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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암선원이야기

82살 노인의 거짓말과 바보 며느리.

선비(sunbee) 2012. 12. 13. 16:29

  12월 8일 창원에 갔다가 돌아오던 날 거창에 도착해 보니 눈이 많이 내려 내가 기거하는 용암마을까지는 버스가 운행하지를 않고 면소재지인 가북까지만 운행한다고 하였습니다.
 거창읍내 버스정류장에서 이일을 어떻게 해야 하나하고 난감해 하고 있는데 용암선원 바로 앞집 할아버지가 손에 붕대를 감고 나타났습니다.
 그러자 팔에 깁스를 한 또 다른 할아버지와 서로 인사를 하며 서로 안부를 물었는데, 이웃마을에 사는 할아버지이고 제설작업을 하다가 미끄러져 팔이 부러졌고, 우리 동네 할아버지는 자식들 가는 길 확인하느라 나갔다가 미끄러져 손을 다쳤다는 것입니다.
 내가 마을까지 가는 버스가 없다며 걱정을 하자 이웃동네 할아버지가 가조까지 가서 세 사람이 택시비를 공동 부담해 가자고 하여 그렇게 하였습니다.
 (가조는 거창군 가조면 면소재지로 가조온천이 있기도 하고 함양, 합천, 88고속도로 등으로 갈라지는 교통요충지이기도 하여 지금도 5일장이 열릴 정도로 많은 사람이 살고 있음)

 

 본론으로 들어가 거짓말에 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택시를 타고 오는 중 앞집 할아버지 핸드폰에 며느리가 날씨가 추운데 괜찮으냐는 안부를 물었고,
노인 왈  “별일 있을 끼 뭐 있노. 지금 가조에 갔다가 차타고 오는 길인께 나중에 전화할께.”
 며느리 왈 “가조에는 왠 일로요?”
 노인 왈 “어~ 뭐 볼일이 좀 있어서. 집에 가서 전화할께.”하고 전화기를 접어버렸습니다.

 노인은 거창의 병원에 다녀오면서 며느리에게 가조에 갔다 온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자식들이 할아버지 손 다치신 걸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뭐 이 까짓것 가지고 무하러 자식들한테 걱정시키나?” 하였습니다.
 그 순간 나는 이틀 전 제설작업을 하면서 할아버지가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이틀 전인 12월 6일에는 20센티가 넘는 눈이 쌓여 나는 사람이 다닐 수 있는 정도의 길만 내고 말려고 했는데 이 할아버지는 가스차가 가스 배달이라도 하려면 차길을 터놓아야 한다며 82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차길을 내는 것입니다.
 내가 머무르는 용암선원과 이 할아버지 집은 마을 끝에 있으므로 사실 다른 사람들이 이 앞길을 다닐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아직 동네 사정을 잘 모르는 나로서는 가스차도 와야 하고, 택배차, 부식차 같은 것도 와야 하고 하니까 할아버지 말대로 차길을 내는 것이 맞겠다싶어 죽자고 제설작업을 하였습니다.

 

-손에 붕대를 감고 있는 분이 주인공 할아버지...

 

 

       -땔감으로 산에서 갈비(소나무 잎)를 한 짐  지고 옵니다. 82살이라는 사실이 실감 납니까?-

 

                                                          -유달리 앞다리가 짧은 할아버지의 가족...메~롱~~~

 

 

 

 

 그런데,
  . . . . .
 내가 할아버지한테 완전히 당한 것입니다.
 할아버지가 그토록 차길을 열고자 한 것은 다음날 자식들이 김장을 가지러오기로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할아버지의 수고 덕분에 자식들은 대문 앞까지 차를 타고 와서 수월하게 배추를 가져갔고,
 자식들이 떠난 후 눈길에 혹시나 탈 없이 잘 갔나싶어 큰길까지 나갔다가 그만 미끄러져 손뼈에 금이 가는 부상을 당한 것입니다.
 자식들은 자신들이 떠난 후 아버지가 그렇게 된 줄도 모르고 의례적으로 안부를 물었고, 할아버지는 자식들이 걱정할까봐 병원에 간 사실을 숨기고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나는 가스차 때문에 눈을 치워야 한다는 할아버지의 거짓말에 속았고, 며느리는 가조에 볼일 있어 갔다는 거짓말에 속은 것입니다.

 

 거짓말에 속은 것을 알고 나면 분하고 화가 나야 하는데 이번에는 전혀 그렇지를 않습니다.
 할아버지의 속 깊은 자식사랑에 자꾸만 마음이 짠하고 무겁습니다.

 자식을 염려하여, 또는 자식이 염려할 것을 염려하여 거짓말을 하는 우리네 부모님의 말씀에 우리는 늘 바보같이 당하고 맙니다.
 아니, 일부러 바보노릇을 하는지도 모릅니다. 혹시 귀찮은 일 생길까봐서...

 

 앞집 할아버지의 자식사랑은 동네에서도 유별나다고 합니다.
 가령 보통 사람들은 고추를 말려만 주는데 이 할아버지는 며느리 힘들다며 기어이 고춧가루를 빻아서 준다고 합니다.
 그리고 힘이 장사이신데 82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제설작업을 하는데 잠시도 쉬지를 않고 하므로 따라서 해야 하는 내가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경운기를 포함한 농기계를 다루는 솜씨는 젊은 사람 저리 가라입니다.

 불가의 ‘백팔배 대참회문’에 이런 것이 있네요.

 

 “가장 큰 힘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감사한 마음으로 절합니다.” 


82살 할아버지 힘의 원천은 바로 자식들을 향한 사랑이 아닐까 싶습니다.

 할아버지!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그리고 자식을 바보로 만드는 모든 부모님께 진심으로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용암선원에 똥작대기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