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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암선원이야기

내가 108배를 하는 이유.

선비(sunbee) 2012. 12. 5. 15:53

12월 1일 토요일. 날씨 맑음.

 

 새벽 첫 예불에 108배를 하였습니다.
 스님은 오전에 하는 예불 때 108배를 하라고 하였습니다만 새벽잠을 쫓기도 하고 몸을 푸는 효과도 있어 새벽에 하기로 하였습니다.
 108배를 하고 나면 이마에 땀이 맺힐까 말까 하는 정도가 되고, 그 정도에서 밖에 나가 새벽 별빛을 보면서 맨손체조를 하는 것만으로도 쏠쏠한 묘미가 있답니다.

 

 사실 나는 무신론자입니다.
 지금도 석가를 종교의 대상이 아니라 철학의 대상으로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상을 보고 절을 하는 것은 절집에 왔으니 예의를 갖추는 것도 있고, 내 자신을 낮추는 마음수양의 한 방편으로 생각하며 스스로 다짐의 기회로 삼고자 함입니다.
 물론 내가 아직은 불교에 대해 무지한 단계이기 때문에 절집에 살면서 공부를 하다보면 변할 수도 있겠지만 그리 쉽게 종교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듯 쉽습니다.

 

 나는 108배 절을 하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진실로 내가 상대를 108번 배려하고, 108번 공경한다면 누가 감히 나를 싫다 하겠는가?’
 그리고 내가 미워하고 저주했던 사람들을 떠올리며 ‘내가 그들에게 잘못했던 점은 없었던가, 혹은 그는 본래 그대로인데 공연히 내가 그를 쫓아 애증을 품었던 것은 아니었던가?’ 등등....
 아무튼 머리를 조아리는 수만큼 자신을 성찰하려는 노력을 하는 중입니다.

 

 오늘 아침에는 거울을 보다가 문뜩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울 속 오늘의 내 모습은 어제의 내 모습과 다르고,
 1주일 전 이 시간 거울 속에 있던 사람과 오늘 이 시간 거울 속의 사람이 다르다.
 거울은 그 앞에 있는 물체를 24시간 내내 담고 있다.
 하지만 거울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고 있다.
 거울이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고 있다하여 거울 앞에서 펼쳐졌던 그 일들마저 없던 일로 되고 마는가?.”>>

 

 대체로 사람들은 그런 것 같습니다.
 자기 눈으로, 귀로 경험한 사실 말고는 믿지 않으려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사실은 자신이 기억하지 못할 뿐 이미 경험을 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 이유는 단 1초만 눈을 돌려 사방을 둘러보아도 수천수만, 아니 수억의 영상이 내 눈 망막을 지나갑니다. 하지만 우리는 망막을 스쳐간 영상속의 정보는 물론이요 1초 동안 사방을 둘러보았던 행위 그 자체마저도 기억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과연 안 본 것을 안 봤다고 말할 수 있으며, 본 것을 봤다고 말할 수 있는지조차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고 보면 내 자신도 모르는 부지불식간에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불편을 끼치고 마음을 상하게 했는지 모를 일입니다.
 혹여 나로 인하여 불편함이 있고 마음 상한 일이 있었던 분이라면 매일 새벽에 하는 108배로 그 죄를 대신하고자 합니다.

 


                                                            -거창의 용암선원에서 똥작대기랑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