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산

남과 여. 로망과 로맨스. 그리고 세컨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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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암리 7

고로쇠와 변강쇠의 관계.

지난 2월 5일에는 15년 전 창원에서 거창군 가북면 용암리 마을로 귀농을 한 사람을 따라 고로쇠 수액 채취 준비작업을 하는데 함께 가 보았습니다. 거창의 오지 중의 오지마을인 이곳에 온 사연은 나와는 사뭇 다른데 우연히도 그는 고향도 나와 같은 남해이고 창원에서 살기도 했으며, IMF를 맞아 경제적 형편이 어렵고 자신과 아내의 건강마저 위태하여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고 합니다. 그와 그의 아내는 오래 전부터 불교와 연을 맺고 참선공부를 많이 하여 내게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므로 자연스레 절집의 말동무가 되었습니다. 나는 특히 불교에서 말하는 ‘참 나’라는 것에 대해 딱히 개념이 정리되지 않았는데 그는 “내 몸은 자동차요, 자동차는 저절로 가는 것이 아니라 운전수가 운전하는 대로 가고, 그 운전수가 ..

커피 한 잔의 깨달음.

절집에서는 대체로 녹차나 전통차를 마십니다만 혼자서 식후의 차로는 아무래도 커피만한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오늘 아침 1회용 커피를 뜯다가 문뜩 30년 전 우연히 보게 된 마누라의 일기가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우리 집에는 찻집을 하고도 남을 정도로 차그릇이 많은데 마누라가 유난히 차그릇에 집착하는 이유를 이제사 짐작할 것 같습니다. 일기장의 내용은 대충 이런 것이었습니다. 「면장실에 손님이 왔다. 면장님이 나보고 커피를 타오라고 했다. 순간 창피하고 부끄러워 어디로 숨어야 할지 몰랐다. 나는 한 번도 커피를 타 본적 없다. 나도 하루빨리 커피 타는 법을 배워서 당당하게 손님을 맞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아니 꼭 그렇게 하리라.」 지금 보면 웃기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1978년이니까 이때는 ..

탐욕에도 급수가 있다?

효봉 원명 대종사의 법문 일부입니다. 불조(佛祖)는 내 원수요 중생은 내 친구 . “입을 열면 부처와 조사(祖師)의 뜻을 어기고 입을 열지 않으면 대중의 뜻을 어긴다. 어떻게 하면 불조(佛祖)와 대중의 뜻을 어기지 않겠는가?” 한참 있다가, “부처와 조사는 내 원수요 대중은 내 친구다. 일찍 듣건대 진주(眞州)의 불제자들은 그 머리에 모양 없는 뿔이 났는데, 그 뿔이 부딪치는 곳에는 아무도 대적할 이가 없다하니, 그 경지를 한 번 말해 보라”하였다. 대중이 말이 없자, “아, 유쾌하다. 말이 없는 그 가운데 시방(十方)의 허공이 다 무너졌도다.”하고 말씀 하셨다. “내가 지금 중생세계를 두루 보니, 나고 늙고 앓고 죽음을 누가 면할꼬. 만일 이 네가지 고통을 면하려거든 생사가 없는 그곳을 모두 깨쳐라. ..

세상에는 참 많은 세상이 있습니다.

우리는 TV를 보면서 아프리카나 인도네시아 정글 속에서 원시생활을 하는 종족의 모습을 보면서 ‘아직도 저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구나!’하며 신기한 눈으로 봅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 사람들은 저녁 9시에는 KBS뉴스를 보고, 현대나 기아에서 생산한 자동차를 타며, 삼성이 만든 핸드폰을 사용하며 그냥저냥 대동소이한 삶을 살아간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거창의 산골마을에 들어와 두 달가량 살면서 느끼는 바로는 한 시대를 사는 대한민국 국민도 참으로 다른 세상들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먼저, 도시세상과 농촌세상입니다. 오늘날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 중에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가지지 않는 사람이 없으며, 누구라도 이메일 주소 1개 이상은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이슈..

용암마을 물레방아 발전기의 실화.

거창군 가북면 용암리 용암마을의 이야기입니다. 신년을 맞은 1월1일 마을회관에서 떡국을 끓여 마을사람들끼리 나눠먹기로 되어 있어 이 날은 하루동안 두 번이나 제설작업을 했지만 눈이 많이 내리는 바람에 노인네들 거동이 위험하여 끝네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오늘은 밤사이 약간 눈이 오긴 했어도 아침부터 햇살이 좋아 마을회관에서 떡국을 끓여먹었습니다. 여기서 나온 이야기 들입니다. -이 마을에는 예전에 물레방앗간이 개인 것과 마을 것 두 개였다고 합니다. 그러다 개인이 모두 인수하여 운영하다 남아있는 흔적이 이 곳이고, 바로 이곳에서 발전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바구 1) 지금 마을회관의 자리에 일제시대에 학교가 있었다고 합니다. 현재 송정마을의 용암초등학교 폐교는 1940년도에 건립되었고, 지금 73살..

거창 용암리 노인들 공금으로 도박.

내가 거창군 가북면 용암리의 용암선원에 온지도 벌써 한 달이 훌쩍 지났습니다. 어디를 가나 처음 대하는 곳은 모두가 낯설고, 생면부지의 면을 트자면 시간이 다소 흘러야 합니다. 그런데 금년 겨울 이곳에서 나는 잦은 눈 덕분에 의외로 쉽게 동네 사람들과 면을 트고 노인정에도 심심찮게 들리게 되었습니다. 어느 시골이나 그렇듯이 이 마을에서도 70대 노인은 젊은 축에 들고, 가북면을 운행하는 버스에서 70대 노인은 80~90대 노인에게 밀려서 좌석도 양보해야 할 정도입니다. 이런 노인들만 살다보니 눈이 내리면 눈을 치울 사람이 별로 없으므로 자연스레 젊은 내가 앞장서야 하고, 눈 좀 치우고 나면 할머니들은 노인정에서 커피를 끓이거나 찌짐을 부쳐 한사코 먹고 가라합니다. 바로 그때마다 보는 장면이 노인네들의 화..

뭐니뭐니 해도 육보시가 최고?

내가 머무르는 거창군 가북면 용암리라는 동네는 해발 700미터가 넘는 고지대로 수시로 눈이 오고, 눈이 왔다하면 잘 녹지를 않아 교통이 두절되기 일쑤이므로 겨울나기가 몹시 힘든 동네입니다. 이 동네는 과거 100호 넘는 가구가 살았던 산골에서는 꽤 큰 동네였는데 이래저래 다 떠나고 현재는 약 25호가 사는데 그마저 연세 많은 노인들은 요양병원에 장기 입원하였거나 자식 집에 왔다갔다하는데 사실상 살아서 돌아오기는 힘들 것이라는 말을 감안하면 20여 호가 산다고 볼 것입니다. 산골동네인 만큼 마을길은 경사가 급하여 눈이 조금만 있어도 한 발짝을 옮길 수 없는데 12월 6일 아침에는 밤새 내린 눈이 20센티 이상 쌓였습니다. 70대~80대 노인들뿐인 동네에 이토록 눈이 내렸으니 나는 아침 일찍 사람 다닐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