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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과 김영삼, 그리고 안상수 창원시장후보의 명운은?

선비(sunbee) 2014. 3. 20. 11:48

 누가 내게 마산이라는 도시가 어떤 도시냐고 묻는다면 나는 한 마디로 “저항의 도시”라고 이야기 합니다.
 3.15의거로 이승만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부마항쟁으로 박정희 유신정권을 무너뜨린 역사를 지닌 엄청난 도시 “마산!”
 세계의 어느 역사를 보드라도 변방의 한 작은 도시에서 두 번이나 정권을 무너뜨린 이력을 가지고 있는 도시는 없습니다.
 그래서 3.15와 부마항쟁의 저항정신은 마산시민들의 자랑이요 자부심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며칠 전 TV에서 제54주년 3.15의거 기념행사를 보다가 행사장 앞줄에 앉아있는 인사들 면면을 보면서 “도대체 저 사람들이 저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최루탄과 물대포에 맞서 돌팔매과 화염병을 던지며 “박정희 물러가라! 유신정권 타도하자!”며 핏대를 세우던 사람들이 그 저주의 대상 혈통을 고스란히 이어 받은 새누리당에 열렬한 지지를 보내고,
 그런 지지를 얻은 정치인들이 최루탄에 맞아 목숨을 잃은 영령 앞에 서서 당신의 뜻을 기린다고 하니 ....

 

 그러면 어떻게 해서 오늘날 이런 웃지 못 할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일까요?
 나는 이 것을 “김영삼 집단체면” 아닌가 생각합니다.
 마음 놓고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눈 한번 제대로 돌리지 못하던 박정희 유신정권의 암울한 하늘 아래서 “닭의 목을 비뚤어도 새벽은 온다!”며 독재정권에 맞서 싸우던 김영삼은 우리의 희망이요 등불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우리는 김영삼이 이 땅에서 독재정권의 나쁜 무리를 물리치고 정의롭고 자유로운 민주국가를 하루빨리 만들어 주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 이 땅에 정치의 봄은 왔음에도 우리의 소망은 이루지지 않고 군사정권이 계속되자 김영삼은 “호랑이를 잡으려고 호랑이굴로 들어간다.”며 여야 3당 합당이라는 것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과연 그는 호랑이를 잡았습니다. 

 

 

 

 

  -군사정권에 맞서기 위해 연대한 김영삼과 김대중,

 정권을 잡기 위해 군사정권과 손 잡는 김영삼,

3당 합당이 야합이라며 저항하는 노무현,

 그리고 김영삼과 김대중의 사람들이 지금 어디 있는지,

이 한 장의 그림을 보면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마산 사람들은 김영삼을 따라 호랑이굴로 들어가고서는 그만 호랑이굴 지킴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공화당 - 민정당 - 신한국당 - 한나라당 - 새누리당 하면서 호랑이굴의 간판은 바뀌었지만 그 혈통은 면면히 그대로 흐르고 있습니다.
 호랑이를 잡으러 간 사람들이 자신들이 그토록 싫어하던 호랑이 고기를 먹고는 그만 호랑이유전자로 변해버린 것일까요?

이번에 창원시장 후보로 나선 안상수 후보에 대한 경력을 보다가 이 사람도 영락없는 마산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상수 창원시장 후보의 경력
-대학교 2학년 재학 중, 학생운동에 투신
-대학교 3학년 재학 중, 서울대학교 총학생회 부회장에 선출되었다.
-1965년 6월 : 한일회담을 반대하는 6 · 3 항쟁 당시 단식농성에 참가
-1966년 : 이병철의 한국비료 사카린 밀수 사건 성토대회에 참가, 사카린 밀-수사건 성토대회 사회를 보다가 주모자로 유기정학을 받았다.
-1967년 : 여당의 6 · 8 국회의원 선거 당시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되자, 부정선거 규탄시위에 참여하였다가 '집시법'위반으로 재판에 회부, 시국사건에도 연루되어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1975년 : 제17회 사법시험 합격, 검사에 임용
-검사에 임용되었으나 학생운동, 노동운동 연루 경력으로 검사발령이 되지 않다가 전주지방검찰청에 발령되었다.
-경향신문 : 객원 논설위원
-1985년 3월 :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맡아 수사한 후 검사직 사퇴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장
-1994년 : 외국인 이주노동자 법률상담소 소장

 

 

 1996년 신한국당 김영삼 총재의 발탁으로 정계에 입문하기 전 까지 그의 이력을 보면 그의 유전인자는 새누리당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인물입니다.
 그는 박정희 유신정권과 그 후의 군사정권에 저항하는 학생운동, 노동운동, 인권운동, 환경운동, 경제정의실천운동가였습니다.
 말하자면 박정희 정권에 철저한 안티역할을 하였던 것입니다.
 박근혜가 명색이 당대표까지 지낸 사람을 공천마저 주지 않은 까닭이 바로 이런 과거전력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상후보는 수도권에서 밀려나 변방인 고향으로 돌아와 박근혜의 새누리당 공천을 받겠다며 죽자고 목을 매달고 있으니 이 얼마나 웃기는 이야기입니까?

 

 

 또 하나 이해되지 않는 장면은 1960~70년대 마산시민들의 꿈이고 등불이었던 인물, 그래서 호랑이굴까지 기꺼이 따라갔던 인물인 김영삼에 대해서는 거부반응을 일으키면서 그토록 미워하고 저항하였던 유신정권의 혈통에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는 마산시민의 모습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논리적으로 보자면 3.15의거와 부마항쟁 정신을 자랑하지 말든지, 독재와 유신정권의 혈통을 지지하지 말든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할 것인데 이 어찌 된 판인지 근자 마산시민들의 행태는 ...????
 이런 장면을 두고 마산을 ‘저항의 도시’라고 하기에는 낯간지러운 소리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마산과 창원의 역사를 가만히 되돌아보면,
 시민들의 저항정신이 살아있을 때 도시는 역동성이 있고, 도시가 역동성이 있을 때 시민들의 저항정신 또한 살아 있는 것입니다.
 저항정신이 살아있던 60~70년대가 마산의 전성기였다가 호랑이굴로 들어간 이후로 마산은 쇠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창원의 경우도 전국 유일의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을 만들어 낸 지역구가 ‘창원을’ 선거구이고 그 시절(2008 ~ 2012년)이 창원의 최전성기였다가 이제 창원도 서서히 역동성이 살아져 가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힘있는 집권여당의 중진의원이 되어 지역발전을 시키겠다고 하는 집권당 다선국회의원들의 말은 만고 공허한 헛소리였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번 선거에서 마산시민이 마산의 역사와 궤를 함께한 안상수 후보를 선택하느냐 않느냐에 따라 마산 미래의 향배가 달려있다 보고 그 결과가 매우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