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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원시림의 지심도에서 내가 본것은 ...

선비(sunbee) 2015. 11. 16. 08:00

 거제시의 외도라는 섬이 '겨울연가' 영화를 촬영한 후로 섬 관광지로 엄청 유명해진데 비해 지심도라는 섬은 최근에야 원시림 동백숲길이 좋다고 입소문이 돌면서 관광객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나는 우리 동네 바다낚시 배를 하는 친구를 따라 매물도로 볼락낚시 하러 가는 길에 이 지심도를 지나치면서 ‘저 정도 작은 작은 섬이면 식수 구하기가 어려울 텐데 어찌 저리 많은 가구가 살지?’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경남도민일보의 ‘해딴에’가 진행하는 이야기탐방대에 끼여 이 지심도를 가게 되어 그 의문을 풀게 되었습니다.

 

 -지심도 선착장-

이곳 선착장에는 방파제가 없어(아마도 국방부 소유이므로 적극적인 개발은 제한하는 것으로 짐작)

 날씨가 약간만 않좋아도 유람선이 운항하지 않으므로 여행전에 반드시 알아보고 가야 합니다.

 

-지심도에 있는 습지-

길가로 돌담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예전에 가옥이 있었고

뒤뜰의 새미물이 지금의 습지를 만들었지 않나 싶습니다. 

 

-일제시대 전등소-

 

사진의 물탱크는 일제시대 그때부터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한수원에서 역삼투압 방식으로 하루 20톤의 몰을 생산한답니다.

 

 거제의 관광지로 유명한 섬 외도와 장사도는 자연적 경관 그 자체로도 훌륭하지만 인공으로 가꾸고 설치한 조경과 구조물이 더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데 비하여 지심도는 인공적인 것보다는 사람의 손길, 발길이 닿지 않은 원시상태의 자연 그 자체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지심도가 다른 섬에 비해 사람의 손을 덜 타고 개발이 되지 않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일제는 1904년 ‘진해만요새사령부’를 설치하면서 거제 전역을 작전지역으로 선포하였고, 러일전쟁 직후로는 능포의 양지암, 장목의 저도, 가덕도 등에 해군기지 건설을 확대해 갔으며, 1908년 지심도에는 13세대 61명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만주사변과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언제 군사기지로 바뀔지 모르는 불안 속에 살았습니다.
 그러다 1936년 일제가 포대를 설치하면서 이들을 강제로 이주시키고 100여명의 병사가 주둔하였고, 해방 후로는 미군이 섬을 접수하였다가 현재는 국방부소유로 남게 되었습니다.

 

-포를 설치했던 벙커와 탄약고-

1930년대에 만들어진 시설임에도 마치 엊그저께 만든 것 같이 쌩쌩합지다.

 

 

 

-서치라이터 장소-

사방이 탁 트인 이곳에 여섯개의 지시석이 있었는데 지금은 장승포, 대마도 등 5개의 지시석만 남아있다.


 땅이 국방부 소유이기에 개인은 함부로 건축이나 개발행위를 할 수 없으므로 과거부터 있던 기존건물의 증.개축 범위 내에서만 개발행위가 허용됨에 따라 섬 전체가 일제시대 그 시점에 시간이 멈춰진 상태로 자연이 보존되고 있다할 것입니다.

 사실 울창한 동백나무 숲은 우리나라 남해안 섬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섬에서 자생하는 아름드리 동백나무는 지심도가 아니면 볼 수 없는 나무들입니다.


 나는 이 원시림 같은 동백나무숲을 거닐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외도나 장사도와 같이 인간이 가꾸고 꾸미는 인간의 피조물은 10년, 20년이면 뚜다닥 만들어 낼 수 있고,
 그렇기에 제2, 제3의 외도나 장사도처럼 흉내라도 낼 수 있고,
 그렇기에 그것은 또 다른 유사피조물로 인해 빛을 잃을 수 있다.
 하지만 지심도와 같은 자연의 피조물은 인간의 힘으로는 범접할 수 없는 경지에 존재하므로 언제나 홀로 빛을 발할 것이다." 


외도나 장사도에서 느낄 수 없는지심도의  고너적한 산책로

 

성인의  덩치만한 동백나무들

 

 

 

 

 나는 이 섬을 돌면서 "지심도가 오늘날 이처럼 보물 같은 존재로 남을 수 있었던 데에 일제 강점기와 국유화의 아픔이 없었다면 과연 가능했겠는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일제가 지은 지 80년이 지났어도 마치 보란 듯이 쌩쌩하게  남아있는 포진지와 우리가 시설한 지 10년도 않되 잡목 속에 몰골로 방치된 태양광 집열판을 보면서 우리국민들의 정신상태에 대해 회의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진해를 포함한 남해안 일대는 1592년 시작된 임진왜란 때에도 왜구의 침략기지로 참혹한 경험을 했습니다. 그리고 1910년 시작된 일제 강점기에도 또 똑 같은 전철을 밟았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제대로 정신을 차려야 할 텐데 이 섬에서 본 꼬락서니로 봐서는 또 그와 같은 전철을 밟지 않으리라는 믿음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지도심의 국방해양연구원-

 

-고장난 망원경-

정상 작동되는 줄 알고 500원 동전을 넣었다가 돈만 꼴았습니다. ㅎㅎ

-태양광 집열판-

언제 설치했는지, 무슨 용도로 설치해했는지는 모르지만 잡풀이 우거진 채로 방치.

-국기 게양대-

광복 70주년을 맞아 역사의 아픈 흔적을 지우겠다는 다짐으로

일장기 대신 태극기를 달았건만

 태극기는 보다시피  벌써 끝이 찢어져 달아나고 없습니다.

 

 


 모든 것은 나로 말미암아 비롯되고 나로 말미암아 종결된다는 말로 치자면 일본이 나빠서가 아니라 우리가 모자라기 때문에 그들을 불러들인 배나 다름없는 것입니다.

 인간의 탐욕과 일본의 야욕은 끝이 없고, 자연은 그 욕심에 무심한 체로 한 치도 어김없이 이치를 따라감을 뉘라서 말리겠습니까만 어리석은 백성이 공연한 근심걱정을 한 번 해봅니다.

 

-국방연구원의 군함-

 앞의 사진에 있는 육상국방연구원에는 두 사람만 근무한다고 해서 내가 "두 사람이 무슨 연구를 할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저 바다에 군함이 있지않느냐" 했는데 나중에 카메라 줌을 당겨서 보니 군함이 있었습니다.

 

 

 

 

-피고 지는 동백꽃과

 밀려 왔다 밀려 가는 파도에

그리고 막걸리 한 잔에

 길 떠난이들 시름 겨워 하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