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당'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4.10.02 명당자리 임자는 따로 있다.- 남명조식의 생가 터. (1)
  2. 2012.12.21 ‘해딴에’ 임호마을에서 옥동자를! (2)
  3. 2012.04.03 이명박의 명당자리?

 오늘은 지난 9월23일 한국컨텐츠진흥원,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이 주최하는 ‘경남 이야기’의 블로거 탐방대 두 번째 이야기로 남명 조식의 생가 터와 명당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 해볼까 합니다.
 풍수지리(風水地理)는 바람기운, 물기운, 땅기운의 이치로 어느 터에 집을 짓거나 묘를 쓰면 길흉을 맞이한다고 하여 우리네 조상들은 명당터를 두고 다툼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풍수지리를 공부한 사람들의 말을 빌리자면 명당의 터와 그를 차지하는 주인은 마치 전기와 전구와 같이 서로 궁합이 맞아야만 한다고 합니다. 흐르는 전류는 200V인데 100V전구를 꽂으면 전구가 타버리고, 반대로 하면 전구가 작동하지지 않는가 하면 전선이 잘못 연결되어 누전이 있을라치면 화재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서로 엇갈리지 않으면서 넘침도 부족함도 없는 가운데 터의 기운과 사람이 기운이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그 땅은 길지가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역학으로 사주를 보거나 점집에 가서 점을 치거나 간에 필수적으로 따르는 것이 당사자의 태어난 년.월.일.시입니다.
 아무리 명당 터가 있을지라도 그곳에 사는 사람의 생일과 죽은 사람의 사망일이 그 터와 궁합이 맞아야 길지가 되고 발복을 한다고 합니다.
 태어나는 사람이 제가 태어나고 싶다고 임의로 태어날 수도 없고, 죽는 사람이 땅 기운의 시간에 맞춰 죽을 수도 없는 입장이고 보면 명당 터의 주인은 따로 있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남명의 생가 터가 딱 그런 것 같습니다.

 

 

 

 

 남명(南冥)의 본관은 창녕(昌寧)으로 아버지는 승문원(承文院) 판교(判校)를 지낸 조언형(曹彦亨)이고, 어머니는 인천이씨(仁川李氏)인데 충순위(忠順衛) 이국(李菊)의 딸인데 남명의 본가는 본래 판현인데 외가인  삼현 토동(현 합천군 삼가면 외토리)에서 1501년 음력 6월 26일 태어났습니다.
 옛날 어느 풍수도인이 합천군 삼가면 토(兎)동을 둘러보니 암토끼가 달에 있는 수토끼를 쳐다보고 누워있는 형상이니 토끼의 배에 터를 잡은 집에서 1년 내 현자가 날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토끼의 배 부분에 위치한 집이 남명의 외가였고 1년 뒤 예언대로 남명이 태어났다고 합니다.
 외조부인 이국은 친자인 이씨 자손 중에서 현자가 나기를 바랐는데 하필이면 그때에  딸이 친정에 와서 해산을 하는 바람에 이씨 기운을 조씨가 앗아간 형국이 되었으니 이점이 못내 아쉬웠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이쯤 되고 보면 명당과 그 주인공의 인연은 따로 있음이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남명이 600년의 세월이 지난 후세의 오늘날에 칭송을 받는 현자임에는 틀림없으나 그의 살아생전 일생을 되짚어보면 그의 삶이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은 팔자를 타고났다고 할 것입니다.
 영남학파의 양대산맥을 이루는 당대의 퇴계 이황이 문과 회시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지만 남명은 어머니의 강권에 못 이겨 치른 과거시험이긴 해도 문과 초시에는 급제를 하였지만 회시에는 낙방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평생을 백수 처사로  일생을 삽니다.
 넉넉잖은 살림살이에 벼슬도 없는 백수 선비의 삶이란 게 뻔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는 고향인 합천에서의 궁핍한 생활고 때문데 한때 김해에서 처가살이를 할 정도였으니 보통의 사람들 입장에서 본다면 그리 좋은 팔자로 산 것만은 아닌 것입니다.

 

 

-남명의 생가-

 

 

 그렇다면 명당터의 덕을 본 당자는 터 주인인 외할아버지이숙도 아니고 이곳에서 태어난 남명도 아닌 셈인데 그럼 도대체 누가 명당터의 덕을 본 것일까요?
 내가 보기로는 결국 나라가 덕을 봤다고 봅니다.
 그 이유는 남명 조식은 비록 공직에 몸을 담지는 않았지만 재야에서 늘 나랏일을 걱정하고 현직에 공직자들로 하여금 공직자의 자세를 흩트리지 않도록 긴장케 하는 상소문 돌직구를 날려 난세에 그나마 선비정신을 유지하게 하였고, 후학들을 잘 지도하여 임진왜란이라는 국가적 위기상황에서는 50여명이 넘는 제자들이 의병장으로 나서게 하여 나라를 지키게 하였으니 결국 명당터의 덕을 본 당자는 나라인 것입니다.

 

 명당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 김에 이와 관련해서 사사로운 내 경험 두 가지를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먼저 내 아버지 산소 이야기입니다.
 아버지는 59세에 불의의 교통사고로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 말씀에 의하면 그 해에 따라 아버지께서 수시로 “우리가 죽기 전에 자식들한테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면 우리가 묻힐 자리는 우리가 장만해 놓아야 할 텐데...”하며 고향의 누구누구네 밭을 지목하기도 하였다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먼 훗날의 이야기이고 차츰 생각해보자는 것이었는데 그렇게 갑자기 돌아가시고 보니 부득이 선산의 할아버지 묘 아래에 모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당시 할머니께서 생존해 계시므로 아버지가 그곳에 먼저 묻히고 나면 할머니가 할아버지 옆에 묻힐 수 없다며 집안 어른들이 만류를 하는 것입니다. 3일의 장례기간 안에 갑자기 산소 터를 구하려니 낭패가 예사 낭패가 아닙니다. 해서 고향을 지키고 계신 막내 삼촌한테 부탁을 하였는데 삼촌은 온 산천을 돌아다니다 다리가 아파 잠시 쉬었다 가자며 마을 공동묘지가의 바위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잠시 숨을 고르다가 “아차!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하고 무릎을 치고 “바로 이 자리다!”하며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 자리는 과거 상여를 메고 공동묘지를 오를 때 숨이 가빠 상여가 쉬어가는 자리였는데 공동묘지에 자동차 길이 생기는 바람에 방치된 자리였던 것입니다.
 이곳에 산소를 쓰기로 하고 삼촌이 풍수가에 찾아가니 “허허~ 그 자리는 내가 안 봐도 이미 알고 있는 명당 터일세. 그 터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노인네들이 몇몇이 있는데 자네 형이 거기 묻히다니, 자네 형이 무슨 복을 얼마나 지었기에 그 터 주인이 되었는지 모르겠네만 명당 터 주인은 따로 있다더니 참으로 그러하이.”라고 하였다 합니다.

 

 

-부모님 산소 전경이데 경치가 하도 좋아 이곳에 서면 쉬원하면서도 편안한 기운을 느끼죠-

 

 

 내 경험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나는 풍수지리에 대해 깊이 공부한 바도 없고 역술인이나 풍수가들의 말을 신뢰하지도 않는 편입니다.
 내가 풍수지리를 어깨너머로 공부하고 이해하는 명당은 햇빛 잘 들고, 통풍 잘되고, 경치 좋고, 비바람으로 인한 재해가 없는 자리가 명당이라고 여기는 편이고 이런 관점에서 내가 사는 집터를 고르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7년 전 내가 사는 집 일부가 공공사업에 편입되어 대지 100평 중 40평이 편입되고 건물을 철거하게 되었습니다. 남은 대지가 협소하여 다른 곳으로 이주를 해 볼까하고 귀산동 일대 땅을 물색하다가 석교마을에 있는 적당한 땅을 발견하고 그 동네 사람에게 그 터를 살 방법이 없겠냐고 타진을 해 보았습니다. 그 터 주인은 현재 엄청난 부자라서 땅을 팔 사람이 아니라고 하여 포기를 하고 결국 내가 살던 터에 집을 짓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그 터에 집을 짓고 있어 이 어찌된 영문인가하고 알고 보니 터 주인이 마을노인회관부지로 내놓았다고 하였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명당 터가 개인의 몫으로 돌아가지 않고 마을주민 공동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보아 이것은 하늘의 뜻이다. 참으로 다행하고 신통한 일이다.” 라고 감탄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이 두 경험에서 소위 명당 터라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해 봅니다.
 아무리 명당 터에 묻혔다고 하지만은 비명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불행한 명운을 어찌 감당하겠습니까?
 그토록 팔지 않겠다던 명당 터가 어찌 욕심  없는 마을 공동의 뜻을 따르겠습니까?

 

 사람의 운명도 땅의 운명도 모두가 하늘의 뜻이 아닐까요?

 남명의 외할아버지 이숙처럼 기왕이면 내 자손이 번창하였으면 하는 기대감을 가진 이나,

 조상 산소 덕으로 부귀영화를 기대하는 이나,

 내가 명당을 찾기보다는 명당이 나를 찾도록 선을 행하고 복을 지음이 어떠할까요. ㅎㅎㅎ
 

 

 

Posted by 땡삐 선비(sunb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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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윤판준 2015.01.13 12: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0여년전 산천재에 다녀왔는데 참으로 공부 많이했다 단성소 같은 글을 쓰려면 얼마나 위험했을가요 생가가 삼가면 외토리
    내고향하고도 몇리 안되는곳인데 거기서 한국사에 길이 남은 유적특히 경남 교육자등은 모두 남명선생의 문하인이라던데
    경남분들 모두 장합니다 삼가면에서도 그 큰 대 인물을낳게했으니 합천고을도 대단하리라 내가 글이짧아서 대구는 잘못해도
    전신은 조식선생님의 유훈을 길이 간직하고 잇는데요 산청군민도 대단한 고을양반이롤세 대구 부산 마산진주전주등지의 선비들은 남명선생의 유훈을 본 받아야 할것미

 경남도민일보가 만든 ‘경남형 예비 사회적 기업’ 유한회사 갱상도 문화공동체 ‘해딴에’가 하는 마을 만들기 사업 관련 블로거 팸투어 이야기입니다.
 이 프로젝터는 농촌 마을에 활기를 만들어내고 현지 주민과 함께 어울리는 새로운 여행 문화를 창출하는 한편 현지 주민들에게 경제적으로도 보탬을 주고자 하는 취지로 경남문화컨테츠 진흥원으로부터 27백만원의 예산을 지원받아 ‘해딴에’가 진행하고 있습니다.


 ‘해딴에’가 하는 마을 만들기 사업이란 과거 우리 선조들이 한 동네에서 서로 품앗이나 협동을 통해 농사일은 물론이요 마을의 대소사를 해결하던 미풍양속 즉 마을 공동체 사업을 21세기 버전으로 새롭게 재현해보자는 것입니다.
 마을 공동체 의식의 경우는 사실 내가 공직생활을 하던 중 늘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분야로 석사학위 논문도 “아파트 주동의 계획에 있어 커뮤니티 형성에 관한 연구”였고,

  1996년경에는 지금 ‘해딴에’가 추진하는 사업과는 차이가 있긴 하자만 창원시 두대동에 우리나라 전통적 마을의 형태를 본 딴 도시형 전원주택단지를 기획하여 도시주거단지에서의 커뮤니티 형성을 시도한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7~8년 전 부터는 내가 사는 동네 귀산에서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한번 해 보고자 나는 동네 사람들께 이런저런 마을 공동사업을 제안해 보았습니다만 모두가 허사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사실 지금 시골마을 어디나 할 것 없이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취향의 사람들은 모두 객지로 떠나고 그냥저냥 조상 그늘에 하던 일 하며 사는 것이 최고라며 눌러앉아 사는 사람들이 지금 농촌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환경의 변화를 싫어하거나 두려워하는 유전적 인자를 가진 사람들이기에 아무리 미래에 비전이 있고 풍요가 있을지언정 당신들이 생각지도 않았던 일을 공연히 꺼내들고 이러쿵저러쿵 했다가는 사기꾼으로 오해받기 십상입니다. 

 

 내가 알기로 ‘해딴에’가 이 사업을 시작한 시점이 아마도 금년 봄부터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평소 내 관심분야이기도 하여 관심은 가지고 있었지만 사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모르고 있었는데 김훤주님과 달그리메님게 가끔 전화를 하면 늘 함양을 가고 있거나 함양에 있다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하여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함양까지 다니면서 밥 팔아 똥 사먹는 짓 하고 있네”라고 핀잔을 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 지난 12월 15일 그 임호마을에 갔는데 거기서 나는 두 가지에 놀랐습니다.

 

--이 마을 출신인 휴천면장님의 간단한 인사와 함께 기념사진 한 컷.
 맨 앞의 가운데 잘 생긴 분이 면장님-

 

 

 

 

-마을 간판과 문패를 디자인 하고 제작한 김진성 나무 조형 연구소의 김정성 아티스트님-

 

 

 

-'해딴의'의 대표이신 김훤주님은 이 시간에도 참석자들로부터 아이디어를 구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의외로 반갑고 친절하게 대해주는 마을 인심에 놀랐습니다.
 농촌 사람들은 도시 사람들 모양 모르는 사람이나 많은 사람과 부대끼지를 않으므로 외지 사람이 가면 무척 경계를 합니다. 그런데 이 마을 주민들은 모두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물론 그 배경에는 그동안 ‘해딴에’ 사람들이 주민들과 부대끼면서 닦아놓은 공덕이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이 동네 주민들의 성향 자체가 앞에서 내가 언급했던 다른 지역의 농촌 사람들과는 차이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해딴에’ 사람들이 여러 마을 중에서 이 임호마을을 컨택한 사정도 주민들의 적극적인 동참의지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이런 적극적이고 따뜻한 마을 인심 덕분인지는 몰라도 임호마을은 비록 빈집이 늘어나고 세대수는 적지만 살림살이가 풍족해 보이고 온기가 느껴지는 마을이었습니다.

 

 두 번째 놀라운 일은 ‘해딴에’가 그동안 이루어 놓았던 사업의 성과입니다.
 거리도 멀고 사람과 지리도 생소한 지역인 함양군 관내를 구석구석 돌아다니고, 그 중에서 5개 마을을 후보지로 선정하고, 다시 그 중에서 평가항목을 만들어 최종 사업지로 선택하는 그 과정만 해도 여간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과 얼굴 트고, 마을의 역사와 지형지물에 대한 유래, 마을 사람들에 대한 인적사항 파악 등은 물론이요,
 그 내용들을 안내 표시판과 문패로 제작하여 설치하기까지 하였으니 참으로 많은 일을 하였습니다. 거기다 팸투어 준비한답시고 묵혀놓은 방에 도배까지 직접 하였으니 딜그리메님은 감기몸살을 앓을 만도 하지요.

 아무튼 그 짧은 시간에 마을 주민들과 그 정도의 신뢰와 유대감을 형성하고, 그 작은 예산으로 그 정도의 사업성과를 낸 ‘해딴에’ 가족 여러분의 노고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합니다.
 금년에 좋은 인연으로 만난 ‘임호마을’과 ‘해딴에’가 새해에는 근사한 옥동자를 하나 만들기 바랍니다.

 

 이 동네의 이런저런 풍경들입니다.

 

 

-동네 입구에 있는여씨 시조묘비입니다.

 한 성씨의 시조 묘비가 이 곳에 있다는 것은 풍수적으로 그만큼 명당자리라는 이야기이지요-

 

 

 

 

- 이 이름 어떻게 생각하세요? ㅋㅋㅋ-

 

 

 

 

 

-마을회관과 새미입니다-

 

 

 

-민박을 하는 분도 있고 특별한 닭을 키우는 분도 계십니다-

 

 

 

 

 

-생기기는 흡사 감나무인데 배나무라고 하네요-

 

 

-이 작은 마을에 군의원을 한 분도 계시고, 현직 면장도 계시고 하는 걸로 보아 확실히 명당 마을-

 

 

 

 

 

-휴천면의 특용 작물이라는 칼라감자는 것인데 감자 색깔이 이리 많은 줄은 처음-

 

 

 

-여름철 이 소나무 밑에서 돗자리 깔고 낮잠 한 번 푹~~~

 

 

 

 

 

 

 

 

 

 

 


 

 

Posted by 땡삐 선비(sunb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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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장복산 2012.12.22 11: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을회관과 세미라는 말이 정감있군여.~
    세미가 있는 밍호마을이 잘 가꾸어 지기를 바랍니다.

흔히 금수(禽獸)도 죽을 때는 제 자리를 찾는다고 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로 늙고 병들면 혈육과 고향산천을 그리워한다고 합니다.

인간이 묻히고자 하는 육신의 무덤자리는 대체로 한정되어 있고, 죽은 자를 묻는 이는 살아있는 자의 몫이 됩니다.

그런데 인간 욕망의 무덤은 그 끝이 어딘지 가늠할 길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무덤은 살아 있는 자기 자신이 판다는 것입니다.

 

나는 요즘 민간인 불법사찰사건에 관한 장진수의 폭로내용을 보면서 인간이라는 동물이 제 버릇 개 못주고, 제 무덤은 결국 제가 파는 것이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민간인 불법사찰사건은 그 내용도 황당하지만 장진수가 폭로하면서 내놓는 녹취록이라는 것에 더 황당한 느낌이 듭니다.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네들은 상대방과 통화를 하면서 굳이 녹음을 하거나 메모를 하지 않고 그냥 지나쳐버리고 맙니다.

그런데 이 사건 폭로 과정에 장진수는 지속적으로 녹취록증거를 내놓았으며 앞으로도 얼마가 더 나올지 모를 일입니다. 지금까지 폭로된 내용으로만 보드라도 장진수는 청와대 관계자, 국무총리실 관계자, 변호사 등 모든 이들과 전화통화를 하면서 녹취를 하는 것이 일상화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특별히 녹취를 하여야겠다는 생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그냥 평소 직업병 습관 그대로 한 것입니다.

  그럼 장진수의 직업병은 장진수의 것 만일까요?

절대 아니라고 봅니다. 그 이유는 청와대는 범죄행위를 숨기기 위하여 조폭들이나 휴대할 만한 대포폰까지 지급하며 청와대-국무총리실-비선라인으로 연결되는 통신망으로 불법사찰을 자행하여 왔습니다.                                  

장진수가 무차별적으로 통화내용을 녹취하는 버릇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무차별적으로 민간인을 사찰하고 녹취를 하여왔다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2010년 이 사건이 터지고 나서 청와대, 검찰, 법원 등은 국가기관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증거인멸, 사건축소, 재판조율 등의 온갖 짓거리를 다 하였습니다

청와대 민정 비서관실에 근무하던 인물들이 법무장관으로 또는 로펌변호사로 자리를 옮겨 이 사건을 수사하고 재판을 하였으니 무슨 짓인들 못하겠습니까?

그들은 장진수에게 변호사비용은 물론이요 금전적 보상과 취업 알선까지 제시하였지만 장진수가 바라는 공무원 신분 그 자리에는 되돌려 놓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장진수는 예전에 별 생각 없이 녹취를 해 놓았던 이 녹취록이 효과가 있겠다 싶어 세상에 내놓은 것입니다.

이 녹취록이 없었다면 장진수는 아마도 정신이상자또는 다른 의도를 가진 파렴치한으로 매도되어 영락없이 쇠고랑을 찾을 것입니다. 이명박정권이 지금까지 해온 짓거리로 보아서는 그러고도 줄이가 남을 일입니다.

민간인 불법사찰

이거는 쥐새끼처럼 몰래 땅속에서 뿌리를 갉아먹어 결국 나무 전체를 고사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민주주의의 근간을 송두리째 갉아먹는 반국가적, 반인륜적 행위입니다.

이명박 정권은 걸핏하면 종북주의니 친북좌파니 또는 빨갱이니 하며 진보세력을 공격합니다.  

 대한민국과 북한 정권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남한은 잘먹고 잘사는 나라이고, 북한은 못먹고 못사는 나라, 뭐 그런 것입니까?

아니죠.

남한은 자신의 의사를 마음대로 표현해도 간섭 받지 않고 사찰 당하지 않는 사회이요, 북한은 내 마음대로 말할 수도 없고 끊임없이 감시와 사찰을 당해야 하는 것이 더 큰 차이입니다 

 


 민간인을 무차별 사찰하고 자기에게 비판세력에 대해서는 무슨 죄목이라도 지어서 탄압을 하는 이 정권을 무엇이라 칭해야 할까요?
 북한보다 한 수 위 수준으로 국민을 사찰하고 탄압하니 월북(越北)주의?
 북한과 같은 경찰국가로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하니 친북우파?
 빨간색 인공기와 빨간색 새누리당 깃발이 한 무리를 이루니 남북은 같은 빨갱이?
 . . .

 새누리당은 모든 것을 변화시키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말 변할 수 있을까요?
 불법사찰, 사건 축소, 재판조율을 하던 그들이 지금도, 앞으로도 국가기관 구석구석에 숨어서 활동을 하고 있는데 변할 수 있을까요? 지금까지 새누리당과 연을 맺고 있던 그들인데 새누리당 정치인들이 과연 그들을 솎아낼 수 있을까요?

 

 

 장진수의 진실 폭로도 지금의 총선정국이 아니었다면 찻잔 속의 메아리로 끝나고 말았을 것입니다. 이명박 정권의 실력이면 몇달 정도의 시간만 끌면 얼마든지  오리발 요리를 하고도 남을 일입니다.
 장진수가 조직에서 배우고 익힌 데로 녹취를 하지 않았다면 그는 고스란히 독박을 쓰고 말았을 것입니다.
 이명박 정권이 시키던 대로 잘 따르던 장진수가 다행히 녹취록을 남겨두었기에 그나마 이명박정권의 정체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이명박 정권이 지가 판 무덤에 영락없이 지가 들어가는구나!’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이명박이 판 사찰정국이 결국 그가 묻힐 명당이 된 셈입니다.

 

 

 

 

지금도 많은 정치인들이 총선에 뛰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호랑이 잡으러 호랑이 굴로 들어가고, 어떤 이는 안방만한 곳이 없다며 안방 지키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호랑이 굴이 명당이 될지, 안방이 명당이 될지를 지켜 볼 일입니다..

 

                            @ 위 사진들은 문창후님의 블로그에서-

 

불법사찰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14607&PAGE_CD=S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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