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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암선원이야기

여자가 미용실 가는 이유와 남자가 머리를 깎는 이유

선비(sunbee) 2012. 10. 22. 12:38

여자가 미용실 가는 이유와 남자가 머리를 깎는 이유.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가만히 보자면 여자들이 헤어스타일을 바꾸는 경우는 대체로 이런 것 같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거나 아니면 바람을 맞았거나, 또는 남편이 속을 썩여 그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 머리카락을 지졌다 볶았다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식이 애를 먹여서는 절대로 헤어스타일을 바꾸지 않는 점은 이상한 일입니다.

 

 하지만 남자들의 경우는 연예인이 아닌 다음에야 그냥저냥 평생을 자기 스타일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나는 지난 14일 몇십년 만에 헤어스타일을 파격적으로 바꿔 보았습니다. 삭발을 한 것입니다.
 이 모습을 본 어머니는 “나이 들어 무슨 그런 짓을 하는고? 당장 모자라도 쓰고 다니게” 하며 못마땅해 하기에 “어머니가 예전에 맨 날 온돈 주도 반머리 깍는다고 해사서 이번에는 제대로 한번 깎아 봤지요” 했더니 “아이구 언제부터 애미 말을 그리 잘 들었는고?”하며 웃어 넘겼습니다.

 

 

 

 우리 또래 남자들은 아무라도 고등학교 때 까지는 빡빡머리를 하고 다녔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머리를 기르면서는 장발머리가 유행이었는데 유신시절만 하드라도 머리가 좀 길다 싶으면 길거리 단속경찰에 걸려 파출소로 가는 일도 흔히 있었습니다.


 아무튼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완전 빡빡머리를 한 것이 이번이 네 번째인가 봅니다.
 군대에 입대할 때는 당연한 것이고요, 창원군청에 근무할 때 머리 길다고 시말서를 써오라 해서 그냥 빡빡머리로 밀었던 일, 그리고 86년 무렵 고성군청에 근무할 때 매사가 내 뜻대로 되지 않아 홧김에, 그리고 이번이 네 번째인데 사연은 이렇습니다.

 

 요즘 나는 사적인 문제로 창원시청과 창원교육청을 상대로 법률 해석을 두고 “네가 옳네, 내가 옳네”하며 실랑이를 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과기부에 질의회신까지 받아 창원교육청에 제출했는데 자기네들은 이것을 바탕으로 다시 자체질의를 다시 하여 결론을 내려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10월 4일 그날은 창원교육청과 창원시청 두 곳을 들렀는데 모두가 내가 하는 해석이 잘 못 됐다고 주장을 하므로 ‘똑 같은 법을 두고 어째 이리 해석을 달리할 수 있단 말인가’하고 한탄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주말을 지나고 10월 7일 아내가 “거창 용암선원 이라는 절을 한옥으로 쪼그맣게 잘 지었는데 당신이 한 번 구경할 만 하다"며 같이 가자고 해서 따라 나섰습니다.
 가서보니 아내의 친구가 돌아가신 시부모와 친정부모에게 어버이날 효도행사 하는 셈 치고 제를 한번 올린다고 날을 잡은 것이었습니다.
 나는 평소 절에 가도 참배도 하지 않으므로 서너 시간 제를 올리는 동안 심심해 스님 방에서 “혜봉선사의 유집”이라는 책을 한권 뽑아 자동차에서 읽었습니다. 

 

 혜봉스님은 1874년에 태어나 1904년에 출가하여 통도사 보광선원, 동화사 금당선원 등의 조실을 지내기도 하고 포교당의 포교사를 지내기도 하다 1956에 83세의 나이로 입적한 분입니다. 그는 한시에 능하여 하루에 한 편의 한시를 쓰기도 하고 한문으로 일기를 남기기도 하였는데 대부분이 소실되고 없는데 그나마 남아 있는 것을 모아 그의 제자 석정스님이 한글로 풀어 책을 만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 내게 쏙 들어오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一法千名各應緣 隨言錯解空茫然  일법천명각응연 수언착해공망연
  若人能具頂門眼 何拘遮邊又那邊  약인능구정문안 하구차변우나변

 

  한 가지 法에 천가지 이름으로 각기 인연에 응하건만
  말을 따라 잘 못 이해하니 너무나 까마득하네.
  만약 누가 頂門眼을 갖춘다면
  어찌 이쪽이나 저쪽에 구애되되랴.

 

 이 대목을 보고 ‘지고한 부처님이 전하는 법이 이러할 진데 세속의 속인이 만들어 놓은 법인들 어찌 해석이 같을 수가 있겠는가?’하는 생각에 미치자 내가 원망하고 욕했던 그 공무원들이 이해가 되고 용서가 되었습니다. 

 

 

 

용암선원의 풍경입니다. 

 

 

 

 

 

 그리고 절에 머무는 동안 또 하나의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책을 읽는 동안 폭격기 날아가는 소리와 같은 폭음이 3~4분 정도 오랫동안 지속되어 나는 사방하늘을 둘러봤습니다. 그런데 폭격기가 지나는 흔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례가 끝나고 식사를 하면서 네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아까 그 폭격기 소리는 무슨 소리였느냐?”고, 그런데 아무도 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천지를 진동하는 그 엄청난 굉음을 그들은 기도하느라 듣지를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럼 내가 들은 그 소리는 무엇이고, 그들이 들은 소리는 무엇이란 말인가?’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자신이 원하는 것만 듣고 보게 되며, 아는 만큼 보게 되고, 본 것만큼 알게 된다’는 말을 합니다. 즉, 누구나가 자신이 체험한 경험치의 편견을 가지고 모든 사물을 대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나는 자신을 돌아봤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본 것은 무엇이며, 들은 것은 무엇이었던가?
 그리고 내가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러고 보면 우주 삼라만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 중에서 내가 아는 것은 너무나 미미하고, 내라는 존재도 너무나 미미한 존재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땅에서는 아파트 두 채, 세 채 정도만 되도 부자만 싶습니다. 그러나 비행기를 타고 내려다 보면 아파트 한 동, 두 동을 다 가졌다 해도 결코 부자라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파트 두 채, 세 체를 가진 부자가 되려고 온갖 머리를 쥐어짜고, 아등바등 몸부림을 칩니다.

 아무튼 이런저런 생각 끝에 이번 기회에 내 삶의 목표를 다시 한 번 바꿔보자는 각오를 하였고, 그 다짐으로 머리를 깎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다짐은
 “내가 원하는 세상을 만들려고 하지 말고, 세상이 원하는 내가 되자”입니다.

 

 

-용암선원의 절은 20평 정도로 아주 작은 절인데 다락을 넣어 아주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굳이 오고가는 세상사를 들추지 않아도 좋으련만 지금의 대선정국에서는 남의 과거사를 가지고 싸움질만 합니다.

 그리고 굳이 자기가 세상을 바꿀 적임자라고 핏대를 세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누가 이 세상에 필요한 사람인지를 가려내야 하겠지요.

 

 

-용암선원에서 본 주위 풍경입니다.

지금쯤은 단풍이 많이 들었겎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