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금마을'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3.01.28 탐욕에도 급수가 있다? (4)
  2. 2012.12.31 거창 용암리 노인들 공금으로 도박.
  3. 2012.12.31 거창 용암리에서 용의 실체를 보다. (2)

 

효봉 원명 대종사의 법문 일부입니다.

 

 불조(佛祖)는 내 원수요 중생은 내 친구

.
 “입을 열면 부처와 조사(祖師)의 뜻을 어기고 입을 열지 않으면 대중의 뜻을 어긴다. 어떻게 하면 불조(佛祖)와 대중의 뜻을 어기지 않겠는가?”

 

 한참 있다가,
“부처와 조사는 내 원수요 대중은 내 친구다. 일찍 듣건대 진주(眞州)의 불제자들은 그 머리에 모양 없는 뿔이 났는데, 그 뿔이 부딪치는 곳에는 아무도 대적할 이가 없다하니, 그 경지를 한 번 말해 보라”하였다.

 

 대중이 말이 없자,
“아, 유쾌하다. 말이 없는 그 가운데 시방(十方)의 허공이 다 무너졌도다.”하고 말씀 하셨다.
 “내가 지금 중생세계를 두루 보니, 나고 늙고 앓고 죽음을 누가 면할꼬. 만일 이 네가지 고통을 면하려거든 생사가 없는 그곳을 모두 깨쳐라. 생사가 없는 곳이 곧 열반이요, 열반을 구하는 것이 곧 생사다. 그러나 생사와 열반은 허공꽃과 같아서 있는 듯 하지마는 진실이 아니니, 생사를 싫어 하지도 말고 또 열반을 구하지도 말라.

 

 수행문(修行門)에는 계율과 선정과 지혜의 삼학(三學)이 있다.
 계율은 탐욕을 다스리고,
 선정은 분노를 다스리며,
 지혜는 우치를 다스린다.

 이 탐욕과 분노와 우치의 삼독(三毒)에는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범부의 삼독이요, 둘째는 이승(二承)의 삼독이며, 셋째는 보살의 삼독이요, 넷째는 부처의 삼독이다.

 

 범부의 삼독이란 오욕(五欲)을 비롯하여 일체의 요구를 탐욕이라 하고, 매를 맞거나 모욕을 당하거나 기타의 모든 역경에 대해 마음을 내고 생각을 일으키는 것을 분노라 하며, 바른 길을 등지고 삿된 길에 들어가 법을 믿지 않음을 우치라 한다.

 

 이승의 삼독이란 즐겨 열반을 구하는 것을 탐욕이라 하고, 생사를 싫어하는 것을 분노라 하고, 생사나 열반이 모두 본래 공(空)인 것을 알지 못함을 우치라 한다.

 

 보살의 삼독이란 불법을 두루 구하는 것을 탐욕이라 하고, 이승을 천하게 여기는 것을 분노라 하며, 부처 성품을 분명히 모르는 것을 우치라 한다.

 

 부처의 삼독이란  중생을 모두 구하려는 것을  탐욕이라 하고, 천마(天魔)와 외도(外道)를 방어하려는 것을 분노라 하며, 45년 동안 횡설수설한 것을 우치라 한다.

 

 

-거창군 가북면 용암리 개금마을의 한 산장에 있는 표석입니다-<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貪慾元是道라
嗔痴赤復然이라.
如是三毒中에
俱一切佛法이로다.

탐욕이 원래 바로 그 도이며
분노와 우치도 또한 그러하나니
이와 같은 삼독 가운데에는
모든 불법이 갖추어져 있네.

 


 나는 이제 대중에게 묻노니 이것이 바로 대중의 경계인가,  또는 저 문수와 보현의 경계인가?

 대중의 경계라 해도 30방(三十棒)을 내릴 것이요, 또 문수와 보현의 경계라 해도 30방을 내릴 것이니 어떻게 하면 그 30방을 면할 수 있을까?

 

 대중이 말이 없자 스님이 말씀 하셨다.
 “남강(南江)의 어부(漁夫)가 그 30방을 맞고 달아났도다.”


 그리고 다음 게송을 읊으셨다.

君子故鄕來하니
應知故鄕事라.
來日綺窓前에
寒梅着花未아

그대가 고향으로부터 오니
아마 고향의 일을 알리라.
떠나는 날 그 비단창 앞에
매화꽃이 피었던가 안 피었던가?

 

-----------------------------------------------

 

<선비의 생각>

 

 내가 곧 부처이고 부처가 곧 나인데 삼독에 네것 내 것이 어디 있으며,

 떠나고 머무름이 없는데 고향이 어디 있으며 소식 또한 어디 있겠는가?

 

 

 

 이 놈들은 지금 웃고 있는가, 울고 있는가?

 웃고 있다고 해도 30방, 울고 있다고 해도 30방,

 그러면 대중들은 어떻게 해야 30방을 면할 수 있을꼬? ㅋㅋㅋ

 

-거창군 가북면 용암리 개금마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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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에도 급수가 있다?  (4) 2013.01.28
Posted by 땡삐 선비(sunb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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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주완 2013.01.29 08: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득도하셨군요.

  2. 장복산 2013.01.29 10: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냥 나도 30방 맞고 말란다.
    내가 보기엔 저넘들 허벌나게 기분이 좋아서 웃고 있는게 분명하다.

  3. 땡삐 선비(sunbee) 2013.01.30 12: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장복산님은 아무래도 30방 맞아야 하겠습니다.
    저놈들은 인간이 아니고 개이기에 즐기는 것이 아니라 종족보전 의무를 다하느라 저토록 고통스러와 하는데...

 내가 거창군 가북면 용암리의 용암선원에 온지도 벌써 한 달이 훌쩍 지났습니다.
 어디를 가나 처음 대하는 곳은 모두가 낯설고, 생면부지의 면을 트자면 시간이 다소 흘러야 합니다.
 그런데 금년 겨울 이곳에서 나는 잦은 눈 덕분에 의외로 쉽게 동네 사람들과 면을 트고 노인정에도 심심찮게 들리게 되었습니다. 


 어느 시골이나 그렇듯이 이 마을에서도 70대 노인은 젊은 축에 들고, 가북면을 운행하는 버스에서 70대 노인은 80~90대 노인에게 밀려서 좌석도 양보해야 할 정도입니다.
 이런 노인들만 살다보니 눈이 내리면 눈을 치울 사람이 별로 없으므로 자연스레 젊은 내가 앞장서야 하고, 눈 좀 치우고 나면 할머니들은 노인정에서 커피를 끓이거나 찌짐을 부쳐 한사코 먹고 가라합니다.

 바로 그때마다 보는 장면이 노인네들의 화투놀이 도박입니다.
 고스톱도 아니고 육백도 아닌 민화투라고 하는 것인데 나도 어릴 적에 한 기억이 있는데 점수 계산은 어떻게 하는지 기억이 아리송송....


 아무튼 노인네들은 이 민화투로 하루종일 십원짜리 동전내기 노름을 합니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이 십원짜리 동전을 개인 주머니에서 내는 것이 아니고 항상 노인정에 있는 공금을 얼마씩 갈라서 내기를 하고 끝나면 다시 그대로 들여 놓는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노름밑천으로 공금유용을 하는 셈이죠.ㅎㅎㅎ

 

 

-노인정의 이모저모 모습입니다.
사람 냄새, 따신 온기가 느껴지지요.

 

 

 

 

 

 그런데 지금 노인네들이 하는 노름이야 말 그대로 놀이 삼아 심심풀이로 하는 것이지만 예전에는 진짜 노름이 심했다고 하네요.
 그 까닭인즉 가을 농사가 끝나고 나면 동지섣달 산골의 나날은 무료하고 따분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텔레비전도 없고 인터넷도 없던 그 시절에 시간 죽이기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술과 노름 말고는 달리 할 것이 있었겠습니까?.

 노인네들의 말을 빌리자면 이 용암마을이 용암리 여러마을 중에서도 가장 큰 마을로 예전에는 90호가 넘게 살았고, 마을 하천가에는 물방앗간이 두 개나 있었고 길가에는 주막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 마을회관자리에는 본래 학교가 있었는데 1941년도에 송정마을로 이사를 갔으며, 이 동네에 사람이 많이 모여 살았던 이유는 가북면 산골짜기 중에서 유달리 기온이 따뜻하여 보리농사가 잘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묵혀서 잡목과 잡초가 우거진 곳들이 전부 전답이었고, 지금의 동네 안 채전밭은 모두 집터였다고 합니다.

 몇몇 노인네들은 과거 개금마을은 춥고 먹을 것이 없는 그야말로 살기 어려운 동네였는데 지금은 차츰 살기가 좋아져 가고 사람도 늘어나고 있는데 옛날에 잘 나가가던 이 동네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며 못내 아쉬움을 토로하였습니다.

 

 

-쓰러져가는 방앗간과 늘어나는 빈집을 대신하여 늘어나는 산소가 이 동네의 역사를 이어가겠죠?

 

 

-마을의 빈집들입니다. 아마도 사는 집보다 빈집이 더 많을 듯 합니다. 

 

 

-마을 옆 산능선에 있는 묘지들입니다. 자꾸만 늘어나겠죠?

 

 세상의 변화는 이런 것 같습니다.
 과거에는 농작물이라 하면 쌀과 보리가 아니면 농작물로 취급도 해주지 않았습니다. 그 시절에는 당연히 쌀.보리 농사가 잘되는 농토를 상답이라 하였고, 집도 단열기술이 없으므로  바깥 기온이 낮으면 얼어 죽기 십상이니 당연히 따뜻한 양지를 찾아 집을 지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쌀.보리 대신에 특용작물이 대세이고, 집도 단열과 구조적 측면에서 자연에 대응할 수 있는 기술이 발달하여 굳이 양지만 찾을 필요도 없게 되었으니 지금으로선 경사가 급한 용암마을보다는 완만한 개금마을이 더 살기 좋은 마을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이 변하는 이치야 그렇다 손 치더라도 속절없이 쇠락해가는 농촌마을들 이모저모들과 노인네들 손 마디마디의 굳은살을 바라보노라니 왠지 가슴이 짠합니다.

 

 

-아래 빈집을 보노라니 추사의 세한도가 자꾸만 생각이 나네요.
뻥 뚫린 저 구멍은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인생의 허무 ~ ~

 

 

 “가을 농사 끝나고 11월부터 내년 7월까지는 돈맛 볼 끈덕지가 없으니 농촌에서 뼈 빠지게 한 철 열심히 벌어본들 맨 날 제자리걸음이다.”며 소주잔을 들이키던 젊지도 늙지도 않은 한 주민의 말이 자꾸만 생각난다.
 11월부터 7월까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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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가북면 | 용암리1189 용암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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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땡삐 선비(sunb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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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거창군 가북면 용암리의 용암선원이라는 절집에 들어오면서 왜 지명을 ‘용암리’라고 하였는지 궁금하여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니 두산백과사전에 등록된 용암리라는 마을이 무려  40개나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 이 곳 용암마을의 소개는 두산백과사전에 간단히 언급되어 있고 블로그나 카페와 같은 곳에서 소개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두산백과사전에도 그렇고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로도 그렇고 이 동네 이름이 용암리라고 붙여진 이유는 동네 뒷산의 바위가 용의 머리처럼 생겼다 하여 용두바위 또는 용바위라 하고, 이 바위 이름을 따서 용암리라 하였다는 것입니다.

 하여 나는 용머리처럼 생겼다는 바위를 보고자 두 번을 바위까지 올라가 보았습니다만 도무지 용머리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제 12월 29일 죽바위골이라는 쪽으로 포행길을 나섰다가 눈 덮인 산을 쳐다보다가 “아~  바로 이거로구나!”하고 그 위용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어떻습니까?
 지금이라도 ‘어흥~’하며 당장 튀어나올 듯 한 형상이  아닌가요?

 

 

              -용바위입니다.-

 

 

  거창의 가조면은 가조온천으로도 이름이 알려져 있기도 하고 팔팔고속도로에서 IC도 있어 대체로 알려져 있지만 그에 접한 가북면은 거창군에서도 오지 중의 오지로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곳입니다. 용암리라는 마을은 가북면소재지에서 하천을 따라 올라가는 산골마을로 용암리라는 법적명칭의 행정구역 안에는 용암본부락, 개금마을, 장전마을, 홍감마을, 송정마을 5개 자연취락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용암본부락은 기온이 따뜻하여 보리농사가 잘되어 사람이 가장 많이 살았고, 1960년대 전후로는 세대수가 90여호가 넘을 정도였다합니다.

 

     - 동네 입구 좌측에는 음석바위, 우측에는남근석바위가 있는데 정말 신기합니다.-

         (음석바위인데 음기가 세다하여 옛날에는 안에 돌을 쌓고 제를 지냈다 합니다 

 

(남근석인데 보기로는 아직도 힘이 있는 듯 한데   여~ㅇ 아닌가 봅니다. ㅋㅋ)

 

(음석바위 안  돌을 쌓은 모습)

 

 

( 그리고 이 바위는 하천 건너편으로 음석과 남근석 중간에 있는 바위인데

 마치 두 바위의 합궁으로 용의 알이라도 낳은 듯하므로

 오늘부터 이 바위를 ‘용란석’이라 하겠습니다.) 

 

                  

 

 나는 건축이 전공이고 생태도시에 관심을 가지면서 우연히 풍수지리를 접하고서는 “바로 이거다!”하며 풍수지리에 감탄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흔히 조상의 묏자리를 정하면서 지관들이 보는 소위 음택이 풍수지리의 주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본 풍수지리는 주거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두고 보는 관점에서 바람과 물과 지형을 잘 이용하면 생태적인 환경에서 지속가능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이 풍수지리 이론으로 해결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아무튼 나는 요즘 어디를 가나 그 지역의 지형을 살피고 자연환경과 인문환경과의 관계가 어떻게 형성되어 가는지를 유심히 관찰하는 버릇이 생겼고 이 마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금까지 살펴 본 바로는 용바위로부터 산맥이 뻗어 내려와 양 갈래로 갈라진 지형은 마치 여성의 자궁과 같은 형상에 뒤로는 북쪽 산이요 앞으로는 남쪽 하천이 흐르는 그야말로 배산임수의 좋은 양택의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네이버 지도에서 본 용암마을 항공사진. 

  (노란선이 산능선입니다)

 

 


 그렇다면 그리 좋은 양택지라면 계속 마을이 번성하여야 할 것인데 왜 쇠퇴해 가느냐는 의문이 생깁니다.
 그 답을 나도 이곳에서 생활해보지 않았다면 아마도 몰랐을 것입니다.
 그리고 눈이 내릴 때 마다 눈 치우는 작업을 해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입니다.

 이 마을의 지형은 경사도가 15도가 넘는 가파른 경사지입니다.


 과거 농경사회에서 농사를 지을 때는 모두 지게를 지고 농사를 지으므로 농업용수 풍부하고, 배수 잘되고, 일조량 풍부하면 경사도 정도는 까짓것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기계화영농이 시작되면서부터 영농기계가 마음대로 들어갈 수 없는 지형의 농지는 쓸모없는 전답이 되고 말았습니다.
 주거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겨우내 눈이 내리는 동네에서 경사진 빙판길은 사람도 얼씬하기 어려운 판이니 자동차야 있으나마나 한 그야말로 무용지물이 되고 말지요.
 눈만 왔다하면 대중교통이 가장 먼저 중단되고 마니 하필 이런 날에 응급상황이라도 생기면 하늘 말고는 원망할 곳도 없이 고스란히 당해야 하는 것이 산골의 실정입니다.

 

 

- 차도에서 본 마을의 전경입니다.

   (큰길가에 있는 집만 새집을 지었네요. 동네 안에는 당장 레미콘차가 들어가기도 힘이 들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세월 따라 사람이 가고,
 사람 따라 집이 가고,
 집 따라 마을이 가고,
 ........
 자연의 이치인가 봅니다.

 

.......................................................................................................................

 어제부터 가조온천에 목욕가려고 했는데 버스가 오지 않는 바람에 못했는데,
 어제 밤에 내린 눈 때문에 오늘도 기약을 할 수 없다고 하네요.

 으으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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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가북면 | 용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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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땡삐 선비(sunb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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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장복산 2012.12.31 10: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남근바위가 아직 힘이 남아 있을 때 가서
    정기라도 좀 받아 와야 할 거 같은디...
    눈 땜시 버스도다니지 않는다 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