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정마을'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3.01.02 용암마을 물레방아 발전기의 실화. (2)
  2. 2012.12.31 거창 용암리 노인들 공금으로 도박.
  3. 2012.12.31 거창 용암리에서 용의 실체를 보다. (2)

 거창군 가북면 용암리 용암마을의 이야기입니다.


 신년을 맞은 1월1일 마을회관에서 떡국을 끓여 마을사람들끼리 나눠먹기로 되어 있어 이 날은 하루동안 두 번이나 제설작업을 했지만 눈이 많이 내리는 바람에 노인네들 거동이 위험하여 끝네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오늘은 밤사이 약간 눈이 오긴 했어도 아침부터 햇살이 좋아 마을회관에서 떡국을 끓여먹었습니다.

 

 여기서 나온 이야기 들입니다.

 

 

 

 

 -이 마을에는 예전에 물레방앗간이 개인 것과 마을 것 두 개였다고 합니다.

그러다 개인이 모두 인수하여 운영하다 남아있는 흔적이 이 곳이고,

 바로 이곳에서 발전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바구 1)
 지금 마을회관의 자리에 일제시대에 학교가 있었다고 합니다.
 현재 송정마을의 용암초등학교 폐교는 1940년도에 건립되었고, 지금 73살인 이 마을 이장님이 7회 졸업생이라고 하니까 80살 되는 노인네들이 이 학교의 1회 졸업생인 셈입니다.
 그 보다 나이 더 많은 분들은 정부의 인가도 없는 이 학교를 다녔던 것입니다.


 이 마을 할아버지들의 이야기를 빌리자면 선생님은 이태석이라는 분인데 이 동네 누구네 집에 셋방살이를 하였고 공식적으로는 일어를 가르쳤는데 몰래몰래 우리 한글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또한 그 선생님은 부녀자들도 공부를 해야 한다며 동네 몇몇 아녀자들도 그때 공부를 가르쳤다고 합니다.
 당시의 시대상황으로 비춰본다면 일제는 어떻게 해서든지 일본 문화와 사상을 주입시키려 하였고, 독립운동을 하는 선각자들은 반대로 우리의 문화와 사상을 교육시키려 했던 만큼 이곳 산골에서도 그런 현상이 있었겠지요.

 

 

-이곳이 마을회관 겸 노인정이고 옛날에 학교터였다고 합니다.-

 

 -송정마을의 학교도 결국 폐교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마을주민이 효소학교로 운영하는 중입니다-

 

 

 

-"빈부귀천 차별없이 다같이 배우세"라는 가사가 인상적입니다-

 

 

 

-이 지도의 발행년도가 1975년이니까 이 쯤에 학교를 다닌 사람들도 40대 후반의 나이가 되었겠죠-

 

 

 

-공업이 일어날 수 있는 조건을 설명하고 있는데 박정희가 호남을 홀대해서가 아니라 공업의 입지조건(자본, 노동력, 공업용수, 욕.해상교통)상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것입니다-

 

 이바구 2)
 6.25 전쟁이 끝나고 빨치산들이 동네에 들어와 약탈을 해갔는데,
 누구네 집은 불을 질러 가장 큰 피해를 입었고,
 누구네 집은 어미소와 송아지를 모두 가져가므로 송아지만이는 두고 가라고 사정을 하자  집단에 불을 붙여 초가지붕에 불을 붙이려하므로 그걸 말리느라 정신이 없는 사이에 유유자적하게 송아지마저 몰고가버렸다고 합니다.


 빨치산이 물러가고는 경찰들이 마을 치안을 담당하였는데 당시 가북면 지서의 한 경찰관이 마을주민에게 밥상을 차려오라고 하고선 반찬이 시원찮다며 밥상을 발길로 차버렸는데,
 마치 동생이 공군인데 휴가를 나와서 이 모습을 보고선 권총으로 경찰관의 옆구리에 대고 “밥상 한 번 더 차봐라.”하니까 얼굴이 사색이 되어 빌었다고 합니다. 

 

 6.25 전쟁이 끝나고 빨갱이 토벌작전이 전개되던 그 시절 산간오지의 마을들은 낮에는 국군과 경찰의 괴롭힘에, 밤에는 빨갱이들의 괴롭힘에, 그야말로 민초들의 삶은 생지옥이나 마찬가지였던것이지요.

 조정래의 장편소설 태백산맥을 읽노라면 가슴이 미어지고 손가락끝이 오그라드는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애환이 구구절절 하지요

 

 이바구 3)
 용암마을이 거창군에서도 오지 중의 오지임에도 불구하고 학교와 전기 공급 등의 문명화에는 10년 정도 앞서 갔는데 아마도 앞의 그 선생님 덕분 아닌가 싶기도 하답니다.
 특히, 전기의 경우에는 한전이 이곳 주변지역에 전기 선로를 깔기 10년 전에 용암마을은 전기를 이미 사용했는데 그 전기를 동네 앞 하천의 물레방아로 생산했다는 것입니다.
 나는 물레방아로 전기를 생산했다는 사실이 믿기지를 않아 다시 확인을 하자 노인들이 모두가 맞다고 하였습니다. 
 당시엔 선풍기도, 냉장고도 없던 시절이고 백열전구 전기가 고작이고 보면 전혀 불가능한 일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일조량이 짧은 대신 물이 풍부한 이런 산골마을에서는 태양열 전기보다는 물레방아전기가 더 효율적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노인정의 이모저모 모습들입니다. 이 동네 주민 대부분이 모인 셈입니다-

 

 

 

 

 

 

 

 

 

 

 

 

 

 

 

-. 마치 아궁이와 굴뚝을 연상하게 마을회관 앞에 있는 굴뚝나무입니다.

 누군가 고사를 지낸다고 나무 밑둥에 촛불을 켜놨다가 그만 나무에 불이 붙어 속이 새까맣게 탔는데도 이렇게 멀쩡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내가 머물고 있는 용암선원입니다-

 

Posted by 땡삐 선비(sunb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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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장복산 2013.01.03 12: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
    재있게 실구 있구려.
    나는 지난 여름에 거창 소사고개로 가는 원기마을에서
    하루밤을 엄청 시원하게 자고 왔지여...
    그디...선비님은 엄청 춥겠다.

 내가 거창군 가북면 용암리의 용암선원에 온지도 벌써 한 달이 훌쩍 지났습니다.
 어디를 가나 처음 대하는 곳은 모두가 낯설고, 생면부지의 면을 트자면 시간이 다소 흘러야 합니다.
 그런데 금년 겨울 이곳에서 나는 잦은 눈 덕분에 의외로 쉽게 동네 사람들과 면을 트고 노인정에도 심심찮게 들리게 되었습니다. 


 어느 시골이나 그렇듯이 이 마을에서도 70대 노인은 젊은 축에 들고, 가북면을 운행하는 버스에서 70대 노인은 80~90대 노인에게 밀려서 좌석도 양보해야 할 정도입니다.
 이런 노인들만 살다보니 눈이 내리면 눈을 치울 사람이 별로 없으므로 자연스레 젊은 내가 앞장서야 하고, 눈 좀 치우고 나면 할머니들은 노인정에서 커피를 끓이거나 찌짐을 부쳐 한사코 먹고 가라합니다.

 바로 그때마다 보는 장면이 노인네들의 화투놀이 도박입니다.
 고스톱도 아니고 육백도 아닌 민화투라고 하는 것인데 나도 어릴 적에 한 기억이 있는데 점수 계산은 어떻게 하는지 기억이 아리송송....


 아무튼 노인네들은 이 민화투로 하루종일 십원짜리 동전내기 노름을 합니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이 십원짜리 동전을 개인 주머니에서 내는 것이 아니고 항상 노인정에 있는 공금을 얼마씩 갈라서 내기를 하고 끝나면 다시 그대로 들여 놓는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노름밑천으로 공금유용을 하는 셈이죠.ㅎㅎㅎ

 

 

-노인정의 이모저모 모습입니다.
사람 냄새, 따신 온기가 느껴지지요.

 

 

 

 

 

 그런데 지금 노인네들이 하는 노름이야 말 그대로 놀이 삼아 심심풀이로 하는 것이지만 예전에는 진짜 노름이 심했다고 하네요.
 그 까닭인즉 가을 농사가 끝나고 나면 동지섣달 산골의 나날은 무료하고 따분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텔레비전도 없고 인터넷도 없던 그 시절에 시간 죽이기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술과 노름 말고는 달리 할 것이 있었겠습니까?.

 노인네들의 말을 빌리자면 이 용암마을이 용암리 여러마을 중에서도 가장 큰 마을로 예전에는 90호가 넘게 살았고, 마을 하천가에는 물방앗간이 두 개나 있었고 길가에는 주막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 마을회관자리에는 본래 학교가 있었는데 1941년도에 송정마을로 이사를 갔으며, 이 동네에 사람이 많이 모여 살았던 이유는 가북면 산골짜기 중에서 유달리 기온이 따뜻하여 보리농사가 잘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묵혀서 잡목과 잡초가 우거진 곳들이 전부 전답이었고, 지금의 동네 안 채전밭은 모두 집터였다고 합니다.

 몇몇 노인네들은 과거 개금마을은 춥고 먹을 것이 없는 그야말로 살기 어려운 동네였는데 지금은 차츰 살기가 좋아져 가고 사람도 늘어나고 있는데 옛날에 잘 나가가던 이 동네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며 못내 아쉬움을 토로하였습니다.

 

 

-쓰러져가는 방앗간과 늘어나는 빈집을 대신하여 늘어나는 산소가 이 동네의 역사를 이어가겠죠?

 

 

-마을의 빈집들입니다. 아마도 사는 집보다 빈집이 더 많을 듯 합니다. 

 

 

-마을 옆 산능선에 있는 묘지들입니다. 자꾸만 늘어나겠죠?

 

 세상의 변화는 이런 것 같습니다.
 과거에는 농작물이라 하면 쌀과 보리가 아니면 농작물로 취급도 해주지 않았습니다. 그 시절에는 당연히 쌀.보리 농사가 잘되는 농토를 상답이라 하였고, 집도 단열기술이 없으므로  바깥 기온이 낮으면 얼어 죽기 십상이니 당연히 따뜻한 양지를 찾아 집을 지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쌀.보리 대신에 특용작물이 대세이고, 집도 단열과 구조적 측면에서 자연에 대응할 수 있는 기술이 발달하여 굳이 양지만 찾을 필요도 없게 되었으니 지금으로선 경사가 급한 용암마을보다는 완만한 개금마을이 더 살기 좋은 마을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이 변하는 이치야 그렇다 손 치더라도 속절없이 쇠락해가는 농촌마을들 이모저모들과 노인네들 손 마디마디의 굳은살을 바라보노라니 왠지 가슴이 짠합니다.

 

 

-아래 빈집을 보노라니 추사의 세한도가 자꾸만 생각이 나네요.
뻥 뚫린 저 구멍은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인생의 허무 ~ ~

 

 

 “가을 농사 끝나고 11월부터 내년 7월까지는 돈맛 볼 끈덕지가 없으니 농촌에서 뼈 빠지게 한 철 열심히 벌어본들 맨 날 제자리걸음이다.”며 소주잔을 들이키던 젊지도 늙지도 않은 한 주민의 말이 자꾸만 생각난다.
 11월부터 7월까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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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가북면 | 용암리1189 용암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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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땡삐 선비(sunb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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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거창군 가북면 용암리의 용암선원이라는 절집에 들어오면서 왜 지명을 ‘용암리’라고 하였는지 궁금하여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니 두산백과사전에 등록된 용암리라는 마을이 무려  40개나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 이 곳 용암마을의 소개는 두산백과사전에 간단히 언급되어 있고 블로그나 카페와 같은 곳에서 소개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두산백과사전에도 그렇고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로도 그렇고 이 동네 이름이 용암리라고 붙여진 이유는 동네 뒷산의 바위가 용의 머리처럼 생겼다 하여 용두바위 또는 용바위라 하고, 이 바위 이름을 따서 용암리라 하였다는 것입니다.

 하여 나는 용머리처럼 생겼다는 바위를 보고자 두 번을 바위까지 올라가 보았습니다만 도무지 용머리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제 12월 29일 죽바위골이라는 쪽으로 포행길을 나섰다가 눈 덮인 산을 쳐다보다가 “아~  바로 이거로구나!”하고 그 위용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어떻습니까?
 지금이라도 ‘어흥~’하며 당장 튀어나올 듯 한 형상이  아닌가요?

 

 

              -용바위입니다.-

 

 

  거창의 가조면은 가조온천으로도 이름이 알려져 있기도 하고 팔팔고속도로에서 IC도 있어 대체로 알려져 있지만 그에 접한 가북면은 거창군에서도 오지 중의 오지로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곳입니다. 용암리라는 마을은 가북면소재지에서 하천을 따라 올라가는 산골마을로 용암리라는 법적명칭의 행정구역 안에는 용암본부락, 개금마을, 장전마을, 홍감마을, 송정마을 5개 자연취락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용암본부락은 기온이 따뜻하여 보리농사가 잘되어 사람이 가장 많이 살았고, 1960년대 전후로는 세대수가 90여호가 넘을 정도였다합니다.

 

     - 동네 입구 좌측에는 음석바위, 우측에는남근석바위가 있는데 정말 신기합니다.-

         (음석바위인데 음기가 세다하여 옛날에는 안에 돌을 쌓고 제를 지냈다 합니다 

 

(남근석인데 보기로는 아직도 힘이 있는 듯 한데   여~ㅇ 아닌가 봅니다. ㅋㅋ)

 

(음석바위 안  돌을 쌓은 모습)

 

 

( 그리고 이 바위는 하천 건너편으로 음석과 남근석 중간에 있는 바위인데

 마치 두 바위의 합궁으로 용의 알이라도 낳은 듯하므로

 오늘부터 이 바위를 ‘용란석’이라 하겠습니다.) 

 

                  

 

 나는 건축이 전공이고 생태도시에 관심을 가지면서 우연히 풍수지리를 접하고서는 “바로 이거다!”하며 풍수지리에 감탄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흔히 조상의 묏자리를 정하면서 지관들이 보는 소위 음택이 풍수지리의 주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본 풍수지리는 주거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두고 보는 관점에서 바람과 물과 지형을 잘 이용하면 생태적인 환경에서 지속가능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이 풍수지리 이론으로 해결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아무튼 나는 요즘 어디를 가나 그 지역의 지형을 살피고 자연환경과 인문환경과의 관계가 어떻게 형성되어 가는지를 유심히 관찰하는 버릇이 생겼고 이 마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금까지 살펴 본 바로는 용바위로부터 산맥이 뻗어 내려와 양 갈래로 갈라진 지형은 마치 여성의 자궁과 같은 형상에 뒤로는 북쪽 산이요 앞으로는 남쪽 하천이 흐르는 그야말로 배산임수의 좋은 양택의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네이버 지도에서 본 용암마을 항공사진. 

  (노란선이 산능선입니다)

 

 


 그렇다면 그리 좋은 양택지라면 계속 마을이 번성하여야 할 것인데 왜 쇠퇴해 가느냐는 의문이 생깁니다.
 그 답을 나도 이곳에서 생활해보지 않았다면 아마도 몰랐을 것입니다.
 그리고 눈이 내릴 때 마다 눈 치우는 작업을 해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입니다.

 이 마을의 지형은 경사도가 15도가 넘는 가파른 경사지입니다.


 과거 농경사회에서 농사를 지을 때는 모두 지게를 지고 농사를 지으므로 농업용수 풍부하고, 배수 잘되고, 일조량 풍부하면 경사도 정도는 까짓것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기계화영농이 시작되면서부터 영농기계가 마음대로 들어갈 수 없는 지형의 농지는 쓸모없는 전답이 되고 말았습니다.
 주거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겨우내 눈이 내리는 동네에서 경사진 빙판길은 사람도 얼씬하기 어려운 판이니 자동차야 있으나마나 한 그야말로 무용지물이 되고 말지요.
 눈만 왔다하면 대중교통이 가장 먼저 중단되고 마니 하필 이런 날에 응급상황이라도 생기면 하늘 말고는 원망할 곳도 없이 고스란히 당해야 하는 것이 산골의 실정입니다.

 

 

- 차도에서 본 마을의 전경입니다.

   (큰길가에 있는 집만 새집을 지었네요. 동네 안에는 당장 레미콘차가 들어가기도 힘이 들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세월 따라 사람이 가고,
 사람 따라 집이 가고,
 집 따라 마을이 가고,
 ........
 자연의 이치인가 봅니다.

 

.......................................................................................................................

 어제부터 가조온천에 목욕가려고 했는데 버스가 오지 않는 바람에 못했는데,
 어제 밤에 내린 눈 때문에 오늘도 기약을 할 수 없다고 하네요.

 으으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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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가북면 | 용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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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장복산 2012.12.31 10: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남근바위가 아직 힘이 남아 있을 때 가서
    정기라도 좀 받아 와야 할 거 같은디...
    눈 땜시 버스도다니지 않는다 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