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재생'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2.09.25 마산 창동의 끔찍했던 사건. (13)
  2. 2011.05.06 인간의 육체를 사랑하는 여인? (10)
  3. 2010.10.13 임항선에서 만난 봄처녀? (5)

마산 창동의 끔찍했던 사건.

 

 

 9월21일, 22일 양일간에 걸쳐 경남도민일보와 그 자회사인 사회적 기업 “갱상도문화공동체 ‘해딴에’”에서 주관하는 창동예술촌 블로거 팸투어에 가보았습니다.

 창동예술촌 조성사업이 쇠락해 가는 마산의 도심인 창동과 오동동에 활기를 불어 넣어 예전의 영광을 다시 재현해보고자 하는 통합창원시의 야심찬 도심재생 프로젝터이고, 이날 블로그 팸투어도 이런 사실을 전국적으로 알리고자 하는 일종의 홍보전략 일환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사실 “마산”이라는 도시는 얼핏 보기엔 지방의 한 작은 도시 같지만 알고 보면 독재정권을 두 번이나 무너뜨린 계기를 만든 엄청나게 무게 있는 도시입니다.

 그 계기란 3.15 의거와  부마항쟁 사태입니다.

 


 3.15의거는 1960년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에 항거한 마산시민의 데모였고, 4월11일 최루탄이 눈에 박힌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마산 앞바다에서 발견되었고, 이 끔찍한 모습의 사진 한 장이 4.19 학생운동의 도화선이 되었고, 결국에는 이승만 독재정권이 무너지고 맙니다.

 

 

.

 

 

 부마 민주항쟁은 1979년 10월 16일 부산대생들이 시작한 데모가 부산지역 계엄령선포로 마산으로 옮겨와 처음에는 경남대생들이 주축이었으나 차츰 시민들과 고등학생들까지 참여하는 걷잡을 수 없는 대규모 시위로 발전하였습니다.
이에 박정희 정권은 그 심각성을 깨닫고 10월 20일 마산,창원지역에 위수령을 발동하였고, 며칠 후 10월26일 궁정동에서 김재규에 의해 박정희는 피살되고 유신정권은 막을 내리고 맙니다

 

 나는 팸투어 과정에서 이 지역의 역사학자이고 ‘해딴에’의 멤버인 박영주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33년 전 내가 겪었던 사건을 상기해 보았습니다.
 나는 79년 3월1일 공무원으로 초임 발령을 받아 당시 마산 월영동 경남대 옆에 있는 창원군청에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10월 18일 오후 갑자기 소란스런 소리가 들려 창문을 열고 밖을 보니 만날재 고개로부터 경남대생들이 밀려내려 오고 전투경찰은 영생아파트 쪽에서 올라오며 투석전과 최루탄 전을 하며 일진일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기를 한참 후 데모대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어수선한 가운데 일과가 끝날 즈음 데모대가 시가지 쪽으로 옮겼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마산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는 박영주씨-

 

 

 당시 내 나이도 대학생 그들과 같은 나이이므로 사태가 궁금키도 하여 창동쪽으로 가 보았습니다. 3.15탑 부근에서 차에서 내려 부림시장을 지나 창동쪽으로 가는데 모든 가게는 셔터를 내리고 간판 불마저 모두 소등을 하고 사람들이 없으므로 시가지는 마치 장이 서지 않는 날의 장터와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창동사거리쯤에 이르자 데모대는 북마산 쪽에서 내려오고 있었고 전투경찰은 남성동파출소 쪽에서 전투대열을 갖추고 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고 시간이 지나자 학생들은 돌을 던지고 유리병을 던지며 진격하였고 빈 가게인줄로만 알았던 가게들 쪽문으로 빈병상자를 들고 나오는 학생과 시민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런 장면들을 보면서 나는 ‘이 데모가 단순히 학생들의 데모만은 아니구나!’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뭔가 내 얼굴을 때리는 것입니다. 순간 맞은 곳을 짚어보니 인중 왼쪽 코 밑 자리에 손가락 하나가 푹 들어가는 상처가 생겼습니다.

 데모대가 던진 깨어진 유리병을 전투경찰이 주워 데모대를 향해 던졌는데 그 중 한 개가 내 얼굴에 박한 것입니다.
 피는 쏟아지고 어쩔 줄을 몰라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한 학생이 손수건을 건네며 자신을 따라오라며 길을 안내하였습니다. 골목길을 따라 갔는데 병원 정문은 닫혀 있고 불도 꺼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학생이 쪽문을 두드리자 문이 열렸고 의외로 병원의 의사와 간호원은 가운을 입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사전에 학생들과 병원간에 교감이 있었지 않나 싶습니다. 

 

 

 

-마산을 꿋꿋하게 지키고 있는 학문당 서점-

내가 유리병을 맞은 곳이 아마 이 근처로 짐작됩니다.

 
 간호사가 상처부위 피를 닦고 의사가 막 찢어진 부위를 집으려고 하는 즈음 나이 많은 할머니가 피투성이가 된 머리를 싸매고 들어오는가 하면 온갖 중상환자들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여 의사는 중상환자들을 돌보기에 바빠 간호사가 내 상처를 아홉 바늘 꿰매는 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뒷날은 얼굴이 퉁퉁 부어 출근하지 못하고 그 뒷날 출근을 하자 복무기강을 담당하는 내무과장이라는 분으로부터 불호령이 떨어졌습니다. 공무원 신분으로 반정부 데모를 하는 현장에 왜 가느냐며 당장 시말서를 쓰 오라고 하였고 나는 시말서를 쓰다 받쳤습니다.


 시말서라는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나는 유독 시말서를 많이 썼던 문제 공무원이었던 것 같습니다. 
 머리가 장발이라고 시말서, 장발을 시비하므로 빡빡머리를 하고 갔더니 빡빡머리라고 시말서, 빨간 골덴 바지 입었다고 시말서, 운동화 접어 신었다고 시말서... 등등
 오죽했으면 직원들이 “네는 차라리 시말서 등사해 놓고 날짜만 바꿔서 내라.”는 말까지 했을까요.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말도 안 되는 이런 구속과 압박이 세상을 짓누르던 시절이 유신시절이었고, 이런 억눌림에서 해방되고자 했던 민중의 욕구가 분출했던 사건이 부마민주항쟁이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되돌아보면 그 날 깨진 유리병에 본래 주름진 곳을 맞았기에  다행이지, 만일 눈이나 코에 맞았더라면 이 잘 생긴 얼굴(^v^)이 어찌 되었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 

 

 그날 나는 “이곳에서 부마항쟁의 흔적은 내 얼굴에 남아있는 이 아홉 바늘 상처 자국뿐이지 아무것도 없다”며 농을 하기도 했지만 정말 33년 전 그 엄청난 역사가 이루어진 창동사거리에는 그날의 흔적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음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지금이라도 창원시에는 그날을 상기할 수 있는 조형물이나 사진 전시장을 이곳 창동사거리에 하나쯤 설치하면 어떨까요?

Posted by 땡삐 선비(sunb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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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09.25 18: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무원 목줄 짤리지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세여.!
    ㅎㅎㅎ
    그래도 시말서나 쓰고 말았으니 망정이지...
    공무원신분이 아니었다면 그 다음에는 전두환이 한데
    삼청교육대 끌려 갔을지도 모릅니다.

  2. 커피믹스 2012.09.25 19: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의 산 증인이시네요. 크게 안 다친게 다행입니다..
    이번기회에 창원시는 3.15 관련 조형물을 만들거 같네요.

  3. 실비단안개 2012.09.25 20: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말서 전문 투사였군요.
    창원군청이 왜 마산에 있었는지요?

    • 땡삐 선비(sunbee) 2012.09.26 08: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경남도청이 부산에 있었듯이...
      창원군은 본래 마산,진해,창원시가 모두 창원군었는데 이 도시들이 분가를 하고 진동.진북.진전, 구산,동읍,북면,대산면,내서면,웅동,천가면이 남다가 보니 그 중간지점이고 일제때 부터 청사가 있어서 그랬던것 아닐까요?

  4. 참교육 2012.09.26 07: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보상 대상자가 되기는 하셨는지요?
    물어보고 싶었는데... ㅎㅎㅎ

  5. 김천령 2012.09.26 10: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말서 공무원이셨다니... 멋지십니다.
    그날 이야기를 오늘 자세히 듣게 되네요.
    잘 보고 갑니다.

  6. Boramirang 2012.10.25 13: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단하신 경력이십니다. 시말서를 전문적(?)으로 쓰셨으니 말이죠.
    그나저나 선비님의 글을 읽다보니 부마항쟁 당시 모습이 절로 오버랩됩니다.
    안부 전해드립니다. 늘 건강하세요. ^^

  7. 몇년전 거기살던사람. 2012.11.11 01: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 고향은 경기도 용인 이지만 .마산에 일로 우연히 정착해 산 2년여의시간들.
    마산이 잊혀지지 않는 제2의 고향같네요.
    그당시엔 마산이 그리도 싫더니만...
    억세도 드세고,그러나 계산없이 정직한 사람들.
    정치적이긴해도 뭔가 권위나 억압에 반항하는 생활태도등등...
    거기있을땐 잘몰랐는데 각지방마다 정서가 다른데,
    마산은 강하고 큰인물이 나올장소같아요.
    젤싫어하는곳도 마산 젤 그리운곳도마산,
    살고싶은곳도 마산이되었네요.

    저서점 몇번갔던기억이있는데,,,
    조금더 올라가면 떡볶이 파는 분식집들있지요.

 5월5일 어린이날 마산 창동 가배 소극장에서는 특별한 퍼포먼스가 있었습니다.
 바디 페인팅 작가 배달래씨의 바디 페인팅 퍼포먼스였는데 책에서나 혹은 신문보도에서나 접했던 예술 장르를 실제로 체험을 하기는 어제가 처음이었습니다.
 솔직히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였던 것이 뭣인지, 그림(페인팅)이 특별히 아름답다는 느낌 같은 것은 모르고 그냥 멍하니 보기만 하였습니다.
 처음 접하는 생소함에서 오는 의외성, 마치 신 들린 무당모양 모델과 작가가 음악에 맞추어 쉼 없이 율동하는 열정, 이런 감동이 더 크게 느껴졌습니다.


 공연히 끝나고 작가와 관객 대화의 시간 중에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바디페인팅이라는 예술을 조끔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보통의 사람들이 캠퍼스나  종이에 그리 듯 자신은 사람의 몸에 그림을 그리는 차이가 있을 뿐이며, 자신은 인간의 영혼과 아름다운 육체를 너무나 사랑하기에 그 사랑하는 육체에 자신의 영혼을 불어 넣는다는 것입니다.

 캠퍼스나 종이에 그린 그림은 영구적으로 보관할 수가 있지만 바디페인팅은 공연이 끝나면 목욕탕으로 가서 바로 지워져버리기에 아쉬움이 있지만 작업을 하는 그 순간 관중과 함께 호흡하고 느끼고 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보람 있고 행복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작품으로 남기기 위해 사진을 촬영하여 그 사진과 다른 배경을 합성하여 다시 새로운 그림을 그려서 작품을 만들기도 하는데 작품소개 카탈로그를 보니 놀랍도록 아름다운 작품이 많이 있었습니다.
 특히 그는 최근에 한국의 전통예술과 바디페인팅을 조화시켜 한국의 냄새가 나는 바디페인팅작품을 만드는데 열정을 쏟고 있다 합니다.
 마산의 문신이라는 조각가와 나란히 어깨를 겨눌 수 있는 바디페인팅의 대가가 마산에서 태어나기를 바라는 큰 기대를 해보는 바입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어제도 퍼포먼스가 끝나고 창동골목 막걸리집에서 거나하게 파티를 하였습니다만 마산의 구도심을 살리는 길이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만나고 모이는 동기부여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구도심 창동과 오동동 상권을 살리기 위해 창원시는 별의별 궁리를 다하고 있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늘 도로나 간판을 단장하고, 어울리지도 않는 상징물을 세우는 등 시설물 개조에만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빈 점포를 정부예산으로 임대를 하고 개조를 해서 환경정비를 한 다음 예술가들을 유치한다고 하는데 글쎄요.
 제가 듣기로는 순수하게 예술에만 전념하는 작가들은 공무원들과 머리 맞대고 시간 낭비하기 싫어서라도 그런 것에 관심도 없고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사실 자체도 모르고 있다고  합니다. 결국 그런 것에 관심을 가지는 부류의 예술가들은 작품으로는 답이 없으니 관변을 맴돌다 떨어지는 떡고물이나 주워 먹고 사는 관변단체 소속의 설익은 예술가들이라는 것입니다.

 본인의 생각으로는 도심재생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제대로 된 사람의 유치라고 봅니다. 즉 시설물에 대한 투자가 아니라 사람에 대한 투자가 마산을 살리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백인 닷컴 사진)


 부림시장만 해도 그렇습니다.
 이곳을 비단 전문점 내지는 한복전문 상가로 특화한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는데 사실 진주나 부산진 시장과 비교해보면 규모면에서 어차피 경쟁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마산의 부림시장 한복점이 경쟁력을 가지려면 대한민국 최고의 한복 디자이너를 유치하는 방법이 최선이라고 봅니다. 유명 디자이너의 옷을 맞추어 입기 위하여 연예인을 비롯해 전국적 유명 인사들이 마산을 찾아오게 하는 것입니다. 시설물에 투자하는 자금에서 절반만 뚝 뿌질러 사람에게 투자를 한다면 창동과 오동동은 사람으로 붐빌 것이고, 사람들이 붐비기 시작하면 건물주들은 스스로 건물을 개조하기도 하고 새로운 건물을 짓기도 할 것입니다.

 도심 재생의 길을 시설물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배달래 작가와 같은 훌륭한 사람에서 찾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공무원들은 시설물을 사랑할 것이 아니라 사람을 사랑하는데 눈을 떠야 할 것입니다.
 

Posted by 땡삐 선비(sunb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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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파비 2011.05.06 16: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주 훌륭한 지적이십니다. 맨 아래 100인닷컴 사진은 배달래님의 공연이 끝난 후 뒤풀이 모습입니다. 꽉찬 식당 손님들이 모두 우리 식구들이죠. 우리가 창동에 매상 좀 올렸습니다. ㅎㅎ

  2. 커서 2011.05.07 14: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우 좋으신 말씀! 그런 점에서 훌륭한 블로거 유치한 창원시는 앞으로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날듯

    그날 요트 정말 감사했습니다. 애들이 신이나서 일기장에도 적었더라구요. 다음에 부산에서 맛있는 거 대접해야하는데... ^^

  3. 선비 2011.05.07 19: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커서님과 달짝지근님 같은 파워블로그를 모실 수 있덨다는 것이 제게는 영광이지요.ㅎㅎㅎ

  4. 임종만 2011.05.09 12: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도시의 경쟁력 시설이 아닌 사람에서 찿자는 말 신선하네요 ㅎㅎ

  5. 참교육 2011.05.10 06: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기가 있긴 있었던 모먕입니다.
    많은 분들이 포스팅을 했네요. 잘보고갑니다. 부처님 오신날 행복하게 보내시십시오.

  6. 커피믹스 2011.05.11 13: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선한 아이디어십니다. 공무원들 머리가 유연해 지는 그날까지... ㅋㅋㅋ

  7. 선비 2011.05.11 20: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연식은 좀 되어도 주행거리는 신선한 10대 정도라고 하면.....ㅎㅎㅎㅎ

  8. 배달래 2011.05.12 11: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비님....^^ 감사합니다..^^
    담에도 창동에서 뵈요...^^

  9. 2011.05.21 11: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0. 2011.05.21 11: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임항선에서 만난 봄처녀?


 며칠 전 신문에서 창원시민들이 선호하는 동네로 성산구가 으뜸이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이유로 문화시설과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

 대체로 사람들이 창원을 이야기하면 도로도 좋고, 공원도 잘 가꾸어져 있고, 도시가 깨끗하게 정비되어 있어서 쾌적한 도시라고들 합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사람 냄새가 나고,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고, 사람 사는 맛이 느껴지는 그런 동네와는 전혀 거리가 먼 동네가 창원이 아닌가 싶습니다.

  쭉쭉 뻗은 도로는 건방져 보이고, 도로변의 조경수는 성형 수술 표티가 나는 인조얼굴 같고, 이리 보나 저리 보나 똑 같은 아파트와 주택들은 개성이라고는 없는 판박이들이고...

 한마디로 찐 맛이라고는 없는 동네가 창원이라는 이야기이지요.

 그래서 정이 가지 않아 귀산 촌구석에 처박혀 산답니다.

 (순전히 개인적인 취향 ㅎㅎㅎ)


 반면에 마산의 오동동 골목길을 걸어보면 어깨가 부딪치고, 찌짐 굽는 냄새가 있고, 술꾼들의 술주정 소리부터 장사꾼들의 호객 소리가 시끌벅적한 그런 풍경이 있습니다.

 창원의 상가를 걸어가면 아무도 나를 아는 척 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 도시의 미아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지요.

 그러나  마산의 상가 골목을 걷노라면 설사 아무도 나를 아는 사람이 없을지라도 누군가가 불러 줄 것 같은, 불러주지 않아도 아무 집이나 들어가면 외상이라도 먹고 가라 할 것 같은 그런 정감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창.진이 통합되면서 어떻게 하면 마산을 사람 살만한 동네로 만들 수 있을까 하고 모티브를 찾아보았습니다.

 그 중에 눈에 띄는 것이 임항선 철도였습니다.

 임항선 철도는 지금 일주일에 5회 정도 열차가 운행된다니 거의 폐도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철도를 어떻게 이용하면 마산의 도심재생에 기여할 수 있을까 하고 현황부터 파악하기 위하여 마산시청에서부터 석전동 마산역까지 철길을 걸어보았습니다.

 이곳저곳을 살피느라 느린 걸음으로 2시간 반 정도가 소요되었고, 마산역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마산시청으로 되돌아갔습니다.




 그때가 봄인지라 계절도 좋았지만 철길을 걸으면서 회성동쪽에서 불어오는 상쾌한 바람은 그야말로 봄 처녀가 나를 감싸는 것 같았습니다.

 말하자면 철로가 도심을 관통하는 바람의 통로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입니다.

 ‘ECO-CITY 창원을 만든다고 하는데 정작  ECO-CITY는 바로 여기에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철로 옆에 남아있는 철도부지에는 각종 쓰레기 투기로 방치된 곳도 있고, 부지런한 사람들이 남새밭을 가꾸어 채소를 심어 놓은 곳도 있고, 북마산 시장통에서는 난전을 벌여놓은 곳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철길 옆으로 60년대나 70년대에 지은 그만그만한 오막살이집들이 허름한 모습으로 도열해 있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아마도 철도부지를 무단점유하고 있어서 철거를 하고 다시 건축을 하기에는 허가가 나지 않으므로 그냥저냥 살고 있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사연이야 어쨌든 간에 도시의 한쪽에 우리의 60년대, 70년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모습도 과히 나쁘지는 않다고 봅니다. 살아있는 근대건축박물관이라고나 해두지요.


 중간에는 마산시에서 그린로든인가를 만든답시고 조경과 각종 기구를 설치하고 보도블록을 까는 공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무용지물로 방치하고 있던 공공자산을 새롭게 활용한다는 측면에서는 일단 긍정적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도 문제는 있어 보입니다.


 그 첫째는 휀스의 설치입니다. 휀스를 설치한다는 것은 사람의 접근을 거부한다는 것입니다. 놀이공간, 휴게공간으로 시민에게 다가가고자 하는 사업인데 휀스를 설치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모순입니다.

 물론 기차가 지나가니까 안전을 염려해서라고 하지만 하루에 한 번도 체 다니지 않는 교통을 염려하여 그렇게 한다면 하루 수 만대의 자동차가 지나가는 자동차 도로변에도 모조리 휀스를 설치하여야 할 것입니다.


 다음은 지나치게 인위적이고 특성이 없다는 점입니다.

 기차길은 기차길 같은 운치가 있어야 하는데 도심공원 어디에나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조경과 시설물들로 인하여 오히려 기차길의 운치를 잃어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굳이 많은 시설물과 조경식재를 하기보다는 기차길의 풍경과 마산이 지니고 있는 풍경을 제대로 분석하여 임항선 철길만이 지니는 특유의 경관디자인이 있었으면 합니다.



 다음으로 이 임항선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비록 미미하지만 해양화물 운송을 전혀 배제하지는 못할 것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군사용으로도 이 철로를 폐쇄하기는 곤란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철로를 이용한 교통수단과 관광자원화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지금도 무학산은 전국에서 유명한 등산코스 중의 하나입니다. KTX가 개통되고 나면 창원시가 하기에 따라서는 전국에서 더 많은 등산객이 마산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마산역에서 KTX를 하차하여 임항선 전동열차를 갈아타고 문신미술관 앞에서 하차하여 문신미술관 구경을 하고 무학산 등반을 한 다음 다시 전동열차로 부둣가에 가서 수상택시를 타고 마산만을 한 바퀴 핑 돌고나서 어시장에 가서 싱싱한 회를 먹는다고 상상을 해보면 그림이 꽤 괜찮지 않나요.



 전동열차는 철로궤도와 포장도로 겸용으로 제작하고, 신마산 부두역에서 어시장을 거쳐 3.15탑까지의 도로 일부만 다듬으면 관광자원으로 뿐만 아니라 대중교통으로서 교통분담 기능까지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철로 수리용 차인데 응용하면  재미있는 물건 나올 듯..>>

 

마산의 도심재생을 재건축, 재개발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다듬고 가꾸어 가면 창원보다 훨씬 사람냄새 나는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들어 갈 수 있다고 봅니다.


 마산 화이팅!!!



 


Posted by 땡삐 선비(sunb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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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윤기 2010.10.13 16: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임항선 철길에 관심이 많은데.... 맨 아랫쪽 사진의 철도수리용 차량 한 번 타봤으면 좋겠네요. 진짜로 재밌을것 같습니다.

  2. 선비 2010.10.14 08: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윤기님도 임항선에 대해 많은 글을 쓰셨군요.
    방부목 육교, 분수대, 휀스 등등 너무 인위적이면서 돈만 많이 투자되는 그린웨이 사업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3. 임종만 2010.10.16 15: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랫만에 가슴에 담을만한 글 잘 읽었습니다.
    임항선 철길만이 지니는 특유의 경관디자인을 가미하여
    마산의 역사성이 묻어 날 수있는 그린웨이...
    많은분들의 생각들을 담아야 겠군요.

    저 역시도 선비님과 생각이 다르지 않습니다.
    기존 창원과 마산중 사람냄새나는곳은 마산이지요.
    그린웨이뿐만 아니라 현재의 갖추어진 여건을
    충분히 활용하여 기존 창원과 차별화된 역사와 문화도시로
    발전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더럽다고 뜯을것이 아니라 역사성을 가미한다면
    세계속의 유명한 도시로 거듭날수 있을 겁입니다.
    다만, 묵고산다고 작은 터만 있으면 오골티리 건물을 짓거나
    도심속 흙만 보이면 콘크리트로 덮어버려 삭막한 도시입니다.

    한일합섬과 자유수출이 있었기에 더했죠.
    그래서 이 부분, 즉 도시녹화는 분명히 되어야 할것입니다.
    다른것은 옛것을 살리는 쪽으로 하고요...

  4. 장복산 2010.10.17 16: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차가 제대로 다니지 않는 철로는 진해도 매 한 가지입니다.
    나는 새로 도시철도 건설한다고 예산낭비하지 말고 기존에 할용가치가 떨어진
    철도 노선을 활용하는 방안도 생각 해 보았습니다.

    진해선도 하루에 여객열차가 두번정도 운행을 하는데 한 두사람을 테우고
    진해역을 출발하는 기차를 보고 있습니다.
    진해역에서 장천항으로 이어지는 철길은 거의 기차가 운행하지 않고 있지요.

  5. 삼식 2010.10.25 22: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번주에 광주, 여수, 전주의 환경단체분들이 마산의 임항선을 답사하려 왔답니다.
    이윤기 부장이 소개만하고 뺑이를 쳐서 저가 이끌고 다녔던길이 고스란이 소개되었군요
    회윈2동사무소에서 서항입구까지 답사했답니다.
    가슴에 담고픈 사연은많았지만, 대충애기하고 말았답니다.
    앞으로 추억의 사연들을 담아, 관광꺼지라 되었으면합니다.

    *-*그리고 누구든, 어디서 오드라도 자연스리, 마산을 자랑스럽게 소개하게 될 날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