 좁은 땅덩어리 안에서 같은 소제를 가지고 후발주자로 나선 창원시가 과연 관광자원화에 성공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과 허성무 시장의 열린 행정스타일 속에 분명 그 답이 있으리라 기대를 합니다.
이순신 장군이 백전백승을 거둘 수 있었던 바탕에는 귀천과 노소를 가리지 않고 그 분야에 종사하며 체득한 경험으로 제공하는 백성들의 각종 정보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전략의 요체로 삼았던 것입니다.
지형을 익히고 기후와 물때를 면밀히 파악하여 이를 십분 활용함으로서 말도 안 되는 오합지졸의 군사로 왜적 정예군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더욱 주목할 점은 자신의 전공보다 백성의 안위를 염려하는 애민정신입니다. 나는 허성무 시장이 자신의 업적을 내세우기 위한 사업이 아니라, 진정으로 창원시민과 이순신 장군의 충정을 받들어 이 사업을 추진해 준다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봅니다.
해양관광산업 활성화와 동상의 위치는 육지가 아닌 바다의 관점에서. . .
해양관광산업 활성화에 대해 주제넘게 내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자면, 육지의 책상머리에 앉아서만 생각하는 이순신 장군의 전투와 해양관광만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관점을 육지에서 바다로 눈을 한 번 돌려 봐줬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나는 지금까지 창원의 바다에서 이뤄져 왔던 사업들을 보면서 참으로 답답함이 많았습니다. 돝섬에 요트장을 설치 할 때 나는 “하필이면 바람이 많이 치는 곳에 요트장을 설치하누?” 했는데 아니나 공사가 끝나기도 전에 다 부서져 다시 시공을 하였고, 마산의 가포를 매립하는 것을 보고 “마산은 우째 망하는 짓만 골라서 하누? 앞으로 귀산만 좋아지겠네.”했더니 지금에 와서 보는 바와 같습니다.
이 모든 것이 공무원들이나 용역회사 직원들이 무능하고 나빠서가 아니라, 바다를 경험하지 못해봤기에 지도 펴놓고 그림만 근사하게 그릴 수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마창진이 통합되면서 창원시는 해양관광산업을 시정의 모토로 내세웠습니다만 계속 헛발질만 하고 있습니다. 창원의 바다를 경험하고 그 속의 매력이 어떤 것이며 바다를 즐기려면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아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창원의 바다를 설계하고 디자인한다는 그 자체가 웃기는 일인 것이죠. 제발 책임면피용으로 용역회사에 용역만 줄 것이 아니라 공무원들이 직접 나서서 봄, 여름, 가을, 겨울, 낮과 밤, 바람 부는 날 등등의 바다체험도 해보고 바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제발 들어줬으면 합니다.
그리고 육지에 세워져 있는 이순신 장군의 전적지 표석만 구경하지 말고 배를 타고 해전의 길을 따라 직접 항해도 해보기 바랍니다. 하루 동안 옥포에서 전투를 치르고 합포에서 또 다른 적을 찾아 쳐부순 후 남포에서 밤을 지새웠다 하니 그 정도 항해를 하려면 노를 젓는 격군들의 노고가 어느 정도였는지 상상도 해보기 바랍니다.
장군이 부산의 왜적 본거지를 치기 위해서는 길목에 있는 웅천의 적을 무찔러야 했듯이 앞지른 ‘이순신 팔이’ 지자체를 제치고 진해만을 이순신의 바다로 상징할 수 있는 길목이 어디인지를 육지와 바다에서 제대로 찾아주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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