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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11.02 성당의 성가대가 절에서 찬불가를 부르고. . . 용암선원 탱화불사 점안식에서
  2. 2014.08.05 꿈 해몽해 주실 분 없나요? - 배내골 펜션에서 (2)
  3. 2012.12.12 뭐니뭐니 해도 육보시가 최고?
  4. 2012.12.10 반성문을 쓰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2)

 지난 이태에 걸쳐 겨울 동안거 3달 동안 내가 머물던 거창군 가북면 용암선원이라는 절에서 11월 1일(음력 9월 9일) 탱화불사 행사가 있었습니다.
 이 절의 주인인 정묘스님이 혼자서 지내는 토굴이기도 하거니와 스님은 포교보다는 오로지 참선공부에 몰두하는 스님인지라 시봉하는 사람도 없고 신도도 별로 없으므로 이런 큰 행사를 앞두고는 스님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모든 것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많지 않은 손님들이지만 작은 절집 안에 모두 모실 수 없어 부득불 야외에 손님을 모실 수 밖에 없으므로 내게 나무로 야외테이블을 짜고 임시용 화장실을 좀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하여 10월 29일 절에 왔습니다.

 그리고, 난생 처음 절에서 하는 탱화불사와 부처님 점안식 행사를 구경하게 되었습니다.

 

 

 

 

-새로 설치한 탱화와 부처님상이 행사 전에는 가려져 있습니다-

-부처님 경전의 염불을 마친 다음 가림막을 걷어 냅니다.

 

-용암선원의 정묘스님이 찾아주신 손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성당의 성가대원들이 찬불가 노래를 부릅니다.

정묘스님과의 특별한 인연으로 비록 종교가 다르지만 배척하지 아니하고

 사전에 연습까지 해가면서 반주와 노래를 준비해 주었다고 하니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세상을 구제하는 종교란 모름지기 이런 것이 아닐까요.

 

-이날 행사에 참석한 거창의 멀고 가까운 스님들 중에서 참선수행을 오래 하신 월잠스님께서 법문을 하십니다.

-그러는 동안에 신도님들은 5가지 복을 준다는 5색실을 붙잡고 밖에서 함께 염불을 따라 하기도 하고 기도를 하기도 합니다.

 

 

-한편 이날 참석하신 손님들께 대접할 음식을 뷔페식으로 차리고 있습니다.

 

-점안식을 마치고 난 후 드러난 화려한 탱화의 모습입니다.

탱화는 인공물감으로 그리기도 하지만 이 탱화는 천연 돌가루를 갈아서 그렸는데 제작 기간이 무려 8개월이나 걸렸다고 합니다.

-이런 모습에 관심이 있었는지 까마귀 한 마리가 오랫동안 호두나무 가지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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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가북면 | 용암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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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땡삐 선비(sunb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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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에 꿈을 꾸다 잠이 깼는데 꿈의 의미가 하도 의미심장하여 한 줄 남겨볼까 합니다.
 두 개의 꿈이었는데 그것이 별개로 꾼 것인지, 함께 꾼 것인지 분명치는 않습니다.

 

 먼저 하나는,
 두 어린 아이가 책을 보고 있는데 한 아이는 어릴 적 내 딸 같기도 하고 다른 아이는 모르는 아인데 이 아이는 무엇이든 한 번 보고나면 모두 기억하는 영리한 아이였고 모두가 이를 부러워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는 엉뚱하게도 “기억하는 그 자체마저 잊었으면 한다.”고 하였습니다.

 ‘기억하는 그 자체마저 잊는다.’라는 그 말의 뜻은????

 

 또 다른 꿈 하나는,
 악마의 여왕인 듯한 여자가  교수대 목줄 아래 한 여인의 손을 묶어 세워놓고 말하기를,
 “너는 사물은 가치가 없는 것이라고 말 하지만 너의 목숨이 끊어지고 나면 무엇으로 말을 하며, 너의 자식은 너의 몸이 죽음에 슬퍼하느니.
 육신이 없고 사물이 없는 가운데 이 세상 모든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하자 교수대의 여인이 말하기를,
 “아가야, 들어라.
 세상의 가치가 사물에 있지 않음을 다섯 가지로 설명하겠다.
 첫째, 내가 너를 얻었을 때 나는 너 하나를 얻고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얻은 냥 기뻤다.
 둘째, 네가 나의 젖을 빨다 한 번 방긋 웃음에 나는 이 세상이 모두 웃는 것 같은 환희에 젖었다.
. . . . . . . . . . ”
 꿈 속의 여인은 뭔가를 계속 말했지만 나는 나머지 세 가지를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이런 꿈을 꾼 데는 아마도 어제 조계종 종정스님인 진제선사를 친견하고 난 후 나의 심리상태의 연장선에 있는 가운데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하지만 참으로 묘한 꿈인 것 같습니다.

 어제 진제선사를 친견한 배경은 이렇습니다.

 

-법문을 하는 진제 대선사님-


 어제는 어머니 49재일이었습니다.
 당신께서 가시기 며칠 전에 “너의 아버지 갔을 때 49재를 못 지내서 늘 아쉬웠는데 나는 죽거든 49재를 지내다오.” 하셨습니다.
 해서 내가 두 해에 걸쳐 동안거 기간 지냈던 용암선원 정묘스님께 부탁을 했더니 긍정적인 답을 하셨는데, 상 중에 와서 염불을 하고 가면서 “아무래도 거창까지는 거리도 멀고, 용암선원과 나는 복을 짓고 공을 닦는 포교보다는 참선수행이 우선이니까 부산 해운대의 해운정사에 모시는 것이 좋을 것 같다.”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는 처음에는 정묘스님께 좀 섭섭하기도 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진제스님은 남해 고향분이기도 하고 우리 형제들에게 유도와 서예를 가르쳐 주신 해산 임형택 선생님의 인척이기도 하여 해운정사 창건 초기에 어머니께서는 자연스레 이곳을 자주 찾았던  인연이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영혼도 생소한 절에 가는 것 보다 익숙한 절에 가는 것이 편하시리라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그리고 이참에 아버지도 함께 재를 올리기로 하여 어제 막재를 치렀습니다.

 

-해운정사의 대법당 입니다. 초하루날에는 큰 스님의 법문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습니다.

'원통보전'   이 편액은 우리 형제에게 유도와 서예를 가르쳐주신 해산 임형택 선생님의 글입니다.-

 

 

 나는 재작년 11월부터 석달간 마음을 수양하고자 거창의 용암선원에서 머물면서부터 성철, 향곡, 진제 선사님들의 선문답 법문들을 보면서 ‘참나’를 찾는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불가에서 제시한 화두공안에 대해 나름 사유하고 사유하여 공부한 바를 이날 진제선사님께 점검 받기로 하고 이를 글로 적어냈습니다.
 이를 본 선사님께서는
 “그게 그런 것이 아니구먼.
 그게 그렇게 쉽게 알 것 같으면 . . . . .
 스님네들이 몇 십년동안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고 공부를 해도 알기가 어려운데,
 이 공부는 팔만사천 경전을 아무리 아래로 꿰고 위로 꿰어도 알 수 없고,

 제 아무리 세상 공부를 많이 한 지식인이라 할지라도 알음알이 지식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으로

 오로지 일념삼매에 푹 빠져 죽었다 살아나야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니 앞으로 더 공부를 하소.”
라고 하셨습니다.

 

-해운정사에서 볼 수 있는 특별한 동상들입니다.

부처님의 심인법을 중국에 전한 달마대사와 한국의 법맥을 이어온 선사들의 영정입니다-

 

 꿈 속 동자가 “기억하는 그 자체마저 잊었으면 한다.”는 말이나 진제선사님의 “죽었다 살아나야 알 수 있는 것”이라는 말은 한량없이 어려운 말이고,
 교수대에 선 여인이 ‘내가 너를 얻었을 때 나는 너 하나를 얻고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얻은 냥 기뻤다. 네가 나의 젖을 빨다 한 번 방긋 웃음에 나는 이 세상이 모두 웃는 것 같은 환희에 젖었다.’라고 한 말은 백번 천번 공감이 가는 말인 것 같습니다.

 

 누가 막히고 뚫린 이 꿈의 경계와 여인의 나머지 세 마디를 해몽해 줄 분 없나요? ㅎ ㅎ ㅎ

 

 

 

Posted by 땡삐 선비(sunb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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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씽크탱크 2014.08.07 12: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상을 죽이라는 뜻입니다.아상이란 에고즉 자아를 의미합니다. 더 쉽게 말해서 내 생각을 내세우는 것을 의미합니다..기억하는 것 조차 잊어라는 말은 세상에 태어나서 배우고 익혔던 생각이나 관념등을 잊어라는 말입니다..죽었다 살아나야 알 수 있다는 것 또한 내 생각을 죽여야 알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교수대의 여성이 아기를 빗대서 설명을 잘 하셨습니다..아기가 태어날때는 세상에 대해서 어떠한 관념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관념을 가지고 있지 않기에 판단도 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 세상을 아기가 바라보는 시선으로 본다면 세상이 바로 극락이 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성철스님은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산과물을 있는 그대로 봐라보라는 말입니다 산은 어때야 한다는니 물은 어때야 한다느니 하면서 판단을 하지말고 내 생각을 내세우지 말라는 말입니다
    내 생각에 치우쳐 사물이나 현상을 판단하지 ㅇ살라는 말입니다..
    결국 깨달음은 자신의 아상 즉 생각을 죽이는데서 시작입니다..
    결국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번뇌는 내 아상에서 시작하는 것을 알려주는 꿈입니다.

 내가 머무르는 거창군 가북면 용암리라는 동네는 해발 700미터가 넘는 고지대로 수시로 눈이 오고, 눈이 왔다하면 잘 녹지를 않아 교통이 두절되기 일쑤이므로 겨울나기가 몹시 힘든 동네입니다.
 이 동네는  과거 100호 넘는 가구가 살았던 산골에서는 꽤 큰 동네였는데 이래저래 다 떠나고 현재는 약 25호가 사는데 그마저 연세 많은 노인들은 요양병원에 장기 입원하였거나 자식 집에 왔다갔다하는데  사실상 살아서 돌아오기는 힘들 것이라는 말을 감안하면 20여 호가 산다고 볼 것입니다.

 

 산골동네인 만큼 마을길은 경사가 급하여 눈이 조금만 있어도 한 발짝을 옮길 수 없는데 12월 6일 아침에는 밤새 내린 눈이 20센티 이상 쌓였습니다.
 70대~80대 노인들뿐인 동네에 이토록 눈이 내렸으니 나는 아침 일찍 사람 다닐 정도의 길이라도 내자며 혼자 눈을 밀며 노인정 앞을 지나고 있는데 지난 밤 마을 노인정에서 함께 주무시고 일어난 할머니들이 눈 때문에 집엘 가지 못하고 있었는데 길을 터줘서 고맙다며 기어이 커피 한 잔하고 가라 하였습니다.
 하여 노인정에 들러 초면 인사를 하고 용암선원에 머무르게 된 사연을 간략히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리고 동네에 노인네들 밖에 없어 아무래도 제설작업은 젊은 내 몫일 것 같아 했다고 하자 할머니들은

“암~ 뭐라 캐사도 육보시가 최고제.

 부처한테 백번천번 절하는 것 보다 이리 좋은 일 하는 기 훨씬 복 받는 일이제이.”하며 마냥 고마워  했습니다.

 그런 후 시간이 좀 지나자 여기저기서 남자 서너 명이 나와 함께 길을 넓혀 갔는데 대충 눈치로 보아 내가 최연소인 것 같았습니다. 아무튼  버스가 다니는 큰길까지 길을 다 내고 나니 점심때가 되어 선원으로 돌아왔습니다.

 

 

- 일단 초벌로 인도부터 냅니당~

 

 

-결국에는 차량길도 엽니다.

 

 

 그 이틀 후 나는 창원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거창읍내 빵 굽는 집에서 산 식빵과 정묘스님이 우편으로 보낸 연근 몇 뿌리를 가지고 노인정엘 갔습니다.
 눈 때문에 농사일을 할 수 없어서 그런지 비교적 거동이 자유로운 노인네들은 다 모인 셈이고 삶은 오징어 안주에 술상이 차려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를 처음 보는 할머니들도 나를 잘 아는 사람처럼 “아이고 고마븐 사람이 동네 들어 왔네 그려”하며 자리를 권하고 술을 따라 주었습니다.

 눈치로 보아 내가 도착하기 전에 노인들끼리 내 이야기를 주고받았던 것 같습니다.

 외지에서 뜬금없이 남의 동네 절집에 들어와 절집 주변의 대나무를 베어내고 밭의 잡풀을 베어 불을 질러 태우고 하는 내 모습들을 마을 사람들은 무심히 보아넘기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 이자리에 모인 분들이 동네 주축입니다.

 

 

-이 분들이 그나마 노인정의 신참이라 안주를 장만하고.... 

 

 

 사실 내가 용암선원에 入院하는 날 향림사라는 큰 절로 동안거를 떠나는 정묘스님은 내게 시간표를 주고 갔는데 이 스케줄대로 하면 하면 나는 하루종일 법당에 앉아 참선만 하고 있어야 합니다.
 한데 이 시간표대로 해보려고 가부좌를 하고 앉았으려니 무르팍이 깨어지고 허리뼈가 부스러지는 것 같은 고통에 도저히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여 나는 이를 대신하는 핑계꺼리를 찾았습니다.
 “부처님이 어디 참선하여 도 터는 인간만 부처님이라 했던가?,  머리가 안 되면 몸이라도 대신하여 도 닦는 사람들 열심히 도와 도를 닦을 수 있도록 노력봉사하면 그것도 부처가 되는 길 아니던가?”하며 내가 즐기며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하기로 하였습니다.

 이 절집 주인인 정묘스님은 여승인지라 힘든 일은 잘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년 중 동안거와 하안거를 포함 200일 이상을 집을 비우다보니 주변의 텃밭은 그야말로 쑥과 대나무로 쑥대밭이 되어 있었습니다. 하여 나는 이틀에 걸쳐 쑥대는 베어다 불살게로 만들고, 대나무는 베어서 잡풀과 함께 태워 주변 정리를 좀 하였습니다. 

 

                                 -앉아서 머리로 도 닦는 것보다 몸으로 허드레 일하는 기 훨~

 

 

 그리고 눈이 많이 내린 날 내가 동네 사람들을 위해 봉사할 일이 뭐가 있겠나싶어 눈을 한 번 치웠을 뿐인데 의외로 육보시의 효과는 컸습니다.
 삶은 오징어 안주에 소주를 서너 잔 얻어 마시고 일어나려는데  할머니들은 혼자서 밥해먹기도 힘들고 한데 노인정에서 저녁까지 함께 먹고 가라했습니다.
 마음이야 꿀떡 같았습니다만 형식적이나마 하는 저녁예불이 있는지라 사양하고 절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나는 이 경험을 통하여 깨달은 바가 있습니다.


 굳이 내가 생각하는 신념이나 소신을 가지고 세상에 봉사하고 기여하려 하지 말고,
 상대가 원하는 봉사와 기여를 하는 것이 훨씬 사회를 풍성하고 따뜻하게 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고상한 영혼의 보시보다는 작은 육보시가 훨~  약효가 좋다는 사실을 ...  

 

 여러분 중에 혹시 나의 육보시가 필요한 분은 댓글로 남겨주시면 · · ·하겠습니다용~

 

 


Posted by 땡삐 선비(sunb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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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한 평생 살다보면 이런저런 일로 부모님께, 선생님께, 직장에, 또는 자신에게 자신의 잘 못을 뉘우치는 반성문을 한번쯤은 써본 경험들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쓰는 반성문은 대개가 자신이 행한 행위가 남의 눈에 드러나 타인으로부터 지탄 대상이 될 만큼 심각한 잘못이 있을 때 나를 강제할 수 있는 타인의 강요에 의해 하는 수 없이 쓰게 됩니다.
 이 경우 타인의 강요에 의해 반성문을 쓰기는 하지만 솔직한 예기로 그 순간을 모면하려는 것이지 진정 자발적으로 자신의 행위를 반성하고 뉘우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나는 거창에 있는 용암선원이라는 절집에서 집주인인 정묘스님이라는 분의 권유에 따라 절을 하면서 <108배 대참회문>이라는 걸 읽어보면서 진짜 반성문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용암 선원의 풍경입니다.-

 

 

 

 


 그 중 일부를 소개합니다.

45. 내가 살고 있는 지구를 생각하지 않은 것을 참회하며 절합니다.
46. 세상의 공기를 더럽히며 살아 온 어리석음을 참회하며 절합니다.
47. 세상의 물을 더럽히며 살아 온 어리석음을 참회하며 절합니다.
48. 나만을 생각하여 하늘과 땅을 더럽히며 살아 온 어리석음을 참회하며 절합니다.
49. 나만을 생각하여 산과 바다를 더럽히며 살아 온 어리석음을 참회하며 절합니다.
50. 나만을 생각하여 꽃과 나무를 함부로 자르는 어리석음을 참회하며 절합니다


 사실 지금까지 마누라를 포함 여자들이 ‘108배를 합네, 3천배를 합네.’하는 이야기들을 하면 속으로 “미쳤나, 그 정성으로 부모님께 그만큼 절을 했으면 효자 나고 열녀 났다고 할낀데, 그 복 다 받아서 어쨌는고?”하고 비웃었습니다.
 그리고 이 곳 용암선원에 들어서도 집주인이 시키는 것이니까 하는 수 없이 108배를 하기는 하지만 절하다 잠시만 엉뚱한 생각하다보면 그만 횟수를 잊어버리므로 108배를 했는지 몇배를 했는지 나도 그만 모릅니다. 이런 상황을 스님이 눈치를 채고 권유를 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108개의 참회문을 한구절한구절씩 읽어내려 가니 우선 절하는 횟수만이는 정확하다고 보아야겠지요.  

 

 

 

 


 아울러 그 내용 또한 위에서 보는 바와 같습니다.

 

 나는 한 환경단체의 회원이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이처럼 자연에 경외심을 가져 본 적이 없고, 내가 살아오면서 자연에 저지른 죄악이 이정도인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이 참회문을 언제 누가 썼는지는 모르지만 천년, 2천년 전 이글 쓸 시대는 분명 산업화 이전의 농경사회로 그 시절이면 환경을 훼손하고 말 것도 없이 자연에 순응하며 살던 시절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지금처럼 환경오염이 심각하여 환경운동을 해야 할 정도의 상황도 아니었습니다.
 그런 시대에 작성된 참회문이  지금의 환경운동단체가 “21세기 환경보전 선언문”에 넣어도 전혀 손색이 없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남을 위해서도 아닙니다.
 자신을 위해서, 우리의 다음 세대를 위해서
 “ 내가 살고 있는 지구를 생각하지 않은 것을 참회합니다.”

 이 정도의 반성문 한줄 정도는 써가면서 살아갔으면 합니다.

 

 

 


  

Posted by 땡삐 선비(sunb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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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장복산 2012.12.10 17: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번에 단디 반성하고 오세여.~!!
    그간 술 먹은 것,
    그간 담배 핀 것,
    그간 음식점 마다 가면 여보.~!! 하고 부른 것,
    그간 xx 한 것,
    모두 반성하고 참회해서 편한 마음으로 돌아 오세여.!!

    아참..!!
    그러면 선비님허구 술도 몬 마시면 잼없는 세상이 되잔여.~
    그럼 가끔 술은 마셔도 된다고 허세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