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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대게 껍질로 만든 지붕이라니?-김려의 우해이어보에서

선비(sunbee) 2015. 11. 11. 09:00

 우리나라 최초의 해양생물학서하면 우리는 보통 정약전이 1814년에 지은 ‘자산어보(玆山魚譜)’를 떠올립니다. 그런데 11월9일 경남도민일보의 ‘해딴에’가 진행하는 이야기탐방대를 따라 진동엘 갔다가 정약전의 ‘자산어보’에 앞서 1803년 김려가 지은 ‘우해이어보(牛海異魚譜)’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담정 김려(1766 ~ 1822)는 1801년(순조1)에 천주교도와 교분을 맺은 혐의로 진해(지금의 창원시 합포구 진동면)로 유배되어 ≪우해이어보 牛海異魚譜≫를 지었는데, 여기서 우해는  당시 진해의 다른 이름이기도 합니다.

 ‘김려’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는 백과사전에 있는 덧붙임 내용으로 갈음하고 ‘우해이어보’에서 본 특이한 내용 몇 가지만 들어보겠습니다.

 

 

 -현재 진동면사무소에 있는 진해현 동헌- 

 

 

 

 

 

 지붕으로 사용하는 대게 껍질에 관한 기록


 『게는 갑충류(甲蟲類) 중에서 가장 크다. 큰 것은 그 껍질이 수십 곡(斛)을 담을 수 있다.
 이러한 게는 낚시나 그물로 잡을 수 없다.
 영남의 바닷가 집들은 섬에서 주운 게 껍질로 소금밭의 잡(卡)이나 주점의 임시 집을 덮은 곳이 많다. 그 울퉁불퉁한 모습이 마치 기와집과 같다. 그 아래에는 대여섯 명이 들어갈 수 있다. 잡(卡)은 이곳 사람들이 시렁을 걸어서 만든 집을 부르는 이름이다.』

 

 200여년 전 진동 앞바다에 대여섯 명이 들어갈 수 있는 게 껍질이 있었다니 쉽게 믿겨지지 않지만 영남의 바닷가에는 게 껍질로 덮은 임시집이 많았다고 하니 ....
 게 껍질로 덮은 집은 과연 어떤 모양이었으며, 지금은 그런 대게들이 왜 자취를 감추었는지 자못 궁금합니다.

 

-김려가 감성돔 낚시를 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율티마을 해안-

-오랜 옛날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선두마을 선착장-

-고기 잡으러 나간 남정네들의 무사귀한을 바라는 여자들의 소망을 담아 만든 남근석- 

 

 

 

 특이한 꼬시래기(문절어) 잡는 통발에 관한 기록


『문절어는 일명 수문(睡魰: 잠문절어) 또는 해궐(海鱖: 바다쏘가리)라고도 한다. 그 형상이
쏘가리 비슷한데 조금 작다.
밤이 깊으면 송진으로 만든 홰를 가지고 모랫벌 가장자리에 물고기가 오가다가 모여드는 곳
을 찾아간다. 긴 장대에 달린 통발을 들어서 그 위에서 내려 덮으면 통발이 반쯤은 물속에 잠기고 나머지 위의 반은 모래 위로 드러나게 되는데 물고기들이 모두 통발 안에 갇히게 된다. 그 후 통발위의 구멍 난 곳으로 손을 넣어 더듬어서 물고기를 잡는다.』


 부산이나 마산에서는 문절어를 ‘꼬시락’ 또는 ‘꼬시래기’라고 하는데 내 고향 남해에서는 ‘문조리’라고 합니다. 같은 고기를 두고 지방마다 부르는 이름이 다른 것은 흔한 일이므로 별개로 하드라도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문절어를 잡는 어로방법이 갯가에서 나고 자란 나도 지금까지 한 번도 듣지도 보지도 못한 특이한 방법입니다.
 우해이어보를 한글로 풀어 주석을 단 <신우해어보>(두류문화연구원 박태성 譯)에는 김려의 글을 바탕으로 통발의 모양을 그린 그림과 60~70년대 전국에 유명세를 떨치던 봉암 꼬시래기횟집을 소개하고 있는데 감회가 새롭습니다. 

 

 

 

 

 적조에 관한 기록


 『이 물고기는 낚시나 그물로 잡는 것은 불가능하다. 8,9월이 되어 포수(胞水)가 갑작스럽게 몰려오면 어족(魚族)들이 밀물처럼 몰려다니며 산이 무너진 것처럼 얕은 물가로 쫓겨나와 죽는데 뭉쳐져서 쌓인 것이 거름밭에 구더기 같아서 죽은 것은 썩어서 먹을 수 없다. 한사어도 또한 포수에 쫓겨 나오는데 성질이 급하여 마른 땅으로 뛰어 오른다. 이곳 사람들은 긴 자루가 있는 쇠스랑으로 지느러미 사이를 마구 찔러 죽인다. 그리고 톱으로 날카로운 지느러미를 자르고 등골의 고기를 잘라내면 구워먹을 수 있다. 나머지 고기는 모두 기름덩어리이므로먹을 수 없고 다만 녹여서 등불을 켜는데 사용한다. 포수(胞水)에 대하여 이곳 사람들의 말을 빌리면 가을이 깊어지면 바다에서 갑자기 붉은 자주색과 검푸른 물이 생겨나서 질펀하게 번져 해변에 밀려든다. 물고기가 이 물을 먹으면 죽는데 죽지 않은 것도 흐느적거리며 맥을 못 춘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면 맑게 갠다. 포수(胞水)라는 말은 부인이 출산을 할 때 처음 자궁의 아기 문이 열릴 때 태속에서 쏟아지는 양수인 오로(惡露)와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 사람들의 말로는 한사어가 많으면 그 해 흉년이 든다고 한다. 을해년 대 흉년에 진해의 어촌에 날마다 한사어가 잡혀 다른 물고기와 같이 많이 잡혔다고 한다. 』

 


 여기서 ‘한사어’라고 하는 어종은 짐작컨대 가오리가 아닌가 싶은데 내가 사는 귀산 앞바다에도 성인 한발정도 되는 가오리가 얕은 물가로 나와 쇠스랑 같은 것으로 잡는 경우가 가끔씩 있기 때문입니다.
 평소에는 구경도 하기 힘든 그토록 큰 가오리가 왜 얕은 해변으로 나오는지가  궁금했었는데 이것을 보고 비로소 그 답을 알았습니다.
 포수(胞水)는 요즘말로 적조로 바다에 벌건 적조띠가 형성되면 물고기들은 이를 피하여 수심이 얕은 곳으로 도망을 치고 적조를 들이킨 고기는 산소를 들이키기 위하여 물위로 튀어 오르기도 합니다.
 적조가 심한 해에는 바다의 물가고기가 떼죽음을 하여 뭍으로 밀려들기도 하는데 앞의 대게 껍질도 이런 적조 때문에 죽은 게의 껍질이 아닌가 싶습니다.
 또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알기로 석유가 들어오기 전 등불을 밝히는 재료로는 송진만 있는 것으로 알았는데 이 한사어 기름으로 등불을 켰다고 하니 이는 완전 새로운 발견입니다.
 혹여 다음에 가오리가 잡히는 날이면 나도 그 기름에 불을 붙여볼 생각입니다. 

 

-진동면사무소 앞에 있는 역대 진해현 현감들의 애민 칭송비-

 


  현감들의 애민행정을 칭송한답시고 세운 비들  중에는 석비도 있고 철비도 있는데 당시로로는 철값이 만만치 않았을텐데 삼시세끼 끼니마저도 해결하기 어려운 그 시절에 백성들이 정성을 모아 이정도의 철비를  세웠다는 것이 어째 쉬이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이 애민비는 본래 현감의 재임 기간 중 기여한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우는 비인데 현감이 부임하기도 전에 이미 세워진 비도 더러 있었다고 하니 예나 지금이나 아첨배들의 눈치 빠른 짓거리는 변함이 없는 것 같습니다. 위의 철비도 그런 연장선상에 있지 않았을까요?

 

 이 비들에 새겨진 진해현의 현감들 중에  유배살이를 한 담정 김려만큼 백성을 아끼고 사랑하여 애민행정을 한 이 과연 몇이나 되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