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졸업식과 노모의 시위 속에..

 

 지난 8월 30일 딸내미 졸업식이 있었습니다.
 나는 사실 별로 가고 싶지를 않았습니다만 당신이 가장 좋아라하는 손녀 졸업식에 가야 한다며 성치도 않은 몸으로 앞장 나서는 어머니 바람에 부득불 내가 자동차를 운전하고 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실 우리 집 딸내미는 낳기만 지어미가 낳았을 뿐이지 맞벌이를 하느라 할머니가 거두어 키우는 바람에 할머니 자식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지금도 아빠엄마는 현금인출기일 뿐이고 할머니와는 꼭 하루에  한두 번 이상 안부 전화를 하며 지내고 둘이서 잠을 잘 때는 서로 부둥켜안고 팔다리를 걸치고 잔답니다.

 

 졸업식장에서 보는 아가씨들은 하나 같이 다 날씬하고 이쁜데 우리 딸내미는 본래 얼굴도 큰데다 살까지 쪄서 내가 “여기 졸업생 중에 너처럼 뚱뚱한 아가씨가 어딨노. 네 같은 년을 어느 놈이 데리고 가겠노. 살좀 빼라.”라고 하자 어머니 왈 “내가 보니까 우리 손지가 젤 달덩이 같이 이쁘기만 하구만.”하며 손녀를 두둔하였습니다.

 

 

 

 

 

 그리고 졸업식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자동차 드렁크에 가득 실 고온 짐을 부리고보니 빈 김치통, 빈 아이스박스, 빈 가방 등 알맹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빈 그릇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되짚어보면 이 그릇들이 서울로 갈 때는 분명 속이 꽉 찬 그릇이었을 것입니다. 
 음~ 

 

부모와 자식 간에 오고간 것이 어디 이 빈 그릇과 그 속에 찼던 물건들만 있었겠습니까?
 추우면 추울세라 더우면 더울세라 밤낮주야로 근심하고 걱정하고 쏟은 애정과 성원은 이까짓 그릇들로는 도저히 담을 수도 없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미 다 퍼주고 빈 그릇만 남은 부모에게 바라기를 그 넘치는 사랑 대신에 또 그릇에 담긴 물건은 없는가하고 그기에 더 집착하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입니다.

 

 

   암튼 졸업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는 요즘 딸과의 전쟁에 대해 이런저런 넋두리를 늘어놓았습니다,(어머니는 막내 여동생 아이들을 돌보느라 여동생 집에 살고 있음)
 그리고 이번에 서울에 간 김에 당신이 없어봐야 당신의 소중함을 깨닫도록 추석 때까지는 여동생 집에 가지 않기로 했다면서 당신만의 거처인 원룸에 내려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일찍 부산의 오촌 숙모로부터 “어제 오후에 남해에 성묘하러 가는 길에 같이 가기로 해서 네 엄마 집에 왔는데 문은 잠겨있고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인기척이 없다. 혹시 큰일 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며 전화가 왔습니다. 


 나는 어이쿠나 하며 황급히 자동차를 몰아가서 비상 열쇠로 문을 열어보니 다행히 어머니는 계시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여동생도 달려오고 온 집안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정황으로 추정 끝에 아마도 혼자 버스를 타고 남해로 갔을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남해에 도착해서 점심을 들고 계신다는 전갈이 와서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이 같은 한 바탕 소란 속에서 여동생이 어머니를 부양하는 10년 프랜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머니가 이렇게 돌출행동을 하여 비상을 거는 이유는 핏덩이를 받아서 키운 손자도 어느 듯 열다섯 나이가 되자 굳이 할머니 손이 아쉽지도 않고 하므로 자신이 딸집에서의 존재감도 없어지고,
 예전에 허물없이 자주 어울리던 친구나 지인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나고 없어 자신을 찾아주는 이도 없으므로 이래저래 자존감 상실에 빠져들고,
 그런 연장선에서 이와 같은 돌출행동으로 자신의 존재를 다시 확인하고자 함이었던 것으로 진단을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있는 속, 없는 속 다 내어 주고, 그릇그릇 다 담아 퍼주고, 이제 빈 그릇마저도 망가지고 희미해져 가는 부모라는 이름의 형상이 참 서글프기만 합니다.
 
 우리 어머니의 시위 속에 담긴 뜻이 혹시 이런 것 아닐까요.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ㅎㅎㅎ

 

Posted by 땡삐 선비(sunb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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