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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이야기/법원과 검찰이야기

두개의 문 - 용산참사

선비(sunbee) 2012. 8. 10. 18:18

 

 

지난 7월 20일 갱상도문화학교 추진단의 역사와 생태기행을 마치고 천주교 마산교구청에서 상영하는 용산참사를 영상화한 <두개의 문>이라는 영화를 감상하였습니다.
 이 영화는 당시의 목격자 증언과 화재현장의 동영상 등으로 제작된 다큐영화인데 용산참사에 관한 글들은 많이 있으므로 생략하고 내게 가장 크게 와 닿는 대목만 이야기 하겠습니다.

 

 

 

 

 

성역 없는  검찰의 수사는 결국...
 이 사건에서 철거민 5명과 경찰관 1명이 사망하였는데 사건 수사 초반만 하드라도 검찰은 경찰이 과잉진압과정에 과실여부와 그 책임이 어느 선까진지 성역 없는 수사를 하겠다고 큰소리를 쳤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검찰은 시부적이 꼬리를 내리면서 경찰은 무혐의 불기소처분을 하고 철거민 대책위원장 등 7명만 기소를 하였습니다.

 그 까닭인즉 성역없는 수사를 하겠다며 치고 올라가보니 경찰청장이 있고 그 뒤에 청와대가 있음을 감지하였음이라 봅니다.
 그 징조는 영화의 초반에 나오는 청와대의 기자회견이나 국무회의 회의석상에서 나오는 대통령의 발언들을 보면 그 의중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미국이나 이태리 같은 선진국에서는 아무리 대통령이고 수상이고 하드라도 국법을 어긴 자는 검찰이 가차 없이 기소를 하는 기사를 종종 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검찰의 칼끝은 권력 있고 힘 있는 자 앞에서는 그만 오뉴월 엿가락 처지듯이 처져버립니다.
 용산참사의 사건에서도 애꿎은 철거민한테는 인정사정없으면서도 권력자한테는 애꿎은 철거민 멋지게 사냥했노라고 꼬리치는 사냥개 모습을 보여준 것입니다.
 대한민국에서 능력 있다는 공안검사들의 특징이라면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드는 아주 특별한 재주들이 있습니다.
 BBK사건이나 부러진 화살사건과 같이 법정에서 권력과 다투는 싸움에서는 여지없이 피해자가 가해자 또는 범죄자로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용산참사를 덮기 위한 연쇄살인사건 언론 플레이.
 청와대는 이 사건이 터지자 당시 연쇄살인사건 용의자를 경찰에서 검찰로 송치하면서 이를 언론에 홍보하여 국민의 시선을 용산참사사건에서 연쇄살인사건으로 돌리도록 하는 지침을 시달합니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각 언론은 연쇄살인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용산참사사건은 국민들의 뇌리에서 잊혀져 가고 맙니다. 
 이런 수법은 유신정권과 군사정권하에서 언론작전으로 수없이 써먹어 왔던 수법이었는데 문민정부 이후로 절제되다가 이명박 정권하에서 다시 살아난 아주 못된 정치술수인 것입니다. 


 자신들의 권력유지를 위해 어떤 때는 설익은 사건을 미리 터뜨리기도 하고 어떤 때는 이미 결론 난 사건을 뒤늦게 발표를 하기도 하며 자신들에게 유리한 국면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나는 공무원 생활을 하는 과정에 몇몇 언론인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권력과 언론 간에 거래되는 이런 비화를 어느 정도 듣기도 하고 실제 체험도 한 바가 있어 언론에서 보도하는 내용을 전적으로 믿지도 않을뿐더러 “저 언론보도 뒷면에 무슨 음모가 도사리고 있나?”하고 의심도 해보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은 그냥 메이저언론의 보도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맙니다.

 

 국민의 생명을 미끼로 던지는 사냥놀이.
 이 영화를 보다보면 이해 못할 장면이 또 하나 있습니다.
 철거민들은 남일당 건물 옥상에 망루를 만들어 골프공을 쏘고 화염병을 던지며 극렬하게 저항을 하고, 경찰은 2중3중의 포위망을 치고 며칠을 대치합니다. 상황이 그렇다보니 이 근처를 지나는 보행자나 자동차는 본의 아니게 큰 화를 당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당연히 경찰은 일반인의 접근을 금지하는 안전조치를 해야 하는 장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철거민들이 난폭해지도록 자극만 하지 일반보행자나 차량의 통행은 방치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아무런 영문도 모르고 지나는 시민이 죽거나 다치는 사고가 발생하기를 바라며 덫을 놓아 그 덫에 누군가 한명이라도 희생자가 생기면 이를 빌미로 철거민을 치겠다는 의도가 아니고 그 무엇이겠습니까?
 이 얼마나 잔인무도하고 파렴치 한 일입니까?


 국가와 국가 간에 전쟁에서도 감히 생각할 수 없는 국민의 희생을 건물 하나 철거하겠다고 그 희생을 강요하고 있으니 이를 두고 어찌 국가라 할 수 있으며 경찰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용산참사사건을 영화화 한 <두개의 문>은 우리 사회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휘두르는 검찰과 언론의 부도덕한 내밀한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이명박 정권이 얼마나 개발만능주의 정권이고 개발을 위해서는 어떤 파렴치한 폭력도 마다하지 않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영화의 말미의 인터뷰에서 누군가 이런 취지의 말을 합니다.
 “용산참사사건은 철거민이 가해자인지, 경찰이 가해자인지가 문제가 아니다.
   경찰의 고의였느냐 과실이었느냐가 중요한 것도 아니다.
   문제는 국가가 국민을 이렇게 취급해도 되느냐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가 국가로부터 이런 취급을 받고 산다는 것이 너무 서글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