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3.12.10 도와 부처가 있는 길. (1)
  2. 2013.01.30 '나를 지켜주는 부처'를 찾게 한 약.
  3. 2013.01.28 탐욕에도 급수가 있다? (4)

 이 사진을 보면서 사람들은 무엇을 생각할까요?

 

 

  지난해 겨울 거창의 용암선원이라는 절집에 머무는 동안 산행을 갔다가 이 표식을 보고 따라갔다가 길을 잘못 들어 식겁한 적이 있습니다.

 올해 들어 또 절집에 와서 곳을 지나다 문득 느끼는 바가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곳 지리를 모르는 등산객이 보면 이정표라 생각하고 길을 계속 갈 것이고, 이미 지리를 잘 알고 있는 마을 사람이 보면 그냥 헝겊이 걸려 있다고 생각하고 무심히 지날 것입니다.

 불가에서 '도와 부처는 처처에 있으되 보는 자는 보고 못 보는 자는 못 본다'고 하였습니다.
 남들이 이정표라 생각하고 헝겊이라 생각하는 그 속에 도가 있음을 나는 보았으니 나는 그 물건이 도와 부처라 봅니다.

 

 도대체 길이란 무엇입니까?
 사람들이 ‘왕래하기 좋은 통로’정도로 정의 할까요?
 그럼 앞의 헝겊이 달려 있는 길은 이곳 지리를 모르는 등산객에게는 절대적인 길이 될지는 모르지만 지리를 잘 아는 나무꾼이나 약초꾼한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길입니다.
 나무꾼한테는 나무꾼의 길이 있고, 약초꾼에게는 약초꾼의 길이 따로 있습니다.
 나무가 있는 곳으로, 약초가 있는 곳으로 향하는 그 발걸음이 바로 길입니다.
 나무꾼과 약초꾼의 지나는 길은 흔적은 있으되 따로 길이 없습니다.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것 그 길,
 그것이 도이고 부처인 것입니다.

 

 ‘산에서 헝겊이 감겨 있으면 그것이 길’이라고, 생각하는 알음알이나 선입견으로 생기는 마음, 또는 헝겊을 헝겊이라고 생각하고 무심히 지나치기만 하는 고정관념의 마음이 아닌 청정한 마음이 머무는 그 자리가 도인데 이것을 어찌 말과 글로 설명하겠습니까?

 

 중국 선종의 제 6조인 혜능대사의 일화가 있습니다.
 인종스님은 당나라에서 유명한 강사로 어 느날 <열반경>을 강의하고 있었는데 거센 바람에 깃발이 펄럭이고 있는 것을 본 두 스님이 서로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한 스님이
 “바람이 움직이는 것이다.”
 다른 스님이
 “아니다. 깃발이 움직이는 것이다.”
 서로 다투다 둘은 강사인 인종스님에게 그 해답을 바랬으나 그 역시 판단하지 못하므로 혜능대사가 말했습니다.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요,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닙니다.
 두 사람 마음이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 즉시 인종스님은 혜능대사의 제자가 되기를 청했다고 합니다.

 

 이 순간 여러분의 마음은 어디에 두고 계신가요?

 

.

Posted by 땡삐 선비(sunb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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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nike 2015.05.11 10: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홈 아름답다

  우리는 한량없이 심성 좋은 사람을 두고 부처 같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영혼이 맑아 가만히 마주 하고만 있어도  맑은 공기를 마시는 듯, 아름다운 경치를 보는 듯 마음을 편안하고 행복하게 하는 신비한 기운 같은 것을 지니고 있지요.

 

 그런데 내게는 ‘부처 같은 사람’이 아닌 ‘사람 같은 부처’가 항상 곁에 있어 어딜 가나 행복하고 든든하답니다.

 그는 내가 지병으로 죽도록 고생하던 목 디스크, 허리 디스크를 그의 침술로 다 고쳐 주었습니다.

 특히, 목 디스크는 대한민국에서 내로라는 큰 병원과 의사들도 손을 드는 판이었는데 그가 결국 날 구해 주었습니다.

 아프게 침놓는다며 돌팔이라는 욕이라도 할라치면 그는 “허허 침이 아픈 것 보니까 아직 덜 아픈 모양이다”하면서 침을 한 번 찌를 뿐...

 

 그런 그가 이번에 내가 절집에 간다는 소식 듣고서는 감기 들까봐 몸살감기약, 배탈날까봐 배탈약,

 그기까지는 지가 직접 조제를 하는 것이니까 그렇다 치고 나아가서는 등산이라도 하다가 다칠까봐 바르는 파스 종류인 시프겔까지...

 하여튼 그의 자상함과 세심함은 타고난 의사이고 부처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 약을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사용할 이유가 없었는데 오늘새벽 포행을 마치고 달이 좋아 사진 몇장 찍느라고 밖에서 어물거렸더니 몸이 으스스하여 몸살약을 찾고서는 부처의 마음까지 찾게 되었습니다.

 

홍상철 한의원 원장님아,

살아있는 생불님아,

친구야,

고마우이~!

 

 

 

 

 

내 같이 달을 즐기기만 하면 될 텐데 인간들은 왜 꼭 그걸 정복하려는지 모를 일입니다. ㅎㅎ

 

 

 

 

 

Posted by 땡삐 선비(sunb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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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봉 원명 대종사의 법문 일부입니다.

 

 불조(佛祖)는 내 원수요 중생은 내 친구

.
 “입을 열면 부처와 조사(祖師)의 뜻을 어기고 입을 열지 않으면 대중의 뜻을 어긴다. 어떻게 하면 불조(佛祖)와 대중의 뜻을 어기지 않겠는가?”

 

 한참 있다가,
“부처와 조사는 내 원수요 대중은 내 친구다. 일찍 듣건대 진주(眞州)의 불제자들은 그 머리에 모양 없는 뿔이 났는데, 그 뿔이 부딪치는 곳에는 아무도 대적할 이가 없다하니, 그 경지를 한 번 말해 보라”하였다.

 

 대중이 말이 없자,
“아, 유쾌하다. 말이 없는 그 가운데 시방(十方)의 허공이 다 무너졌도다.”하고 말씀 하셨다.
 “내가 지금 중생세계를 두루 보니, 나고 늙고 앓고 죽음을 누가 면할꼬. 만일 이 네가지 고통을 면하려거든 생사가 없는 그곳을 모두 깨쳐라. 생사가 없는 곳이 곧 열반이요, 열반을 구하는 것이 곧 생사다. 그러나 생사와 열반은 허공꽃과 같아서 있는 듯 하지마는 진실이 아니니, 생사를 싫어 하지도 말고 또 열반을 구하지도 말라.

 

 수행문(修行門)에는 계율과 선정과 지혜의 삼학(三學)이 있다.
 계율은 탐욕을 다스리고,
 선정은 분노를 다스리며,
 지혜는 우치를 다스린다.

 이 탐욕과 분노와 우치의 삼독(三毒)에는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범부의 삼독이요, 둘째는 이승(二承)의 삼독이며, 셋째는 보살의 삼독이요, 넷째는 부처의 삼독이다.

 

 범부의 삼독이란 오욕(五欲)을 비롯하여 일체의 요구를 탐욕이라 하고, 매를 맞거나 모욕을 당하거나 기타의 모든 역경에 대해 마음을 내고 생각을 일으키는 것을 분노라 하며, 바른 길을 등지고 삿된 길에 들어가 법을 믿지 않음을 우치라 한다.

 

 이승의 삼독이란 즐겨 열반을 구하는 것을 탐욕이라 하고, 생사를 싫어하는 것을 분노라 하고, 생사나 열반이 모두 본래 공(空)인 것을 알지 못함을 우치라 한다.

 

 보살의 삼독이란 불법을 두루 구하는 것을 탐욕이라 하고, 이승을 천하게 여기는 것을 분노라 하며, 부처 성품을 분명히 모르는 것을 우치라 한다.

 

 부처의 삼독이란  중생을 모두 구하려는 것을  탐욕이라 하고, 천마(天魔)와 외도(外道)를 방어하려는 것을 분노라 하며, 45년 동안 횡설수설한 것을 우치라 한다.

 

 

-거창군 가북면 용암리 개금마을의 한 산장에 있는 표석입니다-<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貪慾元是道라
嗔痴赤復然이라.
如是三毒中에
俱一切佛法이로다.

탐욕이 원래 바로 그 도이며
분노와 우치도 또한 그러하나니
이와 같은 삼독 가운데에는
모든 불법이 갖추어져 있네.

 


 나는 이제 대중에게 묻노니 이것이 바로 대중의 경계인가,  또는 저 문수와 보현의 경계인가?

 대중의 경계라 해도 30방(三十棒)을 내릴 것이요, 또 문수와 보현의 경계라 해도 30방을 내릴 것이니 어떻게 하면 그 30방을 면할 수 있을까?

 

 대중이 말이 없자 스님이 말씀 하셨다.
 “남강(南江)의 어부(漁夫)가 그 30방을 맞고 달아났도다.”


 그리고 다음 게송을 읊으셨다.

君子故鄕來하니
應知故鄕事라.
來日綺窓前에
寒梅着花未아

그대가 고향으로부터 오니
아마 고향의 일을 알리라.
떠나는 날 그 비단창 앞에
매화꽃이 피었던가 안 피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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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의 생각>

 

 내가 곧 부처이고 부처가 곧 나인데 삼독에 네것 내 것이 어디 있으며,

 떠나고 머무름이 없는데 고향이 어디 있으며 소식 또한 어디 있겠는가?

 

 

 

 이 놈들은 지금 웃고 있는가, 울고 있는가?

 웃고 있다고 해도 30방, 울고 있다고 해도 30방,

 그러면 대중들은 어떻게 해야 30방을 면할 수 있을꼬? ㅋㅋㅋ

 

-거창군 가북면 용암리 개금마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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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땡삐 선비(sunb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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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주완 2013.01.29 08: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득도하셨군요.

  2. 장복산 2013.01.29 10: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냥 나도 30방 맞고 말란다.
    내가 보기엔 저넘들 허벌나게 기분이 좋아서 웃고 있는게 분명하다.

  3. 땡삐 선비(sunbee) 2013.01.30 12: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장복산님은 아무래도 30방 맞아야 하겠습니다.
    저놈들은 인간이 아니고 개이기에 즐기는 것이 아니라 종족보전 의무를 다하느라 저토록 고통스러와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