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정동'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9.03.05 창원에서 독립만세운동 원조는 창원읍민만세운동이 아닐까?
  2. 2017.10.30 문재인이 김경수 두고 공민배 선택한 까닭은? (6)

 목포의 근대문화유산에 대한 손혜원 의원의 땅투기 의혹으로 시끄럽긴 하지만 이 사건을 통해 일제 강점기 유산도 문화적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추세입니다. 그런 면에서 창원과 마산에서만큼 역사문화유산이 흔적 없이 사라진 도시도 드물지 싶습니다.

 그 이유는 마산과 창원이라는 도시가 지리적 여건상 수출입과 공업화에 유리한 위치에 있어 전라도나 충청도의 도시들에 비하여 산업화, 도시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앞뒤 가리지 않고 지나치게 개발에만 몰두한 결과로 보입니다.

 특히 창원의 경우 전국 5도호부 중 한 곳으로 역사적 의미가 큰 지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창원향교를 제외하면 역사적 흔적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 같이 흔적 없이 사라진 창원의 역사를 하나하나 찾아내어 재조명하고자 하는 블로거 조현근씨는(블로그-팬져의 국방여행) 근래 대단히 유의미한 역사의 흔적들을 찾아냈습니다. 

 첫째는 창원 북동동시장 일대에서 창원읍성의 흔적을 찾았고, 둘째는 창원 동정동의 일제신사를 찾았고, 셋째는 1943년 창원만세사건을 주도한 유일한 생존자 오경팔옹을 찾은 것입니다.


창원읍성 복원과정에서 나온 선정비들

동정동에 있었던 일본신사의 모습

-사진은 조현근의 블로그에서-


창원에서 유일한 독립운동 생존자 오경팔옹을 찾은 조현근.

 나는 오경팔옹을 인터뷰하러 간다는 조현근씨의 전화를 받고 ‘오경팔? 어디서 많이 듣던 이름인데...’하며 기억을 더듬어보니 30여 년 전 내가 창원시 공무원으로 재직할 무렵 창곡동에서 무허가건물 단속과 관련하여 사건이 기억났습니다. 과거 거주지와 도의원에 출마했던 경력으로 비추어 틀림없이 동일 인물이었지만 나의 기억에 비추어보아 그 오경팔씨가 독립운동을 했다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기에 나는 조현근씨의 걸음이 별 소득 없는 헛걸음이 될 것으로 짐작하였습니다만 결과는 뜻밖이었습니다. 

 오경팔옹은 조현근씨의 인터뷰로 인해 창원시장으루터 감사패를 받기도 하고 많은 언론에 주목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조현근씨가 오경팔옹을 찾아 최초 인터뷰를 하고 세상에 알린 당사자라는 점을 아는 이가 별로 없다는 점입니다.


창원시장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은 오경팔옹

-사진은 경남매일기사에서-


창원읍민만세운동이 삼진, 웅천 4.3만세운동의 원조로 짐작하는 근거는? 

 창원시는 지금까지 마산지역의 삼진과 진해지역 웅천의 4.3만세운동에 대한 기념행사는 해왔지만 창원읍민만세운동에 대해서는 누구도 입에 오르내리는 이가 없었습니다.

 삼진의거는 전국 4대 의거 중 하나로 꼽힐 정도인데 창원대도호부 청사와 함께 인구가 가장 많았던 창원읍의 읍민만세운동은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창원읍민 만세운동은 3월23일과 4월2일 두 차례 있었고 한번에 6,000~7,000명의 인원이 참여했다고 하니, 날짜로도 삼진과 웅천의 4월3일보다 빠르고 숫자 면으로도 삼진의 5,000명보다 많은 숫자입니다.


 만고 내 생각이긴 하지만 나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시대에 따라 다소의 변화는 있었지만 창원대도호부의 역사는 1601년(선조34년)에 시작하여 일본이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다음해인 1895년(고종32년)에 종지부를 찍습니다. 그리고 1907년 창원대도호부 청사는 현재의 창원초등학교 전신인 창흥학교 교사로 사용됩니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보아 조선말기 창원읍에는 관료출신이나 교육을 받은 이가 많았고, 세상 돌아가는 정보에 대한 접근도 빨랐을 것입니다. 

 3.1독립만세운동의 역사기록을 보면 대부분의 지방에서는 만세운동의 시작점이 시장인데 비해 창원읍민만세운동의 발원지는 위의 창흥학교에서 시작하여 시장으로 옮겨갔습니다. 이런 점으로 유추해보자면 창원읍민만세운동이 삼진과 웅천의 만세운동에 도화선이 되지 않았나하는 생각도 해볼 수 있습니다. 즉 삼진과 웅천의 만세운동 원조가 창원읍민만세운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삼진 만세운동비


웅천 만세운동비

 


  창원 만세운동비



창원대도호부, 그리고 창원읍민만세운동과 창원읍 역사를 재조명

 정황이 전술한 바와 같음에도 불구하고 창원읍민만세운동이 주목을 받지 못했던 이유로 나는 급격한 도시변천과정에 창원읍이 겪은 특별한 사연에서 짚어 봅니다.

 창원대도호부에서 창원군, 마산시, 진해시가 분리되는 가운데 창원읍 지역은 1973년 7월 1일까지 창원군 창원면이 되었다가 1973년 7월 1일부터 마산시 의창동이 되었고, 1976년 9월 1일 경상남도 창원출장소에 속하게 됩니다. 그러다 1980년 4월 1일 창원출장소가 창원시로 승격되면서 창원시 의창동이 되었습니다.

 즉, 구한말에서부터 창원읍은 창원군-마산시-경상남도 창원출장소-창원시로 소속이 바뀌다보니 창원읍민만세운동이나 창원읍성의 역사를 담아내는 정부기관이 제대로 없었습니다.

 이제 3개시가 통합되어 옛 창원대도호부를 다시 이룬 만큼 비록 늦었지만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지금이라도 창원읍민만세운동에 대한 역사적 의의를 다시 더듬어보고 우리가 무심코 간과했던 창원읍성에 대한 역사의 흔적들도 되살리고 보전하는 방법들을 고민할 때가 되었다고 봅니다.



1920년대와 현재의 창원초등학교 모습

위 아래의사진의 둥근 표시 부분이 동일한 곳으로 추정


아이들이 공을 두고 있는 자리가 독립선언문을 낭독했던 곳으로 추정



처음으로 개최되는 창원읍민만세운동에 많은 참여를. . 

 여러 의미에서 올해 처음으로 개최되는 3.23창원읍민만세운동 재현행사는 대단히 중요한 행사라고 생각됩니다.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창원읍민만세운동은 2012년 창원시의원 이었던 김동수 의원이 시의회에서 자유발언을 통해 한번 거론되긴 하였지만 기념행사 같은 것은 없었기에 시민들의 기억에서 잊혀져왔습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조현근씨가 창원시청과 의창구청, 창원시의회 등을 백방으로 쫓아다닌 끝에 겨우 100주년 행사를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창원읍민만세운동에 대한 기록으로는 두산백과사전에 아래와 같이 기록하고 있지만 별로 가슴에 와 닿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읍민만세운동의 발원지인 현재의 창원초등학교 역사 전시관에 가서 당시의 학교모습과 학생들의 사진 등을 함께 보면 가슴에 와 닿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이 글을 보는 분은 누구라도 관심을 가지고 3월 23일 개최되는 이 행사에 꼭 참석해서 창원초등학교의 전시관도 보고 장터에서의 만세운동재현행사에도 참여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네이버 두산백과에 나오는 내용

창원읍민 만인운동비

 昌原邑民萬人運動碑 



 3·1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어 갈 때 배중세(裵重世)로부터 독립선언서를 전달받은 설관수(薛灌洙)는 읍내 청년회관에서 공도수(孔道守)·구재균(具在均)·김호원(金浩元)·조윤호(曺潤鎬)·신갑선(申甲善)·조희순(曺喜舜)·송석민(宋錫敏) 등과 만세운동을 계획하여 1919년 3월 23일 창원읍내 장날에 거사하기로 결의하였다. 3월 23일 오후 2시 20분경, 공도수·송석민 등이 창원공립보통학교(지금의 창원초등학교) 대수정(大樹亭) 앞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거사의 취지를 설명한 뒤 대한독립만세를 외치자 6000~7000명의 군중이 일제히 호응하여 만세 시위가 시작되었다. 시위가 고조되자 일제 군경이 총검을 앞세워 탄압하여 오후 5시 20분경 군중이 흩어지고 30여 명이 검거되었다. 이날 검거를 피한 몇몇 주동자들은 4월 2일 장날에 다시 만세 의거를 일으켜 6000~7000명이 운집한 가운데 1차에 비하여 더욱 강력한 시위가 전개되었다. 이에 일제는 마산에서 급파된 지원 병력의 무자비한 무력 진압으로 20여 명을 검거하고 시위 군중을 겨우 해산시켰다.


창원읍의 만세 시위에서 주동자로 검거된 설관수와 공도수·구재균·김호원·조윤호·조희순·신갑선·사치홍(史致弘)·박화열(朴和烈) 등은 징역 6월 형의 옥고를 치렀으며, 공재천孔在千)·김창실(金昌實) 등은 태형 90대의 형벌을 당하였다. 후에 이들에게는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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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원시 의창구 서상동 513 | 창원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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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땡삐 선비(sunb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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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의 정치생명이 걸린 경남도지사 선거


 내년 지방선거에서 경남도지사의 선거는 전국에서도 가장 치열한 격전지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예전 같으면 지게작대기를 꼽아도 당선될 정도로 새누리당 절대우세 지역이었지만 지난 대선 때는 홍준표후보와 문재인후보가 각각 37.2%와 36.7%를 득표해 불과 0.5% 차이에 불과했습니다.


 이 같은 정치 지형 속에서 홍준표 대표는 경남도지사 자리를 잃으면 자신의 정치생명이 끝날지도 모를 일이기에 당의 화력을 경남에 총집중할 것입니다.

 시중에 떠도는 말로는 ‘박완수는 지난 경남도지사후보 경선에서 홍준표와 대척점에 있기도 했고 친박계라는 이유로 공천 받기가 어려울 것이다. 홍준표식 밀어붙이기로 윤환홍을 공천할 가능성이 높다’라고 합니다만 내가 보기론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라 봅니다.

 자신의 정치생명과 직결되는 곳에 자신의 측근이라고 해서 경쟁력이 낮은 윤환홍을 내세워 자기 명줄을 스스로 끊을 홍준표가 아니기에 과거의 사정이야 어떻든 간에 당내에서 또는 당외에서 가장 경쟁력이 있는 후보를 찾아 공천할 것이라 봅니다. 


 이에 반해 더불어민주당에서는 경남도지사후보로 공민배, 권민호, 김경수, 민홍철, 정영훈 등이 거론되다가 지금 현장에서는 공민배만 후보로 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가운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국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김경수를 후보로 낙점하지 않겠나’하는 예측들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보는데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노무현, 그리고 문재인에게 있어서 김경수

 2010년 9월 봉하마을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비서였던 김경수, 김정호 두 사람과 블로거 간담회를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김경수가 블로거들의 까칠한 질문들에 마치 사전에 작성한 대본을 읽어 내려가듯 논리정연하게 답하는 것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나는 속으로 ‘대통령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구나. 저 정도의 참모가 곁을 지켜주니 대통령을 해먹는 것이지. 아들을 두려면 적어도 저 정도는 둬야지...’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김경수를 가장 가까이 두고 썼던 이유를 그 자리에서 단박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 사정은 문재인 대통령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 입장에서는 문재인 정권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김경수를 가까이 두고 국정 전체를 돕는 역할을 하는 것이 옳으냐, 아니면 사사건건 시비하고 단지를 거는 홍준표라는 정적 제거를 위해 경남도지사후보로 내세우는 것이 옳으냐를 두고 저울질할 것입니다.


누가 주군인지 ???

이 사진에서 보는 장면만으로도 문재인과  김경수 두 사람의 관계를 읽을 수 . . .



-사진은 연합뉴스 꺼-



경남도지사 자리 두고 문재인과 홍준표의 입장 차이.

 유감스럽게도 현직 대통령과 제1야당의 대표가 하필이면 같은 경남의 인물인지라 고향에서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인 만큼 당사자들이나 경남도민의 선택이 고민스러울 수밖에 없는 형국입니다.

 하지만 냉철하게 그 속을 들여다보면 홍준표대표에게 경남도지사의 자리는 직전에 자신이 맡았던 자리이기도 하고 본래 보수당의 텃밭이기도 하므로 이 자리를 잃게 되면 앞으로 대권은 물론이요 지금의 당대표 자리도 잃게 되는 절체절명의 자리입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에게 있어 경남도지사 자리는 국정의 아주 작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경남도민에게 있어서 경남도지사자리는 가장 큰 자리지만 국가 전체적으로 보면 변방의 한 지역의 수장에 불과한 자리입니다. 그렇다고 보면 김경수라는 인물을 가지고 본채를 지을 대들보 재목을 행랑채나 마구간을 짓는 재목으로 쓸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사진은 연합뉴스 꺼-




문재인이 경남도지사에 공민배를 선택한 이유는?

 문재인대통령은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방분권에 관한 개헌을 국회에 강력히 요구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권이 성공한 정권이 되려면 개헌도 성공해야 하고 개헌 후 새로운 형태의 지방정부가 연착륙 하게끔 안정되게 지방정부를 운영할 수 있는 인물을 지방자치단체장에 당선시키는 것이 중요한 과제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 가능성으로만 보자면 경남도지사후보로 당연히 김경수를 선택하겠지만 공민배를 선택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개헌은 김경수에게 역할을 맡기고 새로운 지방정부 연착륙에는 지방행정경험이 많은 공민배에게 역할을 맡기는 것입니다.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자면 노무현이 지향했던 세상은 대통령한테 집중된 권력을 고루 나누어 더불어 함께 잘 사는 세상이었고, 그 방편 중 하나가 분권형 지방자치였습니다. 그리고 그 시작점은 시민들의 삶과 가장 밀접한 행정기관이 읍면동이라 보고 읍면동의 자치역량을 제고하기 위해 너무 작은 읍면동을 하나로 묶어 이름도 동사무소에서 주민자치센터로 바꾸는 대동제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그때 전국에서 최초로 대동제를 실시했던 곳이  창원시이고, 당시 시장이 바로 공민배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은 노무현이 못다 이룬 꿈인 지방분권 정책을 지방에서 가장 잘 수행할 수 있는 인물로  공민배 전 창원시장을 주목할 수 밖애 없었을 것입니다.


            

                         ▲ 공감포럼 주최 '개헌과 지방분권 강화 방안 토론회'가 25일 오후 경남도의회 1층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포럼 상임고문인 공민배 전 창원시장이 기조 발제를 하고 있다. /김두천 기자

-사진은 경남도민일보 꺼-



공민배는 노무현과 문재인과의 인연을 갈무리 할 수 있을까?  

 그러고 보면  김경수가 노무현과 문재인을 보필하면서 맺은 인연 못지  않게 공민배 또한 두 사람과의 인연이 각별한 것 같습니다. 공민배와 노무현의 인연은 전술한 바와 같고 문재인과는 대학시절 민주화 운동시절부터 동지로 활동하였고, 문재인이 군입대할 때는 39사가 있는 창원 동정동 그의 집에서 여친인 김정숙 여사와 함께 송별회를 했다고 하니 결코 가벼운 인연이 아닌 듯합니다.

 그런 그가 과연 문재인 대통령이 추진하는 개헌과 새로운 지방정부의 연착륙 구상의 고민을 해결해줄 수 있을지 . . .


 세상은 요지경이라고 여러 가지 정황이야 위와 같지만 세상민심이라는 것이 반드시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기에 결과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박근혜한테 대인기피증이라는 심각한 정신적 장애가 있었음에도 대중은 미처 눈치 채지 못했고, 우병우가 온갖 못된 짓을 하였음에도 그 꼬리가 잡히지 않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노무현이 세종시로 수도를 옮기고 공기업을 지방으로 분산하려 하자 정치권과 공무원, 그리고 수도권 시민들은 죽자고 반대를 했고, 공민배가 대동제를 하려 하자 공무원은 사무관 자리가 반토막 나고 시의원들은 자신의 지역구가 없어지고 인근 상인들은 단골 고객이 없어지니 당연히 죽기살기로 반대를 했습니다. 그럼에도 노무현과 공민배는 욕을 자초해가면서 기어이 그 짓을 하고 말았습니다.

 대중들은 노무현이 왜 그토록 지방분권에 목을 매달았는지, 공민배가 왜  대동제를 실시했는지 깊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직도 대부분 유권자들은 시대의 흐름이나 후보자에 대한 정확한 정보에 대한 관심보다는 세종로나 여의도에서 부는 바람소리에 더 관심을 가지고 귀를 쫑긋하므로 하루하루 이곳저곳으로 표심이 휩쓸려 다닙니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경남에서 일어나는 바람은 어떤 바람이며, 세종로와  여의도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어떤 바람일지...


 또한 문재인 대통령은 경남도지사후보로 총체적 국정운영 관점에서 방점을 찍을지, 아니면 자신의 정적제거와 자존심 관점에서 방점을 찍을지...


 세상민심은 참으로 모를 일입니다.

 부처님의 인연법에서 각각의 인연들은 어디서 그 연을 맺을는지 두고 볼 일입니다.




-천상천하유아독존-

세상 만물이 모두

나로 말미암아 시작되고

나로 말미암아 갈무리 되니

이 모두가 







Posted by 땡삐 선비(sunb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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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개똥이 2017.10.30 09: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장이 열렸다 좋은 물건 팔아보세

  2. 잔차 2017.10.30 17: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필귀정..~!! 갱남의 자존심을 되찿을 도백은 공민배

  3. 막걸리 2017.10.30 17: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신의 정치 야욕의 발판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행정가가 도정을 맡아서 경남을 다시 살렸으면 좋겠네요.

  4. 김경수 2017.12.07 13: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선 가능성이 우선 될것 같습니다

  5. 경상남도 2018.02.12 15: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선이 가까워져 도지사후보 검색해서 여기 까지 와서 공민배 후보님을 알게 되었내요. 저도 한땐 꼴통당의 팬이었는데 정치에 관심을 갖고부터 꼴통당의 진모습을 보고 회의를 느꼇습니다. 문통님과 인연도 있으시니 믿음이 가내요. 응원 하겠습니다.

  6. 진실 2018.03.25 18: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달님의 선견지명, 공민배 예비 후보님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