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길을 걷다보면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만큼 갔는지, 눈앞을 지나는 개가 있었는지, 귓전을 울리는 풍경소리가 있었는지를 모른다. 강당에 앉아 강의를 듣는 학생이 어제 패한 당구 게임을 생각하거나 점심 때 식당에서 마주친 여학생을 생각하고 있으면 흑판의 글자가 보이지 않고 스피커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이렇듯 무심코 또는 엉뚱한 곳에 정신을 팔고 있으면 상대의 형상이 보이지 않고 소리가 들리지 않듯이, 내가 나를 지금까지 무심코 보아온 탓에 정작 나라는 존재에 대해 깨닫고 살아온 것 같지를 않다. 말하자면 ‘나’라는 존재가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해 생각해 본바가 없는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생각해 온 ‘나’는 남이 부러워하는 직위에 있는 사람, 늘 남에게 베풀 수 있는 정도의 부를 가진 사람, 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