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KBS다큐에서 태국의 파타야 해양관광지의 해변 모래가 유실되어 백사장 면적이 10여년 전에 비해 1/4로 줄어들어 관광객도 1/4 줄어듦으로서 먹고살기가 힘들다며 인터뷰를 하는 원주민의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모래가 갑자기 줄어드는 이유인즉 관광이 많이 오자 해변에 너도나도 호텔과 콘도와 같은 고층빌딩들을 너무 많이 지어 바다 쪽에서 밀어 올리는 바람길을 차단함으로서 모래가 쓸려 나가기만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눈앞의 이익만을 쫓아 건축한 호텔과 콘도들은 결국 제 무덤을 제가 판 꼴이지요.
반면에 인도네시아 발리에서는 ‘인간의 피조물이 자연의 피조물을 능가하면 안 된다.’는 미신과 같은 철학으로 야자수 나무보다 높은 건물을 지을 수 없도록 하여 고층 건물이 없습니다. 발리를 여행한 사람이라면 호텔 발코니에서 야자수 잎을 비껴 기울어가는 멋진 저녁노을 풍광을 기억할 것입니다. 이런 연유로 발리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다시 찾고 싶은 해양관광지로 건재하고 있습니다.
태국의 파타야와 인도네시아의 발리를 비교해보면 해운대의 해양관광단지 조성방향이 어떠해야 하는지는 답이 뻔해집니다.
그런데 부산시는 사계절 체류형 관광시설단지를 조성한다며 해운대 백사장에 인접한 20만평의 대단지 부지에 해운대관광리조트 108층 건물을 민자사업으로 유치한다고 합니다.
해운대에 더 많은 관광객을 유치함은 물론이요 여름철에만 집중되는 관광객을 사시사철 불러들여 해운대는 물론이요 부산의 경제를 부흥시키겠다는 야심찬 구상인 셈입니다.
즉, 겨울에도 수영을 즐기고, 육상에서도 바다 속을 즐길 수 있는 인공적 시설을 만들어 해운대에서는 계절에 관계없이, 일기에 관계없이 바다를 즐길 수 있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관광이라는 것이 과연 그런 것일까요?
태국의 자카르타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수족관이 있습니다. 미국 LA에는 유명한 영화를 촬영하고 난 영화세트장을 관광상품화 한 유니버셜스튜디오라는 어마어마한 관광상품이 있습니다.
그런데 수족관을 보기위해 태국을 찾는 관광객이 얼마나 되며, 영화세트장을 보기 위해 LA여행 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여행이나 관광이라는 것 자체가 태국만의 특징이 있어 태국을 가는 것이고, LA만의 특징이 있어 LA를 가는 것이지 그 곳에 특별히 크고 하이테크한 인공 시설이 있다고 하여 가는 것은 아닙니다.
봄에는 꽃놀이, 가을에는 단풍놀이, 여름에는 물놀이, 겨울에는 설경과 온천놀이 그렇고 그런 것을 찾아 떠나는 것이 여행과 관광의 속성인 것입니다.
외국에서의 우리나라 대표적 관광지를 꼽는다면 아마 경주나 안동하회마을 떠오를 것입니다. 그리고 경주하면 떠오르는 것이 불국사이고, 안동하면 전통가옥이구요.
그럼 해운대 하면 생각나는 관광요소는 무엇일까요?
1. 년 중 가장 많은 사람이 찾는 도심 속의 해수욕장.
1. 달맞이고개에서의 달맞이 추억.
1. 동백섬과 솔숲, 그리고 조선비치호텔 정도를 대개 연상할 것입니다.
저는 환경운동단체에 참여하고 있지만 도시공학을 전공하였기에 무조건 환경을 보전하자는 주의만은 아닙니다.
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에서 얼핏 설명하기로 해운대에 108층이라는 초고층 건물을 지으므로 이것을 막아야 한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처음만 하드라도 25층 내지 40층 정도의 여러 동 건물을 짓는 것 보다는 차라리 초고층 1동을 짓는 것이 낫다는 생각으로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현장을 답사하고 보니 정말 이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해운대 백사장은 근자에 들어 파타야와 마찬가지로 모래유실이 심해 해마다 더 많은 모래를 보충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런 마당에 해운대 백사장 변에 남은 마지막 부지인 이곳마저 초고층 건물을 지어 바람길을 차단하겠다고 하니 해운대 해수욕장을 백사장 없는 해변으로 만들어버리겠다는 뜻과 마찬가지입니다.
거기다 달맞이 고개에 바짝 붙은 위치에서 108층이나 되는 높이로 빌딩이 올라가면 달맞이 고개를 넘는 은은한 달빛 대신 108층 빌딩의 휘황찬란한 조명이 백사장과 달맞이고개의 풍광을 압도하겠지요.
정리하자면 부산시는 해운대가 지니고 있는 본래의 자연적 관광자원인 백사장과 달맞이를 모두 버리고 새로운 인공의 관광자원을 조성해 더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겠다는 것인데 과연 그리 될까요?
관광인프라 중에서 세계적인 기술과 규모를 자랑하는 현대적 구조물과 숙박업소 등도 중요한 자원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 근본에는 그런 구조물을 필요로 하는 근원적 요소가 있어야 하고 그 요소에는 자연환경이거나 역사적 유물이나 스토리가 있어야 합니다.
야자수와 바다가 없는 발리 관광?
불국사가 없는 경주 관광?
백사장과 달맞이가 없는 해운대 관광?
눈앞의 욕심에 눈이 어두워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잡아먹는 우화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리의 배를 가르기 보다는 더 오래 살고 더 많은 알을 낳도록 오리를 보살피는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더 많은 객실을 확보하기 보다는 기존 객실에 더 많은 손님이 찾아와 공실이 없도록 하는 것이 해운대가 살고 업체가 살 수 있는 길입니다.
저는 여기서 이런 제안을 하고자 합니다.
이곳에 호주의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와 같이 세계에서 가장 멋진 영화관이나 공연장과 같은 문화관을 한 동 지어 그 자체가 해운대를 서버하는 세계적 관광상품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물론 지상부분은 피로티구조로 하여 바람길을 터줌과 동시 광장의 역할을 하는 오픈스페이스로 개방을 전제로 합니다. 그리고 이 문화관을 쓰나미나 해일과 같은 재난이 발생할 시 시민들의 대피장소로도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면 금상첨화겠지요.
온갖 특혜를 주어 취득세 한번 목돈으로 받고서는 너도 망하고 나도 망하는 정책보다 기존의 호텔이나 상권들이 더 장사가 잘되도록 도와서 더 많은 세금을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황금거위를 키우는 정책이라고 생각합니다.
태국의 파타야 해양관광단지 꼴이 되지 않으려면 목소리를 높여야 할 주체는 인접한 호텔을 비롯한 상업주들로 지금 발 벗고 나서야 할 것입니다.
108층 빌딩이 들어서고 난 다음에 깨닫는다면 이는 너무 대가가 큰 학습효과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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