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북면'에 해당되는 글 8건

  1. 2013.02.08 고로쇠와 변강쇠의 관계. (2)
  2. 2013.01.29 커피 한 잔의 깨달음. (4)
  3. 2013.01.28 탐욕에도 급수가 있다? (4)
  4. 2013.01.02 용암마을 물레방아 발전기의 실화. (2)
  5. 2012.12.31 거창 용암리 노인들 공금으로 도박.

지난 25일에는 15년 전 창원에서 거창군 가북면 용암리 마을로 귀농을 한 사람을 따라 고로쇠 수액 채취 준비작업을 하는데 함께 가 보았습니다.

거창의 오지 중의 오지마을인 이곳에 온 사연은 나와는 사뭇 다른데 우연히도 그는 고향도 나와 같은 남해이고 창원에서 살기도 했으며, IMF를 맞아 경제적 형편이 어렵고 자신과 아내의 건강마저 위태하여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고 합니다.

그와 그의 아내는 오래 전부터 불교와 연을 맺고 참선공부를 많이 하여 내게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므로 자연스레 절집의 말동무가 되었습니다. 나는 특히 불교에서 말하는 참 나라는 것에 대해 딱히 개념이 정리되지 않았는데 그는 내 몸은 자동차요, 자동차는 저절로 가는 것이 아니라 운전수가 운전하는 대로 가고, 그 운전수가 참 나다라고 했는데 그제야 나는 참 나라는 개념을 이해할 것 같았습니다. 그러고 보면 그는 나의 사부가 되는 셈이지요.

 

아무튼 그런 그는 토박이가 아니기에 고로쇠를 채취하기 쉬운 길목 좋은 곳은 토박이들 차지가 되고 산이 깊고 길이 없는 깊은 계곡을 따라 고로쇠 채취 곳을 자리 잡았습니다.

그는 산을 오르면서 고로쇠 물은 처음 채취할 때 물이 아무래도 진하고 한꺼번에 많이 마시는 것보다는 집에서 오차물 마시듯이 하여 2달 정도 장기간 마시는 것이 좋은 것 같더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였는데 인터넷을 뒤져보니 아래와 같은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는 길도 없는 산을 마치 안마다을 걷듯이 올랐는데 나는 따라 가느라 적잖이 욕을 봤습니다. ㅋㅋ

 

-고로쇠에 얽힌 전설-

 

첫째, 삼국시대에 신라와 백제의 전쟁이 한창이던 지리산에서 양국의 군사들이 격렬한 전투를 벌인 뒤 파김치가 되어 타는 갈증으로 서서히 지쳐가고 주위에는 마실만한 물이 없었는데 화살이 박힌 나무에서 물이 뚝뚝 흘러 병사들이 입을 대고 그걸 마시고 갈증을 말끔히 해소했다.

 

둘째, ‘고로쇠라는 어원에 관한 전설로,

통일신라 도선대사가 이른 봄에 백운산 깊은 곳에서 도를 닦고 있었는데 오랫동안 좌선하던 도선대사가 몸을 일으키려하자 무릎이 펴지질 않았다.

대사가 다시 일어나 보려고 곁에 있는 나무를 잡자 가지만 부러져버리고 일어나지는 못했다. 그런데 부러진 나뭇가지에서 물이 나왔는데 대사는 그 수액으로 목을 축이자 거짓말처럼 무릎이 펴졌다. 그리하여 대사는 뼈에 좋은 물이라 하여 골리수(骨利水)’라 이름을 붙였다.

 

셋째, 지리산골에 살고 있던 변강쇠가 사랑 놀음으로 몸이 허약해졌는데 고로쇠 수액을 마시고 원기를 회복하였다.

 

 

 

-수액채취를 함에 있어 고로쇠 나무가 산재한 곳에는 봉지를 달고 밀집해 있는 곳에는 호스를 달아 놓았습니다.

 

 

-고로쇠 수액의 효능

 

 한방에서는 나무에 상처를 내어 흘러내린 즙을 풍당(楓糖)이라 하여 위장병·폐병·신경통·관절염 환자들에게 약수로 마시게 하는데, 즙에는 당류(糖類) 성분이 들어 있다하고.

 

 과학적 성분분석으로는 고로쇠 수액에는 당분과 아미노산이 풍부하고,칼슘,칼륨,마그네슘,염산이온,황산이온 등의 미네랄 성분이 보통 물의 40배 정도가 들어 있다.

고로쇠 수액은 물보다 흡수가 빠르고 배설도 빠르기 때문에 몸의 독소를 빠르게 배설하여 신체 정화에 이롭고, 부종과 술독, 간장과 신장 해독에 좋으며, 어지럽거나 기력이 달리고, 위장병에 도움이 된다.

특히 고로쇠 수액은 뼈가 약한 사람과 관절염과 골다공증을 예방하려는 사람에게 특히 좋다.

 

 

-저 위로 내가 며칠 전 오르려고 했다가 죽을 뻔 했던 해발 1320미터의 단지봉이 보입니다.

 

 

-온통 갈색뿐인 겨울산에 이렇게 또 진녹색의 식물이 있다는 것이....

 

 

-요즘 어딜 가나 사방댐을 만들어 놓았는데

 여름에 이곳에 오면 아무도 오는 이가 없어 홀딱 벗고 마음 놓고 즐길 수 있다고 하니

 금년 여름에는 음~~

 

 

-고로쇠 물 마시는 법.

 

 고로쇠 물을 마시는 방법에 대해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딱히 정답은 없는 것 같은데 상황에 따라 대충 다음과 같이 구분되는 것 같습니다.

 먼저 숙취나 몸속의 노폐물 배출을 위한 목적이라면 짧은 시간에 많은 량을 섭취하여 땀과 오줌으로 노폐물을 배출하고 고로쇠 수액에 포함된 영양분을 섭취하는 방법이 있고,

 관절염이나 골다공증 예방을 위한 목적이라면 집에서 마시는 오차물 대용으로 장기간 상시적으로 복용하는 방법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간장을 담그거나 장아찌 음식을 담글 때 물 대신 고로쇠 수액을 사용하면 그 맛이 훨씬 좋다고 합니다.

 

거창의 단지봉 고로쇠 첫물을 마시고 싶은 분은 오늘도 참나를 운전하는 김찬성씨

(전화 010-3520-0598)에게 전화로 주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의 심성이 하도 곱고 착하여 저의 명예를 걸고 감히 추천을 하는 바입니다.

(거창 단지봉 고로쇠 수액 채취는 아무래도 정월 보름 정도가 되야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싶다 합니다.)

 

 

 

 그러고 보니 고로쇠와 변강쇠는 끝 글자가 자 돌림자인데 혹시 그 사연을 아십니까?

혹 아시는 분이 계시면 댓글 주시면 감쏴~~

 

 

 

 

 

 

 

 

Posted by 땡삐 선비(sunb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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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참교육 2013.02.09 09: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로쇠 박사가 다 됐습니다.
    선비님 새해 복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십시오.

 절집에서는 대체로 녹차나 전통차를 마십니다만 혼자서 식후의 차로는 아무래도 커피만한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오늘 아침 1회용 커피를 뜯다가 문뜩 30년 전 우연히 보게 된 마누라의 일기가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우리 집에는 찻집을 하고도 남을 정도로 차그릇이 많은데 마누라가 유난히 차그릇에 집착하는 이유를 이제사 짐작할 것 같습니다.

 

 일기장의 내용은 대충 이런 것이었습니다. 
「면장실에  손님이 왔다.
  면장님이 나보고 커피를 타오라고 했다.
  순간 창피하고 부끄러워 어디로 숨어야 할지 몰랐다.
  나는 한 번도 커피를 타 본적 없다.
  나도 하루빨리 커피 타는 법을 배워서 당당하게 손님을 맞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아니 꼭 그렇게 하리라.」

 

 

 

 지금 보면 웃기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1978년이니까 이때는 1회용 커피라는 것이 없었고,

 마누라는 집이 가난하여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면서기를 하기까지 단 한 번도 커피라는 것을 마셔보지도 타보지도 않았기에 그만. . . .

 이사할 때마다 무게도 무겁고 다루기도 조심스러운  차그릇 때문에 엄청 다투었는데 오늘에사 마누라의 집착증을 이해하게 되네요.

 

  나무관세음보살~~
  ㅋㅋ

 

-거창군 가북면 용암리 용암선원에서-

Posted by 땡삐 선비(sunb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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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참교육 2013.01.29 09: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모님 '친환경, 무공해 어머니상'이라도 드려야겠습니다.

  2. 장복산 2013.01.29 10: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나님이 옆에 없으니
    이제사 커피 한 잔 타면서도
    마나님 생각이 나나보군.~!!

    철이들어 간다는 징조...
    ㅋㅋㅋ

 

효봉 원명 대종사의 법문 일부입니다.

 

 불조(佛祖)는 내 원수요 중생은 내 친구

.
 “입을 열면 부처와 조사(祖師)의 뜻을 어기고 입을 열지 않으면 대중의 뜻을 어긴다. 어떻게 하면 불조(佛祖)와 대중의 뜻을 어기지 않겠는가?”

 

 한참 있다가,
“부처와 조사는 내 원수요 대중은 내 친구다. 일찍 듣건대 진주(眞州)의 불제자들은 그 머리에 모양 없는 뿔이 났는데, 그 뿔이 부딪치는 곳에는 아무도 대적할 이가 없다하니, 그 경지를 한 번 말해 보라”하였다.

 

 대중이 말이 없자,
“아, 유쾌하다. 말이 없는 그 가운데 시방(十方)의 허공이 다 무너졌도다.”하고 말씀 하셨다.
 “내가 지금 중생세계를 두루 보니, 나고 늙고 앓고 죽음을 누가 면할꼬. 만일 이 네가지 고통을 면하려거든 생사가 없는 그곳을 모두 깨쳐라. 생사가 없는 곳이 곧 열반이요, 열반을 구하는 것이 곧 생사다. 그러나 생사와 열반은 허공꽃과 같아서 있는 듯 하지마는 진실이 아니니, 생사를 싫어 하지도 말고 또 열반을 구하지도 말라.

 

 수행문(修行門)에는 계율과 선정과 지혜의 삼학(三學)이 있다.
 계율은 탐욕을 다스리고,
 선정은 분노를 다스리며,
 지혜는 우치를 다스린다.

 이 탐욕과 분노와 우치의 삼독(三毒)에는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범부의 삼독이요, 둘째는 이승(二承)의 삼독이며, 셋째는 보살의 삼독이요, 넷째는 부처의 삼독이다.

 

 범부의 삼독이란 오욕(五欲)을 비롯하여 일체의 요구를 탐욕이라 하고, 매를 맞거나 모욕을 당하거나 기타의 모든 역경에 대해 마음을 내고 생각을 일으키는 것을 분노라 하며, 바른 길을 등지고 삿된 길에 들어가 법을 믿지 않음을 우치라 한다.

 

 이승의 삼독이란 즐겨 열반을 구하는 것을 탐욕이라 하고, 생사를 싫어하는 것을 분노라 하고, 생사나 열반이 모두 본래 공(空)인 것을 알지 못함을 우치라 한다.

 

 보살의 삼독이란 불법을 두루 구하는 것을 탐욕이라 하고, 이승을 천하게 여기는 것을 분노라 하며, 부처 성품을 분명히 모르는 것을 우치라 한다.

 

 부처의 삼독이란  중생을 모두 구하려는 것을  탐욕이라 하고, 천마(天魔)와 외도(外道)를 방어하려는 것을 분노라 하며, 45년 동안 횡설수설한 것을 우치라 한다.

 

 

-거창군 가북면 용암리 개금마을의 한 산장에 있는 표석입니다-<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貪慾元是道라
嗔痴赤復然이라.
如是三毒中에
俱一切佛法이로다.

탐욕이 원래 바로 그 도이며
분노와 우치도 또한 그러하나니
이와 같은 삼독 가운데에는
모든 불법이 갖추어져 있네.

 


 나는 이제 대중에게 묻노니 이것이 바로 대중의 경계인가,  또는 저 문수와 보현의 경계인가?

 대중의 경계라 해도 30방(三十棒)을 내릴 것이요, 또 문수와 보현의 경계라 해도 30방을 내릴 것이니 어떻게 하면 그 30방을 면할 수 있을까?

 

 대중이 말이 없자 스님이 말씀 하셨다.
 “남강(南江)의 어부(漁夫)가 그 30방을 맞고 달아났도다.”


 그리고 다음 게송을 읊으셨다.

君子故鄕來하니
應知故鄕事라.
來日綺窓前에
寒梅着花未아

그대가 고향으로부터 오니
아마 고향의 일을 알리라.
떠나는 날 그 비단창 앞에
매화꽃이 피었던가 안 피었던가?

 

-----------------------------------------------

 

<선비의 생각>

 

 내가 곧 부처이고 부처가 곧 나인데 삼독에 네것 내 것이 어디 있으며,

 떠나고 머무름이 없는데 고향이 어디 있으며 소식 또한 어디 있겠는가?

 

 

 

 이 놈들은 지금 웃고 있는가, 울고 있는가?

 웃고 있다고 해도 30방, 울고 있다고 해도 30방,

 그러면 대중들은 어떻게 해야 30방을 면할 수 있을꼬? ㅋㅋㅋ

 

-거창군 가북면 용암리 개금마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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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에도 급수가 있다?  (4) 2013.01.28
Posted by 땡삐 선비(sunb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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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주완 2013.01.29 08: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득도하셨군요.

  2. 장복산 2013.01.29 10: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냥 나도 30방 맞고 말란다.
    내가 보기엔 저넘들 허벌나게 기분이 좋아서 웃고 있는게 분명하다.

  3. 땡삐 선비(sunbee) 2013.01.30 12: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장복산님은 아무래도 30방 맞아야 하겠습니다.
    저놈들은 인간이 아니고 개이기에 즐기는 것이 아니라 종족보전 의무를 다하느라 저토록 고통스러와 하는데...

 거창군 가북면 용암리 용암마을의 이야기입니다.


 신년을 맞은 1월1일 마을회관에서 떡국을 끓여 마을사람들끼리 나눠먹기로 되어 있어 이 날은 하루동안 두 번이나 제설작업을 했지만 눈이 많이 내리는 바람에 노인네들 거동이 위험하여 끝네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오늘은 밤사이 약간 눈이 오긴 했어도 아침부터 햇살이 좋아 마을회관에서 떡국을 끓여먹었습니다.

 

 여기서 나온 이야기 들입니다.

 

 

 

 

 -이 마을에는 예전에 물레방앗간이 개인 것과 마을 것 두 개였다고 합니다.

그러다 개인이 모두 인수하여 운영하다 남아있는 흔적이 이 곳이고,

 바로 이곳에서 발전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바구 1)
 지금 마을회관의 자리에 일제시대에 학교가 있었다고 합니다.
 현재 송정마을의 용암초등학교 폐교는 1940년도에 건립되었고, 지금 73살인 이 마을 이장님이 7회 졸업생이라고 하니까 80살 되는 노인네들이 이 학교의 1회 졸업생인 셈입니다.
 그 보다 나이 더 많은 분들은 정부의 인가도 없는 이 학교를 다녔던 것입니다.


 이 마을 할아버지들의 이야기를 빌리자면 선생님은 이태석이라는 분인데 이 동네 누구네 집에 셋방살이를 하였고 공식적으로는 일어를 가르쳤는데 몰래몰래 우리 한글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또한 그 선생님은 부녀자들도 공부를 해야 한다며 동네 몇몇 아녀자들도 그때 공부를 가르쳤다고 합니다.
 당시의 시대상황으로 비춰본다면 일제는 어떻게 해서든지 일본 문화와 사상을 주입시키려 하였고, 독립운동을 하는 선각자들은 반대로 우리의 문화와 사상을 교육시키려 했던 만큼 이곳 산골에서도 그런 현상이 있었겠지요.

 

 

-이곳이 마을회관 겸 노인정이고 옛날에 학교터였다고 합니다.-

 

 -송정마을의 학교도 결국 폐교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마을주민이 효소학교로 운영하는 중입니다-

 

 

 

-"빈부귀천 차별없이 다같이 배우세"라는 가사가 인상적입니다-

 

 

 

-이 지도의 발행년도가 1975년이니까 이 쯤에 학교를 다닌 사람들도 40대 후반의 나이가 되었겠죠-

 

 

 

-공업이 일어날 수 있는 조건을 설명하고 있는데 박정희가 호남을 홀대해서가 아니라 공업의 입지조건(자본, 노동력, 공업용수, 욕.해상교통)상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것입니다-

 

 이바구 2)
 6.25 전쟁이 끝나고 빨치산들이 동네에 들어와 약탈을 해갔는데,
 누구네 집은 불을 질러 가장 큰 피해를 입었고,
 누구네 집은 어미소와 송아지를 모두 가져가므로 송아지만이는 두고 가라고 사정을 하자  집단에 불을 붙여 초가지붕에 불을 붙이려하므로 그걸 말리느라 정신이 없는 사이에 유유자적하게 송아지마저 몰고가버렸다고 합니다.


 빨치산이 물러가고는 경찰들이 마을 치안을 담당하였는데 당시 가북면 지서의 한 경찰관이 마을주민에게 밥상을 차려오라고 하고선 반찬이 시원찮다며 밥상을 발길로 차버렸는데,
 마치 동생이 공군인데 휴가를 나와서 이 모습을 보고선 권총으로 경찰관의 옆구리에 대고 “밥상 한 번 더 차봐라.”하니까 얼굴이 사색이 되어 빌었다고 합니다. 

 

 6.25 전쟁이 끝나고 빨갱이 토벌작전이 전개되던 그 시절 산간오지의 마을들은 낮에는 국군과 경찰의 괴롭힘에, 밤에는 빨갱이들의 괴롭힘에, 그야말로 민초들의 삶은 생지옥이나 마찬가지였던것이지요.

 조정래의 장편소설 태백산맥을 읽노라면 가슴이 미어지고 손가락끝이 오그라드는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애환이 구구절절 하지요

 

 이바구 3)
 용암마을이 거창군에서도 오지 중의 오지임에도 불구하고 학교와 전기 공급 등의 문명화에는 10년 정도 앞서 갔는데 아마도 앞의 그 선생님 덕분 아닌가 싶기도 하답니다.
 특히, 전기의 경우에는 한전이 이곳 주변지역에 전기 선로를 깔기 10년 전에 용암마을은 전기를 이미 사용했는데 그 전기를 동네 앞 하천의 물레방아로 생산했다는 것입니다.
 나는 물레방아로 전기를 생산했다는 사실이 믿기지를 않아 다시 확인을 하자 노인들이 모두가 맞다고 하였습니다. 
 당시엔 선풍기도, 냉장고도 없던 시절이고 백열전구 전기가 고작이고 보면 전혀 불가능한 일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일조량이 짧은 대신 물이 풍부한 이런 산골마을에서는 태양열 전기보다는 물레방아전기가 더 효율적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노인정의 이모저모 모습들입니다. 이 동네 주민 대부분이 모인 셈입니다-

 

 

 

 

 

 

 

 

 

 

 

 

 

 

 

-. 마치 아궁이와 굴뚝을 연상하게 마을회관 앞에 있는 굴뚝나무입니다.

 누군가 고사를 지낸다고 나무 밑둥에 촛불을 켜놨다가 그만 나무에 불이 붙어 속이 새까맣게 탔는데도 이렇게 멀쩡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내가 머물고 있는 용암선원입니다-

 

Posted by 땡삐 선비(sunb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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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장복산 2013.01.03 12: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
    재있게 실구 있구려.
    나는 지난 여름에 거창 소사고개로 가는 원기마을에서
    하루밤을 엄청 시원하게 자고 왔지여...
    그디...선비님은 엄청 춥겠다.

 내가 거창군 가북면 용암리의 용암선원에 온지도 벌써 한 달이 훌쩍 지났습니다.
 어디를 가나 처음 대하는 곳은 모두가 낯설고, 생면부지의 면을 트자면 시간이 다소 흘러야 합니다.
 그런데 금년 겨울 이곳에서 나는 잦은 눈 덕분에 의외로 쉽게 동네 사람들과 면을 트고 노인정에도 심심찮게 들리게 되었습니다. 


 어느 시골이나 그렇듯이 이 마을에서도 70대 노인은 젊은 축에 들고, 가북면을 운행하는 버스에서 70대 노인은 80~90대 노인에게 밀려서 좌석도 양보해야 할 정도입니다.
 이런 노인들만 살다보니 눈이 내리면 눈을 치울 사람이 별로 없으므로 자연스레 젊은 내가 앞장서야 하고, 눈 좀 치우고 나면 할머니들은 노인정에서 커피를 끓이거나 찌짐을 부쳐 한사코 먹고 가라합니다.

 바로 그때마다 보는 장면이 노인네들의 화투놀이 도박입니다.
 고스톱도 아니고 육백도 아닌 민화투라고 하는 것인데 나도 어릴 적에 한 기억이 있는데 점수 계산은 어떻게 하는지 기억이 아리송송....


 아무튼 노인네들은 이 민화투로 하루종일 십원짜리 동전내기 노름을 합니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이 십원짜리 동전을 개인 주머니에서 내는 것이 아니고 항상 노인정에 있는 공금을 얼마씩 갈라서 내기를 하고 끝나면 다시 그대로 들여 놓는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노름밑천으로 공금유용을 하는 셈이죠.ㅎㅎㅎ

 

 

-노인정의 이모저모 모습입니다.
사람 냄새, 따신 온기가 느껴지지요.

 

 

 

 

 

 그런데 지금 노인네들이 하는 노름이야 말 그대로 놀이 삼아 심심풀이로 하는 것이지만 예전에는 진짜 노름이 심했다고 하네요.
 그 까닭인즉 가을 농사가 끝나고 나면 동지섣달 산골의 나날은 무료하고 따분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텔레비전도 없고 인터넷도 없던 그 시절에 시간 죽이기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술과 노름 말고는 달리 할 것이 있었겠습니까?.

 노인네들의 말을 빌리자면 이 용암마을이 용암리 여러마을 중에서도 가장 큰 마을로 예전에는 90호가 넘게 살았고, 마을 하천가에는 물방앗간이 두 개나 있었고 길가에는 주막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 마을회관자리에는 본래 학교가 있었는데 1941년도에 송정마을로 이사를 갔으며, 이 동네에 사람이 많이 모여 살았던 이유는 가북면 산골짜기 중에서 유달리 기온이 따뜻하여 보리농사가 잘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묵혀서 잡목과 잡초가 우거진 곳들이 전부 전답이었고, 지금의 동네 안 채전밭은 모두 집터였다고 합니다.

 몇몇 노인네들은 과거 개금마을은 춥고 먹을 것이 없는 그야말로 살기 어려운 동네였는데 지금은 차츰 살기가 좋아져 가고 사람도 늘어나고 있는데 옛날에 잘 나가가던 이 동네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며 못내 아쉬움을 토로하였습니다.

 

 

-쓰러져가는 방앗간과 늘어나는 빈집을 대신하여 늘어나는 산소가 이 동네의 역사를 이어가겠죠?

 

 

-마을의 빈집들입니다. 아마도 사는 집보다 빈집이 더 많을 듯 합니다. 

 

 

-마을 옆 산능선에 있는 묘지들입니다. 자꾸만 늘어나겠죠?

 

 세상의 변화는 이런 것 같습니다.
 과거에는 농작물이라 하면 쌀과 보리가 아니면 농작물로 취급도 해주지 않았습니다. 그 시절에는 당연히 쌀.보리 농사가 잘되는 농토를 상답이라 하였고, 집도 단열기술이 없으므로  바깥 기온이 낮으면 얼어 죽기 십상이니 당연히 따뜻한 양지를 찾아 집을 지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쌀.보리 대신에 특용작물이 대세이고, 집도 단열과 구조적 측면에서 자연에 대응할 수 있는 기술이 발달하여 굳이 양지만 찾을 필요도 없게 되었으니 지금으로선 경사가 급한 용암마을보다는 완만한 개금마을이 더 살기 좋은 마을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이 변하는 이치야 그렇다 손 치더라도 속절없이 쇠락해가는 농촌마을들 이모저모들과 노인네들 손 마디마디의 굳은살을 바라보노라니 왠지 가슴이 짠합니다.

 

 

-아래 빈집을 보노라니 추사의 세한도가 자꾸만 생각이 나네요.
뻥 뚫린 저 구멍은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인생의 허무 ~ ~

 

 

 “가을 농사 끝나고 11월부터 내년 7월까지는 돈맛 볼 끈덕지가 없으니 농촌에서 뼈 빠지게 한 철 열심히 벌어본들 맨 날 제자리걸음이다.”며 소주잔을 들이키던 젊지도 늙지도 않은 한 주민의 말이 자꾸만 생각난다.
 11월부터 7월까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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