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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씹어 볼만한 글

'루브 골드버그 장치

일을 하는 데는 쉽고 간단한 방법과 어렵고 복잡한 방법이 있다. 합리적인 인간은 가급적 단순하면서도 쉬운 방법을 택하겠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이 복잡하고 험난한 길을 택한다. 첫째는 길을 몰라서다. 가까운 지름길을 두고도 먼 길을 헤맨 경험이 한두 번쯤은 있을 것이다. 둘째는 잔머리를 굴려서다. 여러 가지 선택지를 재보다가 결국 최악의 선택을 하고 마는 경우다. 장고(長考) 끝의 악수(惡手)다.

쉬운 일을 어렵게 만들기로 치면 루브 골드버그 기계 또는 장치(Rube Goldberg Machine or Device)만 한 게 없다. 이 장치는 단순한 작업을 될 수 있으면 어렵고 복잡하게 만드는 게 목적이다. 밥 먹을 때 입을 닦아주는 기계가 있는가 하면, 지각했을 때 상사가 눈치 채지 못하게 하는 장치도 있다. 퓰리처상을 받은 미국의 만화가 루브 골드버그(1883~1970)는 온갖 기계장치에 치이는 현대인의 번잡한 일상을 풍자한 만화로 유명하다. 그의 만화에는 아주 단순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극도로 복잡한 기계들이 등장한다. 창문을 닫는 간단한 일을 하기 위해 줄과 구슬, 도미노와 도르래, 스프링과 추, 물통과 고리 등을 교묘하게 결합한 복잡한 장치가 동원된다. 이들 장치의 각 단계에는 고도로 정교한 물리법칙이 적용된다. 그러나 그 결과는 허망하거나 한심하기 짝이 없다. 골드버그는 이를 두고 "최소의 결과를 얻기 위해 최대의 노력을 기울이는 인간의 놀라운 능력"이라고 비꼬았다.

'루브 골드버그 장치'는 이제 쓸데없이 복잡하면서 성과는 비효율적인 제도나 규제를 지칭하는 전문용어로 자리 잡았다. 미국 퍼듀대는 매년 누가 더 황당하면서도 복잡한 기계를 만드느냐를 두고 겨루는 전미 루브 골드버그 기계 콘테스트를 개최한다. 과학적 창의성을 북돋우면서 세태를 뒤집는 역발상의 묘미가 그만이다.

우리나라의 규제 시스템은 루브 골드버그식 경진대회의 챔피언감이다. 단순한 일을 더 복잡하게 만들려면 작업의 단계를 늘리면 된다. 각종 인허가의 단계를 촘촘히 늘리고, 단계별 규제를 정교하고 복잡하게 꾸민다. 규제 하나를 없애고 둘을 새로 만드는 방법은 고전에 속한다. 수도권 규제를 풀면 당장 2만8000개의 일자리가 생긴다는데,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못 풀겠다고 둘러대는 수법도 있다. 그런데 이런 식의 복잡한 규제는 성과도 없을뿐더러 창의성이나 재미도 없다는 게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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