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딴에'에 해당되는 글 7건

  1. 2016.08.05 아라홍련은 여인의 화생인가, 꽃의 화생인가?
  2. 2015.10.07 형수이자 조카를 범한 아버지 왕욱과 아들 현종 (3)
  3. 2013.11.20 아무리 싸도 남는 것이 있는 굿윌스토어 (3)
  4. 2013.11.05 씨 없는 단감의 불편한 진실 (8)
  5. 2012.12.18 함양 여행은 버스로...

 

 지난 729 ~ 30일 경남도민일보의 해딴에가 주관하는 블로거 팸투어 일정으로 가야읍 아라홍련 시배지와 법수면 옥수홍련 테마파크를 갔었는데 꽃이 만발한 연늪에 서니 내가 마치 불국토에 들어선 듯 묘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연꽃하면 떠오르는 것이 불교와 연등입니다.

 내 기억으로 2천 년대 전만 하더라도 우리 주변에서 실제 연꽃을 구경하기 쉽지 않았는데 언제 부턴가 연잎밥이 좋다, 연꽃차가 좋다하면서 연 재배가 유행처럼 번져 지금은 쉽게 연꽃을 접할 수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자라면서 실제 연꽃보다 사찰에서 문양으로 본 연꽃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사찰에서는 불·보살이 앉아 있는 연화좌(蓮華座)를 비롯해서 불전을 구성하는 불단과 천장, 문살, 공포, 공포벽 등은 물론이고 탑, 부도, 심지어는 기와에 이르기까지 연꽃이 장식되지 않는 곳이 거의 없습니다.

 

 

 불교에서 연이 상징하는 바는 자성청정(自性淸淨), 불이(不二),화생(化生) 사상(思想)입니다.

 

 먼저 자성청정사상인데 인간은 본래 청정하고 지혜로운 본성을 그대로 지니고 있어 수행하여 자성을 바로 알고 나면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고 그대로 청정하다고 합니다. 연 또한 더러운 진창에서 살지만 결코 진창에 물들지 않는 꽃을 피우니 연꽃은 자성청정 그 자체인 것입니다.

 

 

 다음은 불이(不二) 사상인데 절에 가다보면 불이문(不二門)라는 문이 보입니다. 흔히 듣는 말로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생(空卽是色)’이라는 말이 있는데 색과 공이 둘이 아니라는 하나라는 뜻이지요. 또한 불가에서는 내가 곧 부처요 부처가 곧 내라고도 하고 견성과 성불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자기 성품을 바로 볼 줄 알면 그 자체가 바로 성불이라고 합니다. 연꽃이 다른 꽃들과 다른 점은 다른 꽃들은 꽃이 지고나면 열매가 맺는데 연꽃은 꽃과 열매가 함께 맺으니 견성과 성불을 함께 하는 셈이지요.

 

 

 

 끝으로 화생사상인데 나는 지금까지 왜 연꽃이 화생을 상징한다고 하는지 납득할 만한 근거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의문이 이번 팸투어에서 700년 전 타임머신을 타고 온 아라홍련을 보고서야 비로소 풀리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불교의 연화화생사상(蓮華化生思想)에 관한 이야기를 보겠습니다.

연꽃은 불교가 성립되기 이전 고대 인도 브라만교의 신비적 상징주의 가운데 혼돈의 물 밑에 잠자는 영원한 정령 나라야나(Nārāyana)의 배꼽에서 연꽃이 솟아났다는 내용의 신화가 있습니다. 이로부터 연꽃을 우주 창조와 생성의 의미를 지닌 꽃으로 믿는 세계연화사상(世界蓮華思想)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세계연화사상은 불교에서 부처의 지혜를 믿는 사람이 서방정토에 왕생할 때 연꽃 속에서 다시 태어난다는 연화화생(蓮華化生)의 의미로 연결됩니다.

석가모니가 마야부인의 겨드랑이에서 태어나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걸을 때 그 발자국마다 연꽃이 피어났다고 함은 연꽃이 곧 화생의 상징임을 뜻합니다. 사찰 벽화나 불단 장식 중에서 동자가 연꽃 위에 앉아 있거나 연밭에서 놀고 있는 모습 역시 연꽃이 화생의 상징임을 묘사한 것이라 합니다.

그리고 연꽃하면 연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데 48일 설가탄신일에는 무명으로 가득 찬 어두운 마음이 부처님의 지혜처럼 밝아지고 따뜻한 마음이 불빛처럼 퍼져나가 온 세상이 부처님의 자비와 지혜로 충만토록 해 달라는 염원으로 연등을 밝힙니다.

 

이 사진은 네이버에서...

 

 연등에 관한 고사로 "빈자일등(貧者一燈)"이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 당시 난다라고 하는 가난한 여인이 있었는데 이 여인은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분을 위하여 등불공양을 올리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종일토록 구걸을 하러 다녀 얻은 것은 것이라고는 겨우 동전 두 닢뿐이었습니다. 이 여인은 동전 두 닢으로 등과 기름을 사고 부처님 지나갈 길목에다 작은 등불을 밝히고는 간절히 기원했습니다.

 "부처님, 저에게는 아무것도 공양할 것이 없습니다. 비록 이렇게 보잘 것 없지만 등불 하나를 밝혀 부처님의 크신 덕을 기리오니 이 등을 켠 공덕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저도 다음 세상에 태어나 성불하게 해주십시오."

밤이 깊어가고 세찬 바람이 불어 사람들이 밝힌 등이 하나 둘 꺼져 버렸습니다. 왕과 귀족들이 밝힌 호화로운 등도 예외일 수 없이 꺼져 갔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의 등불만은 꺼질 줄을 몰랐습니다. 밤이 이슥해지자 부처님의 제자 아난은 이 등불에 다가가 옷깃을 흔들어 불을 끄려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등은 좀처럼 꺼지지 않고 오히려 더 밝게 세상을 비추었습니다. 그 때 등 뒤에서 바라보고 있던 부처님께서 조용히 말하였습니다.

 "아난아! 부질없이 애쓰지 마라. 그 등은 가난하지만 마음 착한 한 여인이 큰 서원과 정성으로 켠 등불이니 결코 꺼지지 않으리라. 그 여인은 이 공덕으로 앞으로 30겁 뒤에 반드시 성불하여 수미등광여래가 되리라."고 했습니다.

 

 

꽃이 핌과 동시 열매가 맺고

또한 씨앗 속에 새순이 이미 만들어져 있습니다.

 

 

네이버에서 아라홍련에 대해 검색하니 이렇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700년 잠에서 깬 아라홍련

함안군 가야읍 고분길 함안박물관에는 여느 박물관과는 달리 곳곳에 연꽃이 피어있다. 700년 잠에서 깨어나 꽃을 피우는 아라홍련이다. 목간(木簡)의 보고인 함안 성산산성에서 20095월 또 다른 귀중한 유물이 출토됐다. 바로 연씨 10알이다. 2개를 대전시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 보내 방사성 탄소의 연대를 측정한 결과 한 알은 650년 전, 다른 한 알은 760년 전으로 각각 밝혀져 통상 700년 전 고려시대의 연꽃이라 이야기하고 있다. 여덟개 알을 심은 결과, 그중 3알이 싹을 틔웠고 다음해인 20107700년 만에 처음으로 꽃을 피웠다. 아라홍련은 고려시대의 불화에서 볼 수 있는 꽃잎이 길고 색깔이 엷은 선홍색 꽃이다. 꽃잎을 오무렸다가 다시 펼칠 때마다 색깔이 점점 엷어져 나중에는 꽃잎 끝에만 진한 선홍색이 남는 것이 특징이다. 꽃잎뿌리의 새하얀 색깔이 꽃잎을 따라 점점 선홍색을 더해가는 데다 긴 꽃잎의 수수하면서도 우아한 형태가 지금의 연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고고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700년의 잠에서 깬 아라홍련과 마찬가지로 1951년 일본에서도 2천 년이 넘은 연씨로 발아시켜 꽃을 피운 적이 있으며 연씨는 만 년을 넘긴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700년 잠에서 깬 아라홍련은 단순히 한낱 연의 씨앗이 아니라 석가모니 부처님께 등불을 공양한 여인 난다의 화생이 아닌가 싶습니다.

 

 

 일자 무식꾼으로 나무장사를 하다 법을 깨달은 6조혜능선사가 5조홍인선사에게 바친 게송 하나를 여러분께 공양 올리면서 글을 마칩니다.

 

보리본무수 菩提本無樹, 명경역비대 明鏡亦非臺,

불성상청정 佛性商淸靜, 하처유진애 何處有塵埃.

 

보리수에 본래 나무가 없으며맑은 경대에 역시 대가 없으며,

불성 또한 항시 청정하거늘,  어디에 티끌과 먼지가 있으랴.

 

 

Posted by 땡삐 선비(sunb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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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학창시절 역사 과목은 가장 흥미 있으면서도 또 가장 싫어 한 과목이었습니다.
 역사 속에 묻어 있는 이야기들은 재미있는데 “태정태세문단세 예성연중인명선....어쩌고저쩌고”하는 그놈의 암기 때문에 시험 때만 되면 진저리가 났습니다.
 세상을 60년 가까이 살다보니 느끼는 것인데 까짓 왕의 연대기 같은 아무 씨잘대기 없는 암기를 학교에서 왜 그토록 것을 강요했는지 지금도 화가 나네요.

 암튼 오늘은 경남도민일보의 ‘해딴에’에서 주관하는 이야기탐방대에 따라 갔다가 주워들었던 고려현종에 얽힌 이야기 한 토막을 쓰고자 합니다.
 
 고려태조 왕건은 삼국을 통일하는 과정에 전국의 호족세력을 규합하는 수단으로 무려 29명의 부인을 얻었으며 그 부인들 밑에서 아들 25명, 딸 9명, 총34명의 자식을 낳았습니다.
 제1왕비는 자식이 없었고, 제2왕비 아들 왕무가 고려 2대 왕 혜종이고, 제3왕비의 차남 왕요가 고려 3대 정종이고, 3남 왕소가 4대 광종입니다.
 그리고 제4왕비에는 아들 왕욱(王旭)있고 제5왕비에는 아들 왕욱((王郁)이 있는데 전자의 왕욱(王旭)은 아들 왕치(王治)가 고려 5대왕 성종이 되자 대종(戴宗)으로 추존 되었고, 후자의 왕욱(王郁)은 아들 왕순이 고려 6대왕 현종이 되자 안종(安宗)으로 추존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이야기탐방으로 찾았던 경남 사천의 고자실(학촌) 마을과 현종의 아버지 왕욱(王郁)에 얽힌 이야기가 재미있습니다.
 신라시대와 고려시대는 권력을 남에게 내주기 싫어 근친혼이 성행했는데 앞에서 언급한 전자의 왕욱(王旭)은 태조의 제6왕비인 정덕왕후 유씨의 딸 선의왕후와 결혼하여 아들딸을 낳아 딸 헌애왕후와 헌정왕후 둘을 그의 이복 조카인 경종의 세 번째, 네 번째 비로 시집보내고,
 둘째 아들 왕치는 4대왕 광종의 대를 이은 5대왕 경종이 자식이 어린 가운데 죽음을 맞으므로 왕위를 사촌인 왕치에게 선양하는 바람에 성종이 되었습니다.

 대종(戴宗) 왕욱(王旭)의 첫째 딸 헌애왕후는 경종의 아들(후에 제7대왕 목종)을 낳아 궁궐에 살았으나 둘째 딸 헌애왕후는 자식이 없으므로 궁궐을 나가 사가에 살았습니다.
 이때 그 이웃에 안종(安宗) 왕욱(王郁)이 살았는데, 두 사람은 이웃에 살면서 자주 왕래하다보니 자연스레 정분이 통하고 아이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바람이 난 왕욱(王郁)과 헌정왕후 남녀 간의 족보를 따져보면 남자는 태조의 아들이고, 여자는 태조의 아들 대종(戴宗) 왕욱(王旭)의 딸이니 태조의 손녀입니다. 즉, 태조의 아들과 손녀, 즉 삼촌과 조카 사이에 정분이 난 것입니다.

 

 당시 이 일은 주변사람들이 모두 쉬쉬하여 조정에서는 모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왕욱의 노비가 왕욱(王郁)의 집에 불을 질러 이 일에 대해 위문 차 왕욱(王郁)의 집에 왔던 성종에게 고자질 하는 바람에 사단이 났습니다.
 성종의 입장에서는 헌정왕후는 자신의 친누이이기도 하고 사촌형이자 전왕인 경종의 아내인 형수가 됩니다. 이런 친누이이자 형수를 범한 삼촌 왕욱(王郁)의 파렴치한 행위를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성종에게 모든 일이 알려진 직후 헌정왕후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다가 갑자기 산고를 느껴 아이를 낳고는 곧바로 죽었고, 왕욱(王郁)은 선왕의 태후를 범한 죄로 탄핵받고 경상도 사수현(지금의 경남 사천시)로 귀양을 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태어난 아이가 왕순인데 그를 낳다가 죽은 헌정왕후와 족보로 따지자면 모자지간이면서 사촌남매간이 되는 셈입니다.

 후일 왕순은 성종의 명에 의해 보모에게 맡겨졌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성종의 명으로 왕순이 궁에 들어가 성종과 대면하게 되는데, 이때 왕순이 성종의 무릎 위로 기어오르며 '아비, 아비' 라고 부르자 이때 성종은 ‘이 아이가 얼마나 아비가 그리우면 이토록 아비,아비 하겠는가?’ 하고 눈물을 흘리며 왕순을 아버지 왕욱에게 보내도록 했습니다.

 

 이 대목에서 왕순의 보모가 매우 영리하여 아이에게 의도적으로 ‘아비’라는 말부터 가르쳐 이런 계기를 만들었다고 하는 그럴싸한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암튼 성종은 왕순을 아비의 귀향지 사천땅에 보내긴 했지만 죄인과 함께 살 수 있게는 할 수 없으므로 인근 동네에 살게 하였는데 아비인 왕욱은 사천시 사남면 성황당산 아래 마을에 살고 아들 왕손은 정동면 장산리 대산마을의 뱅잇골에 있는 배방사(排房寺)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한 때 왕실의 은덕으로 영화를 누렸다는 명찰이지만 지금은 사방을 둘러봐도 그 흔적조차 없는 배방사지-
 

 

 

 

 

 

그리고 아버지 왕욱은 아들 순을 보기위해 산을 넘어 배방사까지 매일 오갔는데 아들을 보고  해가 저물어 귀양지로 돌아오는 길에 아들이 사는 배방사를 돌아보며 눈물을 흘리던 고개가 지금의 정동면 학촌의 고자봉(顧子峰:아들을 돌아보는 봉우리)라 합니다.

 왕욱은 서기992년에 귀양을 와서 996년까지 귀양지에서 살았는데 어느날 임종의 시간이 다가오자 아들 왕순에게 비상금으로 가지고 있던 금 한 주머니를 주면서 “내가 죽거든 이름난 지관을 찾아 어느 장소에 묻되 반드시 내 시신을 엎어서 묻어라.”라 하고 은밀한 유언을 남겼습니다. 

 

 왕욱은 시에도 능하고 풍수에도 일가견이 있어 자신이 묻힐 명당자리를 미리 봐 두었고 시신을 엎어서 묻으면 발복이 빠르다는 것 까지 알고 그런 유언을 남겼던 것입니다.
  왕순은 왕욱이 죽은 지 오래지 않아 대량원군(大良院君)으로 봉해지긴 했으나 천추태후(千秋太后=왕순의 이모이자 목종의 어머니인 헌애왕후)가 외척 김치양(金致陽)과 사통하여 낳은 김치양의 아들을 왕위에 앉히려고 왕순을 강제로 승려로 만들고 자객을 시켜 수차 살해하려고 하였지만 요행히도 살아나 18살의 나이에 왕위에 오르게 되니 고려8대왕 현종입니다.
((하하~~ 그러고 보면 경종의 부인이 된 왕욱(王旭)의 두 딸은 모두 인척간에 바람이 났네요)

 이 이야기를 쓰는 과정에 나는 근친혼과 풍수지지리가 대단히 흥미롭습니다.

 

-왕욱이 아들을 되돌아 봤다는 고자봉과 학촌 마을-

 


 먼저 근친혼과 권력의 무상함을 보겠습니다.
 중세시대 유럽을 지배한 합스부르크왕가도 여러 제국을 거느리면서 남들에게 권력을 나누어주기 싫어 친인척간에 마구 근친혼을 하게 되는데 그 결과  병약하거나 기형으로 생긴 자손들이 많이 태어났으며, 특히 합스부르크가에 유난히 많은 매부리코와 주걱턱은 지금도 유전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왕욱과 헌정왕후 그리고 현종 간에 얽히고설킨 고려왕조의 가계를 보면 우리는 웃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인간의 욕심은 한이 없고, 자연의 이치는 한 치도 어긋남 없이 공평하게 굴러간다는 점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태조는 권력을 모으려고 무려 30명의 부인을 두었는데 그 부인들 중에는 태조 자신이 원해서 취한 부인도 있었겠지만 분명 그렇지 않은 부인들도 많았을 것입니다.
 즉, 권력에 줄을 대려고 호족들이 누이나 딸들을 왕에게 상납하고, 왕은 호족들의 발호를 저지하는 볼모로 그 여인네들을 후궁으로 삼았지만 왕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 여인네들은 이름만 왕비이지 생과부나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30명의 부인 중 16명이 자식이 하나도 없었다는 점이 이를 짐작케 하는 대목입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은 종족의 번식으로 왕권을 강화하고자 하였으나 태조가 죽은 후 39명의 자식들 중 왕위를 이어 받은 몇몇은 부귀영화를 누렸지만 나머지는 권력투쟁과정에 본의 아니게 승려가 되기도 하고 죽임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서도 남들과 권력을 나누는 것이 아까워 왕실의 친인척간에 근친결혼을 하였습니다.
 즉 권력을 모으기 위해 많은 부인을 얻고, 권력을 나누어주지 않기 위해 근친혼을 하였는데 그 결과를 보자면 왕씨의 자손은 번창하지 못하고 왕권은 늘 무신권력에 휘둘리며 이름뿐인 왕 노릇을 하며 살았습니다.

 

 

 다음은 풍수지리의 효험 관한 의문입니다.
 왕욱은 죽으면서 조기발복을 위해 자신이 보아 둔 명당자리에 자신의 시체를 엎어서 매장하라고 하였고, 그 덕분에 아들 왕순이 왕욱이 죽은 이듬해에 대량원군에 봉해지고 개경으로 부름을 받았으며 18살의 나이에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왕순이 왕위에 오르기 전 천추태후로부터  겪은 고초와 왕이 된 후 거란의 침입으로 나주까지 피난을 가 겨우 목숨을 부지하였던 과정들을 본다면 과연 이것이 복 받은 인생의 모습일까요.
 내가 보기로는 왕순이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의 묘 자리 덕분이 아니라 왕순의 타고난 자질에 있었다고 봅니다.

 그 근거는 그가 5~6세 나이에 배방사에서 또아리를 튼 작은 뱀을 보고 지은시와  뜻하지 않은 중이 되어 신혈사에 숨어살면서 흐르는 시냇물을 보면서 지은 시를 보면 그 기지와 역량을 가히 짐작하고 남음이 있습니다.

 

작은 뱀을 두고 지은 시
「뜰 난간에 또아리 튼 작은 뱀 한 마리
붉은 비단 같은 무늬 온 몸에 아롱지네.
꽃덤불 아래서만 노닌다고 말 말게나
하루아침에 용 되기 어렵지 않을 걸세」

 

시냇물을 보고 지은 시
「한 가닥 물줄기가 백운봉(白雲峰)서 솟아나와
머나먼 큰 바다로 거침없이 흘러가네.
바위 아래 샘물이라 업신여기지 말게나
머잖아 용궁까지 도달할 물이어니.』

 

 이거는 만고 내 생각입니다만 왕순이 이렇게 큰 그릇이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아버지 왕욱의 역할이 상당하였으리라 봅니다.
 왕욱은 자신의 묏자리와 매장방법을 일러줄 정도이면 풍수지리에도 일가견을 가졌다고 할 것이고, 풍수지리에 일가견을 가졌다면 4서3경 학문 중에서도 가장 어렵다는 주역에도 능통하였으므로 그 학문의 깊이를 가늠케 하는 대목입니다.
 이런 학식을 가진 왕욱이 유배지에서 매일 아들을 찾아가서 과연 아들 얼굴과 재롱만 보다가 돌아갔을까요?
 아마도 자신의 처지에서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아들을 교육하고 훈육하였을 것입니다. 왕순은 이런 아버지의 가르침 덕분에 타고난 기지에 학문과 처세술을 더하여 왕좌에 오를 수 있었다고 봅니다.

 

 

 

 

 

 사천시에서는 왕욱과 왕순의 위와 같은 역사를 바탕으로 왕욱이 살았던 능화마을과 왕순이 살았던 배방사지 그리고 왕욱이 넘으며 눈물 흘렸다는 고자봉을 연결하는 길을 복원하여 이름하여 ‘부자상봉 길’을 조성하여 관광지로 만든다고 하니 산행을 좋아하는 분들은 아이들 데리고 역사공부 한 번 해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Posted by 땡삐 선비(sunb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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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선비의 발자취를 따라 2016.06.14 00: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매번 쉽게 잊어버리고 헷갈렸던 내용인데 이렇게 정리가 잘 된 글을 보니 쉽게 이해가 되네요 잘 보고 갑니다ㅎㅎ 근친혼과 풍수지리설에 대한 글도 공감되고 좋네요 ^^

  2. 후형제맘 2016.08.30 16: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블로그에 님의 글 일부를 발췌해가도 될련지요? 당연히 URL 남기고요!

  3. 역사쟁이 2016.10.05 01: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처음부분
    5대성종 6대 현종이라했는데
    잘못 쓰셨네요
    4대 광종 뒤를이어 아들이 5대경종이고
    6대 성종 7대는 목종 8대가 현종 이렇게됩니다

 11월 18일 ‘경상남도 고용정책단’이 주최하고 ‘(유)갱상도 문화공동체 해딴에‘가 주관하는 사회적 기업 팸투어가 있었습니다.

 요즘 대기업들 치고 우리의 삶을 영위하는 가장 기본 요소인 의.식,주를 비롯 걸레, 휴지까지 손대지 않는 물건이 없는 기업이 없다보니 국밥 한 그릇 팔아서 혹은 난전에서 생선 한 마리 팔아서 먹고살던 서민들은 그 마저도 손을 털어야 할 마당입니다.
 대량생산과 대량구매의 경제 효율성은 시장의 모든 것을 싹쓸이 하고, 자동화, 첨단화라는  산업의 고도화는 고급지식을 익히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그림의 떡이 된 세상 그래서 가지지 못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장사도, 취업도 점점 설 자리가 없는 세상이 되어 갑니다.

 


 그래서 정부가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것이 사회적 기업입니다.
 취약계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지역주민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기업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지요.

 그런 취지로 정부에서는 고용확대를 위해 사회적 기업이 채용하는 인력에 대해 최장 5년까지 지원하는데 그 기간 안에 자립기반을 구축하지 못하면 자동적으로 도태되고 마는 것입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걸레, 휴지까지 싹쓸이를 하는 대기업들의 무한 탐욕 앞에서 무엇을 한들 그들과 경쟁하고 생존할 수 있겠습니까?
 흔히 부자가 천당 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보다 어렵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이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소상공인으로 살아남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정부가 육성하고자하는 사회적 기업에 대해 별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날 팸투어에 참가하면서도 사실 별 기대를 하지 않고 업체들을 방문했는데 이 업체들의 활동은 나의 기대 아니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활동들을 하고 있어 적잖이 놀랐습니다.

 

 

내 평생 최대의 쇼핑을 유혹한 '굿윌스토어'
 굿윌스토어는 창원시 반림동 3번지 남산교회에 있는데 나는 개인적인 연고로 이곳을 종종 지나치기도 하는데 지금까지 그곳이 교회에 다니는 교인들만이 이용하는 곳으로만 알고 한 번도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곳에 가보니 비록 중고이긴 하지만 가전제품, 가구, 의류 등 없는 물건이 없는 시장 같은 매장이었습니다.
 나는 며칠 뒤 거창의 시골에 가서 몇 달을 생활할 계획이므로 산에서 나무를 하거나 들에서 농사를 지을 때 입을 만한 허드레 작업복이 필요해서 작업복 한 벌만 사려고 했는데 가격이 너무 싸서 무려 다섯 벌을 샀습니다. 물론 이 옷을 모두 내가 입을 것은 아니고 시골 사람들과 나눠 입을 요량입니다. 한 마디로 굿윌스토어 덕분에 인심 쓰는 것이지요.

 

-내가 쇼핑한 물건들입니다.

팬티 한 장도 내 손으로 쇼핑을 하지 않는 인간이 이 정도 쇼핑을 했으니...

 

-제일 비싼 옷이 2만원 싼 옷은 3천원이고 보면 완전 횡재...ㅋㅋㅋ

 

 

 하도 물건 값이 싸서 내가 “세탁비도 되지 않는 가격으로 싸게 팔아서 남는 게 있느냐?”고 했더니 “이 물건들은 모두 공짜로 기증을 받은 것이고, 기증 받은 물건 중에는 간혹 낡아서 수선을 하거나 세탁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수선과 세탁도 재능을 기부하는 분들이 있어 문제가 없고, 대개는 기증하는 분들이 깨끗하게 세탁까지 해서 기증을 하므로 이렇게 싸게 팔아도 남는 것이 있으니 많이만 팔아 달라.”고 하였습니다.

 

 

장애인도 돕고 자원도 재활용하는 착한 소비와 고용

 내가 이 가게에 특별히 인상 깊었던 점은 장애인 고용이었습니다.
 이 곳에 고용된 장애인은 모두 정신지체장애인들이었습니다.
 정신지체장애인을 둔 가정에서는 장애인 당사자의 노동력 상실은 말할 것도 없고 어느 순간 무슨 일을 저지를 줄 모르는 장애인 때문에 가족 중 누군가는 하루 24시간을 고스란히 장애인을 위해 희생해야 합니다. 요즘은 가족이 모두 맛벌이를 해도 사네 못사네 하는 세상인데 한 가정에서 장애인과 또 다른 가족 한 사람이 노동력을 상실해 버리면 그 가정은 보나마나 한 것 아니겠습니까?

 

 정부에서는 장애인 고용을 정부기관이나 기업에 일정비율로 할당해 강요하고 있지만 정부 스스로도 이를 지키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 이유는 경제적 효율성과 장애인과 함께 하는 부담감 때문입니다.
 업종에 따라 다를 수는 있겠지만 특별히 맞춤형 직종이 아닌 다음에야 장애인들의 생산능력이 정상인에 못 미치는 점은 어쩔 수 없습니다. 더욱이 장애인이 있으면 화장실, 계단, 출입문을 비롯해 장애인이 움직이는 동선의 시설들은 모두 장애인에게 맞춰야 합니다. 그리고 직장에서 식사를 함께 하러 가거나 농담을 할 때에도 보폭을 맞추기도 하고 눈치를 봐야 하기도 합니다.
 오로지 효율성이 최고의 가치이고 이기주의가 극치인 현실 세계에서 장애인과의 동행은 금전과 시간의 낭비이고 불편 그 자체이기에 모두가 장애인 고용을 꺼려합니다.

   
 굿윌스토어는 현재 11명의 정신지체장애인들을 고용하고 있고 이들은 단순반복 공정의 부품을 조립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그들의 1일 생산액은 2,500원~5,000원 정도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이들의 점심끼니를 해결해 주기 위해 구내식당을 만들고 식사를 담당하는 직원을 고용하여 급식을 제공하고 있으니 보나마나한 적자경영 아니겠습니까?
 굿윌스토아의 최창수 상근이사의 말에 의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5년 내 3개의 매장에 장애인 50명 고용을 목표로 계획하고 있다”고 합니다.

 

-제조업 공장에서 하청을 받아 부속을 조립하고 있는 장애인들입니다.

 

 

 


 그 이유는 집에만 박혀 있던 장애인들이 밖에 나와 사람들과 어울리니 그들의 표정이 밝아지면서 가정에 가서도 짜증이나 투정을 부리지 않으므로 가정이 평안해졌고, 무엇보다 장애인을 돌봐야 했던 가족 한 사람이 자유롭게 경제활동을 할 수 있으니 어려운 가정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장애인 한 사람을 고용하는 것은 또 다른 정상인 한 사람도 함께 고용하는 효과를 내는 것입니다.

 굿윌스토아는 장애인의 노동력을 빌어 기업이윤을 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정에서 사용하고 있지 않는 물건, 또는 자신의 재능을 기부해서 생산되는 재화를 팔아서 장애인에게 급여를 줍니다.

 

 

-기부하겠다는 연락을 받으면 이렇게 접수증에 기록하고 현지를 답사하여 어떤 물건을 언제 가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기부 물건을 배송하는 화물차입니다.

-기부 받은 물건들은 계절별, 또는 품목별분류작업을 합니다. 

 

 

-기부 받은 물건들입니다.

쓸만한 가구는 굳이 돈 들여 버리지 말고 굿윌스토아로 일단 전화해 보세요.

-가전제품은 재능을 기부하는 기술자들이 수리하여 판매합니다. 

-책, 신발, 악세사리 등 없는 것이 없습니다.

 

-중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나 개인이 새것을 기증하는 것도 많습니다.

 

 

 -아래 정유진이라는 분은 주방 설겆지 수세미를 손수 짜서 1주일에 10개씩 기부를 하는데 지금까지 300개를 기부했다고 합니다.

여기에 들어가는 실값만 해도 2천원 정도라는데 정말 대단한 정성이지요. 

 

 

-소박한 카페도 있는데 일반 카페보다 가격이 매우 저렴합니다.

정병산에 등산을 가는 길에 혹은 긴요한 물건을 쇼핑하는 김에 이곳에서  커피 한 잔 하면 딱이지 싶습니다.


 혹여 여러분의 가정에 버리자니 아깝고 그렇다고 굳이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닌 가전제품, 가구, 의류, 악기 등이 있으면 굿윌스토아에 기부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내게 필요한 물건을 싸게 구입하고자 하는 분도 이 곳 매장에 가서 쇼핑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정말 기대 이상일 것입니다.

굿윌스토어에 대한 보다 상세한 정보는 아래 홈페이지를 보시기 바랍니다.

http://www.goodwillchangwon.org/

 

 

Posted by 땡삐 선비(sunb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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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참교육 2013.11.20 19: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함께 못해 아쉽네요.
    여기 계시느라 늦으셨군요.
    간다는 인사도 못하고 차 시간이 돼서 먼저 왔답니다.

  2. 최회성 2014.01.02 14: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울에도 굿윌스토어가 있답니다~
    서울특별시 송파구 마천로 226(마천동 28-1)
    02-6913-9131
    굿윌스토어 페이스북에도 놀러오세요!
    https://www.facebook.com/miralgoodwill

  3. 행복한리나콩 2014.01.11 03: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아나바다를 실천하고 아름다운가게를 이용 헌옷을 기부했었는데
    얼마전 굿윌스토어 도봉점을 알고는 에코생활에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답니다.
    블로그 글 잘보고 갑니다. 앞으로도 지구를 살리고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이런문화가 자리잡았으면 좋겠네요.

씨 없는 단감의 불편한 진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씨 없는 수박, 씨 없는 단감을 비롯해서 씨 없는 과일들이 좋은 과일인 냥 알고 지냈습니다.
 그 이유는 생선의 가시를 발라먹듯 과일의 씨앗을 발라 먹는 것이 귀찮고 번거롭기 때문일 것입니다.
 인간의 습성이 계속 편리하고 쉬운 것만 쫓아가다 보면 머지않은 장래에 뼈 없는 생선도 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못하겠지요.
 뼈 없는 생선이라? ㅋㅋㅋ

 

 지난 11월 1일, 2일 경상도문화공동체 ‘해딴에’서 주최하는 창원단감 블로거 팸투어 과정에 블로거들은 2명씩 짝을 지어 농가들에 흩어져 제각기 농장체험도 하고 농민들과 대화를 나누었는데 나와 참교육 김용택님은 선생님의 제자인 '두레박 단감사슴농장'에 갔습니다.
 이 농장의 주인장인 이삼문씨는 창원시 동읍 용강리가 고향이고 단감농장과 사슴목장을 돌보며 평생 농사꾼으로 살아 온 농부로 그가 쉼 없이 풀어놓는 농사 이야기는 그가 농부로 살아 온 긴 세월만큼이나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그 중에서 우선 제철 과일인 단감을 사먹고자 하는 소비자를 위하여 씨 없는 단감의 불편한 진실부터 이야기 하겠습니다. 

 

 

-40여년 만에 만난 스승과 제자의 상봉이 감격 그 자체입니다-

 

 
 모든 동물과 식물의 생명체들은 종족을 보존하고자 하는 본성이 있고, 식물이 종족보존을 잘 하기 위해서는 씨앗부터 튼실해야 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입니다.

 씨가 부실한 과일은 그 자체로 건강하지 못하다는 이야기이며 하물며 씨가 없는 과일은 불임과일이라는 것입니다.

 

 두레박 농장 중간중간에는 이파리 모양과 색깔이 좀 특이하고 열매 역시도 모양이 특이한 나무들이 있었는데 이 감나무들이 소위 수감나무라는 것입니다. 
 가축농장에 수놈의 종마와 수놈의 종돈이 있듯이 감나무 밭에도 수놈의 종감나무가 있는 것입니다.
 이 수감나무는 어릴 적에 암수 나무에 접을 붙여 한 나무에서 수꽃과 암꽃이 함께 피는데 수꽃은 꽃가루만 터뜨리고 낙화하고 맙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수감나무는 수놈이라기 보다는 한 나무에 암수가 같이 있는 암수동체 나무이고, 암가지에는 모양이 납작한 안감이라고 하는 것이 열리고 수가지에는 모양이 길쭉한 수감이라고 하는 것이 함께 열리는데 전자를 부유종이라 하고 후자를 선사환종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전적으로 암나무에는 부유종만 열리는데 이를 통칭 단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수정이 제대로 된 단감은 종족보존을 위한 생명력이 질기므로 낙과가 잘 되지 않고 씨앗이 튼실하다고 합니다.


 그러면 감을 쪼개보지 않고 그 속의 씨앗이 튼튼한지 않은지 어떻게  감별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감의 생김새로 보아 가운데 꼭지 부분이 어린아이 배꼽모양 도톰하게 올라있는 것이 튼튼한 단감이고 꼭지부분이 노인네 배꼽모양 옴폭 들어가고 납작하면서 모양이 고르지 못한 것이 부실한 단감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생김새가 튼튼한 놈은 낙과가 잘되지 않아 오래 달려 있으므로 때깔 또한 좋을 수밖에 없겠지요.

 

 

 -수감나무는 나무잎과 색깔에서도 눈에 띕니다.

 잎이 붉게 단풍이 든 나무가 수놈입니다.

한 나무에 암 수 접붙이기를 하였습니다.

 

-한 나무에 암 수가 함께 열었습니다.

 

-수가지에 달린 선사환입니다.

 

-암가지에 달린 부유입니다.

 

-왼쪽의 납작한 것이 암놈, 오른쪽의 약간 길쭉한 것이 수놈.

 

-이렇게 가운데 꼭지가 볼록한 것이 튼튼한 단감입니다.

 

 두레박단감농장 주인인 이삼문씨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예로부터 하빠리농꾼은 열매를 가꾸고 상농꾼은 땅을 가꾼다.”는 말을 들은 후로 자신은 땅 기운을 돋우기 위해 절대 제초제를 치지 않고 예초기로 풀을 베고 사슴퇴비와 전정한 감나무가지를 일일이 잘라서 퇴비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퇴비를 먹고 자란 감나무들은 스스로 튼튼할 수밖에 없고, 수감나무가 많아 수정 또한 거의 100%되었고, 또한 지대가 동읍에서도 구룡산의 가장 고지대인지라 일조량이 많아 때깔 또한 좋을 수밖에 없습니다.

 

 

-구룡산 정상 아래 두레박 농장입니다.

산 정상부의 양쪽에 약간씩 골이 파인 부분이 있는데

 1969년 9월 14일 집중호우 산사태로 용강마을이 수몰되면서 40여명이 사망하여

 박정희 대통령이 수해복구 현장을 직접방문하기도 하였는데

 이 때 파인 골이라고 합니다. 

 

-사슴 목장의 퇴비입니다.

 

-전정한 감나무 가지를 잘라 밭에 흩어서 다시 감나무의 열양분으로 돌아갑니다.

 이것이 자연의 이치이지요.

 

 

 

먹기엔 다소 불편하지만 진짜로 실한 단감을 드시고 싶은 분이 계시면 이 곳으로 직접 연락해 보시기 바랍니다.

 


  

Posted by 땡삐 선비(sunb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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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참교육 2013.11.05 15: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 사진 잘 찍어줘서 고맙습니다.
    기져가겠습니다.

  2. 장복산 2013.11.05 15: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슴농장에서 녹용즙도 먹고...
    단감도 혼자 먹지 마세요.
    즐거운 팸투어였습니다.

  3. 실비단안개 2013.11.05 21: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비님 공부 많이 하셨군요.
    제가 왜 기쁘죠?^^
    녹용의 힘인가... ㅎ

  4. 두레박 일용이 2013.12.02 08: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억력도 좋으십니다

    어찌그리 빠짐없이 모든이야기를 포스팅 하시는지~~

    역시 선비님은 다르시네요
    많이배우고 갑니다

 12월 15일, 16일에는 경남도민일보의 자매회사 사회적 기업인 ‘유한회사 해딴에’가 주관하는  “버스타고 해맞이 팸투어”에  다녀왔습니다.
 경남도민일보의 기자이면서 (유)‘해딴에’의 대표인 한 김훤주님은  경남의 곳곳을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즐길만한 곳을 찾아 책으로 엮어 지난해 출판을 한 적도 있습니다만 그의 여행 철학은 보통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면이 있습니다.
 우리는 경치가 좋아, 혹은 자연이 좋아 그 곳을 찾아 여행을 합니다.  그런데 그 순간부터 그곳은 매연, 먹고 마신 배설물, 쓰레기 등으로 인간 발끝이 닿는 곳이면 어디나 할 것 없이  몸살을 하기 마련입니다.
 그런 까닭으로 김훤주님은 여행이나 관광을 개인 승용차를 이용하는 대신 대중교통 버스를 타고 여행을 함으로서, 대기오염을 줄이고 석유도 아끼면서 속도는 느리지만 대신 시간을 풍요롭게 누리는 멋을 즐길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나는 지난 11월 25일 이곳 거창의 용암선원에 입주를 하면서부터 자동차를 가져오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버스를 타고 다니게 되었습니다.
 시골의 버스는 도심의 버스모양 자주 있지를 않아 읍내나 어디를 한번 다녀오려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간 스케줄을 잘 짜야 제대로 일을 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몇 시에 차가 있는지, 승차장은 어디며 진행 방향은 어느 쪽이며, 환승차는 몇 시에 있는지 등 모든 정보가 없으므로 불편하기 짝이 없고 추운 겨울에 버스 정류장에서 하염없이 버스를 기다리는 것도 예삿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하루이틀이 지나고 한주두주가 지나면서 버스와 승차장 주변의 정보를 익히게 되면서부터 기다리는 시간을 융통성 있게 활용하고 버스를 타고 가면서는 멀리 경치를 구경하면서 사색을 하기도 하고 책을 읽는 여유도 부릴 수 있는 느긋함을 만끽하기도 합니다.

 

 이날의 팸투어도 함양읍내에서 버스를 타고 용유담과 추성골짜기, 벽송사와 서암정사를 거쳐  임호마을로 향하는 여행이었습니다.
 김훤주님의 말에 의하면 함양군내에서 운행하고 있는 함양지리산 고속버스는 운행코스가 함양군내 명소를 다 둘러볼 수 있도록 되어 있고 배차시간도 거의가 30분마다 운행하고 있으므로 이 버스노선과 시간만 잘 활용하면 적어도 함양군내의 관광지는 큰 불편 없이 버스를 타고 재미나게 여행을 즐길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말하자면 이런 겁니다.
 거창읍에서 버스를 타고  용유담에 내려 30분 정도 구경을 하고선 다음 버스를 타고 벽송사와 서암정사에 내려 다시 구경을 하고 1시간 뒤에 오는 버스를 타고 임호마을로 간다는 것입니다.
 지금 운행하고 있는 버스노선과 배차시간은 대체로 괜찮은 것 같았으나 보완해야 할 점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첫째는, 내리고 탈 때마다  매번 버스표를 끊거나 요금을 내야하는데 여행객을 위한 상품으로 1일 이용권 또는 1일 몇 구간 이용권 등을 발행하여 여행자는 이것만 있으면 마음대로 가고자 하는 목적지 아무데라도 오르내릴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대중교통 안내 홍보물입니다.
 이점은 전국 어느 시군이나 마찬가지입니다만 각 지방자치단체들은 관공서나 관광지에는 그 고장을 알리는 각종 관광홍보물을 비치해두면서도 정작 외래인이 그 지방과 가장 먼저 접하는 시외버스정류장이나 시내버스정류장에는 게시판에 고정된 벽보 말고는 홍보물이라곤 없습니다.
 더욱이 대중교통 이용에 관한 홍보물은 아예 전무합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 고장을 구경하려면 승용차로 오거나 관광버스를 이용하라”는 이야기나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지자체들이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온갖 행사를 하면서도 정작 관광객이 그 지역에서 돈을 쓰고 가도록 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정말 짱구계산만 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승용차나 관광버스로 관광을 가면 누구나 할 것 없이 먹고 마실 것을 포함 온갖 것을 준비해 가므로 그 지역에는 소비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또한 편리한 교통수단 덕분에 당일치기로 돌아가 버리므로 숙박객도 없습니다.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는 관광이 되려면 승용차나 관광버스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관광객이 많이 찾도록 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유류비와 도로사용료를 계산해보면 승용차를 이용하는 여행은 결코 경제적인 여행이 못됩니다. 더욱이나 여행하는 에너지를 운전하는데 소모해버리므로 운전자는 목적지에 도착하면 지쳐버립니다. 따라서 대중교통을 이용하고도 여행이 가능하다면 많은 여행자가 대중교통을 이용할 것입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관광객은 가능한 한 짐을 줄여야 하므로 모든 소비를 현지에서 소비를 하고, 승용차나 관광버스 모양으로 신속하지 못하므로 숙박을 해야 하는 경우가 늘어나므로 숙박을 하면서 생기는 소비 또한 늘어나게 됩니다.

 

 따라서 각 지자체들은 관광객 유치를 위한 1회성, 전시성 축제나 행사비용을 차라리 대중교통수단에 투자하여 관광객들이 그 고장을 마음 놓고 즐기고 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우선 지자체는 각 거점별(예로 각 면소재지 또는 유명 관광명소 지점)로 버스시간 홍보물을 제작비치하고, 각 시군의 홈페이지와 스마트폰 앱을 구축하여 함양을 여행하기 전에 미리 함양의 대중교통 시간과 요금을 미리 알고 갈 수 있도록 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함양군 지리산고속 버스노선과 시간표입니다.-

 

 

 

 

-함양에서 거창행 시외버스 시간표입니다.-

 

 

 이왕 홍보물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덧붙입니다.
 상림숲에 머무르는 동안 나를 포함 3명은 안내사무실에 갔었는데 그곳에는 지리산 둘레길 홍보물, 관광명소 홍보물, 특산물 홍보물 등 각종 홍보물이 비치돼 있었습니다.
 이런 관광가이드북이나 홍보물에 있는 정보들은 관광지에 도착하기 전에 필요한 정보들이므로 그 지역을 찾는 왜래객이 가장 먼저 찾는 길목에 이런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시외버스정류장이나 시내버스정류장 어느 곳에도 없고 관광지에 도착해서야 그것들을 손에 쥐게 되니 이 얼마나 웃기는 일입니까?
 집에 돌아가는 길에 기념으로 가져가라는 것인가요?

 

 마지막으로 내가 거창에서 함양으로 가는 버스시간을 알아보고자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이를 알려주는 정보는 거창군청이나 버스회사에는 없고 어느 블로거가 올려놓은 거창시외버스 정류장의 게시판 사진이었음을 공무원들이 알았으면 합니다.


  아무튼 지리산 둘레길을 포함 함양군의 명소를 관광할 계획을 가지고 계신 분들은 굳이 승용차보다 대중교통을 한번쯤 이용해 보시기 바랍니다.

 

 

                                                                                                                   -용암선원에서 동안거사 합장-ㅋㅋㅋ

Posted by 땡삐 선비(sunb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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