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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암선원이야기

용암마을 물레방아 발전기의 실화.

선비(sunbee) 2013. 1. 2. 20:52

 거창군 가북면 용암리 용암마을의 이야기입니다.


 신년을 맞은 1월1일 마을회관에서 떡국을 끓여 마을사람들끼리 나눠먹기로 되어 있어 이 날은 하루동안 두 번이나 제설작업을 했지만 눈이 많이 내리는 바람에 노인네들 거동이 위험하여 끝네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오늘은 밤사이 약간 눈이 오긴 했어도 아침부터 햇살이 좋아 마을회관에서 떡국을 끓여먹었습니다.

 

 여기서 나온 이야기 들입니다.

 

 

 

 

 -이 마을에는 예전에 물레방앗간이 개인 것과 마을 것 두 개였다고 합니다.

그러다 개인이 모두 인수하여 운영하다 남아있는 흔적이 이 곳이고,

 바로 이곳에서 발전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바구 1)
 지금 마을회관의 자리에 일제시대에 학교가 있었다고 합니다.
 현재 송정마을의 용암초등학교 폐교는 1940년도에 건립되었고, 지금 73살인 이 마을 이장님이 7회 졸업생이라고 하니까 80살 되는 노인네들이 이 학교의 1회 졸업생인 셈입니다.
 그 보다 나이 더 많은 분들은 정부의 인가도 없는 이 학교를 다녔던 것입니다.


 이 마을 할아버지들의 이야기를 빌리자면 선생님은 이태석이라는 분인데 이 동네 누구네 집에 셋방살이를 하였고 공식적으로는 일어를 가르쳤는데 몰래몰래 우리 한글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또한 그 선생님은 부녀자들도 공부를 해야 한다며 동네 몇몇 아녀자들도 그때 공부를 가르쳤다고 합니다.
 당시의 시대상황으로 비춰본다면 일제는 어떻게 해서든지 일본 문화와 사상을 주입시키려 하였고, 독립운동을 하는 선각자들은 반대로 우리의 문화와 사상을 교육시키려 했던 만큼 이곳 산골에서도 그런 현상이 있었겠지요.

 

 

-이곳이 마을회관 겸 노인정이고 옛날에 학교터였다고 합니다.-

 

 -송정마을의 학교도 결국 폐교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마을주민이 효소학교로 운영하는 중입니다-

 

 

 

-"빈부귀천 차별없이 다같이 배우세"라는 가사가 인상적입니다-

 

 

 

-이 지도의 발행년도가 1975년이니까 이 쯤에 학교를 다닌 사람들도 40대 후반의 나이가 되었겠죠-

 

 

 

-공업이 일어날 수 있는 조건을 설명하고 있는데 박정희가 호남을 홀대해서가 아니라 공업의 입지조건(자본, 노동력, 공업용수, 욕.해상교통)상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것입니다-

 

 이바구 2)
 6.25 전쟁이 끝나고 빨치산들이 동네에 들어와 약탈을 해갔는데,
 누구네 집은 불을 질러 가장 큰 피해를 입었고,
 누구네 집은 어미소와 송아지를 모두 가져가므로 송아지만이는 두고 가라고 사정을 하자  집단에 불을 붙여 초가지붕에 불을 붙이려하므로 그걸 말리느라 정신이 없는 사이에 유유자적하게 송아지마저 몰고가버렸다고 합니다.


 빨치산이 물러가고는 경찰들이 마을 치안을 담당하였는데 당시 가북면 지서의 한 경찰관이 마을주민에게 밥상을 차려오라고 하고선 반찬이 시원찮다며 밥상을 발길로 차버렸는데,
 마치 동생이 공군인데 휴가를 나와서 이 모습을 보고선 권총으로 경찰관의 옆구리에 대고 “밥상 한 번 더 차봐라.”하니까 얼굴이 사색이 되어 빌었다고 합니다. 

 

 6.25 전쟁이 끝나고 빨갱이 토벌작전이 전개되던 그 시절 산간오지의 마을들은 낮에는 국군과 경찰의 괴롭힘에, 밤에는 빨갱이들의 괴롭힘에, 그야말로 민초들의 삶은 생지옥이나 마찬가지였던것이지요.

 조정래의 장편소설 태백산맥을 읽노라면 가슴이 미어지고 손가락끝이 오그라드는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애환이 구구절절 하지요

 

 이바구 3)
 용암마을이 거창군에서도 오지 중의 오지임에도 불구하고 학교와 전기 공급 등의 문명화에는 10년 정도 앞서 갔는데 아마도 앞의 그 선생님 덕분 아닌가 싶기도 하답니다.
 특히, 전기의 경우에는 한전이 이곳 주변지역에 전기 선로를 깔기 10년 전에 용암마을은 전기를 이미 사용했는데 그 전기를 동네 앞 하천의 물레방아로 생산했다는 것입니다.
 나는 물레방아로 전기를 생산했다는 사실이 믿기지를 않아 다시 확인을 하자 노인들이 모두가 맞다고 하였습니다. 
 당시엔 선풍기도, 냉장고도 없던 시절이고 백열전구 전기가 고작이고 보면 전혀 불가능한 일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일조량이 짧은 대신 물이 풍부한 이런 산골마을에서는 태양열 전기보다는 물레방아전기가 더 효율적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노인정의 이모저모 모습들입니다. 이 동네 주민 대부분이 모인 셈입니다-

 

 

 

 

 

 

 

 

 

 

 

 

 

 

 

-. 마치 아궁이와 굴뚝을 연상하게 마을회관 앞에 있는 굴뚝나무입니다.

 누군가 고사를 지낸다고 나무 밑둥에 촛불을 켜놨다가 그만 나무에 불이 붙어 속이 새까맣게 탔는데도 이렇게 멀쩡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내가 머물고 있는 용암선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