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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엿보기

도망가는 안상수, 잡으러 가는 조영파 창원시장후보의 결과는?

선비(sunbee) 2014. 5. 23. 08:00

 이번 6.4 지방선거에 출마한 안상수, 조영파  창원시장후보 두 사람의 과거 이력과 현재 입장이 마치 한 편의 연속극과 같은 극적인 대조를 이루면서 묘한 장면을 연출을 합니다.
 안상수 후보는 명문대를 졸업한 인물로 사법고시에 합격되어 검사를 지내다 국회의원 4선에다 막강한 집권당의 당대표까지 지낸 중앙정치의 대물입니다.
 반면에 조영파후보는 시골 진영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진해 웅천면에서 면서기로부터 마산부시장, 창원부시장을 역임한 토박이 공무원으로 정치 초년생 인물입니다.

 

 

 

 

 

 

 안상수 후보는 1966년 징병검사 기피에서 부터 1975년 병역법 공소시효 소멸시점에 이르기까지 그는 철통같은 불심검문을 요리조리 빠져나가며 병역기피 도망을 다녔습니다.
 반면에 조영파 후보는 1967년 입대한 육군 헌병 병장출신으로 그 시절에는 군대 구타도 심하고 굶주리던 시절인지라 구타에 못 이겨, 혹은 배가 고파 탈영하는 병사들이 더러 있어 탈영병을 잡으러 다녔습니다.

 

 이렇게 도망을 다니던 병역기피자와 잡으러 다니던 헌병이 이번 선거판에서 또 도망가고 쫓아가는 형국이 벌어졌습니다.
 병역기피의 범죄자이건 말건 아무튼 새누리당의 공천을 받은 안상수 후보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앞서가고 있고, 무소속 조영파 후보는 안상수 후보를 잡기위해 새정치민주연합의 허성무 후보와 범창원시민후보 단일화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 대한민국  최초의 보온병과(?) 출신 기피병-         

 

                      

 

 

  세상돌아가는 판을 대체로 잘 읽고 있는 언론사의 기자들이나 정보경찰관들의 말의 빌리자면 쉽지는 않겠지만 만약에 조영파 후보

로 단일화가 된다면 안상수 후보에 대한 인식이 워낙 나쁘기 때문에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점을 칩니다.     

도망자와 추격자라?????

 추격자가 밝힌 도망자의 범죄혐의는 아래와 같은데 공소시효가 지나 법적인 처벌은 불가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병역기피죄에 관한 한 도덕적 재판 시효는 죽는 그날까지 유효합니다. 
 108만 창원시민께서는 도망자의 엽기적인 병역기피에 관한 아래

혐의를 어떻게 재판할지 궁금하네요.

 

 

 

 

         - 헌병과 육군 병장 출신 조영파- 

 

안상수 후보의 병역기 3대 의혹

 

의혹 1) 10년간의 병역기피 과연 노모 탓인가?

 안상수 전 한나라당 대표는 지난 2010년 당대표 경선 과정에 자신의 10년 병역기피에 대해 “이곳저곳 절을 옮겨 다니며 고시공부를 하는 바람에 고향에 계신 글 모르는 노모로부터 입영영장을 전달받지 못해서다.”라는 취지로 자신의 병역기피를 노모 탓으로 돌렸습니다.
 그리고 국민들은 안 대표의 말을 믿고 “그럴 수도 있겠구나!”하고 지내왔습니다.

 

 그런데 ‘한국법조인대관’이라는 책에 실린 안 대표의 경력을 보면 “1969 (주)농한산업 근무”라고 기록된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행방불명된 사람이 버젓이 회사를 다녔다는 믿기지 않는 사실에 모든 국민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의문점.
 -언제부터 언제까지 (주)농한산업에 근무하였는지?
 -병역기피를 과연 글 모르는 어머니 탓으로 볼 수 있는지?

 

의혹 2) 입영기일 연기 이유의 질병 사실인지?

 안 대표는 1967-1968년도에 신체검사를 기피하다가 1968년도에 신체검사를 받아 현역입영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뒤 해인 1969년도에는 질병을 이유로 입영기일을 연기를 하였습니다.
 1968년도 신체검사에서 현역판정을 받을 정도의 건강한 청년이 불과  1년 만에 군 복무를 못할 정도로 급격하게 건강이 악화된 점을 보통사람들은 납득 가지 않을 뿐 아니라, 군복무를 하지 못할 정도의 질병이라면 기업체 근무도 불가능 할 터인데 어떻게 기업체 근무를 했는지 궁금합니다.

 

의문점.
 -1969년도에 입영을 못할 정도의 질병이 어떤 질병인지?
 -또한 그런 몸으로 기업체에서 근무는 어떻게 할 수 있었는지?

 

 의혹 3) 고시공부를 위한 행방불명인가, 병역기피를 위한 행방불명인가?

 안 대표는 당대표 경선 때 “이곳저곳 절을 옮겨  다니며 고시공부를 많이 했는데”라는 해명을 하였습니다.
  안 대표가 병역기피를 하던 그 시절에는 우리의 장병들 중 월남전에 참전하여 전사하거나 부상당해 오는 이가 부지기수였습니다. 그러므로 국가에서는 부족한 병사를 한 명이라도 더 징집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였기에 빽 없고 돈 없는 서민들은 모조리 징집되었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김신조 무장간첩사건을 비롯한 북한간첩 때문에 버스, 숙방업소, 하숙집, 절집 할 것 없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시로 불심검문을 하던 시대였기에 보통 사람은 숨을래야 숨을 곳이 없었던 시절입니다.
 이런 철통같은 검문검색을 피해 병역기피를 할 수 있었던 안대표의 신출귀몰한 기피행적에 우리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안 대표가 고시공부를 하느라 절에서 머문 점은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고시공부를 하는 보통의 사람들은 공부에 바빠 거처를 옮기는 일을 삼가는데 안 대표는 무슨 사정으로 이곳저곳을 옮겨 다녔는지 그 점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의문점
안 대표가 절을 자주 옮겨 다니며 공부할 수 밖에 없었던 사정이 혹시 병역기피 검문검색을 피하기 위함이 아니었는지?

 위의 내용을 종합 검토하여 안상수 전 대표가 병역면제자인지, 병역기피자인지를 최종 판단하여주시기 바랍니다.

 

 

안상수 후보의 병역기피 이력

 

-1966 - 1967년도에(대학 3-4학년) 신체검사를 받지 않아 징병검사기피를 하였고,

-1968년도에 신체검사를 받아 현역입영 판정을 받았으나,

-1969년도에 질병을 이유로 입영기일을 연기하였고,

-1970년도에 재신검하여 2급 판정을 받고도 입영을 하지 않아,

-1971년도에 드디어 병역기피자로 분류되었습니다.
 병역기피자로 분류된 이후에

-1973 - 1974년도에 (입영통지서가 전달되지 않아)행방불명으로 입영연기를 하여 병역을 기피하던 중,

-1975년도에 병역법의 공소시효 5년 경과로 공소권 없음(법을 위반했지만 처벌시효가 지나 처벌할 수 없음)을 받아 처벌을 받지 않았고,
 후에 보충역 판정을 받았으나 고령을 이유로 1978년도에 소집면제를 받음.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안상수 후보가 행한 1966년도 신체검사 기피에서부터 1975년도 공소시효소멸에 이르기까지의 병역기피과정의 수법은 보통 사람은 상상도 못하는 병역기피 수법의 종합선물세트이고, 그 수준은 과히 엽기적 수준이라 할 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