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8일 수 맑음

 

 아침 7시 포행을 나서 가북공원묘지를 가보았습니다.
 묘지의 커다란 비석과 석물들의 치장을 보노라니 왠지 서글픈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행위들이 과연 조상의 은덕을 기리기 위함인지, 자신을 과시하기 위함인지?
 제가 보기엔 아마도 후자가 아닌가 싶습니다.
 
 오후에는 노트북을 고치느라 버스를 타고 거창읍내를 다녀왔습니다. 버스 계단을 기어서 오르는 할머니를 포함 나이 많은 노인네들을 보면서 새삼 그들이 짊어지고 살아왔던 무겁디무거운 삶의 무게를 느꼈습니다.

 

 오후 6시 무렵 창원교육청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내가 5년 전에 창원교육청으로부터 임대를 받아 경남해양체험학교로 운영하던 귀산분교를 교육청이 공적으로 사용하거나 공개경쟁입찰을 부쳐야 한다며 학교를 비워달라는 것입니다.
 사실 나는 평소부터 지역사회를 위해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한 번은 하기로 마음먹고 있었고, 그 꿈을 내가 사는 동네에서 실현해보고자 하였습니다.
 삼귀동은 해군기지와 무역항로로 조업구역이 계속 잠식되어 쇄락해 가는 어촌에서 새로운 소득원 창출이 필요하고, 그 방안의 하나로 마을주민과 함께 영어조합법인을 설립하고 이 폐교를 임대 받아 요트학교를 운영해 보고자 하였습니다.
 통합 창원시가 되기 전 마산은 마산대로, 진해는 진해대로 서로 요트학교를 하겠노라 하는데  가장 경제적 여력이 있는 창원시는 관심조차 없으므로 우리 마을이 앞장서 이 사업을 해보기로 한 것입니다.

 

 

                                -용암선원에서 나의 동반자 똥작대기입니당~

 

 하지만 막상 추진과정에 현금출자에 부닥치자 주민들은 선뜻 나서지를 않으므로 4명으로부터 5백만원을 출자 받고 나머지는 결국 내가 모두 투자를 하였습니다.
 학교를 리모델링하는데 2억 정도, 바다에 요트와 계류장 시설을 하는데 2억원 정도를 투자하였지만 해마다 3천만원 안팎의 매출에서 2천2백만원의 임대료와 공과금을 내고나면 내 인건비도 남지 않는 적자운영을 하여 왔습니다.
 해마다 누적되는 적자경영에 지쳐 지난해부터는 심각한 고민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창원교육청에 임대료를 낮춰 달라고 하소연도 해 보았습니다.
 그러자 입찰로 계약한 것이므로 지금으로선 낮춰 줄 수가 없으며 5년 만기를 채우고 재계약을 할 때는 수의계약이 가능하니까 힘이 들더라도 그때까지 임대료를 착실하게 내고 이미지를 잘 관리하였다가 그때 가서 보자는 담당공무원의 말에 실낱같은 기대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임대만기 시점이 되자 창원교육청의 교육장부터 담당직원에까지 모든 담당공무원이 바뀌었고, 새로 온 공무원들은 과거는 알 바 없고 무조건 공개경쟁입찰을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여 나는 교육과학기술부에 수의계약이 가능하다는 법률 질의회신까지 받아 제시하였으나 그들은 법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공익성과 공정성을 이유로 기어이 공개경쟁입찰을 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며칠 전 블로그에 언급하기도 했습니다만 공익과 공정성에 대한 공무원 이야기 하나를 더 하겠습니다.

http://sunbee.tistory.com/entry/남자가-머리를-깎는-이유와-여자가-미용실-가는-이유

 나는 10년 전에 창원시 사림동 주택지에 있는 유치원부지 땅을 하나 샀습니다. 그런데 80년대 이후 출생인구가 감소하면서 유치원이 줄줄이 문을 닫고 있고 교육청에서는 창원시내에는 유치원설립인가마저 내주지 않는 실정입니다.
 하여 용적률 200%에 4층까지 지을 수 있는 이 땅을 용적률100%에 2층까지의 단독주택지로 토지이용계획을 변경해 달라는 주민제안서를 창원시청에 제출하였습니다.
 창원시는 토지이용계획을 변경하는 것은 주민제안민원이라고는 하지만 창원시에 있는 전체 유치원부지를 함께 검토해야 한다하고,
 나는 “지금까지 창원시는 단독주택지에 시립어린이집을 지으면서 토지이용계획변경 절차도 없이 개별적으로 건축을 하고서는 유독 민간인 재산권은 공익을 앞세워 전체 유치원부지를 묶어서 권리행사를 제한하느냐?”하자,
 담당 공무원들 왈 “시에서 하는 것은 누구 개인이 좋아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편익을 위한 공익사업이니까 법상 하자가 없는 것이고, 개인이 하는 것은 순전히 사익을 추구하는 것이므로 공익적 관점에서 미래의 가치까지 따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논리는 단순합니다.
 공무원이 하는 일은 공익을 위한 일이므로 국법이나 국민으로부터 간섭받을 필요가 없고, 개인이 하는 행위는 모두 사익을 추구하는 일이므로 오늘의 관점에서뿐만 아니라 미래의 관점에서도 공익에 반하는 일이 없는지 검토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공익적 가치와 현직 담당공무원들의 공익적 가치의 생각에 는 너무나 큰 장벽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예전 같으면 나는 기어이 그 장벽을 넘고야 말 것입니다만 지금은 장벽 앞에서 항복하는 길을 택하기로 하였습니다. 
 투쟁해서 내가 누리는 승리의 기쁨보다 항복하여 상대가 기쁨을 누리도록 하는 것이 상대를 행복하게 하고 내 마음을 다치지 않는 것임을 이제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차분히 정리해서 생각해보니 내 스스로가 버리지 못하는 집착과 구속에서 나를 해방시켜 준 구세주가 그 공무원들 아닌가 싶습니다.

 

 세상사가 그런 것 같습니다.

 

 내가 직장을 얻는 날부터 나는 직장의 것이 되었고,
 내가 아내를 얻는 날부터 나는 아내의 것이 되었고,
 내가 자식을 얻는 날부터 나는 자식의 것이 되었고,
 
 내가 담배를 피우는 날부터 나는 담배의 것이 되었고,
 내가 술을 마시는 날부터 나는 술의 것이 되었고,
 내가 자동차를 타는 날부터 나는 자동차의 것이 되었고,

 

 그리고,
 내가 학교를 임대받은 날부터 나는 학교의 것이 되었고,
 내가 땅을 사는 날부터 나는 땅의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언제부턴가 나는 꽤 많은 것을 가졌고, 가진 만큼 그것들에 집착하고, 집착하는 만큼 그것들로부터 구속 받고 살았음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나로부터 너무 멀리 떠나 있음을 깨달았고, 이제는 참된 나에게로 돌아가려 합니다.

 그런 점에서 내게 깨우침의 기회를 만들어 준 공무원들에게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내게 깨달음을 준 것과는 별개로 여러 대중들을 위해서 공무원들에게 한마디 하고자 합니다.
 공무원들은 누구나 공익과 공정을 앞세우지만 사실은 자신들의 안위를 먼저 염려하는 것은 아닌지 아래 이야기로 한번쯤 되돌아보기 바랍니다.

 

 연평도에 북한군 포탄이 연신 떨어지고 선창에는 피난민 수천명이 발을 동동 구르며 아비규환인데 피난민을 실고 갈 구명정은 고작 10톤 정도의 작은 군함이고 선장은 상부로부터 가장 공정하고 효율적인 방법으로 피난민을 구출하라는 명령을 받은 바 있습니다. 
 선장은 작전회의를 열어 선원들에게 각자 의견을 말하라 합니다.
 
 의견1 :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을 구하려면 몸무게가 가벼운 순서로 태워야 합니다.
 의견2 : 임산부는 두 명의 생명이 달려 있으므로 임산부부터 구해야 합니다.
 의견3 : 국가의 장래를 위해 능력 있는 젊은 사람부터 먼저 구해야 합니다.
 의견4 : 능력은 있지만 강간, 절도를 저지르는 질이 안 좋은 사람도 있는데 이런 사람도 같이 취급할 수는 없습니다. 

 의견5 : 강간범, 절도범과 같은 법률적 판단은 사법부가 할 일이고 이미 죄가를 치른 이상 똑 같은 국민권리를 누려야 합니다.
 선장 : 아직도 집에서 나오지 않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국민의 군대는 이들에게 적어도 기회는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의견6 : 지금까지 오지 않는 사람들은 앉아서 죽으나 서서 죽으나 마찬가지라 생각하는 사람들이므로 1분1초가 다급한데 시간 낭비할 여유가 없습니다.
 의견7 : 나름 판단을 하여 그런 결정을 한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상황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하여 그런 것이니 일단 상황설명을 해 줄 의무는 있습니다.
 선장 : 그러면 최종적으로 구조할 사람을 가장 공정하게 뽑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주기 바랍니다.
 의견8 : 전시일수록 국가 재정이 많이 필요하므로 돈을 많이 내는 사람 순으로 해야 합니다.
 의견9 : 사람 목숨을 돈으로 계산할 수는 없습니다. 모두가 공평하게 사다리를 타거나 추첨을 해야 합니다.

 

 선장은 이 작전이 끝나고 자신이 책임져야 할 모든 점을 염두에 두고 최대한 공정하게 임무를 완수하려고 노력하는 중에 적 포탄 한 발이 날아와 이 인명구조선마저 격침시키고 말았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군사재판에서 선장은 어떻게 될까요?
 판결1 : 그는 최후의 일각까지 민주공화국의 군인답게 공정한 작전수행으로 국민에게 민주주의와 정의에 대한 가치와 신념을 심어 준 공로가 지대하므로 국가유공자로 인정해야 합니다.
 판결2 : 그는 전시라는 특수한 상황을 인식하지 못하고 요령부득으로 국민의 생명과 국가의 재산을 지켜내지 못하였으므로 군인자격을 박탈해야 합니다.

 

 공무원들에게 고하고자 합니다.
 위와 같은 상황에서 책임을 따지자면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책임을 면할 수는 없습니다.
 어차피 그 책임은 내 몫이 아니라 하늘의 몫입니다. 대신 내 몫은 자신의 이익관점에서 판단을 했느냐, 국민의 이익관점에서 판단을 했느냐 하는 스스로의 양심만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자 어리석은 자는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쳐다보고, 현자는 달을 쳐다본다고 합니다.
 법과 제도의 지향점이 백성과 달에 있음이지, 공무원과 손가락에 있음인지 생각해 볼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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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가북면 | 용암리 1189용암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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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땡삐 선비(sunb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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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장복산 2012.12.05 10: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비님은 용암선원에서 이미 도를 통하신 모양이구려.~
    이제 하산하셔도 되겠습니다.
    내일 모래하는 갱불 송년회나 참석하심이 어떨런지여.~?
    모과통술에서 지둘리리다.~!

  2. 땡삐 선비(sunbee) 2012.12.05 22: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술 끊고 답배 끊고 했는디
    그야말로 십년공부도로아미타불 되겠습니다.ㅎㅎㅎ

  3. J 2014.11.08 05: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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