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일 일요일. 아침에 눈 점심때 갬.

 

 아침 저수지에서 생긴 물안개가 급속도로 산을 삼키다가 이내 지척이 보이지 않았는데 산과 바다에서 조난사고는 이렇게 해서 생기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입산한지 만 일주일입니다.
 담배를 끊고, 술을 끊고, 고기를 끊고,
 지금까지 해 오던 생활 패턴을 완전히 바꾸려 하니...
 특히 담배를 끊는 것과 새벽02:50에  기상하는 것은 여간 힘들지 않습니다.
 새벽잠을 쫓으려 108배를 하고 밖에 나가서 맨손체조를 하며 온갖 짓을 다해 봅니다만 따뜻한 곳에 앉기만 하면 눈까풀이 천근만근 무거워지는 데에는 우쩔 도리가 없습니다.

 

 오늘은 일요일인데도 하루 종일 전화 한 통화가 없었습니다.
 즉,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그만큼 없다는 의미이고, 그만큼 인생을 잘못 살았다는 이야기이겠지요.
 하여 나는 내라는 존재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내라는 존재는 도대체 어디에 존재하는가?
 부모형제 또는 처자식 속에?
 친구나 이웃 속에?
 직장의 동료나 사회 속에?
 내가 사는 집에?
 내가 타는 승용차에?
 지금 내가 머무르는 용암선원에?
 ......
 ......

 나는 위의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내라는 존재가 유정체로나 무정체로나 이 세상에서 분명 존재한다는 생각에 별 의심을 해 본 적도 없었고, 내 자신을 나름 존재가치가 있는 인간이라 착각하며 살아 왔습니다.
 하지만 지금 보니 나라는 존재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헛것이었습니다.


 호수를 지나는 구름은 호수의 깊은 곳까지 더듬고 가는듯하지만 지나고 나면 아무런 흔적이 없습니다.
 내 삶 또한 이 세상에 흔적 없이 지나가는 구름 같은 인생임을 오늘에야 깨달았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스스로를 나름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는, 소위 자아가 있는 ‘개념족’이라며 자부하며 살았습니다.
 공무원을 그만 둔 것도 남이 주는 발령장에 내 운명을 맡기는 것이 거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내 삶을 꼼꼼히 따져보면 내 의지대로 된 것은 정말 없는 것 같습니다.
 
 꿈에도 생각해보지 않은 공무원을 하게 된 것은 “네 스스로를 테스트 해본다고 생각하고 공무원 시험에 한 번 응시해보라.”는 지도교수의 말 한마디에 우연히 하게 되었고,
 공무원을 하고나니 우연히 같이 근무하던 여자와 결혼을 하게 되었고,
 우연히 귀산동의 빈집을 소개하는 이가 있어 이사를 하게 되었고,
 귀산동에 살다보니 이곳이 요트사업을 하기 좋은 위치라는 이가 있어 우연히 요트사업을 시작하였고,
....
....

 이와 같이 내 인생에 있어 큰 모멘트 점들은 내 자신의 의지에 의한 필연이 아니라 대부분이 의도하지 않은 우연으로 결정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세상의 이치는 참으로 묘합니다.   
 
 햇빛은 나무더러 간섭하지 않습니다.
 바람은 갈대더러 간섭하지 않습니다.
 골짜기는 물더러 간섭하지 않습니다. 
 햇빛, 바람, 골짜기는 특별히 어느 곳에 관심을 두거나 자신의 의지를 반영하지 않습니다.
 그냥 무위로 그 시간, 그 장소에 우연히 존재할 뿐입니다.

 

 하지만,
 나무는 햇빛 따라 몸을 키우고,
 갈대는 바람 따라 몸을 눕히고,
 물은 골짜기 따라 몸을 나릅니다.
 햇빛, 바람, 골짜기는 무위로 우연히 존재할 뿐이지만 나무와 갈대와 물은 그 우연에 필연적으로 작용합니다.

 

 그렇다면 나로 하여금 작용하게 하는 우연의 존재는 무엇이며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부모의 은혜?
 스승의 가르침?
 석가와 예수의 신령한 힘?
 생물학적 세포와 유전자?
 끝없이 생성하는 호기심과 탐욕?
 ....
 ....

 또한 호기심과 탐욕은 내 안에서 생기는가, 바깥에서 들어오는가?
 안은 어디이며, 바깥은 어디이란 말인가?
....
....
등등...


 이런 질문을 계속해보지만 우연의 존재는 결국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연의 존재는 결국 공(空)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이날 내가 깨달은 것은 딱 여기까지입니다.
 “내 운명을 필연적으로 좌우하는 절대적 존재 ‘우연’이라는 것이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그 우연은 내 안에도 밖에도, 육체에도, 정신에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공(空)의 상태다“

 나는 아직까지 참선이다 정진이다 하는 것들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내 운명에 전혀 간섭을 하지 않는 것 같으면서 실상은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공(空)의 실체’를 밝히는 노력을 해 볼 작정입니다.
  

 

 

 

Posted by 땡삐 선비(sunb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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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임종만 2012.12.06 14: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얼추 도사 다되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