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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내 주변 이야기

삼귀초등학교 동문회와 옛이야기.

선비(sunbee) 2012. 10. 15. 16:20

 오늘은 폐교인 귀산초등학교의 경남해양캠프에서 삼귀초등학교 총동문회 행사가 두 번째 개최되었습니다.
 오늘 행사에는 예상 외로 400여명의 많은 동문들이 모였는데 이렇게 많은 동문들이 참석한 데는 아마도 이 학교와 함께 이 지역 사람들이 겪은 유달리 아팠던 기억과 향수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삼귀는 귀현, 귀곡, 귀산이라는 3개 마을을 합하여 삼귀라 하는데 귀현, 귀곡 마을은 산업단지에 편입되어 모두 철거가 되고 현재는 귀산마을만 남아 있는 셈입니다.

 

 

경제개발5개년계획과 창원기계공업기지의 탄생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개발5개년계획에 따라 1972년부터 국가산업의 목표를 경공업중심에서 중화학공업 중심으로 전환함과 동시 한정된 국토의 효율적인 이용을 기하고 대도시를 중심으로 과밀한 인구 및 산업시설의 지방  분산을 위하여 지방의 거점 산업도시를 계획하였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생전에 행정수도를 충청지역으로 옮기려 하고 지방의 거점도시를 개발하려고 하였으니 노무현 대통령에 앞선 지방분권의 원조라 할 수 있겠죠)

 

 

-박정희 대통령의 행정수도 프로젝터 지침

 

 

이 계획에 의하여 구미는 전자공업단지, 창원은 기계공업기지, 여천은 화학공업기지, 온산은 비철급속공업기지로 지정되었으며, 이런 산업단지를 조속히 개발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도시계획법이나 공공용지취득에 따른 손실보상에 관한 법률에 의해서는 법적 절차를 거치는 과정만으로 수년의 세월이 소요되므로 기존의 거추장스런 법률을 모두 생략하는 강력한 법률이 필요하였습니다.

그 결과 1973년 12월 24일 산업기지개발촉진법을 제정하고 1974년 1월 31일자로 산업기지개발공사를 발족하였습니다. 이 법률은 공무원 입장에서 보면 아주 편리한 법이고, 당하는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악법 중의 악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창원공업기지 내 거주하는 주민들은 이 법률에 의하여 땅을 뺏기다시피 내놓고, 농경생활을 하다가 산업도시에 적응하지 못하는 원주민들은 고향에 살면서도 이방인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한꺼번에 늘어난 산업체의 노동력이 부족하자 정부는 반송아파트를 건설하여 서울의 근로자를 강제로 이주시켜 정착토록 하기도 하였습니다.

 

 

 

 

 

       -  옛 귀곡(구실)마을 전경

 

 

  -현대양행의 공장부지로 조성하는 공사장면

   -현재 두산중공의 모습


 

박정희 대통령과 이희소 박사의 소망과 비운이 서린 귀곡마을

 삼귀초등학교의 역사도 이와 궤를 같이 하였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창원에 기계공업산업을 유치하는 한편 이 곳 지형이 사방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전시에는 천혜의 군사적 요새임을 감안 국방산업기계 즉,  탱크나 포탄을 만드는 무기공장을 우선하여 입주시키고 지금의 두산중공업 공장이 있는 귀곡동에 원자력공장을 짓기로 하였습니다. 추측컨대 박정희 대통령은 이곳 원자력 발전설비 공장을 모태로 결국 원자탄을 개발하고자 하였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핵무기 개발을 시도했다가 의문사한 비운의 과학자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의 영화 주인공 이희소 박사와 박정희 대통령의 소망이 이곳 귀곡에 이르고 있었다 하겠지요.

 

 아무튼 이런 연유로 정부는 1977년부터 이곳 귀곡산업단지를 강력히 밀어붙였는데 구실포도로 유명했던 귀곡, 귀현마을과 삼귀초등학교는 흔적 없이 사라지고, 주민들은 보상 받은 돈으로 일부는 두대동 이주단지로 이주를 하기도 하고 마산이나 객지로 떠나기도 하고, 또는 일부 주민은 귀산동으로 이주를 하여 이곳에 학교를 짓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78년 8월에 학교를 개학하였습니다.

 

 

-옛 삼귀초등학교의 전경

 

 

 

 

세숫대야를 들고 등교를 하던 학생들의 기구한 사연들

 오늘 동문회 장소에는 졸업기수별로 표식을 붙였는데 삼귀초등학교는 31회가 마지막이고 다음부터는 귀산초등학교 1, 2회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삼귀초등학교 30,31회와 귀산초등학교 1.2회의 졸업사연은 좀 복잡합니다.
 삼귀초등학교 30회 졸업 기수들은 6학년 2학기에 귀산초등학교로 이사를 하였지만 졸업장은 ‘마산 삼귀국민학교’ 졸업장을 받았고, 그 밑의 5학년 기수들은 ‘마산 가포국민학교 귀산분교’ 졸업장을 받았는데(삼귀동은 ‘73년 마산시 행정구역에 포함되었다가 ‘80년에 창원시로 편입) 이름 붙이기가 애매하여 삼귀초등학교 31회라 자칭하고 있으며, 4학년이던 기수들이 '창원 귀산국민학교' 1회 졸업생이 되었다고 합니다.

 

 삼귀초등학교에서 귀산초등학교로 이사를 온 이 무렵의 학생들은 책가방과 함께 세숫대야를 들고 학교에 갔는데 그 이유는 학교 운동장에 있는 돌을 골라내는 부역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그 당시로선 화단에 나무를 심고 운동장을 다듬고 하는 일이 어린 아이들의 몫이었던 것입니다. 

 

 주거단지로 개발된 지역의 이주민들은 그나마 그 근처에서 새롭게 둥지를 틀기도 하지만 이곳 귀곡, 귀현 마을은 모조리 현대양행공장부지로 (그 뒤 전두환 정권 때 국영기업 한국중공업으로, 김대중 정권 때 공장일부를 볼보에 매각하고 두산중공업으로 변경) 개발하는 바람에 망향비 하나 세울 곳도 없고, 돌아갈 고향집도 없는 신세가 되고 보니 오늘과 같은 동문회가 아니면 고향 친구와 친지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렇게 가슴 아픈 사연들이 있는 그들이기에 동문회 모임은 동문들의 모임임과 동시에 일가친지를 만나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하늘에는 에드벌룬과 만국기가..

 

 

삼귀초등학교 31회와 귀산초등학교 1회2회

 

-푸짐한 상품을 준비..

 

-악단들도 여럿이 동원

 

=강기윤 국회의원과 배종천 창원시 의장도 참석 

 

-전직 회장단을 포함한 어른들

사물놀이로 먼저 전을 폅니다.

민요가수의 구성진 우리 가락이 노인네들의 흥을 돋굽니다.

짝퉁 나훈아가 사람들의 혼을 뺍니다.

기수별 장기자랑에서 26회 누군가가 섹소폰으로 한껏 폼을 잡습니다.

이에 뒤질세라 몸매 날씬한 어줌마가 무대를 달굽니다.

 

 

이런 와중에 넋이 나가라 구경을 하기도 하고 신나게 부어라, 마셔라 하는 31회 막내들...

 

 

 


 2년마다 열리는 삼귀초등학교동문회 자리는 이런 남다른 추억과 감회가 있기에 더욱 의미 있는 자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삼귀초등학교 동문회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