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4.11.27 죽기 전에 가봐야 할 명소 '카파도키아' (12)
  2. 2014.11.05 딸과 둘이 자유여행 - 이스탄불에서 날치기와 페에스북 (6)

오늘은 딸과의 유럽여행 터키 카파도키아 이야기입니다.

동남아 관광상품 중 가장 유명 상품 중의 하나가 베트남의 하롱베이와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를 묶은 패키지 관광상품일 것입니다. 그리고  웬만한 사람들은 이곳을 구경하였을 것입니다. 나도 십 수 년 전에 여행사를 운영하는 지인과 함께 이곳을 다녀왔는데 지금도 그 때의 감동이 생생합니다.

오늘날 지구상에서 가장 미개한 국가 중의 하나로 취급받는 캄보디아에 그토록 엄청난 앙코르제국이 있었다는 사실이 아무라도 쉽게 믿겨지지를 않을 것입니다.

앙코르와트가 인간이 빚어낸 걸작이라면 하롱베이는 자연이 빚어낸 걸작이지요.

 

그럼 카파도키아는???

카파도키아는 자연과 인간이 빚어낸 합작품인 셈입니다.

 

이스탄불에서 국내선 비행기로 두 시간, 그리고 공항에서 봉고버스로 숙소까지 픽업 두 시간, 이럭저럭 자정 무렵에야 숙소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숙소부터 범상치를 않았습니다. 바위를 깎아 만든 석굴 숙소인 것이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열기구를 타기로 예약되어 있어 저녘식사는 전투식량으로 대충...

   

카파도키아에 대해 내 나름 대충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카파도키아는 고대 로마의 지명(地名)으로 현재로는 터키 중부 아나톨리아에 있는 젤베 야외 박물관이다.

 300만 년 전 에르시예스 산(Erciyes 3,916m)에서 격렬한 화산 폭발이 있은 후, 두꺼운 화산재가 쌓여 굳어갔다. 그 후 세월이 흐르는 동안 모래와 용암이 쌓인 지층이 몇 차례의 지각변동을 거치며 비와 바람에 쓸려 풍화되면서 기암괴석의 풍경이 만들어졌다.

 화산재가 굳어 만들어진 응회암은 석질이 부드러워 날카로운 돌만으로도 절벽을 뚫어 집을 지을 수 있다.

 이 바위촌의 첫 입주민들은 로마에서 박해를 피해 건너온 기독교인들이었다.

 그들은 그렇게 눈에 띄지 않는 암벽과 바위 계곡 사이를 파고 깎고 다듬어 교회와 마구간이 딸린 집들과 납골소와 성채를 만들고, 지하도시까지 건설했다.

 결국 카파도키아는 자연과 인간이 공들여 함께 만든 걸작품으로 남았다. 

 

새벽부터 열기구를 타기 위해 많은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  

 

 

 -이 봉고버스를 타고 열기구 타는 곳으로 이동합니다.

이미 하늘에 오른 열기구와 한창 준비 중인 ....

드디어 우리가 탈 열기구..

 

 

 

 

 하늘에서 내려다 본 풍경-

 

 

 

 

 

 

 

 

 

 

 

하선하여 열기구 접는 일을 함께 거들어 주고..

 

그들이 준비한 와인을 한 잔씩 하고..

 

지난밤의 숙소로 돌아와 보니.. 

 

 -우리가 묶은 반 지하방의 입구..

 

 2층 식당에 올라가니..

 

 

 

 지난 밤 우리 말고도 다른 한국 관광객이 또 있었네요...

 

아침을 먹고 난 후 지상에서 본 풍경들.. 

 

 

 

 

동굴 내부의 모습들...

 

 

 

 

 -식탁인듯...

 -유골이 안치된 곳도..

 

-매점을 하기도..

 

 -입구를 막은 이 돌은 어떻게...?

 

-곳곳에 있는 굴뚝,  이곳이 지하도시?

 

-이 넓은 식당이 석굴이라면 믿어지나요???

 

점심을 먹고 여행은 계속됩니다.. 

기기묘묘한 풍경들에 카메라 밧데리가 죽어납니당~~

 

 

 

 

 

 

 

 

 -해 질 무렵의 로즈밸리 투어가 유명하다고 하여.....

 

 

 

 

 

 

 

 -지는 석양빛이 비취는 동굴을 들여다보니

 

 

 

아니나 다를까 먼저 온 관광객들이 자리 잡고 있어..

 

 

 

 

 

 

 

-마지막 석양을 보고 하산하자 햇빛이 아닌 달빛으로 길을 걷습니다.

 

 

 

아무래도 말이나 글로 카파도키아를 표현하기는 어렵지 싶습니다.

예전에 TV나 사진을 통해 이곳 풍경을 혹 보기는 하면서도 좀처럼 믿기지를 않았는데 실제로 가보니 한마디로 어처구니없는 광경이었습니다.

자연이 빚어낸 기암괴석도 그러하거니와,

아무리 연암이라고는 하지만 바위는 바위,

그 바위를 파서 집을 짓던 사람들의 고단함을 상상해 보면 가슴 한구석이 먹먹해지기도 합니다.

도대체 종교가 무엇이길래 이토록 인간이 인간답지 못한 삶을 산 것인가?

 

가장 인간이 인간답지 못한 삶을 살아온 공간!

그러나 인간이기에 가능했던 생존의 흔적!

 

카파도키아.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50대 명소 중 한 곳이라는 소문이 허언이 아님을 ....

 

 

 

 

다음 이야기는 부다페스트로 갑니당~~

 

 

 

 

...

 

Posted by 땡삐 선비(sunb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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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터키여행경험자2 2014.11.28 03: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5년전신혼여행을 자유여행으로 터키다녀왔는데 먼비행시간이 아깝지않을정도로 좋았어요 이스탄불도좋았구여 여행시간및터키다른도시도가보고싶으시면 야간버스나 터키저렴항공도 춫ᆞㄴ

  2. TISTORY 2014.11.28 10: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TISTORY입니다. 이 게시글의 이미지가 11월 28일자 티스토리 앱 카테고리 배경이미지로 소개되었습니다. 항상 좋은 글과 사진으로 활동해주셔서 감사합니다.

  3. 아이스티를 즐기는 여자 2014.11.28 12: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와 정말 멋집니다. 세계에 이런 곳이 있다는 걸 모르고 죽을 수도 있었을텐데, 멋진 사진들 덕분에 가슴 탁 트이는 멋진 광경들 잘 구경하고 또 감명받고 갑니다~ 조만간 터키 한 번 가줘야겠어요.ㅋ 불끈!

  4. homoho 2014.11.29 22: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히야 장관이네요.

  5. 감성호랑이 2014.11.29 23: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너무 멋져요!!!~

  6. 마켓터. 2014.11.30 10: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멋진곳이네요...
    가지도 못해도 이렇게 사진으로만 봐도 행복하네요

  7. ㅛㅏㅇ쇼ㅗ 2014.11.30 11: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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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쪽파 2014.11.30 11: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제작년에 친구들과 터키를 다녀왔습니다.
    과거에 지나갔던 장소들을 이렇게 우연찮게 다시 보게 되는건 생각보다 반가운 일이네요^ㅡ^
    카파도키아의 고적한 모습들은 언제보아도 멋드러지더군요.

  9. 쪽파 2014.11.30 11: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제작년에 친구들과 터키를 다녀왔습니다.
    과거에 지나갔던 장소들을 이렇게 우연찮게 다시 보게 되는건 생각보다 반가운 일이네요^ㅡ^
    카파도키아의 고적한 모습들은 언제보아도 멋드러지더군요.

  10. amuse 2014.11.30 18: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자연과 인간이 만들어낸 합작품이군요 ㅎㅎ 너무 멋집니다 ㅎㅎ 열기구를 타는 것이 인기있나 보네요~~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ㅋㅋ

  11. ㅠㅘ쇼ㅓ 2014.12.01 01: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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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키스세븐 2014.12.01 09: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군요. 장관이긴 하지만...^^

 대개의 서민들이 그렇겠지만 내게 있어 유럽여행은 일생일대의 꿈이었지만 막상 쉽게 기회가 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몇 달 전 딸이 항공사에서 지금까지의 마일리지를 금년 내로 사용하지 않으면 무효로 한다며 아빠엄마가 마일리지를 사용하지 않을 것 같으면 지가 그것을 가지고 유럽여행을 했으면 한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그 말을 들은 김에 큰마음 먹고 딸과 둘이서 터키(이스탄불, 카파도키아) - 헝가리(부다페스트) - 오스트리아(빈, 짤츠부르크) - 독일(뮌헨, 로텐부르크) - 스위스(루체른) - 체코(프라하) - 독일(프랑크푸르트) 코스의 16박 17일의 자유여행을 떠났습니다.

 

 각 나라마다, 도시마다 독특한 특징을 지니고 있어 가는 곳마다 인상적이었지만 그 중에서 터키에서의 추억과 인상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유럽사회가 오래 전부터 개방된 사회로 이민족이 섞여 사는 것쯤은 알고 있고 또 그런 가운데서도 어떤 사람이 현지인이고 어떤 사람이 관광객인가 하는 것쯤은 대충 눈치로 때려잡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터키에서는 도저히 분간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이스탄불이라는 도시에 세계 각처로부터 워낙 많은 관광객이 올 뿐만 아니라, 터키민족은 본래 몽골고원을 중심으로 활약한 튀르크계 민족으로(중국에서는 한문으로‘튀르크’를 ‘돌궐’이라 표기) 이들은 중앙아시아 동남부에서 서서히 서쪽으로 옮겨가는 과정에 많은 이민족과 교합을 하였습니다.
 또한 이스탄불의 지리적 위치가 아시아, 유럽, 아랍, 아프리카의 교차점에 있어 세계의 무역상들이 이 도시를 드나들면서 인적, 물적 교류가 빈번해지면서 이민족들이 자연스럽게 섞이게 되어 그 생김새가 러시아, 아랍, 동양인,서양인, 흑인, 또는 혼혈 등응 그야말로 천태만상이기 때문입니다.

 

 

-5~6백미터 남짓한 보스포러스 해협을 두고 유럽과 동양의 끝과 끝이 접하는 이스탄불 

 

 이스탄불에서 잊지 못할 추억을 이야기하자면 먼저 딸과 내가 각각 당한 날치기 사건입니다.
 터키에 먼저 간 딸이 이스탄불공항에서 나를 기다리느라 공항카트에 짐을 얹어 놓고 잠시 한 눈을 파는 사이에 날치기꾼이 손가방을 날치기해 갔는데 다행히 그 모습을 본 현지인 청년이 일러주어 달려가 손가방을 찾았습니다.
 두 번째는 붐비는 트램을 타고 이동하는 중에 내가 핸드폰을 소매치기 당했습니다. 이튿날 현지 경찰이 내 페이스북 댓글란에 영어로 자기가 가지고 있다는 댓글을 남겨 한국에서 이를 본 친구 홍상철 한의원 원장이 연락을 하여 경찰서에 가서 핸드폰을 찾았습니다.    

 

-페이스북에 터키경찰이 올린 댓글 덕분에 스마트폰을 찾았습니다. 페북의 친구들 덕분에 . . - 


 소매치기와 거지가 수두룩하면서도 이방인 누구에게나 친절한 사람들이 터키인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방인이 길을 물으면 잘 모르면 모른다하고 그치는데 그들은 자기가 모르면 누구에게 전화를 걸거나 스마트폰 검색을 해서라도 찾아주려고 노력하는 인정 많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스탄불은 유럽과 아시아의 문화, 비잔틴제국 1,000년과 오스만제국 500년의 역사, 기독교와 이슬람의 종교를 한 도시에서 볼 수 있는 세계에서 보기 드문 도시로 그 역사적 배경을 내 나름 대충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BC 8세기 무렵부터 로마에서 시작된 로마제국은 AD 395년 동·서로 분열되어 이탈리아, 이베리아 반도와 북아프리카를 지배했던 서로마제국은 게르만민족의 대이동 결과 476년에 멸망하고, 소아시아 지역을 지배했던 동로마제국(비잔틴제국)은 1453년까지 존속했다.
 콘스탄티누스 1세(재위 AD 306~337)는 보스포루스해협에 있는 그리스 식민지인 비잔티온에 제2의 로마 수도를 건설하였다. 제국의 수도 비잔티움은 330년 5월 11일 개도식(開都式)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콘스탄티누스의 도시)이라 불리게 되었고,
 비잔틴제국이 1453년 5월 29일 오스만투르크제국의 술탄 메메드 2세(Mehmed II : 재위 1444~1446, 1451~1481)에 의해 점령되면서 콘스탄티노폴리스는 이스탄불로 바뀐다.
 오스만투르크 제국(1297~1922)은 16세기에 아시아·유럽·아프리카까지 그 세력을 떨쳤으며, 제1차 세계대전 때는 독일 편으로 참전하였다 패전하여 오스만제정 시대가 막을 내리고 1923년 케말 파샤가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고 터키 공화국을  수립 수도를 앙카라로 하였다.

 

 이스탄불의 여러 유적지 중에서도 이러한 터키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건물이 하기아소피아다.
 하기아소피아는 원래 정교회 대성당이며 두 번의 소실을 겪은 후,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즉위 후 재건을 결정하여 5년 11개월 공사를 하여 537년 12월 27일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인 메나스 총대주교에 의한 헌당식이 거행됐고 동로마 제국의 황제의 사당으로서 이용되었다.
 이때 유스티니아누스 1세는 고대 이스라엘 왕국의 왕 솔로몬의 신전을 능가하는 교회를 세웠다며 “솔로몬이여, 내가 그대에게 승리했도다!” 라고 외쳤다고 전해지고 있다.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함락시킨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드 2세는, 그 날 오후에 도시로 입성하자마자 하기아소피아 대성당으로 향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하느님은 없고, 알라만 존재한다.” 고 외치면서 영토 확장 목적의 달성을 기념하기 위해 대성당의 흙을 자신의 머리에 뿌리고,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로부터 이 대성당을 몰수, 모스크(이슬람사원)로 사용할 것을 선언하였다.
 이때에 대성당 내부는 십자가가 떼어지고 타일로 모자이크한 성화는 석회칠로 덮어지고 메카의 방향을 나타내는 메라브가 더해졌다. 그 후, 네 개의 첨탑이 증축되어 교회 내에는 민발로 불리는 설교 단상도 장착되었다. 아야 소피아 자미로 불리게 된 이 정교회 대성당은 토프카프 궁전 쪽에 위치해 있어, 오스만 제국의 술탄이 매주 금요일 예배마다 방문하게 되어 오스만 제국에서 가장 격식 높은 모스크 중 하나로 여겨지게 되었다.

 1923년 오스만 제정이 무너지고 터키 공화국이 수립되었을 때 그리스를 중심으로 유럽 각국은 하기아 소피아의 반환과 종교적 복원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터키 정부는 하기아 소피아를 인류 모두의 공동유산인 박물관으로 지정하고 아야소피아 박물관(Ayasofya Müzesi)으로 개조해 그 안에서 기독교든 이슬람이든 종교적 행위를 일절 금지했다.

 

 

-기독교 성당에서 이슬람 사원으로 그리고 지금은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는 아야소피아박물관 - 

 

 

 

 

 

 

- 이슬람의 문양을 한 회칠을 벗겨내자 화려한 타일로 모자이크한 기독교 그림이 나타납니다 - 

 

 

 

-별관에는 역대 술탄과 가족들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다-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은 로마제국은 본래 태양신을 비롯한 다신교이면서 기독교를 탄압하였는데 콘스타니누스황제는 태양신을 믿으면서 기독교 박해를 중지시키고 교회의 사법권 ·재산권 등을 우대하였다는 점입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던 로마제국, 그리고 아야소피아 성당에 엄청난 정성을 들여 모자이크한 예수의 그림에서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기독교 성당으로 지어진 건물이 가장 권위 있는 이슬람 사원으로 활용되었다는 점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광장을 사이에 두고 아야소피아 박물관 맞은 편에 있는 술탄 아흐메드 자미(블루 모스크)

앞의 아야소피아가 비잔틴 제국에 의해 그리스도교 성당으로 지어진데 반해 이 건물은 오스만제국에 의해 이슬람 사원으로 지어진 건물입니다.

 전자가 금빛 타일로 치장된 반면 이 건물은 청색 타일로 치장된 점이 특이하고 지금도 이슬람교도들이 기도를 하고 이들은 들어가기 전 밖에서 발을 씻고 들어갑니다.

 

 

 

 

 

 

 

 

 

 

슐레마니에 모스크

 

 

  블루 모스크가 가장 아름답다면 슐레마니에 모스크는 가장 규모가 큰 모스크입니다.

 오스만제국의 유명한 건축가 미마르 시난이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건축물로 지금까지 지진에 다른 건물들은 손상을 입기도 하였지만 이 모스크는 전혀 손상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는 건축가로 하도 유명하여 미켈란젤로가 그의 건물에 자신의 그림을 그리게 해 달라고 애원할 정도였으며, 이웃 나라 왕들도 집을 지어달라고 하였으나 일체 응하지 않고 오직 하나 제자에게 물려 준 도면 하나가 인도의 타지마할묘라고 하는데 타지마할은 제자의 이름이라고  합니다.

 성곽 외부에는 그를 기념하는 작은 비가 있습니다.

 

 

 

 

 

 

 

 -복원공사 조감도인데 그 규모가 엄청납니다-

 

 

톱카프 궁전입니다

 

 건축물로 본다면모스크에 비하여  그다지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내부에 전시된 왕가의 일용품들이 볼만 한데 촤영이 금지된 관계로 눈에만 담고...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건축쟁이 내한테는 방마다 곳곳에 장치되어 있는 수납공간과 당시의 기술로 각 방에 상수도 배관 기술이 있었던 점이 특별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첫째 문을 통과하고.. 

둘째 문을 통과하고

-세째문을 통과허면 ..

 

-비로소 왕실의 본 모습이...

 

 

 

 -여인네들이 거주하는 공간에는 거세를 당한 흑인만 출입이 가능..

 

 -공주의 방에 있는 세면대인데 각 방에 이런 세면시설이 거의 다 있는 편.

 -벽에 설치한 수납공간-

 

 

-외부 테라스에 설치된 배수로인데 이렇게 치장을 ...

 

 

 

Posted by 땡삐 선비(sunb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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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잉 2014.11.05 16: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Polis라고도 쓰나요?

  2. 미마르 시난 2014.11.05 16: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마르 시난을 기념하는 비석이 타지마할에 있다는 사실은 오늘 처음 들어보네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할튼 6년 동안의 부실 공사로 지어진 아야 소피아보다는 술레마니예 모스크가 훨씬더 기술적인 측면에서 훌륭하다는 얘기를 일전에 들은 적이 있는데 사진으로 보니깐 굉장히 멋지네요

  3. 실비단안개 2014.11.06 10: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 부럽~^^

  4. 블로그앤미 2014.11.07 16: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블로그 내용이 좋아서♡ 블로그모음 서비스인 블로그앤미(http://blogand.me) 에 등록했습니다. 원하지 않으시면 삭제하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