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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12.31 거창 용암리 노인들 공금으로 도박.
  2. 2012.12.12 뭐니뭐니 해도 육보시가 최고?

 내가 거창군 가북면 용암리의 용암선원에 온지도 벌써 한 달이 훌쩍 지났습니다.
 어디를 가나 처음 대하는 곳은 모두가 낯설고, 생면부지의 면을 트자면 시간이 다소 흘러야 합니다.
 그런데 금년 겨울 이곳에서 나는 잦은 눈 덕분에 의외로 쉽게 동네 사람들과 면을 트고 노인정에도 심심찮게 들리게 되었습니다. 


 어느 시골이나 그렇듯이 이 마을에서도 70대 노인은 젊은 축에 들고, 가북면을 운행하는 버스에서 70대 노인은 80~90대 노인에게 밀려서 좌석도 양보해야 할 정도입니다.
 이런 노인들만 살다보니 눈이 내리면 눈을 치울 사람이 별로 없으므로 자연스레 젊은 내가 앞장서야 하고, 눈 좀 치우고 나면 할머니들은 노인정에서 커피를 끓이거나 찌짐을 부쳐 한사코 먹고 가라합니다.

 바로 그때마다 보는 장면이 노인네들의 화투놀이 도박입니다.
 고스톱도 아니고 육백도 아닌 민화투라고 하는 것인데 나도 어릴 적에 한 기억이 있는데 점수 계산은 어떻게 하는지 기억이 아리송송....


 아무튼 노인네들은 이 민화투로 하루종일 십원짜리 동전내기 노름을 합니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이 십원짜리 동전을 개인 주머니에서 내는 것이 아니고 항상 노인정에 있는 공금을 얼마씩 갈라서 내기를 하고 끝나면 다시 그대로 들여 놓는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노름밑천으로 공금유용을 하는 셈이죠.ㅎㅎㅎ

 

 

-노인정의 이모저모 모습입니다.
사람 냄새, 따신 온기가 느껴지지요.

 

 

 

 

 

 그런데 지금 노인네들이 하는 노름이야 말 그대로 놀이 삼아 심심풀이로 하는 것이지만 예전에는 진짜 노름이 심했다고 하네요.
 그 까닭인즉 가을 농사가 끝나고 나면 동지섣달 산골의 나날은 무료하고 따분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텔레비전도 없고 인터넷도 없던 그 시절에 시간 죽이기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술과 노름 말고는 달리 할 것이 있었겠습니까?.

 노인네들의 말을 빌리자면 이 용암마을이 용암리 여러마을 중에서도 가장 큰 마을로 예전에는 90호가 넘게 살았고, 마을 하천가에는 물방앗간이 두 개나 있었고 길가에는 주막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 마을회관자리에는 본래 학교가 있었는데 1941년도에 송정마을로 이사를 갔으며, 이 동네에 사람이 많이 모여 살았던 이유는 가북면 산골짜기 중에서 유달리 기온이 따뜻하여 보리농사가 잘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묵혀서 잡목과 잡초가 우거진 곳들이 전부 전답이었고, 지금의 동네 안 채전밭은 모두 집터였다고 합니다.

 몇몇 노인네들은 과거 개금마을은 춥고 먹을 것이 없는 그야말로 살기 어려운 동네였는데 지금은 차츰 살기가 좋아져 가고 사람도 늘어나고 있는데 옛날에 잘 나가가던 이 동네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며 못내 아쉬움을 토로하였습니다.

 

 

-쓰러져가는 방앗간과 늘어나는 빈집을 대신하여 늘어나는 산소가 이 동네의 역사를 이어가겠죠?

 

 

-마을의 빈집들입니다. 아마도 사는 집보다 빈집이 더 많을 듯 합니다. 

 

 

-마을 옆 산능선에 있는 묘지들입니다. 자꾸만 늘어나겠죠?

 

 세상의 변화는 이런 것 같습니다.
 과거에는 농작물이라 하면 쌀과 보리가 아니면 농작물로 취급도 해주지 않았습니다. 그 시절에는 당연히 쌀.보리 농사가 잘되는 농토를 상답이라 하였고, 집도 단열기술이 없으므로  바깥 기온이 낮으면 얼어 죽기 십상이니 당연히 따뜻한 양지를 찾아 집을 지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쌀.보리 대신에 특용작물이 대세이고, 집도 단열과 구조적 측면에서 자연에 대응할 수 있는 기술이 발달하여 굳이 양지만 찾을 필요도 없게 되었으니 지금으로선 경사가 급한 용암마을보다는 완만한 개금마을이 더 살기 좋은 마을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이 변하는 이치야 그렇다 손 치더라도 속절없이 쇠락해가는 농촌마을들 이모저모들과 노인네들 손 마디마디의 굳은살을 바라보노라니 왠지 가슴이 짠합니다.

 

 

-아래 빈집을 보노라니 추사의 세한도가 자꾸만 생각이 나네요.
뻥 뚫린 저 구멍은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인생의 허무 ~ ~

 

 

 “가을 농사 끝나고 11월부터 내년 7월까지는 돈맛 볼 끈덕지가 없으니 농촌에서 뼈 빠지게 한 철 열심히 벌어본들 맨 날 제자리걸음이다.”며 소주잔을 들이키던 젊지도 늙지도 않은 한 주민의 말이 자꾸만 생각난다.
 11월부터 7월까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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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가북면 | 용암리1189 용암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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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땡삐 선비(sunb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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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머무르는 거창군 가북면 용암리라는 동네는 해발 700미터가 넘는 고지대로 수시로 눈이 오고, 눈이 왔다하면 잘 녹지를 않아 교통이 두절되기 일쑤이므로 겨울나기가 몹시 힘든 동네입니다.
 이 동네는  과거 100호 넘는 가구가 살았던 산골에서는 꽤 큰 동네였는데 이래저래 다 떠나고 현재는 약 25호가 사는데 그마저 연세 많은 노인들은 요양병원에 장기 입원하였거나 자식 집에 왔다갔다하는데  사실상 살아서 돌아오기는 힘들 것이라는 말을 감안하면 20여 호가 산다고 볼 것입니다.

 

 산골동네인 만큼 마을길은 경사가 급하여 눈이 조금만 있어도 한 발짝을 옮길 수 없는데 12월 6일 아침에는 밤새 내린 눈이 20센티 이상 쌓였습니다.
 70대~80대 노인들뿐인 동네에 이토록 눈이 내렸으니 나는 아침 일찍 사람 다닐 정도의 길이라도 내자며 혼자 눈을 밀며 노인정 앞을 지나고 있는데 지난 밤 마을 노인정에서 함께 주무시고 일어난 할머니들이 눈 때문에 집엘 가지 못하고 있었는데 길을 터줘서 고맙다며 기어이 커피 한 잔하고 가라 하였습니다.
 하여 노인정에 들러 초면 인사를 하고 용암선원에 머무르게 된 사연을 간략히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리고 동네에 노인네들 밖에 없어 아무래도 제설작업은 젊은 내 몫일 것 같아 했다고 하자 할머니들은

“암~ 뭐라 캐사도 육보시가 최고제.

 부처한테 백번천번 절하는 것 보다 이리 좋은 일 하는 기 훨씬 복 받는 일이제이.”하며 마냥 고마워  했습니다.

 그런 후 시간이 좀 지나자 여기저기서 남자 서너 명이 나와 함께 길을 넓혀 갔는데 대충 눈치로 보아 내가 최연소인 것 같았습니다. 아무튼  버스가 다니는 큰길까지 길을 다 내고 나니 점심때가 되어 선원으로 돌아왔습니다.

 

 

- 일단 초벌로 인도부터 냅니당~

 

 

-결국에는 차량길도 엽니다.

 

 

 그 이틀 후 나는 창원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거창읍내 빵 굽는 집에서 산 식빵과 정묘스님이 우편으로 보낸 연근 몇 뿌리를 가지고 노인정엘 갔습니다.
 눈 때문에 농사일을 할 수 없어서 그런지 비교적 거동이 자유로운 노인네들은 다 모인 셈이고 삶은 오징어 안주에 술상이 차려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를 처음 보는 할머니들도 나를 잘 아는 사람처럼 “아이고 고마븐 사람이 동네 들어 왔네 그려”하며 자리를 권하고 술을 따라 주었습니다.

 눈치로 보아 내가 도착하기 전에 노인들끼리 내 이야기를 주고받았던 것 같습니다.

 외지에서 뜬금없이 남의 동네 절집에 들어와 절집 주변의 대나무를 베어내고 밭의 잡풀을 베어 불을 질러 태우고 하는 내 모습들을 마을 사람들은 무심히 보아넘기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 이자리에 모인 분들이 동네 주축입니다.

 

 

-이 분들이 그나마 노인정의 신참이라 안주를 장만하고.... 

 

 

 사실 내가 용암선원에 入院하는 날 향림사라는 큰 절로 동안거를 떠나는 정묘스님은 내게 시간표를 주고 갔는데 이 스케줄대로 하면 하면 나는 하루종일 법당에 앉아 참선만 하고 있어야 합니다.
 한데 이 시간표대로 해보려고 가부좌를 하고 앉았으려니 무르팍이 깨어지고 허리뼈가 부스러지는 것 같은 고통에 도저히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여 나는 이를 대신하는 핑계꺼리를 찾았습니다.
 “부처님이 어디 참선하여 도 터는 인간만 부처님이라 했던가?,  머리가 안 되면 몸이라도 대신하여 도 닦는 사람들 열심히 도와 도를 닦을 수 있도록 노력봉사하면 그것도 부처가 되는 길 아니던가?”하며 내가 즐기며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하기로 하였습니다.

 이 절집 주인인 정묘스님은 여승인지라 힘든 일은 잘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년 중 동안거와 하안거를 포함 200일 이상을 집을 비우다보니 주변의 텃밭은 그야말로 쑥과 대나무로 쑥대밭이 되어 있었습니다. 하여 나는 이틀에 걸쳐 쑥대는 베어다 불살게로 만들고, 대나무는 베어서 잡풀과 함께 태워 주변 정리를 좀 하였습니다. 

 

                                 -앉아서 머리로 도 닦는 것보다 몸으로 허드레 일하는 기 훨~

 

 

 그리고 눈이 많이 내린 날 내가 동네 사람들을 위해 봉사할 일이 뭐가 있겠나싶어 눈을 한 번 치웠을 뿐인데 의외로 육보시의 효과는 컸습니다.
 삶은 오징어 안주에 소주를 서너 잔 얻어 마시고 일어나려는데  할머니들은 혼자서 밥해먹기도 힘들고 한데 노인정에서 저녁까지 함께 먹고 가라했습니다.
 마음이야 꿀떡 같았습니다만 형식적이나마 하는 저녁예불이 있는지라 사양하고 절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나는 이 경험을 통하여 깨달은 바가 있습니다.


 굳이 내가 생각하는 신념이나 소신을 가지고 세상에 봉사하고 기여하려 하지 말고,
 상대가 원하는 봉사와 기여를 하는 것이 훨씬 사회를 풍성하고 따뜻하게 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고상한 영혼의 보시보다는 작은 육보시가 훨~  약효가 좋다는 사실을 ...  

 

 여러분 중에 혹시 나의 육보시가 필요한 분은 댓글로 남겨주시면 · · ·하겠습니다용~

 

 


Posted by 땡삐 선비(sunb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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