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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내 주변 이야기

자식과의 전쟁에서 깨달음

선비(sunbee) 2012. 3. 13. 13:03

 우리네 부모들은 자식들이 학생시절에는 공부만 잘하면, 취업연령이 되어서는 대기업에 취직만 아무 문제가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진짜로 자식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해야 행복해 하는지는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좋은 옷을 사주고 과외만 잘 시켜주면 부모 노릇을 잘 하는 줄로 착각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내 친구의 아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아이들이 숨 돌릴 틈도 주지 않고 내리 과외수업을 시켰습니다. 나는 이런 모습을 보면서 “네는 내 친구 죽도록 고생시켜서 네 새끼들만 호강시키냐? 하루 종일 네 방구석 뱅뱅 돌며 침만 놓고 있는 신랑이 불쌍치도 않나? 아이들 어릴 때부터 너무 공부시키다 보면 정작 고학년 때 공부에 지치고 염증을 낼 수도 있으니 그냥 좀 놀게 내버려 두어라”하고 퉁을 놓기도 하였습니다만 친구 아내는 “그렇게라도 하니까 그 정도의 성적이라도 나오는데 안하면 어떻게 되겠느냐”며 열심히 과외를 시켰습니다.
 아마도 자식을 둔 엄마의 마음은 대개가 그렇지 싶습니다.  남들은 다하는데 내 자식만 안하면 어떻게 될까하는 앞지른 노파심 같은 것 말입니다.

 하여튼 친구아내는 열심히 과외를 시켰지만 아들 두 녀석 중 큰 놈
은 기대치만큼 성적이 나지 않아 1년간 기숙학원에서 재수를 한 다음 대학을 진학하여 지금은 군에 가 있고, 작은 놈은 꽤 공부를 잘하여 기대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 놈이 금년에 고3을 올라가면서 2월부터 갑자기 보충수업을 포기하고 자퇴하여 검정고시를 치겠다며 등교를 거부하는 청천벽력 같은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친구의 한의원은 부산 영도 봉래동 시장통에 있는데 사행침술의 명의로 나의 목디스크, 허리디스크를 완치해 주었습니다


 녀석의 말을 빌리자면 학교수업은 별 능률도 오르지 않고 이 상태로 가면 내신성적이 좋지 않아 대학입시에 불리하므로 검정고시로 대학을 진학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금년도 검정고시를 치려면 지난해 11월 이전에 자퇴를 했어야 하고, 지금 사퇴를 하면 고등학교 졸업도 못하고 대입 시험도 못 치르고 만다는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이 녀석이 방에만 박혀 밤에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낮에는 잠을 자며 사람과의 대면을 기피한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설득은 물론이요 2학년 때 담임선생님과 3학년 담임선생님까지 나서서 설득을 하였지만 막무가내라는 것입니다.

  친구아내는 전화로 이일을 어쩌느냐며 울면서 내게 하소연을 하였습니다. 나는 사춘기 그만한 나이에 가출을 하기도 하고 정신과 진료를 받을 정도로 극심한 방황과 고민을 한 전력이 있어 사춘기 아이들의 심리상태를 어느 정도 이해하기에 내가 나서서 설득을 해보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곤 지난 3월3일 토요일 부산의 친구 집에 갔는데 마치 2학년 담임선생님이 면담을 하고 갔고 월요일에는 등교를 하겠다하므로 그냥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월요일 이 녀석은 학교에 갔다가 돌아와 버린 것입니다. 3월 6일 나는 부산엘 다시 가서 녀석을 면담을 하였는데 처음에는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 하다가 차츰 고개를 돌리더니 나중에는 눈을 맞추며 대화를 하는 단계에 까지 도달하였습니다.
 이 정도면 어느 정도 마음이 풀렸다 싶어 나는 녀석에게 제안을 하였습니다. “인생에서 공부만이 왕도가 아니다. 공부를 잘한 너의 아버지와 농땡이를 친 나의 삶을 우리집에 한번 와서 네 눈으로 느껴보아라”하여  녀석의 동의를 구하는데 까지 성공하였고, 다음날 오후에  방문 출입이라고는 않던 녀석이 아빠 엄마와 함께 창원에 와서 요트도 잠시 타고 저녁식사도 함께 하며 많은 대화를 나누고 돌아갔습니다.
 친구내외는 녀석이 일단 바깥에 나온 것만 보아도 마음이 풀린 것 같다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나는 그 정도하면 녀석의 마음이 돌아설 줄 알았는데 뒷날 또 학교는 가지 않겠다고 한다기에 9일 오후에 다시 녀석을 만나러 갔습니다. 이제는 화이트보드에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것과 검정고시를 칠 때의 장단점을 표로 만들어 가면서 녀석 주장의 논리적 모순을 공격하며 설득하였습니다. 녀석은 내가 주장하는 논리에 동의를 하면서도 자신의 고집은 꺾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백약이 무효였습니다.

               -양산 배내골 영남알프스의 간월대 등산을 하면서 찍은 친구 내외의 모습니다-

 그날 밤 나는 친구집에서 자면서 친구내외와 의논하였지만 아무리 머리를 짜내도 답이 없었습니다. 그러곤 뒷날 친구는 이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내가 환자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인간은 이성적으로 살아가는 것 같지만 실상은 감성으로 살아가는 것 같더라. 녀석에게 지금은 아무리 이성적인 판단을 하도록 이야기해 봤자 귀에 들어가지 않을 테니 지가 원하는 대로 따라주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토요일 오후 녀석을 데리고 수도권의 기숙학원 몇 곳을 돌아보겠다며 창원에 나를 내려주고 서울로 향했습니다.
 나는 차에서 내리면서 녀석에게 “인류의 역사는 어차피 투쟁의 역사인데 이번 투쟁에서 결국 네가 이겼으니 축하한다”라고 하였습니다. 그토록 수많은 사람들이 설득하고 심지어 엄마는 무릎 꿇고 눈물로 호소를 하기도 하였지만 결국 녀석은 뜻을 굽히지 않았고 어른들 모두가 항복하여 녀석의 뜻을 따르기로 하였으니 완벽한 녀석의 승리임에 틀림없었습니다.

 일요일 저녁 7시쯤 친구로부터 기숙학원 3곳을 둘러보고 집에 도착하였다며 전화가 왔습니다. 그리고 친구는 “학교를 갈 것인지, 학원을 가면 어느 학원을 갈 것인지 자정까지 스스로 결정하라”고 최후통첩을 할 계획이라 하였습니다.
 그러곤 밤 10시가 약간 넘은 시각에 전화가 왔습니다.
 “야, 친구야 기적이 생겼다. 현우가 학교를 가겠단다. 내가 한의대에 합격하였을 때 보다 훨씬 기쁘고 내 생에 최고로 기쁜 날이다. 우째 이런 일이 있겄노. 하하하”하며 아내를 바꾸어 주었습니다. 그의 아내는 “이게 꿈이냐 생시냐며 신랑에게 내살을 꼬집어보라고까지 하였다”며 감격한 나머지 목소리마저 젖어 있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부모와 자식 간 피를 말리는 한 달여의 전쟁은 끝이 났습니다. 

                    -간월대피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나는 이 과정에서 깨달은 바가 있습니다.
 토요일 기숙학원을 길을 떠나던 때만 하드라도 녀석의 고집이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역시나 부모는 자식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런데 그 완벽한 승리와 패배 사이에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 기적은 완벽한 승리를 한 녀석이 결국 자신의 뜻을 보모에게 양보하여 부모의 뜻에 따르기로 한 것입니다.
 사실 나는 이 일련의 과정에서 내 친구가 보여준 인내와 상대에 대한 이해심에 대해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가 만일 친구의 입장이었더라면 아들을 몽둥이로 때려잡았거나 내쫓아버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친구는 참고 또 참으며 아들의 심경을 이해하려 하였습니다.

 지금도 녀석이 무슨 이유로 학교를 가지 않겠다하였으며, 또 어떤 생각으로 마음을 돌려먹었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짐작컨대 학교를 그만두고 검정고시를 하겠다는 이유는 생각만큼 내신성적이 오르지 않으므로 그런 자신이 주변의 사람들에게 쪽팔린다는 중압감 같은 것이 있지 않았을까 싶고, 그리고 마음을 돌린 이유는 부모가 진정으로 원하는 바는 공부가 아니라 자신이 행복한 인간이 되기를 바란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녀석의 이번 스트라이크는 자신에게 있어서나 부모에게 있어서 서로가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하는 좋은 계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산다는 것, 행복하게 산다는 것은 공부를 잘하고 좋은 직업을 갖는 것만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소통과 공감 속에 진정한 행복이 있다는 점을 절실히 실감하였습니다.

 고집불통 아들놈 홍현우!
 너로 인하여 우리는 또 많은 것을 깨달았다. 고맙다 아들아~
 홍현우 화이팅!