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나는 내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해본다.  "내 인생이  3모작으로 접어 들었는데 이 것이 옳은 것인가? 보람은 있는 것인가? 그럴 만한 가치는  있는 것인가? " 등의 자문이다.  

 기후가 따뜻한 베트남에서는 벼만 가지고 3모작을 한다고 한다.  내 고향 남해에서는 보릿고개 시절 논에 각기 다른 농작물로 3모작을 하였다.  여름에는 벼를, 겨울에는 보리를, 그기고 벼 추수가 끝나고  보리 파종을 하기까지 중간에 생장 기간이 짧은 메밀을 심었다. 그 이유는 남해는  농토도 적은 데다  강이나 큰 하천이 없어 모두가 천수답이므로 곡식이 몹시 귀했다. 오죽하면 처녀가 시집가기 전에 쌀 서되 먹고가면 부잣집 딸이라고 하였을까.

 

 그런데 내 인생 3모작은 이렇다. 전문대 졸업학기에 "특별한 목표가 없으면 4급 을류 기술직 공무원 공채(현재의 7급)가 있으니 응시해보라"는 지도교수님의 권유로 별 생각없이 시험을 치게 되고 1979년에 공무원으로 임용 되었다. 나름대로 선비정신과 자세를 지키려고 애써며  남보다 조금은 창의적이고 부지런하고자 노력하였다.(그래서 나의 ID에는 sunbee를 사용하는데 sunbee를 영어적 해석을 하자면 땡벌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땡벌은 부지런 하고, 꿀을 생산하기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침 한방을 쏠 수도 있는 그런 생명인지라 마음에 든다) 그러나 하면 할 수록 회의가 들었다. 거대 조직 공무원 세계에서 입바른 소리와 창의적인 발상은 정 맞기에 마침이고, 부지런은 질시의 대상으로 찍히기 십상이다. 그저 적당히 잔머리 굴리다 정치나 잘하는 공무원이 승진 잘하고 하는 세태를 보면서 차츰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그런 회의가 거듭 될수록  조직이 점점 역겨워졌다. 그러나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재직기간 20년까지는 채우자 하여 만20년이 되는 1999년에 아내와 함께 공무원을 그만두고 건설업을 시작했다. 건설업은 5년만 하고 동생에게 물려주려고 하였는데 동생이 쉽게 경영자 체질이  안되어 "1년만 더, 1년만 더" 하다가 결국 안되어 사업승계는 포기하고 2008년에 건설업을 접었다. 그리곤 뜻하지 않은 지금의 경남해양체험학교를 우연히 시작하였다.  보통의 사람들이 평생에 직업을 한번 바꾸기도 드문데 나는 두번을 바꾸어 3모작 인생을 시작 하였는데 이거는 사업적으로도 아니고 내 성격에도 맞지 않아 하루에도 몇번씩 고민을 한다. 투자비를 다 날리더라도 빨리 그만 두는 것이 옳은 것인가, 투자비 회수 시점까지는 더 해 보아야 하는 것인가 하는 고민에 가슴이 답답하다. 아무래도 지금의 직업은 오래 가지는 않을 것이고 머지 않아 새로운 직업을 찾을 것 같다.

  인생 3모작으로도 부족하여 4모작쯤 해야 내 길을 찾을래나?

 이제는 경제적 수익하고는 전혀 무관하며 자신의 의미를 제대로 찾을 수 있는 보람있는 직업을 찾아야 할텐데...  

 나의 춘궁기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나 보다.



바다길은 신호등이 없다.  교통체증도 없다.

 그래서 나는 자유를 느낀다. 

   바람이 부는 날에는 바다로 나가고 싶다 ! ! !

 

Posted by 땡삐 선비(sunb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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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구르다 2009.10.03 02: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멋진 사진입니다.

    인생의 3모작이라..
    전 아직 깊이 있게 생각해 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선비님보다 생을 덜 살았지만 직업을 더 많이 가졌습니다.
    기획사, 공장, 단체, 공부방, 학원, 복지관 등..

    무엇을 하며 먹고 사느냐가 아닌
    어떤 삶을 살아갈까의 생각은 가끔 합니다.

    20년은 아무것도 모르고..
    그리고 20년은 바쁘게 세상이 요구하는대로..
    앞으로 20년 그리고 나머지는 다르게 살아갈려고요..

  2. 땡삐 선비(sunbee) 2009.10.04 19: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구르다님 많이 굴렀네요.
    좌로 굴러! 우로 굴러! 앞으로! 뒤로! 만히 드러어본 소리. . .
    이렇게 구그다 보면 모난이도 둥그럼히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