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산

남과 여. 로망과 로맨스. 그리고 세컨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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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배 5

눈길 산행 유의사항.

절집에 있는 동안 주변 산들을 둘러보리라 마음을 먹었는데 계속 눈이 내리는 바람에 미루고 미루다가 지난 토요일에는 큰마음을 먹고 3~4시간 코스의 산을 타기로 하고 출발하였습니다. 하지만 본래 가기로 했던 코스는 가지도 못하고 무려 8시간의 산행을 하면서 죽도록 고생을 하였습니다. 고생을 하게 된 사연은 이렇습니다. 먼저 산 아래서 보는 산의 눈과 산에 올라 보는 눈에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산 아래서 보면 나무에 가려 눈이 없어 보이는데 산에 오르면 오를수록 눈의 깊이는 깊어집니다. 그 까닭은 고지대일수록 기온이 낮아 눈이 녹지 않으므로 그해 내린 눈이 차곡차곡 그대로 쌓여 있는 것입니다. 본래 계획은 홍감마을에서 단지봉을 올랐다가 내촌마을로 가기로 하였는데 산 능선에 오르고 보니 내촌쪽으로는 눈이 ..

영혼의 때를 벗기는 목욕탕으로.

사람들은 아침저녁으로 매일 세수를 하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목욕탕에 가서 목욕을 합니다. 그리고 매일 집안 청소를 하고 계절마다 옷과 이불 등 살림들을 정리하고 삽니다. 만일 이런 하찮은 일상습관이 없다면 우리는 아마도 더럽고 복잡해서 살지를 못할 것입니다. 해가 바뀌는 연말연시쯤이면 사람들은 책장과 서랍을 정리하면서 새해의 희망이나 바램을 나름 머릿속에 그리기도 하고 마음속으로 다짐을 하기도 합니다. 오늘 새벽 108배 절을 하다 보니 바로 아래 장면에서 내가 지금까지 놓치고 살아왔던 것이 있었음을 알았습니다. -위의 사진이 108배를 한 후의 방석위치이고, 밑의 사진이 그 전의 방석위치입니다. 108배를 하는 동안 나도 모르게 방석이 이만큼 밀려갔던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행위를 하다보면 그 행위..

반성문을 쓰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사람이 한 평생 살다보면 이런저런 일로 부모님께, 선생님께, 직장에, 또는 자신에게 자신의 잘 못을 뉘우치는 반성문을 한번쯤은 써본 경험들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쓰는 반성문은 대개가 자신이 행한 행위가 남의 눈에 드러나 타인으로부터 지탄 대상이 될 만큼 심각한 잘못이 있을 때 나를 강제할 수 있는 타인의 강요에 의해 하는 수 없이 쓰게 됩니다. 이 경우 타인의 강요에 의해 반성문을 쓰기는 하지만 솔직한 예기로 그 순간을 모면하려는 것이지 진정 자발적으로 자신의 행위를 반성하고 뉘우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나는 거창에 있는 용암선원이라는 절집에서 집주인인 정묘스님이라는 분의 권유에 따라 절을 하면서 이라는 걸 읽어보면서 진짜 반성문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용암 선원의 풍경..

나는 우연의 산물?

12월 2일 일요일. 아침에 눈 점심때 갬. 아침 저수지에서 생긴 물안개가 급속도로 산을 삼키다가 이내 지척이 보이지 않았는데 산과 바다에서 조난사고는 이렇게 해서 생기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입산한지 만 일주일입니다. 담배를 끊고, 술을 끊고, 고기를 끊고, 지금까지 해 오던 생활 패턴을 완전히 바꾸려 하니... 특히 담배를 끊는 것과 새벽02:50에 기상하는 것은 여간 힘들지 않습니다. 새벽잠을 쫓으려 108배를 하고 밖에 나가서 맨손체조를 하며 온갖 짓을 다해 봅니다만 따뜻한 곳에 앉기만 하면 눈까풀이 천근만근 무거워지는 데에는 우쩔 도리가 없습니다. 오늘은 일요일인데도 하루 종일 전화 한 통화가 없었습니다. 즉,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그만큼 없다는 의미이고, 그만큼 인생을 잘못 살았다는 이야..

내가 108배를 하는 이유.

12월 1일 토요일. 날씨 맑음. 새벽 첫 예불에 108배를 하였습니다. 스님은 오전에 하는 예불 때 108배를 하라고 하였습니다만 새벽잠을 쫓기도 하고 몸을 푸는 효과도 있어 새벽에 하기로 하였습니다. 108배를 하고 나면 이마에 땀이 맺힐까 말까 하는 정도가 되고, 그 정도에서 밖에 나가 새벽 별빛을 보면서 맨손체조를 하는 것만으로도 쏠쏠한 묘미가 있답니다. 사실 나는 무신론자입니다. 지금도 석가를 종교의 대상이 아니라 철학의 대상으로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상을 보고 절을 하는 것은 절집에 왔으니 예의를 갖추는 것도 있고, 내 자신을 낮추는 마음수양의 한 방편으로 생각하며 스스로 다짐의 기회로 삼고자 함입니다. 물론 내가 아직은 불교에 대해 무지한 단계이기 때문에 절집에 살면서 공부를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