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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이야기/창원시정에 관한 이야기

창동예술촌에서 공돌이와 보헤미안의 합궁이 궁금하다.

선비(sunbee) 2012. 10. 2. 21:15

창동예술촌에서 공돌이와 보헤미안의 합궁이 궁금하다.

 

 마산에 살던 지금의 50~60대 사람들은 대부분 창동, 오동동 골목에서 데이트 한번쯤은 했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1970년대와 80년대에는 극장, 서점, 화랑과 그리고 예인들이 자주 찾는 주점과 다방들이 즐비하였던 곳이 이곳이고 마산, 창원의 연인들이 영화를 보거나 커피를 마시거나 하면 이곳 말고는 딱히 갈 곳도 없었습니다.
 
 이 시절 경남의 시골 각처의 내 또래 동란 베이비들은 수출자유지역 또는 한일합섬 직장을 찾아 마산으로, 마산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시골에서 온 그들에게 오동동과 창동의 밤거리는 생경한 풍경이요 그 곳에서 커피를 마시고 술을 마신다는 것만으로도 가슴 설레는 일이었지요.
 하여 이곳은 한때 땅값이 서울의 강남 다음으로 비싸고 길거리는 어깨가 부딪쳐 통행이 불편할 정도로 사람이 붐비는 거리였습니다.

 

 

-과거 시민극장이었던 건물입니다.

 1970~80년대 마산에서 연애했던 사람이면 열에 아홉은 아마도 이 극장에서...

 

 

 

 하지만 90년대 접어들어 200만호 주택건설 정책으로 마산에 비해 땅값이 싼 창원에 대규모 아파트단지들이 우후죽순처럼 건설되고, 마산에서 살만한 사람들은 너도나도 창원으로, 창원으로 이삿짐을 싸면서 마산은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고,
 이런 과정에서 마산의 위정자들은 아파트만 많이 지으면 도시가 살아날 것으로 생각했는지 한일합섬과 한국철강과 같은 기업들을 들어내고 대단지 아파트부지와 상가부지로 변경해버렸고, 그 결과 마산시민들은 일자리마저 잃고 말았습니다.

 일자리가 없으니 소득이 없고, 소득이 없으니 소비할 돈이 없고, 소비자가 없으니 장사가 되지 않고, 종국에는 지역이 슬럼화 되고...
 이런 흥망성쇠의 도시역사는 세계의 어느 도시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만 반세기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흥망을 함께한 마산과 같은 도시는 세계의 도시역사에서도 그 예를 찾아보기 힘들 것입니다.

 나는 9월21일 창동예술촌 팸투어를 하면서 오동동 뒷골목과 부림시장 곳곳을 둘러보았는데 창동 4거리를 중심으로 프리마켓 행사장 주변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습니다. 근래 보기 드문 사람구경, 거리구경을 한 셈입니다.

 

 

-창동의 거리 풍경입니다.

 

 어지러웠던 전선을 지중화 하고 벽화와 조형물로 골목길을 새단장 하였습니다.

 

 

 

 

 

프리마켓 행사장 풍경입니다. 청소년들이 많이 모여 거리가 젊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바이페인팅 아티스트 배달래님입니다. 자신의 그림을 넣은 T를 2만원에 판매했는데 이 T는 결국 내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부림시장의 경우 입구에 있는 먹자골목까지는 사람들이 있는데 시장 안쪽으로 들어가자 사람의 그림자가 한산해지면서 셔터를 내린 빈 점포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2층엘 올라 가보니 오가는 손님들은 눈을 씻고 봐야 보이지 않고 가게 주인들이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틀어 놓은 라디오, TV 소리들만이 적막을 비집고 흐르고 있었습니다. 

 가게 아주머니들에게 “창동예술촌 프로젝터사업 이후 변화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프리마켓 행사가 있은 후부터 그 주변에는 사람이 끓지만 우리와는 무관한 것 같다. 몰라~  앞으로는 어찌 될는지?”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보고 느끼는 감이나 그들이 말하는 상황이나 별로 다를 바가 없는 것 같았습니다.

 

 

-부림시장의 풍경입니다.

 입구에 있는 먹자골목에는 20년, 30년 전통을 자랑하는 주전부리 집이 즐비합니다.

 

 

 

시장 안쪽에는 셔터 내린 점포가 즐비합니다.

 

 

 

2층 의류매장의 마네켕들이 마치 나를 향해 도열해 있는 듯 합니다. 실물 미인들이 진짜로  이렇게 나를 마중한다면 ...ㅋㅋㅋㅋ 

 

 

 

 마산의 도심 슬럼화 현상은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자연스런 도시현상인데 그 속도가 눈에 띄게 너무 급격하므로 어떻게 해서든지 이를 역전시켜보고자 인위적으로 시도해 보는 고육책의 도시재생상업이지만 투자대비 효과는 사실 장담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예술촌이랍시고 골목길을 단장하고 곳곳에 조형물 몇 점 갖다놓았다고 해서 그 골목을 예술의 거리라 하기에는 낮 간지러운 점이 없지 않습니다.
 좀 뭣한 이야기이지만 창동예술촌에서 썩 유명한 작가를 만날 수를 있거나, 유명한 작품 한 점이라도 감상할 수 있는 형편이 아직은 못됩니다.
 그렇다고 기대를 포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까닭은 이 곳에 입주한 작가들은 나름 열심히 작업들을 하고 있고, 프리마켓행사와 같은 행사를 통하여 시민들이 함께 참여함으로서 예술에 대한 공감대와 호기심을 이끌어 내는 것만으로도 예술의 씨앗을 뿌리고 있는 과정이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다를 매립하고, 도로를 만들고, 아파트를 짓는 물리적인 문물을 만드는 것은 1년 혹은 10년의 짧은 시간 내 가능하지만 무형의 문화를 만들어간다는 것은 적어도 반세기 정도의 세월이 흘러야 가능하다고 합니다.
 이를 증명하는 단적인 예가 창원입니다. 1974년 이후 창원은 급속한 도시발전을 하였지만 2000년 전 까지만 하드라도 갤러리나 소극장 하나가 없을 정도로 문화의 불모지대였습니다. 그러다 2010년 정도에 들어서야 비로소 갤러리와 소극장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40여년 세월동안 인구 10만 미만의 도시가 50만이 넘는 대도시로 급성장하였지만 문화는 이제사 싹이 돋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창동예술촌을 바라보는 시민들이나 이 프로젝터를 주도하는 공무원들이나 조급한 마음에 하루빨리 가시적인 성과를 바라겠지만 이 일은 결코 서두를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도시재생사업을 설명하고 있는 창원시 도시재생과 김용운 과장

 

 

 팸투어 과정에 몇몇 작가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공돌이(공무원 속칭)들의 사고와 자신들의 사고 사이에 너무 큰 괴리가 있어 대화가 안 된다며 속에 천불이 난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안 봐도 뻔 한 동영상입니다.
 공돌이들의 속성은 선례가 없는 행위는 절대로 하지 않으려 하고 격식과 절차를 결과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집단인 반면, 예술인들은 늘 새로운 것을 갈망하고 격식과 절차 같은 구질구질한 것은 딱 질색인 집단이고 보면 이 둘의 집단은 물과 기름과 같은 존재들입니다.

 

 이런 상극의 집단이 서로 머리를 맞대는 것 자체가 서로 피곤하고 짜증스런 장면입니다만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 사업을 담당하는 창원시 도시재생과 김용운 과장의 마인드가 공돌이 중에서는 열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도시재생사업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지금까지 한 사업은 시작일 뿐이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더 많은데 지금의 상황을 가지고 쓸데없는 예산만 낭비하였다며 예단하지는 말아줬으면 하는 말을 하였습니다.
 검정 양복과 흰 와이셔츠의 틀에 박힌 공무원과 보헤미안적 예술가 집단의 합궁이 이루어지는 이곳 창동예술촌에서 옥동자가 나올지 사생아가 나올지 지켜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