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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이야기

나도 공무원을 해봐서 아는데--- 죄와 벌

선비(sunbee) 2011. 6. 25. 16:39


나도 공무원을 해봐서 아는데--- 죄와 벌

 나는 79년 3월 2일 창원군청에 첫 발령을 받아 창원시청에서 99년 6월 30일자로  만 20년을 채우고 퇴직을 하였다.
 되돌아보면 나의 공무원 생활은 유달리 파란만장하였던 것 같다. 특히 공무원 초년생시절에 겪었던 굵직굵직한 사건들은 나의 20년 공무원생활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한 것 같다.
 
 공무원 시작한지 1년도 되지 않아 경남도에서 소방부서에 대해 감사를 하면서 소방 허가만 받고 장기간 미준공 상태로 방치된 농산물저온창고건물이 있어 그 연유를 조사하다보니  건축물준공검사 과정에 건축담당인 나의 부서에서 소방검사 협의를 거치지 않고 준공검사를 해 준 사실이 밝혀졌다.
 소방부서는 건축부서에서 협의가 없더라도 장기간 미준공 상태로 방치되면 챙겨봐야 하는데 이를 방치하였으니 직무유기에 해당되고, 건축부서는 당연히 거쳐야 할 소방협의를 거치지 않았으니 업무소홀로 감사에 지적되었다.

 당시 소방청장을 하면서 대연각호텔 화재사건 등의 대형화재로 곤욕을 치르다가 경남도지사가 된 도지사는 “소방과 관련해 감사에 지적된 공무원은 이유 불문하고 파면하라”하였다 하여 5명의 공무원이 파면처분을 받았는데 나도 그에 속하였다.
 그런데 감사지적을 한 실무자들도 나의 경우는 너무 심하다며 “재심청구를 하고 도지사에게 영향력을 행사할만한 사람을 찾아서 사정을 해보라”하여 재심청구서를 제출하고 당시 경우회장을 역임하고 있는 모 국회의원을 찾아가 사정을 한 결과 감봉4개월로 감경처분을 받았다.
 그러자 감사 실무자는 그것도 과하다며 “다시 소청을 해서 주의나 훈계처분 정도 받도록 하라”고 조언을 하였다.

 사실 그때 나는 재심청구가 무엇이며 소청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태이므로 재심청구서를 감사실무자가 작성해 주었는데 그 절차와 형식이 너무 난해하여 햇병아리 공무원인 나로서는 도무지 소화가 되지 않는 내용이었다.
  나는 “감봉4개월”은 넉달 동안 봉급만 감액되는 줄 알았지 2년간 호봉승급과 직급승급이 중단되는 줄도 몰랐다. 그래서 감봉4개월 처분에 만족해하며 다시 소청을 하여 감사실무자를 번거롭게 하는 것이 미안한 일로 여겨 소청은 포기하고 말았다.
 그런데 다행인 것은 1980년 제5공화국이 출범하면서 징계가 진행 중인 처벌은 사면한다는 대통령 사면령에 의해 이 징계처분은 사면되었다.

 사실 이 사건은 나를 포함 결재권자인 계장, 과장 모두가 착각으로 인한 실수였는데 착각을 하게 된 이유를 살펴보면 그 건물이 양파를 저장하는 콘크리트 구조의 저온저장고이므로 화재를 연상하기 곤란한 건물이었고, 거기다 건물 준공검사를 할 당시 비가 많이 와서 사방에서 수해가 발생하여 수해대책에 너도나도 정신이 없는 상황이므로 수재의 반대 개념인 화재는 같은 것은 까마득히 잊고 있었기에 모두가 착각을 하지 않았나 싶다.

 당시의 수해상황이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나와 같은 부서에 근무하던 계장 한분이 월영동 하천가 전셋집에 살고 있었는데 사무실에서 관내 수해대책에 정신이 없는 사이에 정작 자신의 집이 무너지는 상황인 줄은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알고 부랴부랴 가보니 하천 제방이 침식되어 건물이 무너지기 일보 직전에 있었다. 갑자기 당한 일이라 가재도구를 갖다놓을 장소도 없으므로 급한 데로 나의 하숙방에 옮겨놓고 며칠간을 여관방 신세를 져야했다.
 그 분은 마산시에서 국장을 하다가 몇 년 전에 정년퇴직을 하였는데 과거를 이야기하다보면 늘 그 사건을 이야기하곤 한다.

 그리고 그 무렵 감사원에서 불법농지전용 감사를 하였는데 동읍에 돈사를 불법으로 200여평 건립한 것이 적발되었는데 농지부서는 불법농지전용 단속 업무소홀로, 건축부서는 불법건축 단속 업무소홀로 감사에 지적되었다.

 당시 감사원에서는 나는 시보기간(공무원을 시작하고 1년 동안은 수습기간이라 간주)이라 하여 책임을 묻지 않고 계장한테 책임을 물어 훈계처분을 하였는데 문제는 돈사를 철거하라는 것이다. 그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돼지파동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오죽하였으면 “돼지를 팔려고 장에 갔다가 팔리지 않아 돼지를 장에 버리고 왔더니 돼지가 먼저 집에 와 있더라.”는 이야기까지 나왔을까?

 이 돈사의 경우 사실 건물이라 지칭할 수 없을 정도로 엉성하게 지어진 건물로 돼지가 새끼를 한 배 까면 한 칸 늘리고 한 배 까면 한 칸 늘리고 하다 보니 200여평까지 늘어난 것이었다. 건물을 철거하는 것은 문제가 아닌데 이놈의 돼지를 처분하는데 대책이 서지 않는 것이었다. 건축주는 청와대, 국보위, 농림부, 감사원, 경상남도 등 온갖 곳에 정부정책을 질타하며 건물철거를 철회해 달라는 진정을 하므로 감사원을 제외한 정부 각 부처에서는 건축주에게 호의적인 회신을 하는 반면에 감사원에서는 지정 기한 내 철거를 하지 않으면 책임을 다시 묻겠다하므로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수십여 차례의 협상을 거치면서 더 이상의 돼지 번식을 종료하고 돼지를 처분하는 데로 차례차례 철거를 하는 조건과 농지원상회복과 동시 건축허가를 내 주는 조건으로 철거기한을 연기하여 1년여 만에 건물 철거를 다 하고 건축허가를 해 주었다.

 그런데 여기서 또 문제가 생겼다.
 건물은 철거를 다하였지만 바닥 콘크리트는 철거하지 않고 그 위에 살짝 흙을 덮어 고추모종을 심고 사진을 촬영하여 농지원상복구가 다 된 것으로 감사원에 보고를 하였는데 평소  건축주와 감정이 좋지 않던 사람이 이 사실을 가지고 진정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사실 감사원을 비롯해 우리는 정부정책의 잘못으로 빚어진 사건인 만큼 어느 정도 묵계할 수밖에 없었고 묵계 하에 이루어진 일인 만큼 건축주를 일방적으로 몰아세울 입장이 못 되었다.
 건축주는 이미 건축허가까지 받았으니 될 대로 되라는 식이고 중간에 낀 공무원만 난처하게 된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진정인을 설득하여 진정서를 철회하고 돈사를 다시 건축하여 마무리가 되었지만 되돌아보면 감사원의 빗발치는 독촉과 돌아서면 딴 소리를 하는 건축주 사이에서 어지간히 속을 썩였던 사건으로 기억에 남는다.

 또 하나의 사건은 진전면에 있는 조그만 공장 건물인데 두 번을 준공검사 신청을 하여 반려를 하고 세 번째 준공검사신청이 접수되어 건축주와 현장조사를 갔다. 건축주는 돌아오는 길에 택시 안에서 오늘 준공검사가 나지 않으면 자기는 파산한다며 내게 봉투를 하나 내밀었다. 나는 극구 거부하며 정히 대접을 하고 싶으면 국밥 한 그릇 사면 그것은 사양하지 않겠다고 하여 월영동 시장통에서 국밥을 한 그릇을 대접받고 그날 준공검사필증을 교부하였다. 

 그로부터 3개월 정도 지났을까?
 마산경찰서 형사가 한명 와서 내가 모시는 계장님한테 경찰서에 좀 가야겠다고 하며 경찰서로 대동하여 갔다.
 당시만 하드라도 밤 12시면 통행금지가 있었는데 12시가 다 되어가도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경찰서에 가서 열쇠구멍으로 조사실 안을 들여다보니 소방부서와 위생부서 공무원 둘은 이미 수갑을 차고 있고 내가 모시는 계장님은 무릎 위에 손을 가지런히 하고 계속 조사를 받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러자 이미 12시가 넘어 집에 갈 수도 없으므로 경찰서 외진 곳에서 한참을 기다리자 계장님이 혼자 나왔다. 나를 보자마자 “홍기사 네 정말로 잘했다. 까딱했으면 우리도 영락없이 수갑 찰 뻔 했다.”하면서 내 손을 잡았다. 둘은 경찰서 뒤 여관에 가서 자초지종 이야기를 나눴는데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건축주는 건축 중에 준공검사를 받아 주는 조건으로 공장을 이미 팔았고, 준공검사 받는데 공무원에게 인사를 해야 한다며 매입자로부터 50만원을 받아 소방 10만원, 위생 10만원을 주고 건축부서인 우리에게 30만원을 주려고 했는데 내가 거부를 하자 그 돈은 가지고 있다가 흐지부지 다 쓰고 나서 매입자에게 재차 건축부서에 인사를 해야 한다며 30만원을 요구하자 매입자가 경찰서를 진정을 해 버린 것이다.

 둘은 여관에서 통행금지가 해제되자마자 다른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위생담당공무원의 형한테 전화를 하여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사건을 수습하여 뒷날 모두가 풀려났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이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관은 그 뒤 수시로 소방, 위생 공무원에게서 그들이 받은 수십배에 달하는 금품을 요구하는 것이다. 
 우리 사무실에서는 그들이 나타나면 “또 똥파리 왔다”며 고참들은 슬슬 피해버리는 사단이 벌어지곤 했다.

 금품수수를 하였다고 사법처리를 하겠다며 덤비던 경찰이 오히려 이를 빌미로 공무원의 고혈을 빨아먹는 모습을 본 어린 시절의 기억은 지금도 경찰에 대한 거부감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이런 나의 내면 속에 잠재한 거부감이 경찰과 부닥쳤다하면 싸우는 버릇으로 이어졌고 사소한 일도 괴씸죄로 처벌 받는 일이 많아져 나는 오늘날 전과 8범이라는 전과자가 되었다 해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닐 성 싶다.

 경찰관 중에는 수사반장에서 보았던 의협심 있고 인정 많은 경찰도 더러 있겠지만 군청이나 시청을 맴도는 정보, 수사 경찰관 중에서 이런 유의 경찰관을 본 기억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요즘 이명박 정부는 공무원 부정을 뿌리 뽑겠다고 온갖 사정활동을 한다는데 글쎄올시다 하는 생각이다. 감독을 하는 기관인 금융감독원이나 감사원이 썩어있고 범죄자를 처벌하는 경찰과 검찰 스스로가 부패할 대로 부패해 있는데 누가 누를 사정한단 말인가?
 정권말기에 드러나는 자신들의 부패를 숨기기 위한 또 하나의 기만술책 내지는 권력누수를 막아보겠다는 몸부림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사정을 해야 할 기관은 검찰과 경찰을 포함한 사정당국에 있음을 어찌 이명박 정부는 모른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